친구들을 담은 양성준의 스케이트 필름 “DADDY” 미니 인터뷰

지난 25일, 을지로 신도시에서 프리미어를 진행한 스케이트 필름 “DADDY”가 온라인을 통해 공개됐다. 필르머 양성준은 20분 남짓한 분량의 필름에 수내 스팟을 중심으로 뭉친 스케이터 친구들을 비롯해 여러 스케이터와 함께한 1년 반의 시간을 갈무리했다. 그는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이 이미 자신과 친분이 깊기에 너무 개인적인 시선이 드러나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도 잘 알겠지만, “DADDY”는 자신을 둘러싼 친구들과 환경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 그 자체다.

필르머는 카메라를 든 순간부터 1인칭이라는 영역에 놓인다. 양성준은 굳이 그것을 거부하지도, 벗어나려 하지도 않았다. 다만 조금은 쑥스러웠을 터. 어린아이들처럼 마냥 뛰어노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그의 감정이 필름 곳곳에 담겨있다. 여러 스케이터가 함께 다운힐하는 마지막 장면은 필르머에게 가장 감상적인 순간이 아니었을까? ‘DADDY’라는 이름은 추측하건대, 숱한 친구들을 따라다녔던 자신의 희로애락, 그것의 의인(擬人)일 수도 있다.

Mini Interview with 양성준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비디오였다. 이번 필름의 제목은 왜 “DADDY”인가?

바트가 아빠가 되면서 그 단어가 처음 머리에 들어왔다. 호진이는 마침 성인이 됐고, 필규는 고양이 아빠고, 모두 돈을 벌어야 하고, 다치면 안 되고, 평상시에는 다들 나름 ‘대디’같은 책임감을 안고 있지만, 다 같이 보드를 탈 때는 마냥 애처럼 논다는 게 좋았다. 높은 곳을 보면 올라가서 뛰어내리고 싶고, 기울인 벽면이 있으면 거기서 점프하고 싶어 하는 그런 모습. 어깨가 무거운 우리가 그렇게 있을 수 있다는 게 좋아서 “DADDY”라고 지었다.

완성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나? 20여분의 필름을 제작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면 가감 없이 이야기 부탁한다.

가장 오래된 클립은 2년 전에 찍었다. 본격적인 프로젝트는 1년 반전에 시작했다. 내 인생에 이렇게 즐거운 시기가 또 안 올 것 같아서 종종 우울했다. 친구들을 2년간 매주 찍고, 그걸 한 번에 쭉 돌아보면 그런 기분이 든다. 이렇게 혼자만의 감상에 젖는 게 싫었다. 내 친구들의 스케이팅을 내 우울함으로 덮어버릴까 무서웠다. 촬영하면서 내가 이 친구들을 왜 찍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도 있다. 만약 사람들이 하트 모양의 구름을 본다거나, 비둘기 떼가 별 모양으로 앉아있거나, 김연아가 나타나서 손가락으로 내 이름을 허공에 쓴다거나 하면, 누구나 그 신비로운 광경을 휴대폰으로 찍을 것이다. 내 친구들이 보드를 타는 모습이 나한테는 꼭 그런 것 같았다. 찍어 마땅한 일들이 내내 주변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연아가 내 앞에 나타나도 내 소중한 16mm 필름을 쓰지 않을 거지만, 친구들이 웃는 건 그렇게 하고 싶었다.

몇백개의 곡을 두고 BGM을 고심했다고 들었다.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의 노래도 그 친구의 스케이팅과 어울리면 썼다. 결국 내가 쓰려고 미리 모아놓은 7백곡은 거의 쓰지 않고, 영상을 보면서 찾은 새로운 노래를 많이 쓰게 됐다. 여러 명이 섞이는 영상에서는 내가 생각한 음악에 클립을 끼워 맞출 수도 있지만, 개인의 파트에 쓰이는 음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친구 한 명 한 명의 스케이팅을 보면서 배경음악을 고민했는데, 내가 그렇게 잘 고른 것 같진 않다.

필르머로서 유독 재미있게 찍은 파트가 있다면 무엇인가? 스팟에 관련된 이야기도 부탁한다.

17분에 나오는 삼성동 뒷골목 스팟을 처음 필규와 발견했을 때 그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노란 햇빛이 잘 들어오고 가끔 레스토랑 일꾼들이 음식 쓰레기를 버리는 조용한 골목이었다. 모래 바닥이 있어서 한 번 시도하고 나면 렌즈에 뿌옇게 먼지가 앉았다. 거기서 햇살 속으로 보드를 타고 가는 필규의 모습이 정말 좋았다.

7분 32초에 나오는 수내의 작은 보도블럭 틈에다 차이니즈 알리를 하는 호진이도 재미있었다. 지금까지 수내에서 보드를 탄 사람은 수백 수천 명인데, 거기에다 그걸 하려고 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방식으로 스팟을 보는 호진이에게 감탄했다. 영상을 공개하고 이틀간 괴로웠다. 친구들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바트가 자기 딸이 크면 “DADDY”를 보여줄 거라고 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영상에 등장하는 스케이터는 대부분 다 큰 성인이다. 그럼에도 왠지 영상은 굉장히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처럼 그들을 비춘다. 영상 곳곳에 등장하는 그네 또한 의미를 강화하는 일종의 장치처럼 느껴진다.

그네는 정말 쓸모없는 물건이다. 앞으로 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스케이트보드는 어디를 가기라도 하지. 그렇게 쓸모없는 그네의 순수한 즐거움이 좋았다.

핫미네이터 이한민을 비롯해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친구들이 많이 등장한다. 친분이 깊은 이들을 팔로잉하고 필름에 담는다는 것은 그렇지 않을 때와 어떤 점에서 달라지는가?

정말 날카로운 질문이다. 사실 친구들을 향한 내 시선이 영상에 담기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그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기에 자칫하면 사적인 의견을 덧붙여서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알량한 작가주의를 다 내려놓고 싶었는데, 그게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함께한 시간만을 보면서, 친구들의 스케이팅을 기념하고 싶었다. 3분 43초에 나오는 것처럼, 보드를 타고 있으면 어린아이들이 우리에게 매료되는 경우가 많다. 그 애들처럼 친구들을 바라보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다.

신도시에서 시사회를 진행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함께 영상을 본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고맙고. 아, 갑자기 유명하신 분들이 온다고 해서 순간 긴장했는데, 그냥 신경 쓰지 않고 틀었다. 우린 팬티를 입고 놀고 난 그게 자랑스럽다.

양성준 개인 비미오 계정
양성준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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