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 영화 속 폭력 미학

1962년 6월 22일, 희극의 왕으로 불리는 한 남자가 태어난다. 훗날, 그의 영화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휩쓸었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오늘날, 희극인과 영화인에게 코미디의 교과서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한 남자의 이름은 바로 주성치(저우싱츠, Stephen Chow). 80~90년대에 학창 시절 혹은 유소년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명절 특선 영화로 방영하던 주성치의 영화를 보며 웃고 떠들던 때가 기억날 것이다. 특히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는 “서유기 시리즈(월광보합, 선리기연)”가 있다. 이 작품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 유일하게 대륙에서도 성공한 작품이기도 했고 수많은 유튜브 채널에서 주성치 영화를 리뷰할 때 빼놓지 않는 작품이기도 하다. 서유기 시리즈 외에도 주옥같은 작품들을 찍어낸 주성치와 그의 사단이 만들어낸 개그는 90년대 후반까지도 한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성치의 정점은 바로 Y2K가 마무리된 이후인 2002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월드컵의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영화 “소림축구(Shaolin Soccer)”는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며 주성치식 개그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해냈고, “쿵푸 허슬(Kungfu Hustle)”은 할리우드 자본을 받아 완성시킨 작품으로 그의 영화 인생에 한 획을 그었다.

주성치 영화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점은 웃음과 감동 그리고 선악의 대립 속에서 결국 선이 승리하는 권선징악의 이야기 구조다. 잠시 악의 길을 방황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결국 부처님의 큰 가르침을 깨닫고 돌아온다. 주성치 영화에서 반드시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가 또 있으니 바로 그것은 접이식 의자다. 감동과는 거리가 먼 이 가구는 언제 어디서든 앉을 수 있는 유동성은 물론 누군가를 공격하기에 최적의 무기가 된다. 먼저 한국인이 사랑하는 주성치 작품 “희극지왕”에 등장하는 접이 의자를 알아보자.


접이 의자의 가장 완벽한 사용법, 영화 “희극지왕(喜劇之王: King Of Comedy)”

사용자에 따라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접이 의자...

1999년 개봉한 “희극지왕(喜劇之王: King Of Comedy)”은 주성치의 자전적 성격의 영화인 동시에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여지없이 등장하는 접이 의자만 봐도 이 영화의 본질은 확실히 개그 영화임을 알 수 있다. 피우(장백지)가 일하는 클럽 직원들의 연기력이 부족해 손님을 끌 수 없자, 무료로 연기를 가르치는 사우(주성치)에게 찾아간다. 그런 와중에 거슬리는 말이라도 들었는지, 주성치를 공격하기 위한 아이템을 찾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접이 의자. 시원하게 후려치는 장백지의 스윙은 접이 의자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장 완벽한 사용법이라고 했지만,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접이 의자의 사용법보다 더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점은 접이 의자를 사용하기 위한 과정에 있다. 접이 의자를 사용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굳이 보여준다는 점은 주성치 영화만의 차별점이다.

최근 주성치는 후속편 “신희극지왕”의 촬영을 마쳤다. 20년 만에 내놓은 후속편이지만, 아쉽게도 주성치는 제작만 할 뿐 출연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성치 영화의 팬에게는 이만해도 썩 괜찮은 선물이지 않을까.


대놓고 드러낸 접이 의자 예찬, 영화 “식신(食神: God Of Cookery)”

멋진 접이식 의자!! ─ 심지어 경찰한테도 걸리지 않지 ! ─

다음으로는 영화 1996년 작품 “식신(食神: God Of Cookery)”이다.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맛보고 지난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재기에 성공하는 서사 구조는 주성치 영화 중에서 가장 뚜렷한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도 언제나 그랬듯 접이 의자가 등장한다. 실패한 사업을 다시 일으키고 요리를 배우기 위해 소림사로 들어간 싱싱(주성치)은 소림사 생활에 견디다 못해 탈출을 시도할 때마다 마주치는 ‘소림사 18동인’에게 번번이 맞기 일쑤다. 이때 소림사 18동인이 사용하는 무기가 접이 의자다. 애초에 이 작품에서는 접이 의자를 예찬하며 카메오급의 존재감을 부여했다. 이쯤 되면 슬슬 접이 의자 페티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

접의 의자 예찬은 영화 후반부 요리 대회에 뒤늦게 등장한 주성치가 악당에게 접이 의자를 사용하면서 시작된다. 접이 의자가 왜 좋은 무기가 되는가에 대해 확실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는 편이 가장 좋을 것. 다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점은 접이 의자가 경찰에게 걸리지 않는 무기라는 것이다. 다행히도 선과 악이 극명한 주성치 영화 속 세계관에서 악당이 접이 의자를 사용하는 일은 절대 없다. 아래의 영상에서 사용법을 자세히 알아보자.


죽은사람도 살리는 접이 의자, 영화 “홍콩 레옹(回魂夜: Out Of The Dark)”

마지막으로는 1995년 작품 “홍콩 레옹(回魂夜: Out Of The Dark)”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당연히 레옹을 패러디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영화를 보다가 컬트 영화라는 부류를 깨달았다. 실제로 이 작품은 주성치답지 않게 음산하고 기괴할 뿐 아니라 그로테스크한 느낌까지 머금고 있다. 하지만 주성치식 개그를 놓치지 않고 조화롭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흠잡을 데 없다.

사람을 살리려는 주성치의 노력…

몇 가지 작품에서 사람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접이 의자의 미학을 설명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반대로 사람을 살리는 접이 의자가 등장한다. 주성치는 귀신이 되겠다고 죽으려는 여자를 말리지만, 그의 총질에 여자는 얼떨결에 건물 밑으로 떨어진다. 여자를 살리기 위한 심폐소생술의 한 과정으로 주성치는 그녀의 가슴을 망치로 내리치기도 하지만, 결국 최후에 그가 선택한 도구는 여지없이 접이 의자였다. 접이 의자는 이제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가구 이상의 위치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 장면 뒤로 연속적인 사건이 계속되는데…

주성치 작품의 폭력은 결코 잔혹하지 않다. 웃음을 주기 위한 개그 코드로 등장할 뿐 아니라, 일반 가구를 더는 가구가 아닌 과학, 아니 그 이상으로 재탄생시키는 데 성공한다. 주성치가 출연한 수많은 작품에서 등장하는 접이 의자를 단순히 흘려보낼 것인가?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금 접이 의자의 미학을 느껴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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