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DELIGHT – 굶주린 새벽. 나 이거 너무 먹고 싶어

VISLA 멤버들은 거의 모두가 살을 빼야 한다. 그 말은 즉 거의 다 과체중이라는 뜻이고, 과체중이라는 것은 절제력 없이 야밤에 무언가를 꾸준히 먹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로로 커진 자신의 몸뚱이에 대한 그리고 수없이 다짐했던 다이어트에 대한 죄의식이 마법처럼 사라질 만큼 야식의 유혹은 참기 힘들다.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할 거라면, 기왕 먹는 거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편이 좋을지도. 어제보다 오늘 더 무거운 VISLA 친구들은 건강, 죄의식과 맞바꾼 소중한 야식의 기회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을까. 


간장계란밥

새벽녘에 생각나는 야식이라……. 라면, 탕수육, 스팸 구이 등 수많은 음식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글감을 듣자마자 번뜩이는 음식이라면, 역시 간장계란밥이다. 간단한 재료에 누구나 쉽고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음식의 대명사지만, 냉장고에 음식이라고는 마실 거밖에 없는 나에게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모순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늦은 밤 너무 헤비하지 않으면서도 가볍게 뚝딱 허기를 달랠 음식으로는 간장계란밥이 제격인데, 이를 위해서 간장과 참기름, 계란을 사놓기에는 뭔가 또 거시기하다 이 말이지.

그렇다고 주변에 간장계란밥 따위의 음식을 파는 곳도 없다. 세련된 분식(?)을 위시한 몇몇 분식 프랜차이즈에서 파는 것을 보긴 했지만, 어린잎 채소 같은 뭔가 여러 가지 잡스러운 재료를 넣어 놓고는 괜히 비싼 가격에 파는 건 사실 간장계란밥의 정수가 아니다. 자고로 간장계란밥이란 간장과 참기름, 계란, 밥 이 네 가지의 앙상블이 주는 단순 명료한, 정직하게 돌파해버리는 그 맛이 참된 간장계란밥의 맛이 아닐까.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2012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북경 두 달 살기’에 도전한 적이 있다. 당연히 계획이 없었기에 대충 렌트 하우스 주변에 어학원 하나를 등록해놓고 매일매일 놀고먹었다. 주변에 놀 거리가 지척이었으니 노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문제는 먹는 것에 있었다. 제아무리 중국 음식을 좋아한다 해도, 코리안 차이니즈가 아닌 생짜 중국 음식을 며칠씩 먹으려니 죽을 맛이었거든. 그 당시 나를 구원해준 음식이 바로 간장계란밥이었다. 향신료 냄새 가득한 타국에서 비벼 먹는 달콤하고도 짭짤한 간장계란밥의 맛이란…….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서 간장계란밥을 먹으며, 일본의 여느 식도락 만화마냥 “그때 그 맛이 아니야!”라고 밥그릇을 던지며 외칠 일은 없지만. 

아직도 간장계란밥을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일 뭐하며 놀까 궁리하던 북경 호시절이 떠오른다. 내 인생 언제 또 그렇게 정신, 육체적으로 편안한 때를 가져볼 수 있을까. 한없이 자유로웠던 꿈과 희망의 베이징,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오욱석(Editor)


64가지의 라면

식탐이 많은 편은 아니다. 맛있는 음식이야 누가 마다하겠느냐만, 미세한 맛의 차이에 민감하지 않을뿐더러 살면서 ‘오늘은 무조건 이걸 먹어야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없으니, 어쩌면 본 특집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대체 뭘 안다고 음식에 관한 글을 쓰나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끼적끼적 글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지난 새벽에 끓여 먹었던 짜파구리가 너무 맛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한 주 동안 라면을 총 세 번 끓여 먹었다. 물론 전부 다 새벽에.

먹을 게 라면밖에 없었느냐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지만, 허기진 새벽에 라면보다 간편하고, 저렴하며, 맛있는 대체재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이처럼 질리지도 않고 뻔질나게 라면만 먹을 수 있었던 건 지난주에 유튜브에서 본 ‘라면을 끓이는 64가지의 참신한 방법 ─ 당신의 라면 인생을 바꿔줄 영상 ─ ‘의 공이 컸다. 라면은 치즈 라면과 그냥 라면 두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새 지평을 열어준 영상으로, 혹시 아직 보지 못한 이가 있다면 자신 있게 추천한다. 서너가지도 아니고 정확히 64가지라니. 단언컨대 지난주에 본 그 어떤 콘텐츠보다 내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것이며, 영상을 본 후 나는 모든 라면에서 색다른 맛을 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치즈와 계란을 넣고 라면을 분말 스프에 볶고, 두 가지 이상의 라면을 함께 넣고 끓이며 ‘라면에 정해진 맛이라는 것은 정녕 없으며, 내가 요리하기 나름이구나…’ 따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15분 만에 자취생의 냉장고에서 고급 요리를 만들어 낸 셰프와 견줄만한 은밀한 뿌듯함은 덤이다.

영상에 정확히 몇 가지 조리법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실제로 64가지였다고 가정할 때 앞으로 61가지의 다양한 라면 요리를 더 맛볼 수 있다는 생각은 꽤 고무적이다. 훌륭한 콘텐츠 덕에 난 앞으로 61번의 만족스러운 새벽을 보내게 될 것이다… 뻘소리였고, 찌질하고 주접스러운 61가지 시도가 끝나고 나면 그냥 좀 더 비싸고 맛있는 걸 먹고 싶다.

김용식(Editor)


츠케멘

매일 마른 몸을 상상하며 사는 내게 야식은 하루를 마감하기 전 이겨내야 할 최후의 적이다. 그러나 가끔 열심히 일하거나 놀면서 밤을 지새우다 종국에 먹는 야식은 든든한 동료 같아서 그럴 때 적과의 동침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낀다. 애증이라면 애증. 최근 내가 츠케멘에 꽂힌 게 아닐까 하는 무서운 의심이 머리를 스쳐 가면서 심야의 고민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시부야 ‘야스베’라는 작은 라멘 가게에서 처음 접한 츠케멘은 문자 그대로 충격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라면의 상식에서 조금은 비켜나간 새로운 방식의 면 요리였다. 츠케멘의 생소한 비주얼을 눈으로 먼저 맛본 뒤 통통한 면을 걸쭉한 수프에 찍어 첫입을 넘겼을 때, 300g이 넘는 면을 7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해치웠을 때 느끼는 쾌감은 고급 스키야키를 먹고 나서 작은 컵에 담긴 복숭아 디저트를 티스푼으로 한 숟갈 뜰 때의 기쁨과는 분명 다른 성질의 것이다. 둘 다 음식이 선사하는 행복이라도 고백하건대, 나는 전자와 가까운 경험에서 내게 더 잘 맞는 옷을 입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도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레스토랑 ─ 이라는 말로 퉁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을 자주 마주친다. 사람들의 취향도 세세히 나뉘고 발전해서 그런지 각 나라의 로컬 음식을 전문적인 쉐프가 요리하는 식당 또한 많아진 듯하다. 물론 그중에서도 고급진 음식은 나를 교양과 품격을 갖춘 한 사람의 도시인으로 보이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맛도 좋고 모양새도 훌륭하다. 그러나 게으른 천성 탓인지 나는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던 평범한 식당에서 그렇게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는 평범한 음식을 먹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게걸스럽게 먹어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곳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 츠케멘 역시 마찬가지다. 늦은 시간 출출할 때 부담 없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든든히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아닌가. 심지어 웰빙 음식군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딴 건 관심 없다…… 게다가 늦은 밤에 먹어야 더 맛있다.

어머니는 지금도 가끔 내게 전화해 아들이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친절히 알려주신다. 라면 같은 거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어머니, 당신이 말하는 김치찌개도 사실은 건강에 그리 좋은 음식은 아니었어요. 

권혁인(Editor-in-Chief)


닭껍질 튀김

나에게 야참이란 곧 라면을 의미한다. 야참만이 아니라 내 인생을 통틀어 뱃속에 들어간 음식 절반은 아마 라면일 것이다. 식습관이 좋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곧 죽어도 라면을 택했던 나에게 이번 에디터스 딜라이트 역시 두말할 필요 없는 소재였다. 하지만 이미 다른 에디터가 선점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아쉽지만 라면 봉지와 냄비는 잠시 옆으로 밀어두고 새로운 메뉴를 찾아 나섰다.

약 한 달 전부터 DC 인사이드를 시작으로 여러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간 소식이 있으니 바로 KFC 닭 껍질 튀김 이야기다. 한 유저가 KFC 신메뉴인 닭 껍질 튀김을 맛보기 위해 인도네시아 자타르카를 방문하려다 폭동 사태로 계획이 좌절되자 한국 KFC에 청원을 넣어 다 같이 맛보자는 내용. 이 글에 감동한 치킨 마니아와 많은 이들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6월 19일 오늘부터 닭 껍질 튀김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닭껍질튀김’이라는 해시태그로 인증과 후기가 올라왔다. 치갤에 올라온 글이 바이럴 마케팅이 아니냐는 강한 우려 속에서도 전국 여섯 점포 한정 판매라는 상황과 사람들 머릿속에 떠오른 물음표는 그들의 기대감을 쉽사리 잠재울 수 없었나 보다. 뉴스에도 나오고 해당 매장들은 내내 문전성시를 이룬 모양새다.

사실 굶주린 새벽에는 무엇을 먹어도 몸에 좋을 리 없으나, 라면에 계란을 풀고 김치를 얹은 다음에 남은 국물에는 밥까지 말아 먹는 것보다는 이게 조금 더 가볍게 즐길 수 있지 않겠냐는 자기 위안 가득한 상상을 해본다. 일단 오늘 밤은 닭 껍질 튀김과 함께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냄비에 물 올리는 것으로.

백윤범(Photographer)


유어스(YouUs) 골드 피그 젤리

극강의 쫄깃함, 탱탱함의 대명사인 젤리를 즐기기 시작한 게 편의점보다 가까운 거리에 세계 과자 할인점이 생기기 시작한 이후인 2013년. 그로부터 지금까지 약 6년간 집 앞 가게를 비롯한 전국 각지 세계 과자 할인 가게에 즐비한 하리보(HARIBO)와 트롤리(Trolli) 그리고 복합쇼핑몰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자리한 위니 비니(Weeny Beeny)까지, 갖은 젤리를 닥치는 대로 섭렵해왔다. 따라서 이제 편의점에서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흔해진 곰 젤리, 콜라 맛 등의 스탠다드한 맛은 조금 지겨워서 새로운 맛과 식감을 가진 젤리를 찾고자 하지만, 내가 접하지 못한 젤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 수준. 허나 이런 내게도 전설과도 같은 젤리가 존재하는데, 바로 하리보 자이언트 구미 베어(Giant Gummy Bears)다. 성인 남성 팔뚝만 한 괴물 같은 크기를 자랑하는 대왕 젤리는 아쉽게도 어마어마한 가격에 오직 해외 배송을 통해야만 접하는 게 가능하여, 그 벽이 매우 높은 편.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식감에 대한 궁금증. 이를 접하고픈 내 갈증을 알아챈 것인지, 최근 대왕 젤리의 대체재로 50g에서 많게는 100g 사이즈의 덩어리 젤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 100g, 1800원에 판매되는 유어스 골드 피그 젤리가 가장 경제적이며 맛 또한 보장됐다고 생각한다. 왕꿈틀이, 마이구미 등으로 대표되는 로컬 젤리 식감이 비교적 잘 끊어지는 반면, 이 거대한 덩어리는 그러한 식감과 반대되는 것은 물론이고, 극도로 자극적인 단맛을 자랑하고 있으니, 소위 아기 입맛을 가졌거나, 극히 강한 단맛을 접하고픈 이들에게 안성맞춤. 단 커다란 덩어리인 만큼 오래 두고 먹진 못한다. 따라서 오로지 젤리 한 봉지를 수십 분 내에 뚝딱해치우며, 한 입 베어 물자마자 건강을 걱정하게 되는, 자극적인 맛 또한 좋아하는 단맛 마니아에게 권한다.

황선웅(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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