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신조어 리스트’에 실린 엿 같은 단어를 볼 때마다 염증을 느끼고, 연말연초 신문에 오르내리는 건배사 목록을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올리며 “야~~~~♨♨♨♨”를 외치는 당신, 한국형 축약어(Acronym) 혐오론자인 당신도 감히 이 축약어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스지’. 보고(BOGO)에서 ‘Buy One Get One’이 아닌 슈프림 박스로고(Supreme Box Logo)를 떠올리는 것처럼, 스지를 들었을 때 ‘소의 사태에 붙은 힘줄’ 이상의 다른 무언가가 먼저 떠오른다면 특히나 그러하다.
스트리트 지인. 정확하게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모르지만, 듣는 순간 ‘아 그 친구들?’ 을 떠올리게 되는 이 마법의 단어는 나처럼 근본 없는 동네 한량 내지 포저(Poser), 스지 후보생부터 실제 2000년대 초반 압구정 스트리트 신(Scene)의 주역이었던 형님들 그리고 레디(Reddy)나 빈지노(Beenzino) 같은 실제 플레이어까지도 두루 사용하는 이 바닥 공식 용어가 되었다. 심지어 이제는 힙합 곡의 가사에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으니 한국식 어반 딕셔너리(Urban Dictionary)가 있다면 제일 먼저 등록되어야 할 단어일지도 모른다.
다만 스지라는 것이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어떠한 슬랭의 위치에 오른 단어가 아닌지라 스지의 어원부터 정확한 의미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분분한 것 같다. 유튜브 채널 레짓(Regit)에서는 ‘지나친 친목질을 비꼬기 위해 사용한다’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동시에 힙합엘이(HiphopLE)의 ‘스지가 뭐냐’는 게시물에는 예의 소 힘줄부터 시작해 ‘길거리에서 만난, 깊은 관계를 맺는 게 아닌 슬쩍 만나는 사람 같은 느낌이다’라는 꽤나 피천득의 ‘인연’다운 해석까지도 있다.
어느덧 스지 그 자체의 폄하적인 의미를 극복하고 우리 동네의 밈(Meme)이 되어버린 이 시점, 지난 30여 년에 걸친 좃밥/힙찔이/만식이/포저/스지 워너비의 기구한 삶을 통해 운 좋게 스지의 탄생 기원을 목격했던 사람으로서 스지라는 말의 어원과 그것이 정확하게 지칭하고자 했던 존재는 과연 누구였는지에 관해 나름의 고찰을 나누고자 한다.
발단: 그릴파이브 타코
지금에 이르러 ‘망고플레이트 추천 맛집’ 같은 리스트에도 심심찮게 등재될 뿐 아니라 유명 백화점 푸드코트에도 입점할 만큼 썩 대중적인 가게가 되었지만, 초창기 그릴파이브 타코(Grill5Taco)의 시작은 분명히 길거리였다. 가로수길, 혹은 당시 여러 페스티벌에서 이 푸드트럭을 본 적 있는 이라면 특히나 공감할 것이다. LA 코기 트럭(Kogi Truck)의 영향이 없다고는 못하겠으나 갑작스레 트위터(Twitter)로 오픈 시간과 장소를 알리는 방식도 당시에는 썩 길바닥다웠으며, 매장 오픈 이후 선보인 프로모션 영상이나 아디다스 오리지날스(adidas Originals), 폴러(Poler) 등과의 협업도 당시에는 무척 근사했다.
무엇보다 파운더 중 한 명은 ‘잠실 운동장에 모든 형을 채운다 해도 그보다 형은 없었던, 형 중의 형’으로 알려진 반주형, 당시 압구정 길바닥 취미 생활의 양대 축이었던 픽스드 기어 바이크와 캠핑에서 모두 단순한 뜨내기나 포저 이상의 멋을 보여주던 진짜배기 플레이어였다. 대략 픽시로는 서울 앨리캣 레이스 초대 우승자였으며, 캠핑으로는 보일러스(Boillers) 크루의 공식 셰프로 이후 고아웃(GO OUT) 같은 캠핑 매거진의 요리 꼭지까지도 담당했던, 그러니까 그때 당시 일부 스지 워너비들(=나)에게는 그야말로 무척이나 선망해 마지않던 멋쟁이 형님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스지라는 단어는, 놀랍게도 당시 스트리트 컬처의 중심이었던 카시나(Kasina)도 360사운즈(360Sounds)도 아닌 이 요식업체로부터 시작된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둔 2012년 12월 23일, 힙합 커뮤니티 디시트라이브(DCTribe) 익명 게시판(이하: 시크릿)에 장문의 글 하나가 올라온다. 전문을 옮기기는 어려우나 대략의 요지는 이러하다.
“그릴파이브타코 직원들 대부분 유쾌하고 좋은데, 안경 쓴 점장이 늘 불친절하더라. 그런갑다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일이 터졌다. 그 점장이 중학생 손님들에게 계속 거칠게 반말을 하고, 매장 내 비치된 나초를 퍼 가니까 ‘안에서만 먹으라고. 아 존나 말 안 듣네’라는 식으로 막 대하였다. 너무 불쾌했다”.
이런 제보 패턴이 늘 그렇듯 이어지는 댓글에는 해명을 요구하는 댓글과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불쾌한 경험담이 릴레이처럼 이어졌다. ‘나도 겪었다’, ‘그래도 반주형이나 다른 직원은 괜찮더라’, ‘맛도 별로다’, ‘아니다 맛은 있다’ 등의 답 없는 진흙탕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략 그릴파이브타코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댓글러의 무리한 쉴드는 도리어 기름을 끼얹는 꼴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달린 하나의 댓글.
“야 거기는 니들이 아무리 지랄해도 스트릿지인들이 다 먹여 살리니까 오던말던 맘대로 해라”.
2012년 12월 23일 오후 5시 4분 14초. 그렇게 스지는 탄생했다.
근데 스지가 정확히 누구냐?
스지에 대한 반응은 꽤나 폭발적이었다. 일단 어감도 좆되거니와 그간 우리 동네에 존재하던, ‘실체는 있지만 명확하게 뭉뚱그릴 수 없던 일련의 존재’를 한 번에 묶어낼 수 있는 단어였던 것이다. 만식이도, 힙스터도, 감히 충분히 담아낼 수 없던 그들을 말이다. ‘딘드밀리파’의 몇 배는 되는 언어적 쾌감이었다.
특히 스지의 주 타깃은 아마도 당시 몇몇 오프라인 매장의 직원이었던 것 같다. 슈프림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왠지 모르게 꽤나 까칠했던 매장 직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숍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입장하는 손님을 스캔한 뒤 다시금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직원 옆의 누군가야말로 당시 우리가 말하던 스지 그 자체였다. 혹은 360 파티에 입장하려고 줄 서 있는데 힙합 악수 한 번 갈기고 모든 줄을 뛰어넘어 들어가는 누군가, 행사 시작 전에 안에서 노닥거리던 누군가에 이르기까지, 지난 수년간에 걸쳐 이쪽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묘하게 아니꼬웠던 그들.
이처럼 최초의 스지에는 분명한 비꼼과 약올림의 뉘앙스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분명 이러한 스지 프레임(?)에는 어느 정도의 악영향이 있었다. 건강하게 도메스틱 브랜드를 운영하던 사람들이나 취미 생활을 영위하던 모두가 비꼼의 대상이 된 것이다. 가령 2013년 픽시를 타던 사람들, 2014년에 미니카를 가지고 놀던 사람들, 2015년에 캠핑을 하던 사람들, 2016년에 러닝을 하던 사람들이 졸지에 스지가 되었다. 돈 내고 360 파티를 갔다 와서 재밌다고 해도 스지가 되었고, 휴먼트리 개러지 세일 소식을 전하거나 썩 근사한 도메스틱 룩북을 공유해도 스지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스지는 누구냐’에 대한 나름의 고찰(?)이 시작된 것이다. 어쨌든 홍위병마냥 아무나 붙잡고 스지라 비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기가 막힌 정의: 쭈그림
다시금 디시트라이브로 돌아가 보자. 스지가 탄생한 지 반년 동안은 앞서 말한 것처럼 모두가 스지들의 익명 쉴드에 꽤나 지쳐있던 탓이었는지 익명 게시판에 국내 브랜드의 룩북이라도 하나 올라오면 스지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러던 2013년 7월의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자 한 명이 홀연히 ‘스트리트 지인의 조건 다섯 가지’를 제시했고 이는 사실상 스지의 공식 정의로 인정받게 된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다.
- 스냅백이 한 개 이상 입고된 옷 가게 앞에 3인 이상이 모여 있어야 한다.
- 3인 중 1인은 대너/레드윙을 착용해야 한다(주: 네이버의 고아캐(Go Out Casually Dressed) 카페를 중심으로 아메카지 유행이 태동하던 시절).
- 그들은 가게 직원도 아니고, 가게 홍보를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뭔가 세팅된 느낌이 난다.
- 주로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 입/퇴장하는 손님을 스캔한다.
그간 스지의 정체성을 두고 술자리 친목질이나 카시나 뒷담화, 360의 형제들 같은 키워드로 접근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현장 중심의 정의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렇다. 스지의 본질은 쭈그림이었던 것이다. 실제 종사하지는 않지만, 지인의 가게 앞에서 취하는 어떠한 잰 체, 그것의 집약이 바로 쭈그림이리라.
오프라인 매장의 영향력이 줄어든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이 매장 앞의 쭈그림이 썩 와 닿지 않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쭈그림 대신 클럽 ‘지인’과의 과장된 힙합 악수는 어떨까. 디제이 뒤에 서서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열심히 찍는 이들 말이다. 묘하게 세팅된 느낌이라면 인스타그램 바이오에 적힌 자작곡 하나 없는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 계정이 비슷할 수도 있다. 동네 뮤지션들의 지인이라는 사실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과도하게 자랑하는 것 역시 ‘세팅된 느낌’의 한 예라 할 수 있으리라.
스지의 확장: 업계 종사자
어쨌든 위의 다섯 가지 정의에 따르면, 도메스틱 브랜드의 파운더(Founder)들은 스지가 아니다. 또한 매장의 선량한 직원이나 클럽 관계자 역시 스지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업계 종사자일 뿐. 사운드클라우드발 인디펜던트 뮤지션 역시 스지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하다. 굳이 말하자면 덜 유명한 플레이어일 뿐이지 스지는 아니다.
그러나 요새의 스지 용법은 이 모두를 포함한다. LA의 주얼리 디자이너 벤 볼러(Ben Baller)가 한국인 최초의 월드와이드 스지가 되고, 2000년대 압구정에서 매장을 운영하던 이들이 스지킹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스지가 내포하는 비꼼의 의미는 점점 희석되었으며, 이제는 ‘업계 종사자’ 전체를 칭하는 말이 된 것 같다. 가령 상술한 레짓 영상에서 레디는 “누구야?”, “어? 스지”라고 하면 구차한 말 없이 ‘아~ 이쪽 일하는 분이구나’라고 알아들을 수 있다며 스지의 범용성에 주목했는데, 이러한 설명 속에는 뭔가 자조적인 의미는 있을지라도 실제 최초의 그 과도한 친목질을 일삼는 누군가를 향한 비난의 의도는 희미하다.
동시에 스지의 부정적 특징 역시 실제로 개선되었다. 이제는 그 파급력이 과거의 커뮤니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무신사나 디젤매니아 등의 대형 패션 커뮤니티를 위시로 한 게시판 중심의 적극적인 피드백은 더는 직원들이 손님이 오든 말든 친구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떠들거나 ‘레드윙을 4년간 팔아봤는데 동양인중에 칼발은 한 명도 못 봤다’ 따위의 고압적인 자세를 취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오늘날 동네 하꼬방 마냥 스지에게 한정판 신발 한 족이라도 몰래 빼줬다간 아마도 점장부터 직원까지 전부 다 리셀러들에게 화형이라도 당할지 모른다. 그와 동시에 백화점에 입점할 만큼 대형화된 도메스틱 브랜드의 노력 그리고 뜨내기들의 멸망 역시 전체적인 CS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리라.
그러나 상술한 예시에 해당하는 짜치는 스지 역시 분명하게 존재한다. 후불라이프 웹툰이 그려내는 이 바닥의 모순적인 존재들이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이러한 예시는 화지나 제이호(Jayho)의 가사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화지는 2016년 발매된 넉살의 “HOOD”라는 노래에서 ‘Gram의 수컷 사이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친구를 두고 ‘너는 워킹 가격표, 스지들의 과녁 Hoe’라고 말한다. 제이호는 리짓군즈(LegitGoons)의 “세븐일레븐(7-Eleven)”에서 ‘낑기는 스키니 진에 걸음은 갱스터 갱스터, 넌 스지 워너비 충남시 Underwater’라는 가사를 통해 코홀트(Cohort) 이후 생겨난, ‘된장찌개를 제일 좋아하는 교포 워너비’를 스지로 퉁쳐버린다.
어떤 명확한 기준이나 정의로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알 수 있다. 예술과 외설을 나누는 기준에 대한 미 연방대법관 포터 스튜어트의 말처럼 말이다. “(무엇이 예술인지 외설인지는) 보면 안다.(I know it when I see it)”.
2019년, 오늘의 스지는
오늘의 스지는 어떨까. 어쨌든 스지라는 단어가 현재진행형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그때 그 시절 압구정 스지 형, 누나들의 정신을 이어가는 서교동과 한남동의 새싹들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카시나 앞에 더 이상 쭈그려 앉을 곳이 없지만, 대신 웝트샵(Warped.) 앞 나무 데크는 어떤 무리에겐 도쿄의 푸글렌(Fuglen) 이상의 인스타 명소다. 지금 이 순간에도 클럽 헨즈와 소프(Soap)의 입구에서는 무료 입장을 노리는 스지들의 힙합 악수 소리가 음악 소리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선망하던 360 파티는 이제 회수가 줄었고, 아싸리 아이트클럽(Aight Club) 같은 진정한 지인 파티가 열리곤 한다.
시대정신은 스지의 문법에도 유효하다. 흡사 소시지 파티를 방불케 했던 2000년대의 스지 신과는 달리 이제는 바야흐로 여성 상위시대다. 업계 전문가가 뽑은 ‘21세기 대한민국 최고의 지인 파티’로 평가받은(방금 지어냄) 스투시(Stussy) 반스(Vans) 하우스 파티의 호스트는 더는 가라사대부터 압구정을 주름잡던 형들이 아닌, 스투시 코리아의 디렉터이자 모든 스지 피라미드의 정점에 선 백규희였다. 다다이즘 클럽(Dadaism Club)의 볼캡은 어떠한 순간에는 사실상 스지 및 스지 후보생들의 암구호, 신분증, 여권과도 같았다. 여성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미스치프(MISCHIEF)의 매 시즌 런칭 행사 푸티지(footage)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라왔느냐 아니냐는 현시점 스스로가 속한 스지 계층을 감별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2020년부터는 스지가 아니라 ‘미지(미스치프 지인)’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업계 전문가들의 말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방금 지어냄).
더불어 과거의 스지들은 이제는 제법 어른이 됐다. 멀티숍 직원 시절은 일찌감치 지났다는 말이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스트리트 신도 복잡다단해짐에 따라 과거에 통칭하던 ‘스지’가 내포한 풍자와 해학이 이제는 조금 구형의 모델이 된 인상도 있다. 각자 선망하던 대형 패션 브랜드 혹은 매거진의 요직을 차지한 과거 스지들은 이제 아싸리 ‘인플루언서(Influencer)’라는 폼나는 이름이 붙어 신발 몇 개 정도는 공식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신발 몇 족이 아닌, 브랜드나 신발 런칭 행사의 한 구다리를 터 준다거나 주기적인 콘텐츠 제작, PR 건을 찔러줄 수도 있다. 덕분에 세계적인 행사에도 숟가락 하나 얹을 수 있고, 시크릿에서 지인의 브랜드를 쉴드치던 구습을 벗어나 그냥 웹진이나 실물 잡지를 만들어 공식적인 광고료를 받고 시원하게 빨아줄 수 있다. 그리고 그 매거진은 그들의 가게에서 배포된다. ‘스지’라기 보다는 이제 ‘종사자’들의 협동 조합이 구축되었다 해도 무방하리라.
인스타그램은 협동 조합의 핵심이다. 그 옛날 그릴파이브 타코 시절에도 인스타는 있었지만, 지금의 협동 과정은 차원이 다르다. 누군가의 파티 플라이어(Flyer)가 뜨면 영혼은 결락되고 손가락만이 동기화된 지인 피라미드의 리포스트(Repost)가 줄을 잇는다. 금요일 밤에 열리는 여러 파티의 플라이어를 동시에 올리는 그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후불라이프에 따르면 밤과 음악 사이에 갔을지도 모른다.
마치며: 내 안의 스지를 조심하자
이상 스지의 발단, 최초의 의미, 변형된 용법에 이어 오늘날 스지의 의미까지 두루 알아보았다. 우리가 스지라는 단어를 통해 누군가를 그토록 비꼬고 희화화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은 순수하게 구려서일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좆밥의 경우에는 어쩌면 그 스지의 굴레 안에 들어가지 못한 묘한 고까움과 시기가 하나의 이유였을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어쨌든 이 동네에서 이런 글을 읽고 있는 우리의 마음 한편에는 어쩌면 아직 깨지 않은 스지의 원혼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티에 공짜로 입장하던, 조거 팬츠에 스냅백 뒤집어쓰고 조던 신은 아저씨들 보면서 욕하다가 막상 세 다리 건너 누군가를 통해 파티에 초대받으니까 뭐 입을지 ‘세팅’부터 하던 것처럼 말이다.
부디 우리 모두가 그 옛날 그토록 싫어하던 좆구린 스지가 되어 누군가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마지막으로 지난 20여 년간 빵셔틀이자 스지 워너비로 살아오며 인간의 유형에 관한 눈치만큼은 누구보다 예민하게 길러온 사람으로서 부정적 의미의 스지 판독 예시를 통해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 춘식(@choon6): 탈락. 애초에 스지 피라미드 최상단을 통과해 셀러브리티의 반열에 등극한 스지 최대 아웃풋.
- 카시나(Kasina) 홍대 매니저: 탈락. 스트리트 패션계에 실제로 종사할 뿐 아니라 바빠서 가게 앞에 쭈그릴 시간조차 없다.
- 손희락(@leata69): 자타공인 스지란 말이 태동한 이후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한국 스지 왕으로 불리는 존재.
- 웍스아웃(Worksout) 직원: 탈락. 실제 종사자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친절하다.
- VISLA 5주년 파티 인비테이션 리스트에 등재된 당신: 매우 위험. 다행히 조용히 이름만 확인하고 들어가 음악과 흥을 즐긴다면 모른다. 그러나 굳이 초대한 사람을 바(Bar)로 불러내 과도한 힙합 악수를 하며 존재를 과시하거나 대기자 행렬을 다 제끼고 클럽에 들어가서는 잠깐 띵보다 꽁술 한잔하고 나와 입구에 모인 친구들과 함께 길빵, 고성방가, 타인의 간지 체크를 일삼는다면, 당신이 누구든 간에 2019년 스지의 프로토타입이 될 수 있다.
글 │ 김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