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움직임으로 긴 시간 매번 새롭게 변모하는 컨버스(CONVERSE)가 “RENEW”라는 이름의 스니커 컬렉션을 출시했다. ‘다시 새롭게’라는 슬로건과 함께 등장한 리뉴 캔버스 컬렉션은 지속 가능한 패션을 향한 컨버스의 대안으로 척 70(Chuck 70)와 척 테일러(Chuck Taylor)의 실루엣을 고스란히 가져옴과 동시에 스니커를 이루는 어퍼와 부자재를 재활용 소재로 탈바꿈시켰다.
이에 VISLA 매거진은 잊혀진 것에 본인의 창의성을 더해 새로운 결과물을 완성하는 크리에이터를 조명한다. 오래된 빈티지 의류를 재조합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신선한 작업물을 선보이는 패션 디자이너 조거쉬(JOEGUSH). 그와 함께 영감과 창의성, 그리고 리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조거쉬(JOEGUSH)라는 브랜드를 전개하는 최행원이다. 동시에 스타일리스트도 겸하고 있다.
현재 패션 신(Scene)에서 점점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본인의 브랜드, 조거쉬를 소개해달라.
조거쉬는 리메이크를 기반으로 진행하는 브랜드다. 하지만, 최근 리메이크에만 치우친 게 아닌 전방위적인 의류군을 제작하는 브랜드로 진행하려 한다.
많은 이가 조거쉬라는 브랜드를 리메이크 혹은 많은 디테일을 첨가한 의류를 제작하는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지 않나.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한 가지 방향으로만 가는 것도 재밌지만, 어느 순간 예측 가능한, 심심한 브랜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는 이에게 조거쉬라는 브랜드의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게 디자인의 묘미 중 하나다.
여러 벌의 옷을 오려 재조합한 제품이 특히 눈에 띈다. 재조합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유년시절 좋아하는 브랜드의 셔츠가 있었다. 당시 어린 나이에 쉽게 구매할 수 없는 가격이었기에 사이즈가 큰 옷을 저렴하게 구매해 내 몸에 맞게 직접 수선해 입었다. 이후로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때의 경험이 지금 조거쉬라는 브랜드의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조금 어색하더라도 내 생각과 취향을 의류에 맞추려고 했던 것이 지금까지 온 중요한 계기이자 순간이다.
재조합 작업을 통해 만든 첫 번째 작업물에 관해 설명해달라.
처음 재조합한 의류는 미제 맨투맨이다. 미제 맨투맨은 기성품에서 보기 힘든 색감이나 오묘한 프린팅으로 제작됐는데, 당시에는 단순히 각 맨투맨의 이미지가 절반씩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의류를 제작했다. 이런 작업을 하는 브랜드, 인물이 바로 조거쉬라는 브랜드를 인식하게 된 첫 제품이기도 하다.
그렇게 첫 시즌이 끝나고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할 때 친구가 맨투맨이 아닌 체크 셔츠로 작업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 시기에 리메이크의 유행, 다른 브랜드의 제품과 맞물리며 좋은 시너지를 얻었던 것 같다.
의류를 반으로 잘라 하나로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 중 하나가 의류를 반으로 자르고 다시 이어 붙이면 나머지 피스로 또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시접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절반이 다시 합쳐지기 위한 어느 정도의 여유분을 남겨 놓아야 하는 거다. 때문에 나머지 부분은 정확히 반이 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하나의 의류를 조금 더 경제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3등분, 혹은 4등분까지 잘라 하나의 제품을 완성하고 있다.
최근 이 같이 재조합한 스타일의 의상들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지금의 트렌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문이 더 열렸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리메이크의 작업은 조거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지다. 결과적으로는 많은 사람이 의류의 재해석이라는 주제의 한계치를 계속 높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정관념의 경계도 많이 허물어졌다.
가장 좋은 점은 재해석한 의류에 그에 맞는 가치를 지불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는 것이다. 프린팅 티셔츠 한 장의 가격이 20만 원이라면 납득하지 못하는데, 거기에 가시적인 노고가 표현됐을 때 20만 원이라는 가격에 근거가 생긴다. 이렇게 재해석이라는 가치를 사람들이 느낀다는 점이 가장 긍정적인 부분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구매 문의가 있을 것 같다.
물론이다. 조거쉬 의류를 구매하고 싶다는 이메일도 많이 오고, 해외 협찬 문의 역시 적지 않다. 조거쉬 역시 글로벌 브랜드를 목표로 하고 있기에 해외 판매에도 문이 열려 있다.
의류를 리메이크하는 브랜드나 개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사실 보는 이는 어떤 옷이 잘 만들어진 리메이크 의류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기본적으로 재조합되는 빈티지의 원료가 어느 정도 상태인가를 본다. 이런 부분에서는 한국이라는 시장이 취약한 점이 있다. 원료의 원산지가 되는 미국이나 유럽은 한국에서 100개 중 하나가 나올 것 같은 좋은 빈티지 의류로만 한 섹션이 가득 채워져 있다. 국내에서는 좋은 빈티지 원료를 구하는 것부터가 어려운데, 미국이나 일본의 제작자들은 집 앞에만 나가도 희귀하고 좋은 티셔츠를 5달러, 10달러에 구매할 수 있으니까. 환경적인 한계가 있지만, 이런 한계를 인식하는 순간, 그들이 나보다 위에 있다고 단정 짓게 된다. 최대한 신경 쓰지 않고, 이를 극복하려 한다.
작업에 필요한 영감은 어디서 주로 얻는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을 조합, 융합하는 과정이 내 가장 큰 영감이다. 예를 들어 포크레인과 민들레의 조합 같은 것? 여기서 공통분모를 찾고, 이를 주제로 옷을 완성한다. 걸레에서 물을 쥐어짜듯 생각하면서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걸 만들어 내는 게 아직도 내 큰 기쁨이다.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중 제일 상반되는 것을 가져와 작업을 진행하는 편이다. 나 역시 완벽한 사람이 아니니 이런 초점 나간 듯한 느낌이 너무 좋다. 완벽을 추구하지 않지만, 지금도 남들이 보여주지 않은 것을 선보이고 싶다.
셔츠, 맨투맨 등 다양한 제품을 재조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특히 자주 사용하는 유형의 의류가 있다면?
지금까지는 체크 셔츠라는 제품에 집착했다. 이게 조거쉬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느 순간 내 스스로 감옥을 만들고 있는 것 같더라. 다른 장르에 도전을 못 하게 되고. 그래서 올해 초부터 아예 체크 셔츠를 입지 말자고 결심하고, 다른 의류를 입고 재조합하다보니 마치 계속 있던 것이 없는 것처럼 허전했다. 이런 상황 속에 다른 대안을 스스로 찾아야 나 자신이나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 체크 셔츠에 관한 것은 의도적으로 일절 보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 작업물, 혹은 컬렉션에 관해 이야기해달라.
사실 이번 시즌은 내가 이야기한 프로토타입 같은 형태였다. 지금까지 리메이크 작업만 하다가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제품을 양산하면 뭔가 그동안 어떤 이유에서든지 접근하지 못한 이들이 조거쉬를 한 번이라도 입을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록(Rock)이라는 카테고리와 고양이를 조합해 봤다. 이처럼 극단적인 두 가지를 섞은 게 가장 최근의 작업이고, 다음 시즌 역시 이러한 요소를 이어갈 예정이다.
사실 예전에도 그런 작업을 진행했는데, 한 제품을 만들 때마다 너무 소모적이고, 힘들더라. 그 프로세스를 계속 다듬어서 스스로 하나의 아트피스를 만들고 그 다음 거기서 파생된 제품을 만들고 싶다.
굉장히 희귀하고 완성도 있는 하나의 피스라 재조합하기 아까운 적도 있었을 것 같다.
너무 많다. 소장하려고 했다가 다시 작업실로 가져와서 자른 적도 많다. 하하. 근데 옷이라는 게 의미부여를 하는 순간 밑도 끝도 없다. 백만 원짜리 생로랑(Saint Laurent) 바지는 심혈을 기울여서 작업하고, 어디서 싸게 구한 데님은 대충 만들 때 ‘내가 옷을 편애하지 않는 제작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은 그런 기준을 없애는 중이다. 어차피 옷은 옷이고 가치는 사람이 만드는 건데 나부터 옷을 차별하면 안 되는 거니까. 마치 의사가 돈이 많은 환자와 돈이 없는 환자를 차별하면 안 되는 것처럼 럭셔리나 희귀한 피스에 집착하기 보다는 지금 내가 하는 작업이 좋은가가 더 중요하다.
최근 영국, 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영감을 귀띔해줄 수 있나?
프랑스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도시를 이루는 옛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 피카소 박물관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우리가 피카소 그림을 봐도 커다란 것을 느끼긴 힘들지 않나. 하하. 그래서인지 그림과 그림 사이에 있는 창밖의 풍경을 더 오래 봤다. 그 풍경을 배경으로 여러 가지 상상을 해봤다.
새롭게 디자인을 하는 것만큼 기존의 사물을 재조합하는 것도 창의성이 필요한 과정인데.
하나밖에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 지금에 와 굉장히 진부한 말이지만, 이게 내가 생각한 브랜드의 시작이었고, 지금도 이런 작업을 하는 게 단순히 너무 재밌다. 그래서 아직도 그런 작업을 진행하는 것 같다. 그렇게 큰 의미는 없지만, 내가 해석하는 창의성이랄까.
빈티지가 주는 매력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빈티지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제품이 많다. 이를 다시 살려내는 과정이 즐겁다. 오래된 스포츠카를 다시 만져서 움직이게 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거기에서 오는 쾌감이 있다. 소위 때 빼고 광내는 것에서 오는 1차원적인 개운함 같은 거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이루고자 하는 조거쉬의 최종 목표가 있다면?
단순히 의류가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 조거쉬 컬렉션에 30, 40벌의 옷이 있다고 하면, 그 모든 옷을 아우를 수 있는 한 가지의 아트피스를 완성하는 거다. 예를 들어 부모가 존재하고 그들에게서 자식이 태어나는 것처럼, 서로를 봤을 때 자연스레 유기성을 찾을 수 있게끔, 한 컬렉션의 집약체를 선보이는 거다.
제작 │ VISLA, CONVERSE Korea
디렉터 │ 고지원
에디터 │ 권혁인, 오욱석, 김홍식
사진 │ 김선익
스타일리스트 │ 이잎새
헤어 & 메이크업 │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