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SENS

이센스(E SENS)가 자신의 두 번째 정규 앨범 [이방인]을 발표했다. 앨범에는 3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전작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흐른다. 여전히 날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어딘가 결여된 구석이 있다. 그의 말은 고통과 냉소가 뒤섞인 채 방향을 잃는다. 지난 몇 년의 시간은 그렇게 무언가 상실한 형태로 던져졌다.

[The Anecdote]를 낸 지 4년 만에 발표한 앨범이다. 감회가 어떤가?

인터넷으로 반응 보면서 딱 2주 정도 즐거웠다. 앨범 낸 기분은 정확히 약 8년 만에 느꼈다. [The Anecdote]를 냈을 때는 이곳에 없었으니까.

지금 [The Anecdote]를 다시 들으면 어떤 기분인가.

안 듣는다. 앨범 발매 당시에도 잘 안 들었다. 투어나 공연을 앞뒀을 때나 반복적으로 들었지, 사실 내게는 그때가 지나갔음 하는 시간이라서.

출소 후 다시 접한 힙합은 어떤 모습이었나. 국내외 신예들의 행보나 새로운 트렌드의 어떤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

힙합이 워낙 빠르지 않나. 불과 3년 전에 나왔는데도 옛날 음악처럼 느껴지는 것들도 있으니까. 게다가 나는 [The Anecdote]를 만들 시절에도 고통스럽게 작업해서 그런지 한 4년간은 힙합이라는 걸 아예 모르다가 갑작스레 마주한 느낌이었다. 출소한 날 핸드폰으로 “Panda”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충격받았다. 존나 짱이었다. 그 뒤로는 음악을 마치 섭렵하듯, 습득하듯 들으니까 재미없었다. 이 게임에 남기 위해 일로써 덤벼드는 것 같더라고. 그런데 이제 다시 음악 듣는 일이 좀 재밌어졌다. 딱히 어떤 취향에 집중해서 듣는다기보다는 근 5년 사이 발매된 음악을 손에 집히는 대로 듣는다. 그런 기분 아는가. 취향이라는 걸 다시 만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 지금은 그저 즐기고 싶다.

[The Anecdote]는 앨범명처럼 강민호라는 한 인간의 일화를 서술한 앨범이다. 그렇다면 이번 [이방인]은 아이디어, 소재, 일련의 경험 등 어떤 재료로 채웠나?

발매한 뒤 문득 [이방인]을 생각해보니 해내야 한다는 감정 하나로 만든 앨범이었다. 특별히 소재나 콘셉트를 정하지는 않았다. [이방인]은 기분 좋은 이야기가 아니다. 삶을 긍정하고 싶은데, 실제는 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만 2~3년을 산 거지.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높아진 평가와 함께 고정된 이미지가 정작 음악 할 때는 도움이 안 됐다. 고마운 일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갇힐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그걸 또 깨고 싶었다. 그런데 깨야 한다는 감정도 해내야 한다는 심리인 거고 나는 또 보여줘야 하고 씨발, 벌어야 하고 그러니까 결국 씨발, 앨범이 이렇게 됐다. 지난 2년이 이랬다.

[이방인]을 돌이켜보면, 세상에 다시 동기화되는 과정에서 느낀 복잡한 감정의 조각을 한데 모아놓은 인상이다. 곡이 모여 하나의 서사를 이뤘던 전작과는 다르게 믹스테잎 성향이 강한 것 같다.

믹스테잎을 준비하다가 정규 앨범이 됐다. 2년을 이 앨범에다 찍고 간 거지. 내 인생 팔 만한 거 다 팔아치운 느낌이라 개운했다.

분위기가 사뭇 다른 이 앨범을 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일 거라고 예상했는지.

걱정했다. 존나 망할까봐. 앨범에 수록된 곡의 70%는 다 버리자고 했다. 앨범 안 내고 시간이 더 흘렀으면 아마 다 버렸을 거다.

왜 다 버리고 싶었나?

내가 노래하고 싶은 삶은 이게 아니니까 뭘 해도 자꾸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지점에 이미 닿은 사람도 있고 그 지점에 닿지 못했지만 살다 보면 저렇게 될 수도 있을 거라 믿는 사람도 있는 거니까, 그냥 훅 냈지.

수십 곡을 뺐다고 들었다. 수록되지 않은 트랙은 어떤 기준에서 제외됐나?

곡의 주제가 다 씨발이었다. 그래서 겹치는 건 다 뺐다. 너무 난데없는 트랙도 빼고, 신나기 위해 만든 트랙인데 막상 들어보니 안 신나서 또 뺐다. 해내야 한다는 심리 때문인지 아니면 음악이 진짜 별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계속해서 곡을 추리다 보니 고통스러웠다.

앨범을 내기 전까지 대외 활동을 삼갔다. 그것은 회사 차원에서인가 아니면 본인이 의도한 것인가?

나 스스로도 그러고 싶었다. [The Anecdote]로 공연하기 싫었다. 그러다 보니 공연을 못 하고, 고통스럽고, 악순환이 반복됐지. 나는 공연하고 싶은데 예전 앨범으로는 하기 싫으니까 또 거절하고, 그러면 벌 돈 또 날아가고. 그때 사람은 자신이 얼마를 가지고 있든 쓰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자꾸 없어지기만 하는 기분, 마치 내가 소모되는 것 같더라. 그래도 옛날 노래로 공연하고 싶지는 않았다. 매체 인터뷰도 그래서 다 거절했다. 새롭게 할 말은 없고, 내가 이빨까는 일밖에 안 되니까.

고독한 환경에 자신을 억지로 밀어 넣은 시간이었을 것 같다.

처음에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곳은 오롯이 혼자 있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출소하고 집에 오니 혼자 있는 시간이 새삼 좋았다. 차분해지고 시선도 말끔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앨범 미뤄지고 일도 못 하고 있으니 심심했지. 일해야 사람도 만날 거 아닌가. 내가 이렇게 심심한데 어떻게 신나는 노래를 만들까 싶었다.

자신을 둘러싼 질문에 답을 내리거나 보류하는 등 앨범 내 가사에서 치열한 고민과 내적인 갈등이 엿보이는데, 처음 [이방인]을 떠올렸을 때 어떤 완성 형태를 그렸는지 궁금하다. 어디에 이정표를 찍고 가사를 쓰기 시작했나?

계획이 일절 없었다. 해놓고 보니 씨발인 거지. 팍팍한 감정이긴 했다. 계속해서 잘돼야 해, 잘돼야 해, 잘돼야 해… 뭐 이런 생각만 했으니까.

각종 매체에서 이센스를 언급할 때 최고의 리릭시스트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 평을 얻기까지 수많은 가사를 써왔을 텐데, 글을 쓰는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며 훌륭한 이야기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나?

음, 딱히 없다. ‘좋은 이야기’라는 걸 염두에 두고 쓰는 것 같지는 않는데, 뭐 그렇다. 오히려 가사를 잘 쓴다는 평가는 고맙지만 개인적으로는 말할 거리가 가사 말고도 더 많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까지의 앨범은 작업 과정을 떠올렸을 때 그다지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이방인]은 내가 당시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스타일을 뒤집어서 새로운 걸 표현한 건 아니고, 지금 할 수 있는 데까지만.

이번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벌스 또는 라인이 있다면 말해 달라.

“I’m not goin back. 더 크던지 유지해”. 사람들이 나를 특정한 시기로 밀어 넣는 게 싫다. 나는 현재진행형인데. 기억해주는 건 고맙지만.

지금은 어떤가. 신에서 떨어진 2년이 무색할 정도로 단단한 팬층의 지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고 동료 래퍼, 커뮤니티의 큰 호응까지 얻어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건 어떤 이유에서인가?

지금 와서 생각하면 괜히 깝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무작정 잘하면 잘될 거라는 생각으로 빨빨대면서 랩하던 시기도 있었고, 잠시 꼬였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 랩이고, 힙합이지 않나. 그런데 잠시 사회에서 떨어져 있다 나오니 남의 이야기가 귀에 잘 안 들어왔다. 시기에 따라 남의 말이 힘이 될 때도 있고 개소리처럼 들릴 때도 있는데 나는 계속 왔다 갔다 했다. 이 게임에 완전히 들어간 기분도 아니고, 떨어지긴 싫고, 그러다 보니 약간 떠도는 느낌. 사실 수감됐을 때 너무 많은 걸 상상했다. ‘다 잘 될 거야’, ‘다 조질 거야’, 이런 상상을 너무 많이 했다. 사실은 현실감각이 전혀 없던 거지. 그러다 감옥에서 나오니 이미 평가는 올라갔고, 세상은 변했고, 나 혼자서 붕 뜬 기분.

돈은 이센스가 천착하는 주제, 이번에는 더욱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 삐끗이나 Tick Tock에서 드러냈던 냉소적인 시선이 앨범 전체로 확장된 듯하다. 그 시선은 돈을 숭배하는 플렉스 부류 혹은 가난한 시인보다 졸부의 싸가지가 더 괜찮아 보이네라는 가사에서 지적했듯, 돈을 경시하거나 초연한 척하는 래퍼들과도 구분되는 지점이다. 돈은 무엇인가?

존나 필수고 존나 더 많길 원하는데 그게 막 좋아 죽을 것 같지는 않다. 음, 모르겠다. 더 벌어봐야 알 것 같다. 돈은 돈이다. 돈 이야기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초연한 척하는 사람들,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모두가 돈 때문에 사는 건 아니지만, 삶에서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있냐는 말이지. 돈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말하면서 특정한 진영을 공격하는 행동이 제일 병신 같다. 결국에는 다 살려고 하는 건데, 거기에 집중해야지. 다른 래퍼가 어떻게 하고 있고, 자기는 그것과 달라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부류는 나와 맞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은 바닥을 밟고 올라가 빛을 보려는 무명 래퍼와도 입장이 다르다. 실제로 바닥에서 기어오른 과정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또한 아티스트에게 그러한 경험은 필수적일까?

이야깃거리가 많아지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뭐, 고통을 느끼지 않고 잘되면 더 좋은 거 아닌가. 나야 한방에 잘 된 게 아니니 힘든 시기가 있었다뿐이지.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하지 않나. 뭐 그래도 상관없다. 하나 망하면 쉬고 또 하면 되니까. 나는 단지 [이방인]을 만들 때 “씨발, 해내야 한다”라는 마음뿐이었으니 나 같은 사람들이 공감하면 성공한 게 아닌가 싶었다. 돈을 벌고 나서 다시 설레는 순간을 찾는 이들이거나.

계속해서 무언가를 더 갈구하는 자신에게 [이방인]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의 성취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

음악 자체로는 새로운 시도를 입히고 덤볐다기보다는 내 안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래서 팬에게 고맙다. 나는 내 인생을 팔았을 뿐인데, 그걸 사줬으니 당연히 고맙지.

이번 앨범에서 트랩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점이 눈에 띈다. [The Anecdote]와 크게 차별화되는 지점인데, 무수히 쏟아지는 지금의 트랩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 도구를 활용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나는 음악을 시기적으로 섬세하게 구분해서 듣는 사람이 아니다. 작업 시기에 자연스럽게 귀에 잘 들리던 걸 옮겨냈다.

오비(Obi)가 지휘봉을 잡은 전작과는 다르게 다양한 프로듀서가 참여했다. 프로덕션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됐나.

내가 방향성을 프로듀서에게 설명하고 비트를 랜덤하게 받는다. 어렴풋이 가사가 떠오르거나 방향이 맞다 싶으면 작업하고 일단 트랙을 쌓는다. 편곡 과정에서 비트를 교체한 것도 있다. 일단 무식하게 냅다 해서 모으고, 그다음에 고르자는 식으로 작업했다. 가사를 쓰고 랩하는 등 내 목소리를 쓰는 일 외에는 모든 과정이 협의고 협업이었다.

[The Anecdote]에 이어 [이방인] 역시 랩에 포커스를 맞춘 프로덕션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비트가 랩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보조적인 장치로 느껴지는데.

내 영원한 취향이기도 하다. 비트가 풍부하면 내가 껴들 자리가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뭔가 빈 듯한 비트를 고르는 것 같다. 막상 듣기에는 풍성한 곡도 좋은데, 직접 작업할 때는 좀 다르다.

여러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 얻은 영감이라면?

글쎄. 그냥 했던 거 같은데. 하나 기억에 남는 건 커셔스 클레이(Cautious Clay)와의 송캠프였다. 그는 처음에 뼈대만 잡은 비트를 줬다. 그러면 내가 가사를 쓰고 녹음으로 이어지는데, 신기하게도 완성된 곡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마치 미리 곡을 듣고 가사를 쓴 것 같았다. 처음 비트를 받을 때는 ‘뭐 이런 걸 다 주냐’라고 생각했는데 거기다 살을 붙이니 곡이 확 바뀌는 게 재밌더라.

BANA와의 유대감은 트랙뿐만 아니라 일련의 다큐멘터리, 타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과 일하는 방식이 좋은 이유라면 무엇일까.

다른 회사에서는 뮤지션이 알아서 했다. 비트도 직접 받으러 다니고, 앨범 구상도 오롯이 뮤지션의 몫이었다. 매니저가 전화 몇 통 돌리면, 공연 섭외 들어와서 공연하고 나눌 땐 또 존나게 많이 나눈다. 그 과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앨범을 제작하는 과정에 모든 스태프가 참여한다. 그들 모두 한 아티스트의 앨범을 내기까지 각자의 일에 집중한다. 콘셉트부터 방향까지 계속해서 피드백을 나누다 보니 결코 효율적이거나 빠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한 끗 차이를 위해 애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이전의 이센스는 특유의 플로우에서 흘러나오는 본인만의 위트가 매력적인 래퍼였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난 뒤부터는 간간이 낸 싱글부터 [이방인]까지 완연히 달라진 서사를 느낄 수 있었다. 서늘한 냉소가 음악 전반에 흐르게 된 배경에는 아무래도 개인적인 경험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걸까? 과거 믹스테잎 시절과 지금의 이센스에는 얼마만큼의 간극이 있을까.

확실히 그 영향이 컸다. 지금은 과거를 벗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인생 전체로 봐도 계속해서 인상 쓰고 씨발거리는 인생보다는 당연히 맛있는 음식도 즐기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하면서 사는 편이 낫지. 박살 나기 전까지는 나도 지금의 감정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다 몇 번 박살 나니까 시선이 달라진 거지. 그렇다고 과거의 기억을 없던 일처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분명 경험한 게 있는데 똑같은 말만 하면 그거야말로 뽕 맞은 게 아닌가. 궁극적으로는 나는 세상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고, 그렇게 되기 위한 과정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티 내지 않고 몸소 역경을 이겨내고 난 다음에 비로소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그 과정이 하나하나 앨범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음악에서 표현한 나 자신을 싫어한다고 했지만, 싫은 건 싫은 거고 부정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 뒤로는 음악을 일종의 고된 살아남기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삶에 짓눌린 경험에서 비롯된 변화인가?

돈, 여자, 좋은 옷 같은 걸 찬미하는 심리가 내 안에 없는 건 아니지만 나 자체가 거기에 젖어서 살진 않았으니까. “Life is good”보다는 “씨발, 해내야 해”였다. 그러다 보니 그 감정이 음악에 스며든 것 같다. 솔직히 지긋지긋하다. 2012년부터 [이방인]을 발표하는 날까지 삶이 그리 즐겁지 않았다. 주변의 극찬도 와 닿지 않고, 오히려 더 독이 되는 것 같았다. 즐거운 척도 못 하고, 우울한 티도 못 내고 그냥 씨발이었지.

이번 앨범은 힙합 커뮤니티에서 대마초 복용 혐의로 기소된 적 있는 래퍼 씨잼(C Jamm)이 근래 발표한 앨범 []과 비교되곤 한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겠지만, 대마초 흡연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경험자로서 묘한 동질감이 들 것 같은데 정작 두 래퍼가 내놓은 앨범의 형태는 사운드, 텍스트 그리고 변화라는 지점에서도 사뭇 다른 방향인 것 같아 흥미로웠다.

[킁] 충분히 매력적이지. 그 역시 뭔가 흔들리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 감정을 구름 같은 바이브로 풀어냈더라고. 나와는 표현 방식이 완전히 달라서 좋았다. 아주 쿨했지.

예술가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더 콰이엇(The Quiett)이 최근 앨범 [glow forever]에서 신예들과 새로운 그림을 그린 것처럼 아티스트는 변화를 거듭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칸예 웨스트, 타일러의 경우를 보면 알지 않나.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아티스트가 그걸 원해야 한다. 내가 낸 정규 2장은 작법이나 태도로 봤을 때 기존에 하던 것들에 가깝다. 이렇게 계속해서 하다 보면 음악에 흥미를 잃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니 나도 마음 편하게 좀 다양한 걸 시도해보고 싶은데.

수록곡 Dance의 가사 일부인 저 새끼와 내가 비슷한 게 느껴지는 순간 너무 싫은 거고 달라져야 될 이유가 확실해지는 거지를 들으며 전작 Writers Block에서 그것만 찾으면 가짜와 내가 구분될 수 있어라고 했던 지점을 떠올렸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그리고 래퍼로서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독자성이라고 한다면?

미국에서 힙합이 인기를 얻으며 팝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세대는 이전 세대의 비디오를 보며 랩을 시작했다. 그들은 아버지가 드럭 딜러가 아니고, 본인도 갱스터가 아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마치 영화처럼 되어버린 ‘진짜’들의 삶과 랩에 빠져서 랩을 시작했다. 그렇게 현재 미국은 중산층 자녀가 태어나서 이전 세대의 콘텐츠만 가지고 래퍼가 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는데, 한국은 그렇지가 않다. 쉽게 말해서 나는 내가 받은 영향을 여기에서 나누고 싶은 거다. 그러니 나는 여전히 힙합을 하고 싶고, 그 주제에 계속해서 천착해왔다. 고리타분하게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물론, 너도 미국 애들 따라 하는 카피캣이 아니냐고 되물으면 할 말은 없다. 한국에서 외국 걸 하고 있으니까. 근데 그걸 다 같이 퉁치면 안 되지. 자부심이 있다면 내가 지금까지 랩을 하면서 계속 그 주제에 천착했다는 거다. 노력해왔다는 이야기일 뿐, 뭔가 이뤄냈다는 건 아니다. 못 이뤄냈다 나는. 그래서 씨발이라고. 차라리 그런 면에서 [킁]이 쿨했다. 돈도 벌고, 인기도 얻은 래퍼가 뭔가를 다시 잃어보기도 하면서 그 이야기를 무게 잡지 않고 즐길 수 있게 만들었더라고.

다른 이들과 자신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오리지널리티, 진정성을 오랜 시간 고민해왔을 거라 짐작한다. 예술가의 진정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 시점에서 어떤 답을 내릴지 궁금하다.

칸예, 제이지, 타일러. 근데 잘 모르겠다 지금도.

[이방인]을 끝맺는 트랙 Bad Idea[The Anecdote]Unknown Verses와 비교되는데, 후자가 유년 시절까지의 자신을 소급할 여유가 있었다면 [이방인]은 할 말을 다 못하고 중도에 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게 내가 원한 끝맺음이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있고, 버리고 싶은 삶이 있는데, [이방인]은 그 중간에 있다. 그러니 그게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어야 했다. “Bad Idea”는 계단을 모두 오르고 나서 밑을 내려다보는 아웃트로가 아니다. 아직 오를 계단이 많이 남아서 잠시 멈추고 “아우, 씨발”이라고 외치는 앨범이 [이방인]이다. 트랙리스트를 선정할 때 순수하게 감상자로서 접근한 김기현의 공이 크지 않나 생각한다.

이번 앨범은 이방인에서 다시 현실에 발을 붙이는 과정으로 가는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고 할 수 있을까?

앨범 내고 나서 2주간은 기분이 공짜더라고. 좋은 반응이 많으니 솔직히 기분 쩔었다. 사는 기분 제대로 맛봤지. 근데 딱 2주더라. 출소 후 2주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가서 할 일을 해야겠다, 뭐 이 정도의 감정이다.

지금도 새롭게 떠오른 단상을 다음 앨범을 염두에 둔 채 모아두고 있나.

그렇진 않다. 지금부터는 파티에 가서 좀 놀려고.

어디가 재밌나?

모르겠다. 핸드폰을 바꿔서 여기저기 연락할 친구도 없고, 씨발.

래퍼뿐만 아니라 분야를 막론하고 지금의 이센스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이라면?

솔직히 한 명이 안 떠오르는데.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이번에도 결국 내 안을 들여다본 시간이었다. 그래서 내 인생 다 팔았다고 자꾸 이야기하는 거 같다. 몇 년간의 자극을 모아서 똥을 싸버렸다.

오래전부터 많이 언급한 나스, 비기, 제이지와 같은 래퍼들은 이센스에게 All Time Favorite일 거 같은데, 시간이 흐르며 그들 역시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고, 대부분은 신의 중심에서 벗어났다. 이 또한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닌가. 신에서 10년이 넘게 활동한 래퍼로서 존경하는 이들의 앞선 커리어가 본인에게 주는 영향이라면 무엇인가?

한국 땅에서 활동하는 래퍼 수는 미국과 비교한다면 절대적으로 적으니 아무래도 주목을 받기란 더 쉽다. 그러니 나도 이 정도 유명세를 가지고 살다 보니까 뭘 많이 했다고 착각할 때가 있는데 이제 앨범 두 장 냈다. 그들은 몇십 곡은 우스울 정도고, 일단 그 게임에서 살아남았으니까 그 자체로 배울 게 있지. 나는 뭔가를 이뤄냈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이방인]이 마치 내 커리어의 시작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 앨범이 내가 오를 계단의 제일 밑이었으면 좋겠다.

[이방인]이라는 앨범 제목에서 많은 이들이 알베르 카뮈를 떠올렸다.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도스토옙스키를 언급한 적도 있는데, 그들이 골몰했던 실존주의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큰 영향을 미쳤는가?

그런 건 아니다. ‘죄와 벌’은 감옥에서 읽으면 왠지 멋있잖아. 다만 그 소설의 엔딩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내 머릿속 추론, 편집증, 꼬리를 무는 사고들이 개운하게 날아간 기분이었다. 그 안에서 감정이 공짜로 정리되는 기분. 사실 감옥이 그 일을 대신해 주는 건 아니지. 내가 정리해야 하는 건데. 카뮈의 인용은 아트 디렉터가 제안했다. 처음에 그 문장을 보고 되게 와 닿았지. 나는 지금 딱히 크루도 없고, 동료들과 어깨동무하고 나아가는 상황도 아니지 않나. 그래서 더 와 닿은 것 같은데. 결국 다 씨발이다.

하나의 앨범 안에서 드러나는 내적인 모순은 MTLA알아야겠어로 대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바닥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부분에서 언젠가 호주에 갔더니 음악 안 하고 살아도 될 것 같다고 말한 지난 인터뷰가 생각나더라.

지금 다시 호주를 떠올려보면 여행의 1~2주는 그 기분에 취해있던 거 같다. 앨범 내고 나서 2주 역시 비슷했지. 그러나 그런 기분은 다 일시적이었다. 결국에는 삶이라는 건 밸런스 아닌가. 햇살 좋고 살 만하니까 잠시 좋았지. 인터뷰는 그때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순수하게 음악가로서 달성하고 싶은 목표라면?

계속 들을 만한 이유가 있는 뮤지션이었으면 한다. 그게 없다고 느끼면 관두겠지. 그런데 솔직한 심정으로 계속하고 싶었다. 몇 년 전에 작업하면서 랩을 관두고 싶다고도 생각한 적 있는데, 막상 앨범 반응 좋으니까 이것도 해보고 싶고, 또 저것도 해보고 싶고, 좋은 노래 들으면 숟가락 한번 얹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생긴다. 계속하고 싶었다. 하고 싶더라고.

마치 돈처럼 서울이라는 도시에 느끼는 감정도 양가적이라고 느껴진다.

서울이 곧 한국이다. 서울이 한국의 집약체이자 한국 그 자체다. 부산, 대구라고 뭐 다를 것도 없지만. 상경하고 나서 처음으로 마주한 청담, 크리스챤 디올, 현대 백화점 같은 것들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저 돈과 옷은 가질 수 있다. 저런 것들은 얻어낼 수 있는 거니까. 비쌀 뿐이지, 태생에 한계를 둔 건 아니니까. 서울은 좆같은 곳이면서 때로는 좋은 것도 있고 그렇다.

음악 외 어떤 것들이 일상을 채우는지?

최근 배틀그라운드(Battleground)에 꽂혔는데 그것도 질렸다. 이제는 파티에도 다니고 하면서 좀 놀려고 한다. 사실, 지난 2년간 내가 천착해온 고민도 누군가를 만나 술 한잔하면서 “그냥 그런 거지”라며 훅 넘길 수도 있는 것들인데, 너무 혼자서만 짜냈다. 하도 짜서 이제는 더 짜낼 것도 없다. 마른걸레 같은 기분이다.

지금 래퍼들 살 만한 세상인가?

좋다. 속되게 얘기하면 지금의 방송‘빨’이 안 떨어지고 쭉 갔으면 한다. 내가 ‘쇼미더머니’를 언급하며, 그 프로그램이 싫다고 했던 이유는 플랫폼의 형태 때문이다. 래퍼들 쪽팔리게 하잖나. 쪽 안 판 몇 명만 성공하고, 나머지는 전부 쪽팔리는 구조다. 결국 방송물이 빠졌을 때 훅 꺼진다면, 얼마나 빈약한 저변이란 말인가. 그래서 그 ‘빨’이 잘 전환됐으면 좋겠다. 지금은 래퍼들 충분히 돈 벌 만한 세상이다. 옛날처럼 몇십만 원짜리 뮤직비디오가 범람하던 시대도 아니고, 음악을 어렵게 찾아서 들어야 하는 시대도 아니다. 양아치 같은 회사도 많이 사라졌다. 이제 좋은 음악만 나오면 된다. [이방인]만 해도 어릴 때는 상상도 못 한 돈으로 만들었다. 언더그라운드, 인디, 서브컬처, 뭐 이런 개념에 씌워진 이미지가 나는 싫다. 각자 알아서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걸 꼭 구분하지 않나. 미디어가 그걸 가속하는 것 같기도 하다.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이. 그 플랫폼은 다른 형태로 잘 전환됐으면 한다. 많은 이가 힙합에 매력을 느꼈고, 그 어느 때보다 10대가 랩을 하는 인구가 많은 게 지금이다. 잘하는 친구들이 계속해서 나올 거다. 그러니 잘 전환됐으면 좋겠다. 잘.

여전히 할 말이 많아 보인다. 언젠가 작가의 벽(Writers Block)에 부딪히는 날이 올까?

살아있다면 할 이야기는 언제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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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글 │ 권혁인
사진 │ 백윤범
스타일리스트 │ 이잎새
의상 협찬 │ 1LDK, Converse, JUUN.J, Sunglass Bay.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Paper 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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