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PPY RADIO

살벌하게 흘러가는 서울의 문화는 봇물이라도 터진 듯 그 속도를 가중할 뿐이다. 그렇기에 요즘은 가늘고 긴 것의 위대함을 찾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꾸준함이 주는 무게. 자신의 페이스로 라디오 방송을 이어가는 퍼피 라디오(Puppy Radio) 역시 그 길을 걷는다. 방송을 시작한 지 올해로 3년째, 이제 약방의 감초처럼 재미있는 이벤트에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방송 초기, 퍼피 라디오를 이해하는 사람은 절대 많지 않았다고. 묵묵히 기록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가 하나둘 늘어나는 느린 과정 중 주변의 부정과 선의의 오지랖에도 지치지 않고 달려온 비결이 궁금했다. 고재경, 송영남, 이승혁, 김지환 그리고 더운 날씨가 영 못마땅한 이석주와 마주 앉아 진행한 인터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흐르는 대화를 가까스로 부여잡은 나는 그 힘의 원천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1st Puppy CM Video

반갑다. 당신들은 누구인가?

승혁: 반갑다. 허키 시바세키(Hukky Shibaseki)다.
영남: 취했나? 퍼피 라디오의 송영남이다.
석주: 퍼피 라디오의 엔지니어를 맡은 웝트(Warped.)의 이석주다.
재경: 360사운즈(360Sounds)의 말립(Maalib)이다.
지환: 김지환, 아트워크 담당이다.

퍼피 라디오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 방송의 목적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퍼피 라디오는 어떤 방송 프로그램인가?

재경: 우리 주변의 재미있고 멋있는 인물을 소개하는 방송.
영남: 커머셜 방송.
승혁: 물어보는 사람이 딱히 없던데.
석주: 왜 없나? 꽤 많이 문의한다. 퍼피 라디오는 토크쇼다. 유튜브로 생중계하는 일종의 보이는 라디오지. 우리가 평소 흥미롭게 지켜본 사람을 초대해 궁금증을 푸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란히 앉아 근황을 묻는다. 아직 다른 곳에서 소개하지 않은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시작했다.

그렇다면 퍼피 라디오의 명칭은 누가 지었나?

석주: 재경이가 개같이 하자고 해서 지었다.
재경: 그건 아니고. 흔하지만 기억에 남는 단어를 골라 정한 이름이다. 이름에 큰 뜻을 두는 걸 원래 안 좋아한다.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영화 “저수지의 개들”에서 따왔다고 타 매체에서 밝히지 않았나.

재경: 폼 잡은 거다.
영남: 퍼피 라디오를 시작할 즈음 재경이가 그 영화를 봤나?
재경: 그때는 그렇게 멋을 부렸다. 사실은 강아지라는 익숙한 말로 누구든 다가올 수 있게 친근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방송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재경: 라디오 방송은 사실 이전부터 구상 중이었다. 당시 한남동에 갓 정착한 웝트도 독자적인 플랫폼이 필요했으니 뜻을 모으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방송을 기획해 본 경험이 없어서 준비 과정이 길었다. 조바심이 날 즈음 뉴욕의 노우 웨이브(Know-Wave)라는 언더그라운드 라디오 방송국이 웝트에서 원 타임 쇼(One Time Show)라는 행사를 진행했고, 준비 과정을 지켜본 다음에야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석주: 복잡한 줄 알았는데 실은 존나 간단하더라고. 반년간 이야기만 하다가 원 타임 쇼를 기점으로 빠르게 준비했다.

웝트는 왜 라디오와 같은 독자적인 플랫폼을 원했나?

석주: 그런 역할을 하는 공간이 서울에 없었다. 360사운즈가 과거 비슷한 콘셉트의 라디오를 운영했지만 그 이후 명맥이 딱 끊기지 않았나. 매장 공간도 넓으니 알맞은 기회라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생소할지 몰라도 해외에는 옛날부터 이러한 독립 라디오가 곳곳에 있었다.
재경: 방금도 말했듯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주변의 재미있는 인물을 소개한다는 내 생각에 웝트가 공감했다. 반대로 웝트의 비전에 내가 흥미를 느끼기도 했고.

그러면 엔지니어로서 퍼피 라디오의 테크니컬 라이더(Technical Rider)를 알려 달라.

석주: 그런 건 없다.
영남: 마이크, 컴퓨터, 카메라?
석주: 믹서 그리고 인터페이스. 이 정도가 전부다.
승혁: 사람이랑 의자.
영남: 자랑할 만한 테크니컬 라이더가 아니다. 음악 좀 좋아한다는 사람 집에 다 있을 법한 장비뿐이다. 각자의 장비를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웝트와 퍼피 라디오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석주: 정의하자면 협력 업체의 관계다. 웝트라는 공간에 퍼피 라디오라는 브랜드가 입점한 거나 마찬가지다.
재경: 방송 초기 많이 논의한 내용이다. 퍼피 라디오 말고도 웝트와 마음만 맞는다면 이곳을 바탕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

해가 바뀐 직후인 2017년 1월 2일, 퍼피 라디오의 첫 방송을 송출했다. 멤버는 어떻게 모집했나?

재경: 얼추 준비되자마자 바로 오존(O3ohn)에게 연락해 적극 권유했다. 영남의 경우는 조금 달랐는데, 당시 실제로 만난 적이 없었기에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내서 사정을 알렸다. 그렇게 모인 나, 오존 그리고 영남 이렇게 3명으로 퍼피 라디오 1회를 진행했다.

일면식도 없던 사이가 아닌가. 재경은 영남의 어떤 점에 끌렸나?

재경: 그저 영남의 음악에 감탄해 도박을 걸었다. 영남의 성격도 몰랐다. 이렇게 밝은 사람일 줄 누가 알았을까.

Puppy Radio Issue 01

도중에 진행자가 바뀌었다. 오존이 하차하고 승혁이 합류했는데 멤버가 바뀐 특별한 이유가 있나?

석주: 불화지 불화.
재경: 아니지.
영남: 싸움.
재경: 오존은 음악 활동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출연 횟수를 줄였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전부터 알고 지내던 승혁을 섭외했다. 긍정의 힘이랄까, 사람을 끄는 그만의 매력이 퍼피 라디오에도 필요했다.
영남: 이상한 포인트를 잘 짚는 것이 승혁의 특기다. 진행자로 함께하기 전에도 게스트로 몇 번 출연했기에 위화감은 없었다.
재경: 살가운 성격은 아니지만 묘하게 친근한 형이다. 풍부한 예술 관련 지식과 유창한 외국어 실력도 장기다.
석주: 퍼피 라디오의 해외 진출에 꼭 필요한 인재다.
지환: 승혁은 외국인인가?

승혁은 허키 시바세키라고 부르면 되나? 쉽게 부를 수 없는 이름이다. 프로듀서 겸 디제이로 활동한 과거에는 허키 시바세키란 이름을 파티 포스터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밴드 레몬(Lemon)과 넘넘(Numnum)의 일원으로 발매한 앨범에는 모두 이승혁, 본명이 적혀 있던데. 허키 시바세키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도 궁금하다.

영남: 일종의 ‘호’ 같은 거다. 외국의 개그 코드가 이런 건가 싶다.
재경: 얼터 이고(Alter Ego).
승혁: 밴드의 경우 이승혁, 개인의 경우는 허키 시바세키다. 헷갈리면 편하게 허키라고 부르면 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지금도 이름을 포스터에 쓸 때는 허키 시바세키라는 이름으로 요청하는데, 가끔 동의 없이 뒤의 시바세키를 지우더라.

토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진행자의 합이 중요할 것 같다.

재경: 방송 횟수가 쌓이니 자연스레 각자 역할과 성격이 나뉘더라. 내가 대화의 큰 방향을 정하면 영남이 재치 있게 살을 붙이고, 가벼워질 수 있는 내용을 승혁이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채운다. 정해진 건 아니지만 리허설 없이 시작한 2017년의 첫 방송부터 자연스럽게 합을 맞춰왔다.
영남: 각자의 성격이 많이 반영된다. 방송을 챙겨보는 이들이 그렇다고 하더라.
재경: 영남과 승혁이 방송의 재미를 보장한다.
영남: 실수하면 누구든 물어뜯는 거지 뭐.

잠시 멤버 개인의 최근 대소사를 짚어보자. 우선 송영남은 2017년 12월 문화 공간 8D에서 EP [Gnos] 발표회를 시작으로 엠비언트(Ambient), 뉴에이지(New Age) 프로듀서의 행보를 걷고 있다. 자신의 음악을 설명한다면.

영남: 그전에는 주로 로우파이(Lo-Fi)한 비트를 찍었다. 퍼피 라디오 첫 방송 때만 하더라도 전과 비슷한 질감의 앨범을 구상 중이었는데, 어느 날 재경이 방송 중 들려준 사카모토 류이치(Ryuichi Sakamoto)의 음악을 듣고 그 이래 작업 노선을 송두리째 뒤엎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전의 나는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재경: 영남은 뉴에이지, 승혁은 밴드 음악 그리고 둘보다는 힙합에 더 가까운 나. 영남의 최근 몇 년간의 작품 활동으로 퍼피 라디오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더 넓어졌다.
석주: 태어났을 때부터 사카모토 류이치의 노래를 듣던 것처럼 말하던데?

과거 호텔 블루(Hotel Blue)라는 팀에서 디제이로도 활발히 활동했다고. 비트를 찍던 때였나? 어떤 팀이었는지 궁금하다.

영남: 홈 파티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서 시작한 팀이다. 한창 비트를 만들 때 같이 어울렸다.
석주: 강남에서?
영남: 강남보다는 주로 홍대에서 모였다. 재미를 위해 이것저것 시도했다.
석주: 지금은 왜 디제이 활동을 안 하는지?
영남: 안 불러주니까.
재경: 종종 트는 걸로 안다.
승혁: 영남이 무시하지 마라.

송영남의 신보는 언제나 전시와 어우러진다. 작업물의 전달 방법으로써 전시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영남: 엠비언트, 뉴에이지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설득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영상을 비롯한 전시 등 다양한 형태로 더 쉽게 다가가도록 노력한다. 음악만으로 메시지를 다 전달하면 참 좋을 텐데.
재경: 그렇다면 영상이 일종의 변명이라는 말인가?
영남: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모두 생각이 다르니까. 그보다는 가수가 음원을 뮤직비디오와 함께 공개하는 까닭과 같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지금까지 내놓은 작업물의 영상은 모두 96웨이브(96Wave)의 김민주가 제작했다.
재경: 장난이다.
석주: 진심이다.

송영남의 공연은 좀 더 청자와 밀접한 구조의 공간에서 최소한의 구성으로 진행된다. 공연 구성 중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영남: 기승전결. 30분의 공연이라도 그 안의 전개를 확실히 정하려 한다. 지루하지 않도록, 여운이 남도록.
재경: 다음 공연은 언제인가?
영남: 빠르면 9월, 10월 중.

클럽 케이크샵(Cakeshop Seoul)에서 재경과 함께 하우스 음악을 즉흥으로 연주했던 공연을 기억한다. 댄스 뮤직을 내놓을 계획은 없는가?

영남: 지금 작업 중인 앨범이 12월 중 마무리된다면 시도할지도 모르지.
재경: 넓은 의미에서의 뉴에이지와 테크노, 하우스 음악은 통한다. 영 다른 장르 같아도 밀접히 연관되었다. 영남의 음악은 모두 기대할 만하다.

MIXMIX Seoul: 송영남 편

다음은 승혁에게 묻겠다. 레몬 프로젝트 이전의 활동을 모르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딥코인(Dipcoin)에서의 기록은 승혁의 소셜 미디어에서 찾을 수 없다.

재경: 다 지웠나?
승혁: 지웠지. 딥코인 때 게시물뿐만 아니라 과거의 사진을 전부 지웠다. 왜, 가끔 그런 때가 찾아오지 않나.
영남: 기분이 센치했나?
승혁: 그래도 찾아보면 남길 건 다 남겼다. 좋았던 기억은 지우지 않는다.
재경: 나도 마찬가지다.
승혁: 과거 나는 영화를 진지하게 공부하는 영화학도였다. 해외에서 공부하던 중 우연히 한국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생겨 잠시 귀국했지. 하지만 환경이 바뀐 탓인가, 영화보다 다른 분야에 더 열정이 가더라. 작곡에 향한 오랜 내 관심을 그제야 풀었다. 그렇게 한국에 머물게 된 거다. 딥코인에서 음악 만들고 만든 노래를 클럽에서 틀고.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음악의 내용 정도다.
석주: 많은 것을 딥코인 전후로 나눌 수 있다.

레몬과 넘넘 밴드에 관한 간단한 설명 부탁한다.

승혁: 레몬은 개인적인 프로젝트에 가깝다. 그렇지만 같이 영감을 나누고 작업에 도움을 준 지인이 여럿 있기에 내 이름으로 앨범을 내놓기는 곤란했다. 그래서 밴드의 이름을 따로 레몬이라고 정했다. 반면에 넘넘은 한 명의 멤버로서 참여한 밴드다. 작곡, 기타를 맡고 있다.
재경: 승혁이 레몬의 앨범 [Lemon]을 정말 오래 준비했다.
승혁: 5년이 넘은 프로젝트였다. 전체 수록곡에 사연이 담겼고.

넘넘의 멤버 소개를 보면 승혁이 작곡과 프로그래밍을 담당한다고 쓰여 있다. 여기서 프로그래밍이란?

승혁: 그걸 누가 썼는지 모르겠다.
영남: 코딩으로 곡을 만드나?
승혁: 이 기회를 통해 정정한다. 작곡과 기타를 담당하는 이승혁이다.

캐나다의 슬레드 아일랜드 뮤직 아트 페스티벌(Sled Island Music & Art Festival)에 넘넘으로 참여했다고. 어떤 무대였나?

승혁: 잔다리 페스타(Zandari Festa)에 그쪽 공연 관계자가 놀러 왔다가 넘넘 공연을 봤다고 들었다. 소속사 붕가붕가 레코드(BGBG Record)를 통해 섭외 받아 캐나다에서 3번 공연했다.

승혁에게 퍼피 라디오란?

승혁: 매주 한 번 외출하는 날. 바빠도 화요일 하루 시간 내서 이태원으로 나와 친구나 아는 사람 만나는 시간이다. 그러다 방송에서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도 나눠보고. 그 정도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였으면 좋겠다.
재경: 딱 그 정도 무게로 느꼈으면 좋겠다.

고재경은 여러 일을 한다. 콕 집어 다시 소개 부탁한다.

재경: 360사운즈 소속 디제이, 퍼피 라디오 기획자, 그리고 QH(Quispiamhabilis)의 일원이다. 여러 일을 하지만 딱히 두드러지는 이력은 없다. 늘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다.

360사운즈를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설명한다면.

재경: 간단히 말하자면 디제이, 프로듀서,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등이 모인 크루다.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집단으로 그 존재감이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소속으로 만년 막내를 맡고 있다.

2017년 래퍼 우원재와의 ‘Stretch’ 프로젝트가 주목을 받았다.

재경: ‘쇼미더머니 6’가 끝날 무렵 우연히 우원재와 통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가 나와 작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후 방송을 더 주의 깊게 보게 되었고 상당히 똑똑한, 매력적인 인물임을 알았다. 그렇게 시작된 곡 작업은 합이 잘 맞았기에 앨범 제작까지 이어졌다. 또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에 힘을 더하기 위해 우리가 공통으로 쿨하다고 느끼는 브랜드 스투시(Stussy)를 프로젝트에 초대했다.

Small Talk: “Stretch” Project

QH는 어떤 집단인가?

재경: QH는 국내 크래프트 브랜드로,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작업한다. 그들과의 인연은 올드슈즈(Oldshoess)라는 디제이를 만난 일에서 비롯됐다. 그는 QH란 곳에서 세라믹 작업을 한다고 했다. 때마침 제작할 물건이 있어서 그에게 몇 가지 일을 의뢰했고 이를 계기로 QH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프로듀서로서 새로운 앨범 발매 계획이 있나?

재경: 9월 6일, 밴드 워크맨쉽(Workmanship)과 작업한 앨범을 발매한다 ─ 인터뷰 당시 앨범이 발매되기 전이었다 ─ . 내가 말립으로 내놓는 첫 정규 앨범이다. 나아가 지금까지 15년간 음악 활동을 해온 워크맨쉽의 첫 앨범이기도 하니 여러 사람에게 의미가 각별한 앨범이 될 것이다.

Maalib & Workman Ship – All Day (Feat. Sogumm)

방송의 기획자로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재경: 퍼피 라디오는 모두 함께 만드는 방송이다. 내가 가장 한가하니 방송 기획에 시간을 더 쏟는다.

퍼피라디오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한 고민도 따라올 거 같은데.

재경: 퍼피 라디오는 결국 알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의 플랫폼이라고 보기에 그런 고민은 없다. 솔직히 현재 생방송 시청자와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말도 안 되게 적은 편이다. 그런데도 주변에서 계속 퍼피 라디오를 찾는다는 것. 우리가 에너지를 옳은 방향으로 쏟는다는 증거다. 우리가 지치지 않고 방송을 이어간다면 좋은 기회는 끊임없이 찾아온다. 지금의 노선을 바꿀 일은 없지 않을까? 우리가 재미있게 하고 있기에 더욱더 그렇다.

그렇다고 조회 수가 뻔히 보이는 유튜브의 특성을 무시하긴 힘들지 않나?

석주: 커머셜 라디오라지만 영상 조회 수를 높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재경: 그래서 공식 웹사이트를 따로 두었다. 우리는 라디오 방송인 퍼피 라디오지 인플루언서는 아니니까. ‘좋아요’와 구독 버튼을 누를 수 없게끔 조치했다.
석주: 해외 유명 언더그라운드 라디오 방송국도 처음 몇 년은 다 그랬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우리가 편한 방법으로 주변의 움직임을 기록한다면 결코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재경: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퍼피 라디오가 우리의 주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방송은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지속할 예정이다. 남 좋으라고 하는 일이 아니니 쉽게 지치진 않을 것 같다.
석주: 그러다 보니 정규 방송 이외의 일도 들어오더라.
재경: 그중 9할이 퍼피 라디오 방송을 본 적 없지만 우리와 일하고 싶어 한다는 것. 신기하다.

커머셜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 의도는?

재경: 나의 개그 코드다. 농담이지. 누가 봐도 언더그라운드, 인디를 무대로 한 방송이 퍼피 라디오다. 김신영이 진행하는 ‘정오의 희망곡’, 이문세의 ‘오늘 아침 이문세입니다’처럼 내가 애청하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지향하는 바도 비슷하고. 다른 멤버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영남: 커머셜이란 단어에는 ‘상업적’이라는 의미와 그만큼 ‘친숙하다’ 는 의미가 담겼다고 믿는다. 남녀노소가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방송이 퍼피 라디오라는 뜻이다.

지환은 언제 합류했나? 또 퍼피 라디오의 아트워크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는가?

지환: 재경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올해 봄부터 함께했다.
재경: 지환이 그린 타투 도안을 전부터 눈여겨봤다.
지환: 처음에는 내 그림을 포스터로 쓴다는 재경의 발상이 좀 의아했다. 퍼피 라디오 포스터는 딱히 영감이나 구상 없이 그림판으로 작업한다. 포토샵을 다룰 줄 모르지만 궁금한 건 유튜브로 찾으면 그만이다. 재미있게 작업 중이다.
승혁: 지환의 첫 포스터를 보고 단번에 그가 즐기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떤 점이 특히 재미있나?

지환: 간섭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재경의 말을 듣고 합류하기로 마음먹었다.
승혁: 지환이 그린 포스터를 보고 감동했다. 새소년의 황소윤이 출연한 방송이었을 거다. 아, 진짜 얘 막 만드는구나.
영남: 그게 우리 스타일이다. 괜한 형식에 얽히지 않고 자신의 것을 하는 것.
재경: 그게 좋다. 기술적인 완성보다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지환: 논다는 느낌으로 작업한다.

지환은 타투이스트 울라불라 불루짱으로도 활동 중이다. 타투 도안을 모아 서울의 나르크 프로덕션(Narc productions)을 통해 진(Zine)도 내놓았다고.

지환: 맞다. 별 뜻 없이 어렸을 때 보던 동명의 어린이 드라마에서 따온 이름이다. 배우 고아성이 출연했다. 파란 피부가 괴이하지 않나. 진은 우주만물(CosmosWholesale)에서 잘 팔리더라.
재경: 아, 그 드라마. 기억난다. 진으로 돈 좀 벌었나?
지환: 별로.
승혁: 혹시 경상도 사람인가?
지환: 부산 사람이다.

멤버 간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한 것 아닌가.

재경: 실제로 자주 안 모인다.
석주: 또 활동 영역만큼 음악 취향도 다 제각각이다. 그래서 같은 게스트라도 그에게 묻는 말의 결이 다르다.

타투 외 지환의 계획이 궁금하다.

지환: 데드피플굿피플(Deadpeoplegoodpeople)이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타투 이외의 작업을 공유할 예정이다. 곧 발매될 수치심을 주제로 한 사진집, 앞으로의 디제이 일정도 그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승혁: 디제잉도 할 건가?
영남: 하지 말라는 말인가?
재경: 케이크샵의 메가패스(Megapass) 파티에서 데뷔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석주: 수치심이 느껴지는 사진은 뭔가? 수치 플레이 같은 건가.
지환: 발끝을 A자로 모으는 일명 ‘애니메 포즈’를 참 좋아하는데, 상당히 수치스러운 포즈다. 그와 비슷한 경험에서 파생된 생각을 사진에 담았다. 수치는 자신감이다.
석주: 맞다. 수치 플레이는 자신감이다.

아트워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퍼피 라디오의 로고도 3년의 시간 동안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재경: 첫 번째 로고는 첫 방송 직전, 시간이 없어서 퍼피 라디오의 이름을 펜으로 적은 걸 바로 사용했다. 마음에 들었지만 역시 로고라면 상징성이 강해야 하겠더라고. 그래서 김윤키(Yoonkee Kim)에게서 받은 강아지 그림을 두 번째 로고 삼아 꽤 오래 사용했다. 지금 퍼피 라디오의 이미지는 김윤키의 강아지 그림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래는 강문식(Moonsick Gang)이 디자인한 점 3개의 강아지 얼굴을 메인 로고로 삼았다.
영남: 문식의 디자인도 김윤키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재경: 그럴지도. 문식의 디자인은 점 사이 간격 조절에 따라 강아지 얼굴의 감정이 달라지는 점에서 흥미롭다. 몰랐는데, 문식의 퍼피 라디오 로고 디자인을 공개한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BC 카드 로고를 디자인한 업계의 유명한 인물이 ‘좋아요’를 눌렀다더라. 또 덧붙이자면 김윤키가 퍼피 라디오 그림을 그릴 때 이런 말을 했다. 웃는 강아지보다 우는 강아지의 그림 가격이 더 비싸다고. 그래서 퍼피 라디오의 로고는 웃는 강아지 얼굴이다.

Puppy Radio 2nd Logo by Yoonkee Kim

지금껏 받은 방송 피드백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영남: 어제 재경이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 공유한 메시지.
재경: 인스타그램으로 받은 응원 메시지였다. 그처럼 영세한 퍼피 라디오의 모습을 지켜본 시청자가 가끔 여러 창구로 힘이 되는 한마디를 건네곤 한다. 그래픽 디자이너 나이니스트(Nineist)의 아버지가 남긴 댓글도 기억에 남는다. 영남이 실수해서 그런가?
영남: 내가 그분의 생방송 댓글에 뻥치지 말라고 답했다. 실례를 범했다.
승혁: 내 아버지도 방송을 챙겨 본다. 기억나는 피드백은 아버지가 방송 중 말 좀 하라고 혼낸 일.
재경: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도 방송을 종종 챙겨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약간 의외였지만 가끔 방송 내용으로 대화를 나누곤 한다.
영남: 초기부터 방송을 꼬박꼬박 챙겨보는 닉네임 ‘최순실’이나 ‘굿바이브’ 등의 존재도 긍정적인 방송 피드백이다.
석주: 가끔 웝트로 팬레터가 배송된다. 방송 초기에는 퍼피 라디오의 스티커를 손수 제작해 보내준 시청자도 있었다.
재경: 지치지 않고 방송을 이어온 이유가 여기 있다.
영남: 신경 안 쓴다고 말하지만 사실 생방송 채팅창에 쓰인 댓글은 언제나 반갑다.
재경: 시청자 0명부터 시작한 방송이기에 소중한 인연이다.

우려 섞인 부정적인 반응은 없었나?

석주: 많이 들었지. 이렇게 돈 벌 수 있겠냐?
영남: 할 거면 제대로 해라.
재경: 괜찮은 콘텐츠니 투자하겠다, 혹은 규모를 키워보자는 제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스타일도 아니고, 멤버 의외의 의견이 섞인 퍼피 라디오를 지금처럼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아서 모두 거절했다. 또 퇴근길이나 작업 중 편히 들을 수 있게 너무 전문적인 내용은 피하라는 조언을 자주 받았다.
석주: 모두 걱정에서 비롯된 말이다. 외부에서 보면 3년 동안 크게 변한 것이 없거든. 딱 지치기 쉬운 상황으로 보일 거다.
재경: 남사스럽지만, 시청자의 응원 그리고 아직 얘기를 나누지 못하거나 다시 초대하고 싶은 주변 친구들이 많기에 앞으로도 변함없이 방송은 이어질 예정이다.

각자에게 의미 깊은 방송 회차는?

영남: 서울펑스(Seoulpunx) 편. 살짝 겪기만 한 2000년대 중반의 펑크 신(Punk Scene)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재경: 최근 방송에 출연한 스타일리스트 김도희 편. 솔직히 그 친구가 먼저 출연 의사를 비쳤을 때도 딱히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스타일리스트란 직업에 선입견도 있었지만 한 시간 즈음 그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승혁: 내가 퍼피 라디오에 처음 출연한 시네마 천국 편. 그걸 계기로 퍼피 라디오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재경: 승혁이 그때 추천한 영화 “도그빌(Dogville)”을 실제로 봤다는 피드백을 몇 번인가 들었다.
석주: 나는 에마논(Emanon Seoul). 어린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지환: 프랑수와 오사무(Francoise Osamu) 출연 편. 또 재경이 한국 래퍼 욕한 편.

Puppy Radio Issue 35 w/ Seoulpunx

퍼피 라디오의 활동 반경은 빠르게 넓어졌다. 부산의 발란사(Balansa)나 라이풀(LIFUL)과 협업해 머천다이즈를 내놓은 것 이 그 단적인 증거 아닐까?

영남: 밖에서 보면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다.
재경: 의류 협업은 퍼피 라디오의 성장과 큰 관련이 없다. 머천다이즈를 만드는 일과 방송 일회분의 무게가 비슷하달까. 어떤 일을 기념하기 위한 의미일 뿐 퍼피 라디오를 키우려는 목적은 아니다.

기념할 일이라면 매년 열리는 퍼피 라디오 파티, ‘퍼피 파티’가 대표적이다.

재경: 첫 퍼피 파티는 장비 대여와 아티스트 섭외를 감당할 재정적 여유가 없던 상태에서 강행했기에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
석주: 안정되지 않은 때였지.
영남: 그저 익숙하지 않았던 거다. 그 후의 퍼피 파티는 매주 방송 준비하듯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최근 3주년 기념 퍼피 파티는 한남동 소재 퓨전 중식당 해피타운 한남에서 라이풀과의 협업으로 펼쳐졌다. 큰 규모의 행사였는데 그 준비 역시 수월했나?

재경: 지금까지의 퍼피 파티 중 가장 성대했지만 준비는 크게 힘들진 않았다. 먼저, 이전부터 퍼피 라디오에 관심을 표현한 라이풀과의 머천다이즈는 많은 부분을 라이풀이 담당했기에 차질 없이 제작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애견을 위한 물품도 일부 제작한 게 나중에도 기억에 남을 거 같다. 그리고 긴 상의 후 섭외한 박지하, 페어브라더(Fairbrother) 등 여러 아티스트의 공연 장면을 방송으로 기록했다. 장르적으로 다양해진 퍼피 라디오의 현주소를 공유했다고 생각한다. 참여한 모두가 헤드라이너인 행사, 앞으로도 퍼피 파티가 나아갈 방향이다.

 3rd Puppy Party w/ 해피타운 한남
3rd Puppy Party Poster

혹시 올해 출시 계획 중인 머천다이즈가 있다면.

재경: 조만간 협업이 아닌, 첫 퍼피 라디오 공식 머천다이즈를 발매할 예정이다. VISLA 매거진에서 소개한 일러스트레이터 해리 와일드(Harry Wyld)가 디자인했다. 올해 가을, 겨울에 출시하려 한다.

올여름부터 발행 중인 웝트의 애플 뮤직(Apple Music) 공식 플레이리스트, 퍼피 라디오가 그 내용을 채우고 있다. 앞으로 어떤 플레이리스트를 만날 수 있나?

영남: 방송의 내용과 비슷하게 꾸릴 예정이다. 우리 호스트는 물론이고 주변 인물의 취향을 소개하는 채널로 활용하려 한다.
재경: 그리고 인스타그램에서 모은 퍼피 라디오 시청자의 선곡을 빠짐없이 적어 두었다. 플레이리스트로도 만들었기에 궁금하면 애플 뮤직 앱에서 확인해 보자. 앞으로도 시청자와 주고받는 음악을 리스트로 작성할 방침이다.

퍼피 라디오의 추후 일정은?

재경: 방송 외적으로 영상 콘텐츠를 꾸준히 내놓고 싶다.
석주: 웝트 방송 말고도 또 다른 정규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게릴라 방송이나 해외 교류 방송도 이전처럼 이어갈 생각이다.

퍼피 라디오는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승혁: ‘맨날 자기들끼리만 놀고 우리는 안 끼워주고’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다방면을 살펴야 한다. 우리도 모르게 배타적인 내용이 되지 않도록.
재경: 문턱이 높아 보인다는 오해. 누구든 문을 두드릴 수 있다. 멤버가 모두 동의한다면 어떤 내용이라도 우리 방식대로 풀어낼 자신이 있다.
석주: 하지만 우리를 이용하기 위해 출연을 요청하는 속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재경: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승낙하지 않았나.
영남: 돌아가며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거지. 다행히 아직 극단적으로 이용해 먹으려 드는 경우는 없었다.

퍼피 라디오의 이상적인 미래를 머릿속에 그려본 적 있는가?

석주: 영상 편집자를 하나 앉히고, 스태프를 갖추는 거다.
승혁: 조명 만지는 사람도 있고.
석주: 조명까지는 너무 오버지.
승혁: 나는 지금처럼만 가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재경: 지금의 에너지를 잃지 않기를.
영남: 딱히 바라는 건 없고, 단지 퍼피 라디오로 오래 갔으면 좋겠다. 장수하는 방송으로.
석주: 기저귀 찰 때까지?
영남: 그건 너무 오버지.

PUPPY RADIO 공식 웹사이트
PUPPY RADIO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진행 / 글 │ 홍석민
사진 │백윤범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Paper 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