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국

황재국은 서울 로컬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스트리트 패션과 언더그라운드 음악 신(Scene)을 오가며 홍대 앞 무수한 헌팅 포차, 끔찍한 클럽과 편집숍 사이 문화적 코어를 유지한 몇 안 되는 공간, 헨즈 클럽(The Henz Club)의 오너이자 디렉터로서 실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대중을 움직이는 건 신의 플레이어지만, 신의 기반을 면밀히 살펴보면 황재국과 같은 기획자들이 힘겹게 지탱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서울의 댄스 클럽과 로컬 문화의 지금을 이야기하려면, 홍대 신의 한 축을 맡은 ‘헨즈’라는 이름과 그 중심인물인 ‘황재국’의 험난한 여정을 함께 회상하는 일이 첫 단추를 끼우는 작업으로써 적절할 것이다. 음악을 향한 애정에서 시작해 이제는 자타공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리 가버린 황재국을 그의 아지트, 헨즈에서 만났다.

요즘 재밌는 거 없나?

누굴 만날 때마다 왜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국 ‘이 바닥에서 굳이 왜 이런 일을 하냐’에 관한 동기를 묻는 거 같더라고. 나는 요즘 그게 없다. 오래전에는 불러오고 싶은 아티스트도 많았고, 로컬 뮤지션도 서포트하면서 이게 잘 되면 돈도 좀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있었다. 다만 지금은 그런 동기가 희미해졌다. 이쪽에 있는 친구들한테 내가 매일 그걸 묻는 이유도 내 동기부여를 위해서다.

우선 헨즈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오너 황재국의 음악적인 배경부터 언급하고 싶다. 오래전 모재지트리(Mo’ Jazzy Tree)라는 카페부터 모자 브랜드 브리즈웨이(Breezeway), 헨즈 숍, 헨즈 클럽까지 음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업을 운영해왔다. 어떤 계기로 음악에 빠져 들었는지?

결정적인 계기는 이태원 편집숍, 틴틴(TinTin)이었다. 거기서 3년 정도 알바하면서 많이 배웠다. 360사운즈 형들도 그때 알았으니까. 내가 막 틴틴에 들어갔을 때 소울스케이프(Soulscape)의 사운드 오브 서울(Sound of Seoul) 믹스 CD가 발매됐는데, 그게 엄청나게 팔리더라고. 믹스셋이 이렇게까지 인기 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전에는 그의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트리뷰트 믹스 CD를 딱 100장만 찍어서 판매한 적이 있다. 몇십만 원 웃돈을 얹을 테니 10번 미만의 넘버링을 달라는 문의 전화도 꽤 받았다. 그리고 클럽 툴(Tool)에서 일하면서 이런저런 음악도 많이 찾아 들었다. 그 두 곳에서 일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 당시에 제이딜라(J Dilla)뿐만 아니라 재지 스포트(Jazzy Sport), 누자베스(Nujabes), 스톤즈 스로우(Stones Throw), 디트로이트 등 멋진 음악이나 뮤지션의 행보를 좇곤 했다. 그때가 음악을 제일 많이 듣던 시기였다.

헨즈는 클럽보다 먼저 편집숍으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헨즈를 차리게 된 계기 그리고 영혼의 동반자 노현우(a.k.a. 노탱)를 만난 에피소드를 들려 달라.

오갈 데 없는 놈 데리고 간 거지. 이전에 홍대 월 스토어(Wall Store)라고 브라운브레스(Brownbreath)에서 2주에 한 번씩 팝업 스토어로 운영하던 공간이 있었는데 당시 내가 진행하던 브랜드, 브리즈웨이의 팝업 스토어를 그곳에서 열었다. 우연하게도 노탱이 첫 손님으로 들어왔다. 잉글리시 불독을 끌고 들어왔는데, 오자마자 개가 모자에 오줌을 쌌다. 난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어. 그렇게 처음 보고 나서 내가 트로피칼 사운드(Tropical Sound)를 운영하던 인수 형 사무실에 있을 때인데, 어느 날인가 갑자기 몰래 컴퓨터를 가져다 놨더라고. 몇 달째 연결도 안 하고 매일 PC방에서 게임만 하길래 그냥 미친놈인가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같이 게임도 하면서 친해졌지. 진짜 이딴 이야기가 인터뷰가 되긴 해?

오래전부터 로컬에 기반한 다양한 일을 벌였다. 금전적으로 두려움은 없었는지?

웃긴 게 차라리 브리즈웨이 만들 때가 사정은 좋았다. 장사는 벌리면 안 되는 거 같아. 혼자서 하면 그래도 먹고는 살겠더라고. 지금처럼 온라인 숍이 몇 군데로 쏠린 시절도 아니었고 그때는 온, 오프라인을 불문하고 다양한 숍이 장사가 잘될 때였으니까

지금의 황재국은 ‘헨즈’라는 이름으로 대표할 수 있는데, 헨즈 숍으로 시작해서 어느새 숍은 사라지고 클럽 헨즈와 모데시(MODECi)가 남았다. 어떤 기분인가?

어릴 때 꿈이 세 개였다. 하나는 카페, 두 번째는 옷가게 그리고 클럽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다 한 셈이지. 사실 헨즈 숍을 그만둔 건 지금도 미련 없다. 돈 실컷 써가면서 해봤고, 이거저거 다 하고 나서도 안 된 거라.

클럽의 아이디어는 어디서부터 출발한 건가? 음악 비즈니스에 관한 배경이나 경험이 뒷받침된 상황이었는지.

내가 제안했지. 사실 클럽은 별걱정 없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클럽 툴뿐만 아니라 베뉴(Venue)나 비원(B1)에서도 일해본 경험이 있고 사실 이게 음악 사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공간을 운영한다는 장사 개념이라서. 다 거기서부터 시작이잖아. 음악에 관한 전문성은 주변 뮤지션들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고. 케이크샵(Cakeshop)이나 유니온(Union), 베뉴 같은 곳에서 파티도 열고 하다가 클럽 한 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지. 실제 당시 클럽을 하려던 사람들은 케이크샵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물론 그때로 돌아간다면 절대 다시 안 한다.

장소를 홍대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지역에 특별한 애착이 있나?

헨즈 숍도 이미 홍대였고, 나도 이곳에서 오래 살았으니 딱히 고민할 필요 없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지역마다 상징적인 클럽이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미 로컬 클럽이 몇 있던 이태원은 고려하지 않았다. 나는 당시 이태원, 홍대를 넘어 다른 지역까지 계속해서 멋진 로컬 클럽이 생길 줄 알았다.

영국의 지하철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초기 로고에서 지금의 네온사인으로 변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 로고 만들 때 노탱과 의견이 부딪혔다. 걔는 그때부터 무슨 자신감인지 간판을 아예 만들지 말자고 하더라고. 나는 그래도 현실적인 편이라 그런지 간판은 있어야 하지 않냐고 했다. 어쨌든 기껏 만들어놨는데, 어느 날 출근했더니 간판이 없어졌더라? 씨발. 그때부터 그냥 없앴어. 나중에 윤여준 씨한테 부탁해서 그냥 네온사인 하나 달았다.

헨즈와 모데시를 열기 전, 클럽 사장이 아닌 관객으로서 즐긴 파티의 에너지 중 기억에 남는 경험이라면?

개인적으로는 초창기의 베뉴가 제일 좋았다. 크기도 적당하고, 장르도 테크노, 하우스, 힙합 등 다양했다. 디제이들이 그곳에서 롱 셋(Long Set)을 많이 트는 분위기도 좋았고. 뭔가 스태프와 디제이 그리고 손님이 모두 하나 되는 느낌이었다. 유니온도 그런 면에서는 훌륭했지. 툴도 좋았다. 누자베스가 툴에서 플루트를 불 때, 슬럼 빌리지(Slum Village)가 공연할 때 감탄이 절로 나왔지. 그 시절 툴에는 캐스케이드(Kaskade)도 몇 번이나 와서 음악을 틀곤 했다. 그때 삼겹살 구워서 입에 넣어준 게 나인 걸 그 형은 기억하려나 몰라.

처음 헨즈를 열었을 때 로컬 디제이를 중심으로 트랩부터 영국발 그라임, 일련의 베이스 뮤직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다. 초기 방향성을 말해줄 수 있을까?

그때 일단 주변 친구들이 하자는 건 뭐든지 해봤다. 방향을 제대로 못 잡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스켑타(Skepta)나 프레디타(Preditah)를 무척 좋아하던 시기였다. 전 세계적으로 그라임의 인기가 식을 때 내 관심도 시들해졌다. 그래도 한국에는 코리안 스켑타, 댐데프(Damdef)가 아직 있으니까.

헨즈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낸 파티라면 무엇인가? 디제이, 장르, 관객, 전반적인 분위기가 모두 잘 조화된.

이센스(E SENS)가 출소하고 나서 처음 공연한 파티가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워낙 좋아하는 뮤지션이기도 해서 나름대로 의미 있었다. 출소하고 나서 첫 행보를 어디로 정할지 다들 관심이 쏠리던 상황이었으니까. 리허설할 때부터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얼마 전, 모데시에서 진행한 소울스케이프 6시간 롱 셋. 형도 6시간 동안 음악을 튼 건 처음이라고 하더라. 딱 450장 틀었다면서. 뭐 의미야 다들 알 테니까 굳이 길게 말 안 해도 되겠지. 이 형은 리빙 레전드다. 대한민국에서 무형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

근 1년간 헨즈 클럽에서 이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방향성을 느꼈다. 래퍼를 위시한 파티가 많아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 한국 힙합의 장처럼 느껴지는 지금 헨즈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운영 중인가?

우선 해외 디제이를 비롯한 뮤지션을 데려오는 일에 흥미를 잃었다. 근 몇 년 사이 해외 뮤지션의 섭외 비용이 엄청나게 올랐다. 클럽, 파티, 페스티벌 등 다양한 주관사가 경쟁하니 많게는 5, 6배까지도 가격이 뛰었다. 5성 호텔에 대기실에서 스낵(Snack)을 요구하는 등 조건도 까다롭다. 한 번은 천만 원에 계약한 디제이를 공항까지 마중 나갔는데, 힙 색에 USB 4개 넣어서 오더라. 그때 막말로 ‘현타’가 왔다. 천만 원이면 중고차 한 대 값인데, 우리 엄마도 안 데려가 본 5성 호텔에서 재우고, 대기실에 먹을 거 깔아주고 있으니 내가 대체 뭘 하는 건가 싶더라고. 갑자기 캐스케이드에게 삼겹살을 구워주던 내가 오버랩됐다. 그때부터 해외 콘텐츠를 많이 뺐다.

그다음부터는 로컬 디제이를 많이 찾았다. 그때부터 각종 라운지나 클럽도 많이 생기며 디제이 또한 많아졌지. 그러면서 자연스레 래퍼들이 헨즈를 자주 찾고 존중해줘서 그들과도 함께하기 시작했다.

클럽 내 공기도 많이 바뀌었을 듯한데.

확실히 미친 듯이 춤추는 관객이 줄었다. 공연 보러 온 친구들이 늘어난 탓도 있고, 전반적으로 헨즈뿐 아니라 로컬 클럽 대부분이 아침에 첫차 뜰 때까지 노는 분위기가 사그라든 것 같다. 굳이 클럽에 오지 않아도 즐길 거리가 얼마나 많은가.

래퍼들의 라이브 공연이 잦아지면서 디제이의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왔는지?

헨즈의 방향성을 조금씩 바꾸면서 디제이들을 왜 줄였냐는 피드백을 많이 받는다. 나도 처음에는 굳이 한국 힙합 공연을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디제이도 문화의 일부고, 래퍼도 마찬가지 아닌가. 전체적인 디제이의 수가 늘어난 만큼 클럽이나 환경을 탓하는 디제이도 많아졌다. 신을 탓하고, 언더그라운드를 탓하고, 다른 클럽이나 파티를 탓하는데 적어도 래퍼들은 자기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더라. 요즘에는 오히려 래퍼들의 공연에서 에너지를 많이 느낀다. 그 친구들은 관객 수보다도 자신의 공연에 스스로 얼마나 만족했는지 먼저 이야기한다. 그렇게 교류하다 보니 그들이 굉장히 빡세게 음악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히려 어디 파티에 가서 놀지도 않고, 작업실에 갇혀서 죽어라 자기 음악만 파는 거지. 그런 태도를 보면서 내 생각도 변했다.

디제이 중심의 파티에서 일종의 안일함을 느낀 것인가?

디제이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클럽이나 이벤트를 구성하기 위해선 많은 역할이 필요하다. 로컬 클럽에서 디제이는 레스토랑의 셰프와 같다. 그 타임의 디제이가 분위기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관객을 데리고 놀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 디제이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디제이와 클럽, 함께하는 디제이들 사이에서 디테일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도 현저히 줄어들었고, 애정을 가지고 자기 타임을 소화하는 친구도 몇 없는 듯하다. 클럽은 그들이 활약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사운드, 연출, 인테리어, 스태프 관리 등 신경 쓸 시스템이 아주 많다. 디제이가 역량을 뿜어낼 수 있는 완벽한 플랫폼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이 모든 걸 컨트롤할 수 있는 클럽이 좋은 클럽이라고 본다. 헨즈도 아직 미흡한 게 너무 많다.

또한 디제이 파티를 하기 위해선, 기획이나 디자인, 홍보 등을 맡아서 진행하는 프로모터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클럽과 디제이, 프로모터가 합심해서 하루의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한다면 어떤 장르나 이벤트 할 것 없이 관객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 성공할 것이라 본다. 이러한 시스템의 부재로, 디제이만 가지고 하루의 이벤트를 짜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도 많은 디제이를 섭외해봤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디제이도 부르고, 시스템에 불평불만 없는 디제이에게도 연락하고, 홍보하기 귀찮으니 그냥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많은 디제이도 섭외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딜레마에 빠지고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로컬 신의 문제는 다름 아닌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먼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자극적이고, 편한 콘텐츠로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안일해졌나, 돌아봐야 할 때다.

2019년 헨즈의 행보에서 키퍼(Kiefer), 카말 윌리엄스(Kaamal Williams), 부다멍크(Budamunk)와 같은 해외 뮤지션 공연은 실제 황재국의 취향이 드러나는 몇 안 되는 라인업이었던 것 같다. 해외 라인업을 선정하는 기준이나 그들과의 이벤트를 통한 효과, 국내 파티와의 균형감에 관해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헨즈에서 점차 외국 디제이를 찾아보기 힘든 점도 체감할 수 있는 변화 같다.

동기를 찾는 거지. 자극받으려고. 그리고 해외 뮤지션을 통해서 국내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유독 한국 시장을 지갑으로 생각하는 아티스트도 많아져서 솔직히 짜증 나는 부분도 있지만.

근래 불거진 클럽 버닝썬 사건의 여파로 운영 측면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뒤로 정말 자주 털린다. 경찰 여덟 명이 하루에 세 번씩 들이닥칠 때도 있었다. 갑자기 음악 끄고 조명 켜고 조사하기 시작하면 그날은 완전히 조지는 거지. 얼마 전에는 손전등 30개 중 2개의 배터리가 다 됐다고 몇백만 원짜리 벌금 딱지를 끊었다. 그건 무조건 털겠다는 의미다. 나 말고도 클럽 업주들 이걸로 지금 스트레스 엄청나게 받는다. 이미 문 닫은 곳도 많다. 작정하고 나서는데 관객이라고 그 분위기를 못 느낄까. 클럽 신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뉴스에서도 맨날 때려대니 악의 축이 됐지 뭐. 9시 뉴스에 뜬다는 건 위키트리나 다른 데서 언급하는 일과 차원이 다르다.

많은 음악가가 로컬 클럽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강남 일대, 대형 클럽 신을 벗어나 독자적인 행보로 이름을 알린 클럽이 근 10년 사이 이태원, 홍대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선택지가 늘어난 듯한데,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하다. 정말 로컬 음악가 기반의 클럽 신이 탄탄해지는 중인가?

성장하다가 지금은 좀 멈춘 느낌이다. 다시 클럽이 사라지는 추세니까. 현재 자신 있게 언더그라운드나 로컬이라고 말할 수 있는 클럽이 몇이나 될까? 나는 로컬 클럽에는 문화, 패션, 음악 등의 분야에 속한 이들이 주말에 놀러 와서 난장 까고 서로 친해지고, 일로도 교류하는 무드가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이런 클럽이 어디 있나. 사실 이제는 클럽이 아니어도 음악을 즐길 공간은 많아졌고, 굳이 밖에 나오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콘텐츠도 정말 많아졌지. 젊은 층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뀐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향후 로컬 클럽 신을 예상해 본다면?

앞으로 2년 정도는 계속해서 안 좋은 분위기가 이어질 거 같다. 가까운 나라의 예로, 일본의 전자음악 신은 탄탄하게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는데, 한국은 신 자체가 건강해지는 것 같지는 않다. 디제이, 에이전시, 클럽, 프로모터 등 생산자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마인드가 변화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힘들지 않을까. 이러다 다 없어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유럽 쪽 디제이 신은 장르를 불문하고, 이미 디거(Digger)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한국도 진짜배기 디거가 인정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소울스케이프’뿐만 아니라, ‘DJ Jeyon’, ‘Magico’, ‘Antwork’, ‘Dee8’, ‘Andow’, ‘Gimmixxxx’, ‘Jesse you’ 등 레코드 디거뿐만 아니라 ‘문이랑’, ‘Kona’, ‘Onni’, ‘Cifika’ 같은 전자음악 프로듀서가 두각을 드러내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한다.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고.

헨즈를 방문하는 관객의 집단적인 특성이나 패션에서 느껴지는 교집합이 있다면 무엇인가.

일단 머리카락이 검은색인 사람이 별로 없다. 스타일이 다들 가지각색이다. 스케이터, 뮤지션, 패션 등등 다양한 친구들이 놀러 오는데, 그들의 깽판이 불편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 사고는 그만 터졌으면 좋겠다.

래퍼, 스케이터, 모델,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젊은 창작자가 드나드는 클럽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헨즈와 상호작용하는 요소라면?

아까도 말했지만, 무언가 자기만의 문화에 빠진 애들이 놀러 오는 곳이 로컬 클럽인 것 같다. 그곳에서 싸움도 나고, 비즈니스도 이어가고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는 거지. 헨즈에서 서로 인사하고, 같이 작업하자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듯하다.

90년대생 이후로 디제이가 급증했다.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의 영향으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편리해진 덕분인 것 같은데, 한편 디제이로서 프로페셔널을 이야기할 때도 자질을 갖췄다고 생각하는가.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됐다. 무엇보다도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좋아졌다. 플랫폼도 다양하고 배울 곳도 많다. 그러다 보니 잘하는 어린 친구들이 많아진 것 같다. 하지만 좋은 디제이의 마인드 셋을 갖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서로 경험이나 고충을 공유하면서 신이 단단해지면 좋은데, 그게 단절된 느낌이다. 올해 여름쯤 프랑크푸르트의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이라는 클럽의 뮤직 디렉터, 올리버 하펜바우어(Oliver Hafenbauer)가 내한한 적 있다. 그는 클럽은 건강한 디제이 신을 위한 하나의 학교 역할도 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충고했다. 후배 디제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선배 디제이나 관계자로서 후배 디제이가 좋은 태도와 마인드를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일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게 무슨 개소린가 했는데 지금에 와 나를 반성하게 하는 말이다.

소셜 미디어 기반의 커뮤니케이션에는 장단점이 있다. 그 점이 지금 신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는지?

한국은 온라인 문화가 강한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이제는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모일 구실도 없고, 온라인에 집중됐으니까. 클럽만 해도 몇백 개씩 좋아요가 찍히는 곳은 유럽도 드문데, 한국은 수두룩하다. 그러면서 과열되는 거지. 좋아요가 안 달리면 왠지 재미없는 파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씨발, 그놈의 ‘좋아요’. 지겨워 죽겠지만 안 찍히면 서운한 거.

소셜 미디어와 실재의 간극이 큰가?

온라인 자극에 생산자도 빠져있었지. 홍보 방식을 소셜 미디어 쪽으로만 고민하다 보니 뻔해졌다. 파티 일주일 전에 친구들한테 뿌려서 플라이어 이미지 하나 올리고,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광고비를 태우는 방식이다. 그렇게 주말이 가까워지면 인스타그램에 파티 포스팅이 몇십 개가 떠 있다. 어린 친구들은 그걸 보면서 어디에 갈지 5초 안에 결정한다. 라인업이나 좋아요, 댓글 같은 걸 보면서. 갈수록 대규모의 파티나 페스티벌이 늘어나며 헨즈 같은 클럽이 그들과 인스타그램에서 경쟁하기란 더욱더 어려워졌다. 그들은 몇백 배나 많은 돈을 쓰면서 홍보할 테니까.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로컬 파티의 노출이 줄어든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인스타그램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고민한다. 지금도 유럽이나 일본은 오프라인으로 파티를 홍보하기 위해 발로 뛴다. 출력물을 만들어서 뿌리고, 붙이고 다니는 거지.

가장 최근에 오사카에 있는 클럽, 서커스(Circus)에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 주변의 온갖 이벤트 플라이어를 클럽에 비치해놨더라고. 그 주변 카페, 식당, 레코드숍 등 어딜 가도 로컬 이벤트를 확인할 수 있다. 로컬 사이의 연결성을 찾을 수 있는 움직임에서 자연스레 문화라는 걸 체감했다. 만약 헨즈에 케이크샵 포스터가 놓여있고, 케이크샵에 소프 포스터가, 소프에 헨즈 포스터가 붙어있다고 생각해봐. 크~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개싸움이 나면서 너희들의 기삿거리가 되겠지. 그래도 언젠가 그런 날이 왔으면 한다.

헨즈에서 오랜 시간 활동한 구스범스(Goosebumps), 코커(Co.kr)와 같은 프로듀서, 디제이가 지금 로컬과 메인스트림을 넘나들며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어떤가? 

뿌듯하다. 그런데 어디에 있어도 잘 될 친구들이었다. 목숨 걸고 음악 하니까. 헨즈에 있을 때는 사실 좋은 것보다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를 많이 느끼고 갔을 듯하다. 실제 클럽에서 오랜 시간 분위기를 보며 느낀 바가 많지 않았을까.

섭외하는 로컬 뮤지션의 역량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

나는 파티를 기획하는 이들과 미팅을 정말 많이 진행하는 편인데, 출력물이나 여러 가지 홍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곤 한다. 안타까운 건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신을 만들어온 앞선 세대가 그 중요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탓이라고 본다. 나도 못 했지 뭐. 뮤지션이나 파티를 준비하는 이들이 더 치열하게 클럽과 싸우면서 발전했으면 좋겠다. 자기 의견 내고 서로 충돌해야 조율도 해가면서 더 좋은 기획을 낼 수 있다. 해외의 로컬 문화가 왜 건강한지 한 번쯤 생각해본 이들이라면 오프라인에서 형성되는 움직임이 중요하단 걸 느꼈을 거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세대가 놓쳤다. 오래전에 활동하던 형들은 제대로 하려고 했지만, 자연스럽게 세대가 거듭되면서 뭐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가 싶었겠지. 한국은 온라인의 영향이 워낙 센 탓도 있다.

그리고 디지털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음악 틀기에는 정말 좋은 환경이 갖춰졌다. 굳이 레코드를 디깅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음원을 가져올 거면 제발 높은 음질로 다운로드해라. 저음질 음원은 클럽의 고출력 스피커에서 티가 너무 많이 난다. 디제이도 한 명의 아티스트이자 브랜드가 아닌가. 그건 다른 디제이와 클럽, 넓게는 로컬 신에 빅 엿을 날리는 행위다.

재밌는 기획자가 있다면 누군지 소개해 달라.

코커가 잘하는 거 같은데. 게토레이(Ghetto-Ray) 멋있잖아. 그 친구는 ‘이렇게 파티를 열면 망한다’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했다. 레지던트로 일하면서 망한 파티를 얼마나 많이 봤겠냐는 말이지. 나보다도 더 가깝게 느꼈을 거다. 그러니 두세 달에 한 번 파티를 여는 디제이나 크루와는 마인드부터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이유로 모데시에서 여는 보이스(Voice) 파티를 보면서 많이 배운다. 나이도 많은 형들인데 여전히 길에 포스터 붙이고 다닌다. 인스타그램에서 별로 유명하지 않은데도 보이스에는 항상 골수팬이 따라다닌다. 아예 그 파티를 위한 커뮤니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어떤 장소에서 보이스가 열려도 팬들은 따라간다. 보이스 파티에서 놀다 보면 관객과 디제이가 서로 존중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다섯 명이 남아도 디제이는 관객을 데리고 아침까지 춤추게 한다. 그러니 보이스라는 파티에 리스펙트가 생길 수밖에. 즐겁게 주고받는 에너지가 보기 좋더라고.

최근 ‘We ddance’ 같은 경우에는 낫유어로즈(Notyourrose)의 디렉터 예지가 호스트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색깔과 모두가 즐길만한 걸 잘 섞고, 그 색에 잘 맞게 디자인하고, 주변에서 많이 서포트받으면서 좋은 파티를 만든 거 같다. 나는 파티가 잘되려면 기획, 디자인, 마케팅까지 세 박자가 서로 잘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잘하는 게 아니라 잘 섞여야 한다는 말이다. 요즘에는 자기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파티 플라이어 하나 딱 올리고 파티 끝나면 지우는 디제이도 있다. 그런 거 보면 억지로 음악을 튼 거 같거든. 다들 각자만의 이유로 무언가 감추고 살지 않나. 누구는 힙해보이려고, 아니면 뭔가 부끄러운 요소가 있어서 그러는 것 같은데 예지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음악을 하는 친구가 아니라서 그런지 더 당당하고, 친구들 열심히 초대하고, 힙하려고 하지 않아서 많이 와서 재밌게 논 게 아닌가 싶다.

많은 디제이, 뮤지션이 헨즈를 거쳤다. 이제 5주년을 바라보는 클럽으로서 새로운 동력을 끌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이제 헨즈는 내 손을 떠나야 한다. 나와 또래 친구들이 꾸려나갈 때가 지났다는 의미다. 파티는 어린 친구들이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들이 기획도 해보고, 프로모터도 하면서 재밌는 파티를 만들 수 있도록 나는 뒤에서 비용이나 법적인 문제 등 여러 방면에서 지원하는 쪽으로 변해야 할 거 같다. 그러나 신에는 사람이 부족하다. A부터 Z까지 해결할 수 있는 프로모터가 몇 없다. 관심 있는 이들을 주변에서 찾거나 키워보기도 하는데 지금도 마땅한 사람을 찾는 일이 가장 어렵다.

아까 언급한 오사카 클럽 서커스에 있을 때, 내가 한국에서 클럽 운영한다고 하니까 프로모터들이 죄다 가방에서 플라이어 꺼내주더라고. 한번 와보라고 하면서. 콘택트(Contact)에도 클럽이 아닌 프로모터가 주관하는 파티가 많다. 그런데 정작 그들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일본에서 파티 기획하는 프로모터가 돈을 버느냐. 또 그렇지도 않다는 거지. 대부분 돈을 못 번다. 사실 빡센 포지션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커뮤니케이션도 직접 다 해야지, 기획부터 홍보까지 다 나서서 하는데, 정작 클럽이나 아티스트의 불만까지 중간에서 감수해야 한다. 보상도 극히 적으니 오래갈 동기부여가 안 되는 거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을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사실 좀 어렵지. 우리는 금수저도 아니고, 돈도 못 벌고. 그러니까 즐거움을 느껴야 하는데, 하다 보면 그것도 쉽지 않으니까.

헨즈를 운영하면서 가장 성공적인 결정을 내린 적 있다면 언제인가?

성공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반대로 놓쳤거나 아쉬운 순간이 있다면?

바밍타이거(Balming Tiger)와 계속해서 함께하지 못한 게 아쉽다. 엄청 멀리 보고 실제로 잘하는 팀이다. 나는 그 친구들하고 잘 섞이지 못한 거 같다. 그 또래부터 유대감을 공유하기 어려워지더라고. 내가 술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더더욱 어울리기 힘들다. 사실 활동하는 지역이 다를 뿐이지, 딱히 놓쳤다고 하기에는 너무 과장하는 감이 있지만 어쨌든 그들이 더 잘돼서 재미있는 움직임을 자주 보여줬으면 한다.

지금 황재국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는 무엇인가?

추진력, 동기부여, 좋은(?) 프로모터, 냉정한 판단, 음악 들을 여유 그리고 돈.

반대로 떨쳐내야 할 다섯 가지라면.

노현우, 노탱, 스트레스, 다른 클럽이나 공간과의 비교,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헨즈 근처인 합정역, 홍대입구역 일대에 스트리트 브랜드와 관련된 스토어, 이를테면 하이츠(HEIGTS.), 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at), 니벨크랙, LMC 등이 최근 문을 열었다. 자생적으로 성장한 일련의 브랜드, 편집숍이 홍대 근처에 자리 잡은 현상은 단순히 지리적인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 외에도 시사하는 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이와 같은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방금 언급한 브랜드, 숍을 운영하는 이들과도 가끔 만나서 이야기한다. 모두 홍대는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오래전부터 역사가 있던 동네가 아니냐고 말한다. 다들 기대하는 구석이 있다. 사실 전자음악도 한창 ‘툴’, ‘조커레드’, ‘카고’, ‘M.I(비아)’, ‘M2’가 성업할 때 왕성했고, 그 이전부터 고유한 문화가 있던 곳이니까.

하이츠, 디스이즈네버댓, LMC가 어떤 브랜드인가. 로컬 패션 신에서 마케팅, 브랜드 규모 등 여러 측면에서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다. 디자인은 개인 취향이라지만 그들은 수많은 리서치, 데이터, 경험으로 일구어낸 브랜드다. 그들이 한남동이나 압구정이 아닌 홍대에 첫 번째 플래그십을 오픈한 건 홍대가 분명 그들에게 매력 있는 장소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들이 문화적인 소스를 풀어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헨즈나 모데시면 좋겠다.

‘옛날 홍대가 그립다’라고 말하는 홍대 향수 담론은 지금에 와 케케묵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자본과 소비가 잠식한 홍대 신에서 아직 문화와 생산이라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면, 어떤 지점을 주목해야 하는가. 조금 더 나아가 생산자 측면에서 더 나은 환경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나갈 계획인지 말해 달라.

어려운 질문이다. 예전 홍대 앞은 문화적으로 죽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홍대에는 여전히 많은 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중 음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생각해 본다면, 많은 소규모 공연장, 밴드 합주실, 스튜디오, 레코드 숍 등 인디 문화를 지탱하는 베이스가 홍대에 집중되어 있다.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언더그라운드 댄스 클럽이 이태원에 몰려 있을 뿐, 최소한 음악이라는 카테고리, 특히 인디뮤직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곳 중 하나는 홍대 앞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클럽 또한 개인적으로 최고의 전자음악 클럽이라고 생각하는 벌트(Vurt),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의 장인들이 운영하는 브라운(BROWN)이 버티는 이상 이태원과 비교했을 때 질적으로 꿀리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비웃겠지만 소위 말하는 돕함은 홍대에 있다.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무언가를 생각 중인 건 없다. 내가 무슨 문화부 장관을 할 것도 아니고, 마포구 구청장도 아니고 굳이 그런 걸 해야 하나?

홍대 내 창작자, 생산자들의 공동체가 다시금 필요하다고 보는가?

소셜 미디어가 지배하는 요즘 굳이 그런 게 필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프라인 커뮤니티는 분명 필요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는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만 하지 않았나. 언더그라운드 클럽 신은 해외 시장에서 중국이나 일본, 심지어 동남아시아에도 밀리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엔 한국이 아시아에서 노른자 같은 역할을 했지만, 각종 안 좋은 이슈, 과열된 경쟁과 빠른 콘텐츠 소비로 그것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진짜 침체기는 이제 시작이니 그동안 모두 재정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뭉치지 않으면 꽤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단순 홍대가 아니라 서울 혹은 한국에서 창작자, 생산자가 뭉쳐서 이 판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 때로는 의견도 충돌하겠지만, 그게 분명 원동력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홍대를 걷다 보면 힙합 음악이 흘러나오는 클럽 앞에 ‘무료입장’이라고 적힌 입구 간판을 자주 마주친다. 혹시 들어가 본 적 있나?

들어간 적은 없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그들의 운영 방침에 별다른 코멘트를 달고 싶진 않다. 오히려 입장료 없이 바(Bar) 매출로만 운영하는 그들의 방식은 오히려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질문과 동떨어진 얘기지만 개인적으로 무엇이든 선입견 없이 보려고 한다.

주말이 되면 바뀌는 밤낮으로 바이오리듬이 꼬일 텐데, 안정적인 평일을 보내는 노하우가 있다면.

이게 가장 큰 고민이다.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불면증뿐만 아니라 나이를 먹으니 각종 크고 작은 질병이 찾아오더라.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직업은 어찌 보면 한없이 괴롭고 피곤한 일인 것 같다. 외국 클럽 디렉터나 디제이와 대화를 나눠 보니 그들은 따로 등산이나 러닝 등의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관리한다고 한다. 나뿐만 아니라 클럽 문화에 속한 종사자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라도 자신만의 체력 관리가 필요하다.

지금 가장 재미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요즘에는 재미보다도 그냥 자기 일 소박하게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보기 좋다. 판때기를 키우는 일 대신 작은 규모라도 만족해가면서 사는 게 좋더라고. 대표적인 사람이 전설의 전자음악 클럽, 미스틱(Mystik)을 운영했던 곽동렬 형이다. 그는 클럽 이야기만 나오면 혀를 찬다. 내가 불쌍해 죽겠다고 말하지. 모든 고충과 스트레스를 이해하더라. 그러면서 나도 생각이 좀 변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하면 인생이 고달파지니까. 신경 쓸 거도 많고. 그렇게 많이 번다는 래퍼 중에서도 진짜 행복한 이들은 몇 안 되는 듯하다. 행복은 꼭 돈과 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헨즈 클럽이 국내 힙합 신의 창구로서 기능하며 ‘쇼미더머니’에 편중됐던 한국 힙합의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행보나 변화를 기대하고 싶다. 튼튼한 마켓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중매체의 조명을 집중적으로 받은 만큼 명과 암도 극명히 나뉠 것 같은데, 국내 래퍼를 비롯한 힙합 신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려 하는가?

‘국힙 상담소’ 촬영을 헨즈, 모데시에서 진행 중인데, 그때 래퍼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주의 깊게 듣는 편이다. 그들의 고민은 되게 진실하고, 건강하다. 그걸 보면서 국내 힙합 신이 내가 피해야 할 문화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이미 ‘쇼미’ 영향력도 떨어졌고, 미디어도 많지 않고, 래퍼가 공연할 곳도 너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헨즈라는 클럽의 지금 방향성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느끼지. 외국 디제이만 주구장창 부른다고 멋진 문화도 아니고, 힙한 디제이만 부른다고 해서 문화도 아니지 않나. 공연할 곳이 필요한 래퍼를 끌어내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니까.

앞으로도 디제이뿐만 아니라 래퍼에게 헨즈가 도움을 줄 수 있는 클럽이 된다면 좋겠다. 이미 성공한 래퍼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대다수의 래퍼는 따라갈 선배나 기획자가 없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내가 도움이 된다면 옆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서포트할 계획이다. 막말로 대관비라도 내줄 테니까 앨범 내고 공연 만들고 나중에 돈 벌어서 갚으라고 하는 거지. 누군가는 계속해서 만들고 움직여야 하니까.

80년대생이 힙합을 듣던 시절과는 다르게 지금 어린 세대는 대다수가 ‘쇼미더머니’의 영향으로 힙합을 접한다. 그들은 래퍼를 마치 ‘연예인’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문화를 접한 계기와 배경이 내가 어릴 때와는 달라진 거지. 그게 또 지금은 일반적인 인식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다양한 플랫폼이 필요하다. 공연장이나 미디어, 콘텐츠까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힙합을 즐길 수 있어야 단순히 거품 낀 유행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아마 그 과정도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진짜 멋진 음악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겠지.


진행 / 글 │ 권혁인 최장민
사진 │ 백윤범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Paper 1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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