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입스(Tapes)라는 이명으로 활동하는 잭슨 베일리(Jackson Bailey)는 비정현파(non-sinusoidal wave) 베이스, 이른바 칩튠(Chiptune)이라 불리는 8-Bit 음악을 레게 리딤에 접목한 ‘디지털 레게’를 선보인다. 이는 아타리(Atari)와 닌텐도(Nintendo)가 지구를 직격한 과거의 틈에서 발현된 소리. 그로부터 약 40년의 세월을 어렵사리 비집고 통과하여 오늘날 도달한 고귀한 것이다.
기분 좋은 설렘은 예정 없이 찾아온다고, 시대를 관통한 그의 소리가 서울 채널 1969에 도착한 때는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특별한 예정이 없던 나는 박다함의 도움으로 테입스와 7FO의 듀엣 공연을 관람한 후, 이튿날 신도시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짧은 대담까지 나눌 수 있었다. 이하는 테잎스의 다양한 커리어를 두고 나눈 대화문이다.
한국에서 공연은 처음인가?
처음이다. 즐겁게 공연할 수 있어 좋았다.
2020년, 바이닐, CD, 테이프, USB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피지컬 포맷이 존재하는데, 당신은 테잎스란 가명을 사용한다. 이에 얽힌 일화 혹은 이유가 있나?
어릴 적에 CD나 컴퓨터를 구매할 돈이 없었다. 그러나 디제잉은 하고 싶었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테이프를 선택했다. 따라서 테이프로 셋을 제작하고 디제잉을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테입스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많은 이들이 생소하게 여길 만한데, 테이프 디제잉은 과연 어떤 것일까?
테이프로 플레이하는 디제이가 없어서 나 스스로 셋업을 만들었다. 모듈러 박스에 이퀄라이저를 설치하고 이펙터를 연결했다. 또한 소니 워크맨 앞부분을 뜯어서 내가 어떤 테이프로 무슨 음악을 재생하는지 직접 볼 수 있도록 개조해 시스템을 구축했다. 나처럼 테이프로 디제잉하는 사람은 오늘까지 어섬 테잎스 프롬 아프리카(Awesome Tapes From Africa)밖에 없을 거다.
테이프 셋에는 어떤 음악이 담기는지?
특정 장르를 염두에 두고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테이프와 바이닐 셋에 차이점이 있나?
카세트 플레이는 베이스가 약한 게 특징이다. 나의 경우는 베이스 뮤직, 레게, 덥을 주로 플레이하지만 되려 베이스가 약한 게 장점으로 느껴졌다. 바이닐 플레이의 경우는 너무나도 큰 베이스가 빚은 피드백 현상을 자주 경험해서 그런지 볼륨을 제한적으로 운용한다. 반면 테이프의 경우는 베이스가 약한 덕분에 원하는 만큼 큰소리로 볼륨을 키울 수 있다.
마지막 테이프 디제잉은 언제였나?
포르투갈에 살다가 최근 에스토피아로 이사했다. 테이프를 에스토피아 집으로 옮기고 나서 불과 넉 달 전인 크리스마스에 테이프로 디제잉을 펼쳤다.
테이프 디제잉을 본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대부분 처음 보는 광경이다 보니 호기심을 많이 가진다. 일반적으로 참신한 발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 사실 기존에 카세트라 생각하면 워크맨 같은 조그마한 기기에서 재생하는 데서 수반되는 열악한 음질을 주로 떠올리는데, 실제 플레이할 때 에너지는 전혀 다르다. 앞서 말했듯, 피드백이 없어 엄청나게 큰 사운드로 플레이할 수 있다 보니 맥락 자체가 다른 거다. 이는 새롭고 참신한 에너지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테입스의 음악은 덥을 모체로 삼았다. 어디서 영향을 받았나?
어릴 적에는 뉴질랜드에서 자랐다. 뉴질랜드는 바베큐 파티를 해도 레게 음악을 들었다. 밥 말리(Bob Marley), 피터 토시(Peter Tosh), 사이언티스트(Scientist) 같은 자메이카 음악들. 18살 때 런던으로 이사했다. 런던은 레코드 숍과 사운드 시스템 등 내가 좋아하고 동경하던 문화가 너무나도 잘 구축되어 있었다. 레게 음악과 문화를 몸소 느낄 수 있어 좋았지. 테입스의 음악은 이 영향 아래에서 탄생했다. 다만 디지털 레게로 불리는 음악을 누군가 만들 법한데, 아무도 안 하는 것 같아서 직접 듣고 싶어서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끔 레게 파티가 열리지만, 여전히 생소한 문화로 다가온다. 반면 영국은 브리스톨과 런던에서 레게가 가지를 뻗어나갔다. 오늘날 많은 국가에 보급된 레게 음악 또한 자메이카에 근간을 둔 것이 아닌, 브리스톨 사운드에 더 큰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하는데, 2020년 현재 영국 내 레게는 어떠한 위치에 서 있는지 알려줄 수 있나?
영국을 떠난 지 5년이 지났기 때문에 현재 영국 레게 음악의 정확한 위치를 코멘트할 수 없다. 그러나 장담컨대 새로운 아티스트가 새로운 레게를 만들어내고 있다. 덥 또한 마찬가지로 그 의미가 넓어지고 있다. 2020년 오늘로 거의 60년째 명맥을 잇고 있는 장르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생각한다.
앨범 [Compuriddims], [No Broken Hearts On This Factory Floor] 등에서 8-bit 음악의 비정현파 베이스, 이번 라이브 앨범 [電氣爆発(Electronic Aura Explosion)]에 수록된 트랙 “Tetris” 등을 듣고 80년대 팩 게임 시장을 동경하는 올드 게이머일 것으로 추측했다.
레이블 ‘자타리(Jahtari)’에서 활동한 시절에 타 아티스트가 80~90년대 게임 소스를 접목하는 시도를 지켜봤다. 자타리는 나를 둘러싼 환경이었기에 게임 사운드 소스가 음악으로 스며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나는 어릴 적 컴퓨터 게임을 아주 좋아했으니 팩 게임을 기반으로 한 사운드를 발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타리’는 어떤 레이블인가?
라이프치히를 기반으로 2004년 시작된 레이블이다. 레코딩을 시작으로 현재는 다양한 머천다이즈를 제작하고 있다. 나는 자타리 레이블의 파운더 디스럽트(Disrupt)와 함께 밴드에서 활동하며 키보드 플레이어로 활동한 이력도 있고, 자타리에서 앞서 말한 앨범 [Compuriddims]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굿 모닝 테입스(Good Morning Tapes)’에서 발매된 “Silence Please”, “Dog Plate”에서는 인도의 전통 음악과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두 트랙은 타블라 드럼에 영향을 받았다. 타블라를 좋아하고 연습하는 도중에 당시 내가 작업하던 덥과 잘 맞을 것 같다 생각했고, 평소 디지털 레게와 다른 방향으로 가져가고 싶어서 접목을 시도했다. 지금도 계속 배우고 연습하고 있다. 내가 만족할 만큼 잘 다루게 될 때까지는 한 10년은 더 걸릴 것 같다.
레코드 레이블 ‘워크숍(Workshop)’에서 카셈 모세(Kassem Mosse)와 가끔 함께 작업하다가 작년 11월, 지그트랙스(Zigtrax)라는 그룹을 이뤄 동명의 12인치 [Zigtrax], “Untitled” 트랙 8개를 공개했다.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또 지그트랙스 프로젝트는 단발성에 가까운가?
일회성 프로젝트는 아니고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내가 베를린에 살면서 그와 친구로 지내다가 같이 작업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즉흥의 잼 세션 위주로 작업했는데 앞으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발전시킬 생각이다.
베를린에도 살았나?
여섯 달 살았다.
본명인 잭슨 베일리로 한 축을 이루는 실험 음악 프로젝트 레제츠(Rezzett)에 관해 설명해줄 수 있나?
미안하지만 레제츠와 관련된 이야기는 비밀로 남겨두고 싶다.
작년 벨기에 페스티벌 ‘Meakusma Festival’, 7FO와 함께하게 됐는데 어떻게 시작됐나?
1년 반 전, 앞서 말한 타블라 드럼머신으로 작업에 박차를 가하던 도중, 일본에서 작게 투어를 돈 적이 있다. 그때 7FO와 처음 함께했다. 그는 나에게 함께 하자고 간곡히 요청했다. 나는 당시 타블라 드럼머신으로 레게가 아닌 다른 음악에 심취한 상태라 거듭 거절했다. 그러다 결국은 못 이겨서 함께하게 됐는데 7FO의 기타 연주 실력 외에는 아무런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따라서 많이 우려했고 결국, 다음 날 즉석에서 라이브를 펼쳐야 했다. 그런데 의외의 큰 성공을 거뒀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나 2019년 벨기에 페스티벌인 ‘Meakusma’에서 만났다. 페스티벌 측은 나와 7FO를 각각 따로 부른 것. 그러나 우리는 이미 함께한 적이 있었고, 만난 기념으로 새로운 무언가 만들어야 한다고 작당 모의를 했다. 그렇게 라이브를 펼친 게 [電氣爆発(Electronic Aura Explosion)]이다.
그렇다면 녹음을 염두하고 플레이한 것은 아니겠다.
그렇다. 나는 어떤 프로젝트에 빠지면 그 프로젝트에 몰두한다. 당시에는 레게나 덥을 작업하지 않아서 7FO와는 일회성 프로젝트로 임했다. 또한 날이 거듭될수록 자꾸 불어나는 프로젝트가 나에게 큰 부담을 안겨준다. 프로젝트는 마치 나의 아들 같달까? 한두 명 정도는 괜찮은데, 서로 다른 나이대, 서너 명의 아이들을 혼자서 한 번에 돌봐야 하는 느낌이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녹음을 절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일본에서 즉석, 즉흥으로 라이브를 펼쳤다고 했다. 페스티벌에서는 어떤 라이브를 열었나?
벨기에에선 10년 전에 미리 만들어놓은 베이스를 사용하고 싶었다. 그러나 10년간 나는 약 세 번 정도 컴퓨터를 바꿨기 때문에 당시 컴퓨터에 남아있는 드럼과 베이스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드럼과 베이스를 다시 녹음을 해야만 했다. 공연을 위해 먼저 테이프로 녹음을 했다. 이게 테이프 없이 가장 테이프와 비슷한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다시 컴퓨터로 녹음을 했고 7FO에게 보냈다.
일본의 EM레코드(EM Records)와 꽤 오래전부터 함께하고 있는데,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오사카를 여행하다가 알게 됐다.
둘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데 어떻게 극복하나?
7FO는 이미 영어를 잘한다. 문화의 차이가 조금 있지만, 이는 도리어 좋은 영향을 준다.
마지막으로 2020년을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
작년 내가 런칭한 레이블 ‘메디벌 디티스 콤펜디움(Medieval Ditties Compendium)’에서 7인치 [Goblin Wizard Cauldron Spell]을 발매했다. 여기는 20~30초 가량의 짧은 곡을 모았다. 2020년에는 [Goblin Wizard Cauldron Spell]에 수록된 트랙 중 일부를 조금 더 확장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넓혀갈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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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Records 공식 웹사이트
에디터 │ 황선웅
통역 │ 박예하
사진 │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