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다가와, 선명한 흔적을 남기는 영화가 있다. “작은 빛”은 2018년에 이미 완성됐고, 개봉하는 데 3년이 걸렸다. 그러나 마스크를 쓰지 않고 대중교통을 탔다간 매서운 시선을 마주하게 되는 2020년의 초입에, “작은 빛”이 도착한 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작은 빛”은 빛과 카메라 그리고 시간이라는 영화의 기본 요소만으로 기억과 가족에 관한 내밀하고도 보편적인 정서를 만들어낸다. 최근 한국 영화에 “작은 빛”만큼 묵직한 영화가 등장한 적 있을까. 상처를 전시하고, 그 상처를 봉합할 지점은 찾지 못한 채 애매하게 사라져버린 영화들 사이에서 “작은 빛”이 만들어 낸 성취는 눈부시다. “작은 빛”의 감독 조민재와 배우 곽진무를 만나 한남동 골목을 걸었다.
“작은 빛”에서 진무가 누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즘 사는 게 어떤가.
곽진무: 올해 마흔이 됐다. 시력은 여전히 좋은 편이지만 근래 들어 노안이 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체력도 좀 떨어진 것 같고. 예전에는 내가 하는 일을 마냥 충실히 하다 보면 원하는 것들이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요즘엔 좀 더 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에 다가갈 수 있도록, 생산적인 노력을 많이 해보자고 생각하고 있다.
조민재: 건강을 좀 챙기려고 한다. 규칙적인 생활, 건강. 다시 작품을 하게 될 테고, 장기전이 될 것이니 요즘은 최대한 몸 안 상하고, 정신적으로 안 피폐해지게 살아보려고 한다.
부산 출신인 나는 서울에 온 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서울에 산다는 일은 손님의 입장인 것 같다. 자주 가는 친구집이 편해졌지만, 바닥에 엉덩이를 완전히 깔긴 어렵달까. 조민재는 제주도, 곽진무는 송탄 출신이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느낀 인상이라면.
조민재: 23살에 처음 서울로 왔다. 김승옥 작가를 좋아해서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창신동, 창신동 중에서도 꼭대기에 살았다. 동대문이 내려다보였는데, 그 불빛을 쳐다보곤 했다. 서울에 오기 전엔 안산 같은 공장단지에서 생활했고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삶도 반복적이었고, 몸도 건강했다. 하지만 서울에 왔을 땐 직장을 다 그만뒀기 때문에 끊임없는 불안, 월세의 압박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건 주변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불안을 공유한다. 아직도 그런 시기인 것 같다. ‘내가 왜 서울에 있지?’, ‘예전처럼 지방에 가서 안정적으로 사는 게 맞지 않을까?’. 지금도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곽진무: 대학 졸업 후, 군대를 전역하고 서울에 왔다. 옥수동 옥탑방에서 친구와 자취했다. 20대에는 왜 그런 낭만이 있지 않나. 허름한 옥탑방에서 꿈을 품고, 뭐라도 되겠지, 라며 라면 먹는 그런. 연극을 하던 시절이었고, 희망이 있었다. 현실적인 희망은 아니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먹고사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살아가는 태도를 더 많이 고민했다.
지금은 어떤 기분인가?
조민재: 얼마 전에 서울에서 단편 작업을 하나 했다. 프랑스, 베트남, 네팔 등 다양한 국가에 사는 이들이 뒤섞이는 작품이다. 그들이 서울의 풍경과 잘 어울렸다. 이주민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고 느꼈다. 앞으로 서울은 더욱 그렇게 바뀔 거라 생각한다.
곽진무: 요즘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창경궁과 덕수궁을 다녀왔다. 좋더라. 과거의 발자취가 서울에는 확실히 많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맛을 요즘 많이 즐기고 있다.
서울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
조민재: 지금 사는 동네는 사직동이다. 한 편엔 안젤리나 졸리 아들이 사는 오피스텔이 있고, 한 편엔 무너져가는 빈집이 있다. 사람은 또 별로 없다. 그러다 조금만 걸어가면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집에서 광화문까지 쭉 걸으면 희미한 영감을 받을 때가 있다. 서울의 풍경을 다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곽진무: 축구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어릴 때 꿈도 축구선수였다. 동네 축구회에서 10년을 찼다. 홈구장이 삼선중학교인데, 아침마다 가는 곳이다. 나한텐 아주 소중하다.
서울에서 혼자 살다 보면 자연스레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많아지는 데다가 특히 집에서 가족과 함께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작은 빛”에는 인물들이 식사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온기로 가득 차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식사 장면을 특별히 공들여 찍은 이유가 궁금했다.
조민재: 영화를 제작할 당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았다. 가족과 함께 채울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가족이 정서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밥 먹는 일밖에 없더라. 깊은 얘기를 할 것도 아니고, 같이 축구를 할 것도 아니니. ‘밥 한번 먹자’라는 말처럼, 시간을 채워 넣을 수 있는 하나의 행위, 그 정도로 표현하고 싶었다. 멀리 떨어진 가족이 만나서 시간을 채워 넣는 행위.
곽진무: 영화를 제작할 때는 저마다의 욕망이 있을 텐데 조민재 감독의 욕망이 무엇인지 느끼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밥 먹는 장면만큼은 감독의 욕망이 정확하게 전해졌다. 가족끼리 밥을 먹을 땐 조금 무기력하기도 하고 서로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 따라서 적당히 무례하고, 처진 모습을 보여줘도 된다는 것이 안도감을 준다. 가족에게만 그럴 수 있다.
불쑥 궁금하다. 먹는다는 행위는 두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가.
곽진무: 잘 모르겠지만 가족들과 먹는 건 정성을 나누는 느낌이다. 밖에서 사 먹는 일과는 전혀 다른 것 같다.
조민재: 먹으면 살찔 텐데?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요즘은 사람들과 같이 먹는 시간을 늘리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요리도 좀 하고. “작은 빛”을 찍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찍고 나니 요리해서 같이 먹는 게 되게 좋더라. 우리가 반복하던 일이라 감흥이 떨어졌지만, 생명에게 밥을 준다는 건 참 오묘하고 좋은 일 같다.
과거에 외식은 가족에게 굉장히 특별한 시간이었지만 이젠 ‘집밥’만한 특식도 없다. 식당이란 공간의 정의도 더는 음식 파는 곳으로만 끝나진 않다. 좋은 식당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특별히 좋아하는 식당도 있나?
조민재: 집 앞에 있는 백반집?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 좋다. 그냥 별생각 없이, ‘그냥 거기 가서 먹지 뭐’라고 생각하는 곳. 메뉴도 항상 비슷하다. 고등어조림 같은.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집 앞에 있고, 사장님과 유대도 생겼고, 여러모로 부담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공간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간을 덜 들여도 되니 밥도 편하게 먹게 된다.
곽진무: 한성대 앞에 8년 넘게 살았다. 동네엔 아는 형, 동생 등 지인이 많다. 형님이 사주시는 곳은 음식이 항상 맛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비싼 식당을 선호한다. 가령 백반이 9,000원인 곳은 그보다 더 싼 식당의 백반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깔끔하고, 품질도 좋다. 결국 좋은 음식을 내기 위해 애쓰는 식당이 좋다.
“작은 빛”에서 식사만큼 중요한 행위는 배웅이다. 지하철역이나 문 앞에서 이루어지는 배웅도 등장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어머니가 진무를 배웅하는 장면 같다. 나도 10년 넘게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고속버스 터미널에 묘한 감정을 품고 있다. 두 사람에게 고속버스 터미널은 어떤 공간인지 궁금하다.
조민재: 나도 어렸을 때부터 독립했기에 어머니가 사는 곳을 다녀올 때면 항상 버스를 탔다. 떠나가고, 지나가는 감정이 터미널에 있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마음과도 닮았다. 카메라 안에서 인물은 갇히는 것이 아니라 관통하고, 지나가는 것이지 않나. 그 순간을 잘 마중하고, 배웅하는 것이 내 영화적 태도다. 그래서 인물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에 포커스를 맞춘다. 오프닝과 절정을 터미널에서 촬영했다. 모든 순간은 다 지나갈 건데, 어떻게 잡을 것인가 생각하다 보니 터미널을 떠올렸다. 과거 어머니가 배웅해주던 순간이 떠오르기도 했고.
곽진무: 큰 에너지가 느껴지는 곳이다. 꼭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터미널에 간다는 건 왠지 거사를 치르는 기분이 든다. 장시간 차를 타야 하니 컨디션 조절도 해야 하고, 속이 안 좋으면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음식도 덜 먹어야 한다. 큰 에너지를 동반하는 만큼 힘들기도 하고 특별하기도 하다. 독특한 공간인 건 맞는 거 같다.
감독과 배우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 서로 첫인상은 어땠나.
조민재: 영화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인터넷을 뒤지다가 직장인끼리 운영하는 영화 모임 인터넷 카페를 발견했다. 가입해서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보니 영화를 많이 아는 분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서 진무 형의 인상은 유일하게 영화 하는 사람. 모두 영화를 하겠다고 모여 있지만, 아무도 실제로는 영화를 안 하던 상태였다. 진무 형만 그래도 작업을 이어가고, 찍은 작품을 통해 영화제도 가본 사람이었다. 영화제는 당시 내게 연예인의 대단한 어떤 것이었다. 멋있다고 생각했다. 부럽기도 하고. 그렇다고 엄청 깊은 얘기를 하고 그런 건 아니다. 영화를 보는 시선이 서로 달랐다.
곽진무: 배우의 세계는 좀 과한 부분이 있는 거 같다. 보통 사적인 얘기를 좀 꺼리지 않나. 당시 나는 지금보다 더 나를 드러내고, 솔직한 얘기를 많이 꺼냈다. 그렇게 너무 사적인 얘기를 깊게 하면 주변이 불편해한다. 그땐 그런 걸 잘 몰랐다. 조민재 감독도 내가 불편하지 않았을까. 감독에 대한 인상은 뭐랄까. 뭔가 타올랐다. 열정이나 그런 게 아니라 증오 같은 거.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처음 얘기하는 건데 당시엔 ‘저 친구가 곧 터지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기운이 지금도 느껴지긴 하는데… 그래도 “작은 빛”이 잘 됐으니.
조민재: 무슨 얘긴지 안다. 그때는 내가 세상을 다 안다는 듯한 태도로 사람을 만나고 그랬다. 하고 싶은 건 있는데 돈은 벌어야 하다 보니 답답하고 계속 들끓었다. 집에 빚이 되게 많았다. 그러다 보니 가족도 다 짐 같고, 내가 이걸 책임질 필요가 없는데, 괜히 내가 책임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분노하곤 했다. 근데 또 기를 쓰고 하다 보니 금방 갚게 되더라. 그러면서 동시에 해소되는 게 있었다.
그 이후 함께한 세월이 흐르며, 작품까지 이어졌다. 서로가 바라보는 배우 곽진무, 감독 조민재는 어떤 작업자인가.
곽진무: 처음에는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앞서 말한 인상 때문에 신뢰하지 않았다.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같이 하게 됐지만, 작업에 들어가고 나서도 거리를 좀 뒀다. 그런데 영화 제작 과정을 밟으면서 이 친구의 태도를 보니 사람들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더라.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는 초인적인 에너지를 보여줬다. 모든 제작비를 본인이 대고, 잠도 안 자고 현장 편집하고, 미술도 직접 하고, 동시에 스태프를 배려하기까지 한다. 그의 책임감과 재능에서 자연스럽게 신뢰가 쌓였다.
조민재: 앞서 말한 것처럼 마음속에 있는 걸 전력투구하는 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진무 형에게 많이 의지했다. 이 영화는 그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게 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혼자 고민하고, 진행했다면 지쳤을 텐데 그가 끝까지 같이 해주니까 내가 방심할 수가 없었다. ‘고민을 더 해야지’, ‘적당히 안 해야지’라고 되뇌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맞았다.
기억은 “작은 빛”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다. 기억은 어떻게든 붙잡고 싶거나, 혹은 괴로워서 싹 밀어버리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기억하려는 걸까.
조민재: 자전적인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작가 자신의 회복에 기반한다고 생각한다. 관객을 위한 영화라기보다는, 작가 본인을 위한 영화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작품에 들어갔다. 기억을 끌어들인 건 그런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왜 기억해야 하지?’. 영화를 만든다는 행위 자체가 기억의 비석을 세우는 것이니, 영화를 통해 그 질문과 답을 하고 싶었다. 내가 느낀 건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다.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따라다닌다. 가족도 다 잊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내면에는 다들 지니고 있더라. 이렇게 시간이 고여 있는데, 이것을 단순히 ‘기억해야 해’, ‘마주해야 해’ 정도로 끝내면 안 된다고, 그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장 장면이 그래서 나왔다. 고여 있던 기억을 꺼내서 다른 곳으로 환원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전반적인 존재이유다.
곽진무: 기억은 과거고, 동시에 나를 규정짓는 것이다. 요즘 나에게 기억은 회복하려 하는 지점이 많다. 내가 뭘 잘못했고, 반성하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되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른 인터뷰에서 영상이란 말과 영화라는 말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고여있는 걸 환원하는 과정이란 말과 영상이 영화가 되는 순간을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조민재: 고민이 많은 부분 중 하나다. 영상으로 먼저 시작했고, 그것을 본 진무 형은 알겠지만 그중엔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많았다.
곽진무: 그렇진 않다. 잘한 것 같다.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로.
조민재: 원래 글을 썼다. 글은 생명력을 불어넣기가 정말 힘들다. 살아 있는 것을 활자로 표현한다는 것은 극한 작업이다. 근데 카메라를 드니까 자기 멋대로 살아 움직이더라. 그게 너무 즐거웠다. 주말마다 이유 없이 영상을 만들어내곤 했다. 근데 어느 순간 이것이 다 죽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살아 움직이게 하려면 도대체 무엇이 필요한 걸까, 하고 생각했다. 처음 생각한 건 이야기다. ‘이야기가 있으면 살아 움직이지 않을까?’라고 느낀 거다. 하지만 작가가 절대적인 위치에 서면, 작용으로 인물을 움직이게 되고 그럼 결국 갇힌다. 그래서 이것도 아니란 결론이 섰다. 결국 내가 내린 답은 카메라를 향한 태도다. 영상과 영화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태도. 내 생각에 영상은 바구니 같은 개념이다. 이 시대의 면, 이미지를 담아 넣는 바구니. 영화는 그 바구니에서 골라 건져 올려 재조립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런 고민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영화에도 미디어가 계속 등장한다. 답을 내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답이 내려지는 순간 고민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냥 답을 내린 당시의 태도로 판단하면 끝이기 때문에 작품을 더는 이어가지 못하겠지.
영상과 영화의 구분점이 태도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작은 빛”에서 감독의 카메라를 향한 태도 덕분인지 “작은 빛”은 끝내 따스하다. 다른 인터뷰에서 영화를 찍으며 가족이 다치지 않는 걸 많이 신경 썼다고 얘기한 것 역시 같은 까닭일 것이다.
조민재: 영화를 하다 보면 갑자기 욕망이 끓어오를 때가 있다. 간혹 어떤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번뜩이게 된다. 근데 ‘이런 게 꼭 영화에 들어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따라붙는다. “작은 빛”을 처음 준비할 때도 다큐로 찍어보란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내 가족사를 들은 사람들이 “대박이다!”, “이건 다큐다!”라고 했다. 다큐를 진행할 때 가장 어렵고, 경계할 건 어떤 경향성에 편승해 보이는 것을 왜곡하는 일이다. 하지만 “작은 빛”은 왜곡이 필요했다. 나는 이 영화가 내 가족사를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길 바랐다. 가족들이 봤을 때 힘이 됐으면 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위로하고 싶을 때, 멋진 얘기를 하는 것보다는 그냥 옆에 있어 주고, 얘기 들어주려는 사소한 노력이 더 힘이 되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촬영하고, 편집했다. 작업 과정에 가족 생각이 많이 났고, 그들이 약간의 불쾌함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영화가 나오고, 어머니가 영화를 보고 나서 ‘난 그게 되게 불쾌할 줄 알았어. 날 공격하는 건 줄 알았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너에게 이런 시간이 필요했고, 나도 이런 시간을 가져 볼 거야’라고 했다. 그런 말이 내겐 힘이 됐다. 이 영화의 포커스는 무조건 내 가족이 봤을 때 위안을 받아야 한다는 데 있었다.
배우로서는 어땠나. 워낙 내밀한 이야기다 보니 연기할 때 거리를 두어야할지, 쑥 들어가야 할 지,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곽진무: 영화는 감독의 이야기지만, 일정 부분 배경이 닮은 구석이 있어서 나 역시 우리 가족이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조심스러웠다. 또 “작은 빛”은 관조적인 영화이에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서가 중요한 영화고, 가족만이 낼 수 있는 호흡이 중요했다. 그 부분을 고민하는 시간이 꽤 길었고, 결과적으로 영화의 톤을 잘 지켜나갈 수 있었다. 영화 장면 중 아랫목에 손을 집어넣는 장면, 밥 먹을 때 조카 과자를 뺏어 먹는 장면, 그런 가족만의 내밀한 호흡. 그런 걸 많이 생각하려 했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잘 떠오르지도 않는 기억, 즉 방금 얘기한 가족만의 내밀한 호흡, 정서가 느껴지는 장면은 “작은 빛”의 큰 성취인 것 같은데. 그 장면을 영화에 담기 위해 각자의 기억을 더듬었던 방식 또는 당시의 감정이 궁금하다.
조민재: 이 영화의 과정을 그대로 따라 했다. 집에 가본다든지, 이 공간을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밥을 먹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인지, 그런 내 모습에 떨어져서 바라봤다. 세밀한 연기는 진무 형이 즉흥적으로 했다. 형이 영화 안에서 했던 미묘한 동작이 있는데 그건 내 영역은 아닌 거 같다.
곽진무: 준비는 나름대로 했지만 현장에서 감각을 최대한 개방했다. 일상적인 반응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 쓰기도 했다. ‘반응’을 많이 고민했는데, 결국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반응한달까. 친한 사람들과 얘기할 때 과도하게 반응하고 그러지 않으니까.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든지. 무례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뭔가 친밀한 관계의 소통에서 느껴지는 것들. 목욕탕 장면도 그렇다. 한쪽 팔 다 밀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한쪽 팔 올리는 그런 거.
“작은 빛”은 이제 곧 극장에서 막을 내린다. 둘은 또 함께 그리고 각자 작업을 이어갈 텐데, 동시에 영화 작업 외에도 생업을 지속해서 끌고 나가야 한다. 둘을 병행하는 고충보다는, 그 둘 사이의 관계가 궁금하다.
곽진무: 한때 연기자로 생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시기가 있다. 대출도 많았지만 연기를 하며 갚아나가자는 식이었다. 근데 이자를 못 갚으면서 나는 연기자로서 밥을 못 먹고 산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슬펐다. 그래서 생업을 다지기로 했다. 연기도 계속해야 하니 단기 일을 많이 했다. 출판사에서 책 나르고, 촬영이나 편집도 하고, 그중에서 몇 개월 단위로 할 수 있는 것은 꾸준히 했다. 나에게 연기와 생업은 상호보완적인 일이다. 연기의 선택지가 더 좋아졌다. 억지로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먹고 살기 위한 직업적인 연기도 좋지만, 그런 것들이 자존감을 낮추기도 한다. 건강한 연기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달까. 인물에 대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 연기잔데, 생업을 통해 사람의 정서를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걸 이용해 잘 표현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 이야기 틈에서 얻을 수 있는 정서가 있다는 것 정도.
조민재: 진무 형과 같은 생각이다. 요즘은 토목, 건설 쪽 기술을 배워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일용직 나가봐야 얼마 못 버니까. 요즘은 조금 달라지긴 했다. 영화 작업 또한 많은 전문 기술이 필요하지만 나는 영화의 스태프를 제대로 꾸릴 자신이 없다. 제대로 된 페이를 주고 일을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을 아끼려면 내가 해야겠다 싶어서 영화 현장에 자주 나간다. 동시녹음, 촬영, 조명, 믹싱 등 뭐든 다 한다. 건설 현장 나가는 게 생계에는 더 큰 도움이 되지만, 당장 다음 작품이 너무 찍고 싶으니까. 그러다 보니 나 혼자, 혹은 두세 명만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겠다는 고민을 많이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의 포커스는 계속 길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다지자는 쪽이다.
에디터ㅣ최직경
사진ㅣ유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