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소음이 아닌 서사를 만든다(We Make Narratives, Not Noise)’. 데님(Denim) 전문가이자 트렌드 컨설턴트인 사무엘 트로트맨(Samuel Trotman)이 자신의 @samutaro 인스타그램 계정 프로필에 적은 문구다. 그 어느 때보다 소비주의적 ‘하입(Hype)’ 문화가 만연한 이때, 사무엘은 그 흐름의 중심인 인스타그램에서 다양한 서브컬처 트렌드의 뿌리와 문화적 코드를 긴 캡션을 할애해 소개한다. 음악, 영화, 패션,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그의 방대한 지식과 이미지 자료는 그 양과 질에서 웬만한 잡지에 뒤지지 않을 정도.
하루, 아니 일 분이 멀다하고 수만 장의 이미지가 쏟아지는 인스타그램에서 꾸준히 서사를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게다가 트렌드란 본래 소음처럼 빠른 자극과 동시에 흩어지는 것이니, 그 흐름 속에서 유의미한 이야기를 건져내어 본들 들어줄 귀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무엘이 걸어온 행보와 쌓아온 노력을 보면 누구도 합격점을 주지 않을 수 없다. 5만 명이 넘는 팔로워들에게 서브컬처를 해설하는 남자, 인스타그램 계정 @samutaro의 사무엘 트로트맨을 만나보았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내 이름은 샘이고 스타일과 서브컬처를 다루는 인스타그램 계정 @samutaro의 운영자다.
어떤 계기로 처음 서브컬처와 데님에 빠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음악은 내 영감의 원천이었다. 레코드 숍과 플리마켓에서 좋아하는 것을 디깅(Digging)하고 온라인 포럼에서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들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지. 스타일과 서브컬처에 대한 내 호기심은 음악 이상의 무언가, 즉 문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다양한 요소를 바라보게끔 이끌었다. 라몬스(The Ramones)를 통해 뉴욕의 초기 펑크 신(Scene)을 공부하고 빈티지 리바이스 505(Levi’s 505) 데님을 입고 있는 로버타 베일리(Roberta Bayley)와 데이빗 고들리스(David Godlis)의 사진을 찾아보는 것, 그리고 ‘MTV 베이스(MTV Base)’에 등장하는 릴 웨인(Lil Wayne)과 주버나일(Juvenile)의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Marithe Francois Girbaud) 배기 진을 찾아 보는 식이지. 또한 더 소스(The Source) 같은 잡지의 광고와 스타일 섹션을 통해 래퍼들이 어떤 브랜드를 입는지 탐구하기도 했다.
패션의 여러 장르와 스타일 중 데님에 빠지게 된 이유가 있다면?
내 생각에 데님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성이다. 데님은 인류 역사의 여러 중요한 현장에 함께 했고 대부분의 서브컬처에 깃들어있다. 50년대의 바이커(Biker), 70년대의 히피(Hippies), 80년대의 파니나로(Paninaro)와 90년대의 레이브(Rave)까지 모든 서브컬처의 흐름엔 데님이 있었지. 데님은 오늘날까지 다양한 문화적 흐름에 발맞춰 진화와 재해석을 거듭하며 문화적으로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스타일 혹은 패션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단순한 취향을 넘어, 데님과 트렌드 컨설턴트라는 커리어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교에서 패션을 전공했는데, 미래 트렌드를 예측하고 다양한 문화의 라이프스타일과 정신을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콘셉트로 녹여내는 일이 나에게 어울린다는 것을 깨닫고 디자이너의 길이 아닌 컨설턴트의 길을 택했다. 트렌드 전문가의 역할은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에게 가장 빠른 인사이트를 제공함으로써 패션과 문화계의 다음 파도를 준비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 깊숙이 침투하여 현상의 사소한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트렌드 패턴의 변화를 읽는 것과 예술, 영화, 음악, 패션 등 다양한 요소를 연결해내는 능력이 이 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님 컨설턴트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내 주요 역할은 전 세계 데님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쇼핑 습관을 파고들어 스타일링, 실루엣, 재질, 워싱, 그리고 마감 전반을 아우르는 트렌드를 발견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데님을 단순히 청바지 한 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뒤에는 거대한 문화적 흐름과 추종자들이 존재하는 푸른빛 신세계가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samutaro 인스타그램 계정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어떻게 계정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초기 운영 형태가 지금과 달랐는지 궁금하다.
처음엔 단순히 내게 영감을 준 데님 관련 컨텐츠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곤 했다. 지금의 @samutaro 계정처럼 역사적인 부분을 파고들긴 했지만, 올드 웨스트(Old West)나 워크웨어(Workwear) 같은 데님 아카이브의 주요 장르보다 최근 데님 문화의 흐름과 영감 중 비교적 덜 주목받는 것들을 주로 포스팅했지. 계정의 초기 게시물을 보면 힙합 문화 속 데님의 역사와 스킨헤드(Skinhead), 그리고 7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 남부의 스케이터 데님 스타일에 대한 게시물을 찾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데님이라는 주제 하나로 서브컬처를 폭넓게 이야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데님으로 주제를 제한하지 않고 그래픽 티셔츠, 음악 등 내가 좋아하는 것 전반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다행히 데님 관련 컨텐츠를 보기 위해 팔로우했던 사람들도 다른 주제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유튜브 스트리트웨어 쇼 ‘PAQ’ 참여와 그레일드(Grailed) 주간 칼럼 기고(로렌스 슈로스만(Lawrence Schlossman)을 샤라웃 ─ Shout Out ─ 하고 싶다) 등의 기회가 이어지며 더욱더 많은 독자와 다양한 주제로 만나게 되었다. 결국 일의 형태는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컨텐츠의 스펙트럼이 꽤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근 몇 년 사이 @jjjjound와 @hidden.ny처럼 영감을 주는 이미지들을 아카이빙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무수히 생겨났다. 직접적인 예술 활동보다 무드 보드를 구성하거나 피처(Feature) 형태의 게시글을 작성하며 명성을 얻고 있는데, 이런 계정들의 출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완전히, 100% 반기고 지지한다. 인스타그램은 2000년대 텀블러(Tumblr)와 슈퍼퓨처(Superfuture) 포럼이 그랬듯, 취향을 기반으로 한 열정적 문화 소비자들의 마이크로 커뮤니티를 위한 완벽한 플랫폼이다. 내 친구이자 하이스노바이어티(Highsnobiety)의 에디토리얼 디렉터인 장 드레옹(Jian DeLeon)이 최근 @tho_ughts 계정에 우리 세대가 열정적 문화 소비자의 혁명 혹은 ‘애호가(Hobbyist)들의 귀환’을 앞두고 있다고 적기도 했는데, 나 또한 @hidden.ny, @organiclab.zip 그리고 @collectorscommittee 같은 인스타그램 계정의 출현이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한 엄청난 사랑과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의 시대를 예고하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각 계정의 구독자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전 세계의 사람이 연결되는 오늘날의 현상은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다.
특히, @hidden.ny는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이미지 큐레이션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린 최초의 계정 중 하나이고, 그 영향력은 인스타그램 커뮤니티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 또한 계정의 전반적인 바이브부터 피드의 시각적 완성도, 그리고 컨텐츠 제공 방식까지 완성도에 대한 많은 영감과 자극을 받았다. @hidden.ny 계정의 성장세와 영향력이 사람들의 요구를 정확히 읽어낸 명민함과 훌륭한 취향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인스타그램이 전통적인 저널리즘 형태를 혁신하고 있다고 믿는가?
물론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갈수록 세분화되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니쉬(Niche) 콘텐츠와 미디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아웃도어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관련 컨텐츠를 생산하는 @Organiclab.zip 같은 계정을 팔로우할 테고, 같은 계정을 팔로우하는 애호가 커뮤니티와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되겠지. 개인적으로 이런 소규모 소셜 미디어 채널의 미세한 언어적 차이와 뉘앙스를 캐치하지 못한 채 둔감한 스폰서 컨텐츠만 쏟아내는 대형 미디어보다 더 솔직하고 객관적인 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인스타그램은 이미 소비자들의 삶에 너무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에디토리얼 컨텐츠를 인스타그램에서 접하는 것을 더 이상 생소하게 느끼지 않는다.
물론, 인스타그램 캡션에는 2,200자 글자 수 제한이 있는 만큼 대체로 가볍고 쉽게 읽히는 컨텐츠가 주를 이루긴 한다. 그래서 나 또한 인스타그램에 글을 쓸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전달 방법을 충분히 고민한 뒤 짧고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하지. 다행히 지금까지 받은 독자 피드백에 따르면 사람들은 포스팅의 부담 없는 길이와 빠른 소통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은 특히 최신 문화 현상과 트렌드의 뿌리를 추적해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에게 해설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런 배경지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도 내가 제작하는 컨텐츠 주제에 관련된 모든 것을 아는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이 매일 인스타그램에서 노출되는 패션 및 문화 관련 이미지들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내가 굳이 긴 캡션을 통해 이미지들을 설명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문화적 요소들이 맥락과 메시지를 상실한 채 너무 가볍게 공유되고 폐기되기 때문이다. 내 목표는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물론 포스팅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내가 몰랐던 것을 댓글로 짚어주는 독자들을 통해 나 또한 새로운 지식을 얻기 때문에 결국 지식 공유는 양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호작용이 내가 이 커뮤니티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흥미로운 견해다. 당신이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지켜보고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몇 개 더 소개해줄 수 있을까?
이미 언급한 계정들 이외에도 훌륭한 계정이 정말 많다. 내가 구독하고 자주 참고하는 계정 10개를 소개한다.
@cold_archive
@myclothingarchive
@hang
@welcome.jpeg
@unifiedgoods
@findbk
@justifiedarrogancenyc
@strappedarchives
@laughingmack
@ruba
매일 양질의 콘텐츠를 발행하는 당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디깅 방법을 궁금해한다. 디깅에서 포스팅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간략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
과정 자체는 결국 내가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어울리는 이미지들을 쉽게 구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일단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와 태그, 그리고 팔로잉하는 계정들을 통해 다양한 이미지를 확보한다. 일반적인 이미지를 찾을 땐 구글링이나 텀블러 검색으로 충분하지만, 특정한 이미지를 찾아야 할 때는 전문적인 지식과 아카이브가 있는 인스타그램 인맥을 통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추가적으로 오래된 잡지를 모아 인스타그램에 공유된 적 없는 이미지들을 스캔하여 확보하기도 하고. 보통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누어 하루에 총 3번 포스팅한다. 현재 런던에서 지내고 있으니 나라마다 게시되는 시점은 다르겠지만, 규칙적으로 하루에 3번 업로드하는 사이클 정도는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포스팅의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는가? 특별한 기준이 있을까?
솔직히 그날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편이다. 보통 단번에 영감을 주는 소재, 예를 들어 90년대 빈티지 프로작(Prozac) 티셔츠 같은 것을 발견하면 관련 이미지를 찾아서 프로작과 항우울제가 어떻게 문화적 현상이 되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써내는 식이다. 이처럼 매일 일상에서 소재를 찾다 보니 대부분의 경우 꽤 시의성 있는 소재를 선정하게 된다. 각각 완전히 다른 주제 같지만, 포스팅 전체를 모아놓고 보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문화 현상 전반을 다루고 있는 거지. 덕분에 내 팔로워들은 최근 이슈가 된 현상에 대해 모르고 있던, 하지만 꼭 알아야만 하는 요소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과정을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플랫폼으로서 인스타그램이 지닌 뚜렷한 장점들이 있지만, 단점 또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혹시 인스타그램 외에 다른 플랫폼으로 채널을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지?
텍스트 분량이 많은 내 컨텐츠 특성을 고려해 가독성이 더 좋은 플랫폼으로 옮겨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곤 한다. 사실 하루에 3회 이상 포스팅을 하다 보니 게시물 몇 개는 그냥 묻혀버리기 일쑤고, 독자 입장에서도 특정 게시물을 찾기 위해 피드를 한참 뒤져야 하는 수고가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예스’다. 전용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이 있으면 내 컨텐츠를 더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samutaro 계정을 운영하며 본 팔로워들의 반응과 피드백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 DM을 보낸 @freejhongotti를 샤라웃하고 싶다.
최근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문화적 트렌드가 있는지 궁금하다.
최근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한 DIY 창작자들의 커뮤니티를 인상 깊게 지켜보고 있다. 데님 같은 직물과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을 상상도 못 한 방식으로 실험해서 말도 안 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재능 있는 친구들이 정말 많다. 특히 환경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업사이클링(Upcycling)을 실천하는 젊은 창작자들은 지켜보는 것 자체로 큰 기쁨이다. @paleusa, @jaffasaba 그리고 @dasyori 등의 계정을 최근에 @samutaro에 소개하기도 했다.
데님과 패션 트렌드에 해박하다보니, 당신이 당연히 언젠가 머천다이즈를 제작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실제로 제작 계획이 있을까?
이미 너무 많은 상품을 과다생산하고 있는 지금의 패션계에 굳이 브랜드를 하나 더 추가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관심사는 언제나 컨텐츠에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내게 머천다이즈 계획을 실제로 실행했다고 가정하면, 빈티지 업사이클링 혹은 재생 가능한 친환경 기술을 활용하여 좀 더 책임감 있는 메시지를 담은 제품을 만들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올해 당신의 계획이 궁금하다.
코로나19(COVID-19) 사태가 진정되어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본래 계획대로 세계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영감을 주는 컨텐츠를 생산할 것이다. 그리고 최근 유튜브 채널을 시작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는데, 현재 준비 과정에 있으며 조만간 스트리트웨어 신의 이름 있는 미디어와 협업한 비디오 컨텐츠를 동시 공개할 예정이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
에디터│김용식
사진 출처│ Samuel Trot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