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SE

일본, 홍콩, 중국 등 세계 패션계를 주무르는 이웃 나라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유독 소외되어 왔다. 다양한 사회적, 제도적 문제가 거론되었고, 소위 K-패션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글쎄. 해외 관광객의 발길이 닿는 명동, 동대문 등지 상권만 비대해졌을 뿐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을만한 패션 브랜드를 양성하는 데 아직도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맞이한 2020년. 1990년대 말 등장한 ‘한류’는 어느새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인 감독의 수상 소감을 듣는 등 비현실적인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전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하는 지금, 우리 패션계는 과연 어디쯤 와있을까?

재미교포 2세 출신의 형제 디자이너 테런스 김(김인태)과 케빈 김(김인규)가 운영하는 브랜드 이세(IISE)는 한국의 문화적 요소를 현대적인 색채로 풀어낸다. 그동안 뉴욕 패션위크에서 네 번의 컬렉션을 선보인 이들은 보자기, 천연 염색 등 전통적인 영감뿐 아니라 한국의 대기업 문화, 시위 문화 등 있는 그대로의 대한민국을 전해왔다. 세계 패션계의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그들과 함께 한국적인 패션의 실체와 그 가능성에 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세는 어떤 브랜드인가? 더불어 각자 맡은 파트에 관한 소개도 부탁한다.

테런스 김(김인태, 이하 T) 브랜드의 이름 ‘이세’는 교포 2세라는 의미가 있다. 실제로 재미교포 2세인 우리는 과거 세대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고 있고, 이를 우리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이세’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나는 브랜드 마케팅과 운영 전반에 관한 업무를 맡고 있고 케빈(김인규)은 브랜드의 메인 디자이너이자 제품 개발을 담당한다.

동업자 이전 형제의 관계로 함께 일하고 있는데, 그에 따른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케빈 김(김인규, 이하 K) 형제로 일하는 건 물론 장단이 있다. 굳이 따지자면 장점이 더 큰 것 같다. 애초에 이세는 우리 두 사람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다. 테런스와 나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른이 된 후로는 한국에서 줄곧 함께 생활해 왔다. 따라서 브랜드 콘셉트에 영향을 준 다양한 경험과 브랜드 운영에 관한 목표를 공유한다. 형제인 덕분에 브랜드 초창기부터 동일한 비전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었다. 형제로서 두터운 신뢰를 가지고 일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장점이다. 아무리 크게 싸워도 형제와 연을 끊을 일은 없지 않은가. 하하. 아무래도 가족이라 어떤 상황에도 함께 일할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장점이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형제이자 동업자로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주고받기 때문에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두고 본다면 분명 장점이 더 많은 관계지.

브랜드 이름대로 교포 2세가 한국적인 브랜드를 전개한다는 점이 놀랍다. 미국에서 나고 자라며, 한국을 어떤 방식으로 접했는지.

K 미국에 살 때는 한국 문화를 접할 일이 거의 없었다. 한인 타운에서 삼겹살이나 순두부찌개 같은 한국 음식을 몇 번 먹어 본 게 전부였다. 2012년에 한국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한국 문화에 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한국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된 셈이었으니까.

T 우리 가족은 1970년대에 미국 하와이에 이민 간 이후 쭉 미국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굉장히 현지화된 편이었다. 따라서 한국 문화는 그만큼 더 충격적이었지. 말 그대로 모든 게 새로웠다. 우리로서는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하는 경험이어서 한국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항상 소수자로 살아와서 그런지 한국에서 접한 문화는 우리에게 큰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게 된 배경도 궁금한데.

T 굉장히 우연한 계기로 브랜드를 시작했다. 사실 케빈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나는 영문학을 전공했다. 이전까지 어떤 정석적인 코스로 패션을 공부한 경험은 없었다. 다만, 스니커 문화를 접하면서 패션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스니커에 대한 관심이 스트리트웨어로 이어졌고, 자연스레 패션과 관련된 다양한 웹사이트와 커뮤니티를 알게 됐지.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모두 인터넷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우리만의 브랜드를 런칭한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고, 한국에서 살게 될 줄도 몰랐다.

K 우리가 브랜드 런칭을 결심한 건 한국을 처음 방문하게 된 2012년 이후의 일이다. 그렇다고 패션 사업을 시작할 생각으로 한국을 방문하지는 않았다. 당시 우리는 중국에서 살고 있었고, 단지 가볍게 놀러 간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왔다. 하지만 한국을 여행하면서 아이디어를 하나둘씩 얻게 되었다. 그때가 아마 22~23살 무렵이다.

미국에 있을 때는 어떤 패션에 심취했나.

K 미국을 떠나기 직전, 그러니까 우리가 아직 대학생이었을 때는 스트리트웨어 트렌드가 막 피어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사실 그때는 스트리트웨어라는 단어도 없었고, 다들 어반웨어(Urbanwear)라고 불렀던 것 같다. 션 존(Sean John)이나 에코(Ecko Unltd),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 그리고 나이키(Nike)가 있었지. 아, 더 헌드레드(The Hundreds), 텐딥(10 DEEP), 미쉬카(Mishka), 슈프림(Su￾preme), 스투시(Stussy) 같은 브랜드도 있었다. 우리가 미국을 떠났을 때가 그런 스트리트웨어 브랜드가 막 인기를 얻기 시작했을 때였다. 우리도 물론 그런 스타일을 좋아했다.

교포 형제가 한국을 기반으로 패션 브랜드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

K 모든 것이 어려웠다. 우선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한국어를 아예 할 줄 몰랐으니까. 아는 사람도 없고, 패션 업계에 대한 이해나 연줄도 없었으며, 심지어 문화까지 너무 달랐다. 그냥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언어와 문화로 패션 회사를 시작한 거지.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지만 배우는 것이 즐거워 버틸 수 있었다.

이세는 한국 문화를 반영한 브랜드지만, 오히려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더욱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어떤 점에서 비교적 한국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K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로는, 우리가 한국인과 소통하는 일에 서툴렀기 때문이다. 서양 고객을 상대하는 방법밖에 몰랐기 때문에 국내 고객과의 소통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T 한국에 패션계 인맥이 없었던 것도 이유겠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가 아는 패션 관계자는 대부분에 해외에 있어서 주로 해외 매체와 인터뷰 및 마케팅을 진행했다.

K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한국인은 한국 문화가 익숙하니 자국 문화를 담은 콘텐츠에 굉장히 익숙하고, 새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서양 고객에게는 굉장히 색다른 느낌이지. 나는 이 두 가지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이미 다양한 일본과 중국 디자이너가 서양 패션 시장에 진출해서 큰 성공을 이루고 있다. 한국인 디자이너로서, 한국 패션 디자인이 여타 아시아 브랜드의 디자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K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서양 패션 시장에 열려 있으면서도, 자국 문화를 담은 브랜드는 오히려 더 많은 것 같다. 반대로 한국 사람은 서양의 브랜드와 트렌드를 좀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취향이 조금 다른 거지. 하지만, 이런 흐름도 최근에는 점점 변하고 있다. 요즘에는 한국 문화를 녹여낸 결과물이 굉장히 많이 눈에 띄거든. 그러니까 이런 차이점도 결국에는 취향과 시기의 문제인 거다. 한국 패션은 그동안 서양 문화에 더 큰 영향을 받아왔지만, 점점 변하고 있다.

실제, 의류 곳곳 고전적인 형태에서부터 근현대적인 한국의 요소가 많이 드러난다. 보통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하다.

K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얻은 영감이 많았지. 한국 전통 원단, 제작 기법, 천연 염색, 뭐 그런 것을 주로 찾아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 생활한 지 7~8년 정도 지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은 일상생활이다. 한 예로, 이전 시즌에서 한국의 시위 문화를 주제로 컬렉션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 영감은 시청역을 지나가면서 직접 본 것을 토대로 구성했다.

이세라는 브랜드에 한국이 아닌, 또 다른 영감을 주는 요소가 있다면.

K 우리의 영감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융합체다. 이세의 콘셉트가 한국과 서구 문화를 섞는 데서 비롯했기에 우리는 모든 곳으로부터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그중에서도 한 가지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한다.

T 이세는 우리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브랜드다. 그러므로 한국의 전통문화뿐 아니라 우리가 미국에서 성장하면서 얻은 영감도 담고 있지. 우리는 두 문화를 적절히 섞어 우리의 디자인, 제품, 미디어 콘텐츠로 표현한다.

이세의 2014년 컬렉션에서는 의류보다는 러기지(Luggage)에 치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세 초창기의 계획에 관해 들려준다면?

K 우리가 브랜드 초창기 러기지에 집중했던 건 패션 디자인에 관한 기술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핏, 사이즈, 모든 것이 너무 어렵기만 했다. 가방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지 않나. 사이즈도 하나밖에 없고, 성별이랄 것도 딱히 없다. 따라서 가방이 우리에게는 가장 적합한 시작점이었지. 의상 디자인은 이후에 천천히 공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T 이세라는 브랜드의 시작점도 스님이 매고 다니는 가방을 보고 처음 떠올린 아이디어에서부터다. 하루는 인사동을 돌아다니는데, 스님이 맨 천 가방을 우연히 봤다. 난생처음 본 그 가방이 너무 멋있어서 스님을 따라갔고, 결국 불교용품점에서 그 가방을 하나 샀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 문화를 기반으로 한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런 느낌이지만, 좀 더 모던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가방이 있으면 바로 살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게 아직 미국에 없으니 우리가 직접 만들자고 생각했다.

스니커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했는데, 스니커 브랜드를 전개하고 싶지는 않았나.

K 이세를 생각하기 전, 그러니까 우리가 아직 중국에 살았을 때 스니커 브랜드를 런칭하려고 도모한 적이 있다. 사실 그게 우리가 계획한 첫 브랜드였다. 그런데 뭐, 돈도 없었고, 경험, 지식, 교육 무엇 하나 준비된 것이 없었으니까. 신발 공장 몇 군데에 연락을 돌리기도 했는데, 그때가 고작 22살밖에 안 됐을 때다. 우리가 뭘 알았겠나.

T 그리고 스니커는 최소 주문 수량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그런 점에서도 가방이 훨씬 더 편했지. 여러 방면을 따져봤을 때 가방이 우리에게는 가장 간단한 시작 방법이었다.

삼성 패션 디자인 펀드(SFDF) 1등 수상으로 서울 패션위크에 서게 되었는데,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T 인스타그램을 통해 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at)이 이전 대회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삼성 패션 디자인 펀드를 검색했다. 알아보니 1등으로 선정되면 상금뿐만 아니라 런웨이 쇼 기회까지 제공해준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지원했고, 결국 우승했다.

K 삼성 패션 디자인 펀드를 통해 서울 패션위크까지 데뷔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더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 이세로 진행한 첫 패션쇼였거든. 당시 우리는 해외 시장에 좀 더 집중하던 상황이라 한국에 우리를 알릴 좋은 계기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세는 한국 브랜드니까, 한국에서 좀 더 다양한 활동을 해야겠다고 느끼기도 했고. 새로운 걸 시도한 좋은 기회였다.

교포로서 느끼는 한국 문화의 독자적인 측면 혹은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K 말 그대로 모든 것. 앞서 얘기했듯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예를 들자면, 다른 사람이 평범하게 생각하는 한옥도 우리에게는 완전 멋지게 보였다. 실제로 오래된 한옥에서나 사용할 법한 가구를 현재 우리 쇼룸에서 사용하기도 하고. 지금이야 7~8년이 지나면서 좀 익숙해졌지만, 당시에는 한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몰랐으니까.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힘들 때가 있다.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가끔 한국 음식을 학교에 가져가면 외국 친구들이 냄새난다고 싫어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어린 마음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굉장히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문화를 실제로 접한 뒤 이제는 내가 사는 나라의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게 됐지.

이세의 의류에는 언제나 천연 염색, 바이오 워싱, 독특한 절개와 같은 디테일이 함께한다. 제작 공정은 수월한 편인가.

K 한국 전통 제작 기법이나 샘플링 같은 경우 모든 과정을 한국에서 진행한다. 그래야만 모든 디테일을 제대로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주문 수량이 많아지면서 일부 제작 과정을 중국에서 진행하기도 하지만, 첫 샘플링은 모두 한국에서 진행한다.

브랜드를 처음 전개하는 패션 디자이너에게 한국 패션 마켓이 적합한 환경이라고 생각하는지?

K 나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한국이 패션 디자이너에게 아주 탁월한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동대문 원단 시장 덕분에 의류를 제작하는 일이 굉장히 편리하다. 중국에도 의류 공장이 많지만 거기선 공장이나 시장까지 가는 데만 4시간씩 걸리곤 하니까. 하지만 한국에는 모든 과정에 걸쳐 물리적인 거리가 굉장히 가깝다. 따라서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다.

T 한국의 제작 환경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수월한 편이다. 빠르고 합리적이다.

K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시기적인 이슈다. 현재 서울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가 됐고, 한류 콘텐츠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수출되고 있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서울 패션위크도 이전보다 훨씬 큰 관심을 받고 있지. 나는 시기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한국 디자이너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정말 좋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거 VISLA가 진행한 제프 스테이플(Jeff Staple)의 인터뷰에서 이세가 언급됐다.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인 스킬쉐어(Skillshare)에서 진행한 콘테스트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었는데, 이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줄 수 있나?

T 스킬쉐어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교육 플랫폼이자 콘테스트다. 우리는 하입비스트(Hypebeast)에 올라온 짧은 기사를 통해 그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지. 프로그램을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했다.

K 무엇보다 제프 스테이플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지 않나! 우리는 제프 스테이플의 어마어마한 팬이다. 언제나 그를 존경해왔고, 그가 참여한 인터뷰는 죄다 읽었다. 제프 스테이플도 우리처럼 뉴저지(New Jersey) 출신이고, 아시아인인 데다가, 지금도 스트리트웨어 신(Scene)에서 활동하지 않나. 우리와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 그는 항상 우리의 영웅이었다. 그러니 제프 스테이플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반드시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T 다행히 우리는 TOP 10에 들 수 있었고, 뉴욕에 초청되어 제프 스테이플을 만날 수 있었다. 완전 대박이었지. 비록 대회에서 우승하진 못했지만,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제프와 함께 그의 스튜디오와 사무실을 구경했다.

K 제프와는 요즘도 파리나 뉴욕을 방문할 때 한 번씩 만나는 사이다. 아직도 종종 연락하고 지내지. 저번에는 파리에 있는 우리 쇼룸에서 한 번 만났다. 만날 때마다 참 반가운 사람이다.

제프 스테이플의 조언과 코칭이 실제 브랜드 운영에 큰 도움이 되고 있나?

K 당연하지. 프로그램 당시 제프에게 하루 동안 무엇이든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브랜드 초창기 때부터 가지고 있던 모든 질문을 퍼부었다. 사실 스킬쉐어라는 프로그램이 창의적인 부분보다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데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우리에게는 더욱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제프는 우리 브랜드를 몇몇 스토어에 소개해주었고, 이는 주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 브랜드가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

이세의 초창기 컬렉션은 한국 전통을 강조하거나, 혹은 가죽으로 제작한 의류가 주를 이뤘다. 이후 기능성 소재와 테크웨어적인 분위기를 도모하고 있는 것 같은데.

K 초창기 한국 문화의 시각적인 부분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내 생각에는 그런 부분이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가장 첫 번째로 보게 되는 겉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미 12번의 컬렉션을 거쳤으니 매 시즌 더 파고들어 양파의 깊은 층으로 가야 한다. 한국 문화적인 측면에서 얘기한다면, 이전에는 눈에 보이는 부분에 집중했으나 이제는 추상적인 내용을 탐구한다. 스타일적인 측면으로는 테크웨어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상 시장의 트렌드를 무시할 수 없지 않나. 테크웨어가 점점 더 큰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기도 하지만, 우선은 나 스스로가 테크웨어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T 테크웨어이긴 하지만,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은 테크웨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우리만의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문화적인 요소를 이세의 방식으로 더하고 있으니까.

K 브랜드에 독창성을 불어넣는 것이 우리의 직업이지만, 이것 역시 결국에는 하나의 사업이라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트렌드를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고어텍스(GORE-TEX)와의 파트너십은 이세가 먼저 제안한 것인가?

K 고어텍스 측에서 먼저 제안했다. 아마 파트너십을 체결할만한 한국 브랜드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디스이즈네버댓과 함께 일하기도 했으니까. 우리야 먼저 제안해줘서 굉장히 기뻤지. 그들과는 이미 세 번의 시즌을 함께 했고, 최근에 계약이 연장되어 앞으로 세 시즌을 더 함께하게 되었다. 고어텍스는 훌륭한 파트너고, 거의 모든 상품 카테고리를 제작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다.

파트너십으로 오히려 다양한 시도가 제한되고 있지는 않은지?

K 전혀. 완벽한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 그야말로 최고의 파트너지. 하하.

현재 이세는 전 세계 약 40개의 편집숍에서 유통하고 있다. 국내 브랜드로서는 빠른 속도로 해외 패션 마켓에 진출했는데, 해외 진출을 위한 특별한 전략이 있었나.

K 특별한 전략보다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한국적인 영감을 전 세계 고객에게 선보이기 위해 런칭한 브랜드였으니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였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해외 쇼룸과 박람회에 참석해 우리 브랜드를 알리려고 했다.

T 항상 브랜드 콘셉트에 집중하려고 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세의 한국적인 요소를 선보였을 때 해외 고객이 가장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브랜드를 다른 브랜드와 다르고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실제 해외에서 반응이 좋은 편인지.

K 반응은 언제나 긍정적이다. 서울을 향한 세계적인 관심이 워낙 크기도 하고. 서울에 굉장히 큰 잠재력이 있다는 소식은 모두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데, 다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있거든. 해외 바이어와 매체는 언제나 한국인 디자이너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T 단순히 재미교포만이 이세의 고객이 아니다. 백인, 흑인, 아시아인, 매우 다양한 인종의 고객이 있다. 뉴욕과 LA가 우리의 가장 큰 시장이긴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우리가 그 지역에 좀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국적의 고객이 한국적인 영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서 기쁘다.

2019년 컬렉션에서는 지금 한국의 시위 문화를 녹여낸 의류를 제작했다. 한국의 정치, 사회문제에도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나.

K 물론이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 시위 문화를 다룬 것은 어떠한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정치적인 상황을 판단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시위 문화를 아이디어로 활용했을 뿐이다. 시위라는 건 결국에는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나.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얻기 위해 함께 싸우는 것. 그런 긍정적인 변화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T 그때가 한창 세계 각지에서 시위가 일어나던 시기이기도 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시위를 접할 수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영감이 되었지.

그렇다면, 지금 가장 관심이 가는 한국의 사회문제는 무엇인가.

K 현재는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아직 새로운 콘셉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소재를 찾고 있는 단계다. 매번 어려움을 겪지.

T 최근에는 특정 사회문제보다 우리만의 차별점을 찾는 데 좀 더 집중하고 있다. 우리 브랜드의 DNA를 찾는 단계다. 처음 몇 년간 이것저것 다양하게 배웠다면, 이제는 향후 시즌 동안 이세만의 스타일을 발견하고자 한다.

디자이너로서 가촉적인 형태가 아닌, 개념적인 내용을 소재로 컬렉션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장점이 있다면?

K 한국적인 디자인과 문화를 처음 봤을 때, 우리는 천연 염색이나 원단처럼 전통적인 디자인에 좀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런 가촉적인 요소로부터 많은 디자인적 영감을 얻었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새로웠기에 얻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시즌이 거듭될수록 우리는 새로운 영감의 원천과 디테일을 발견하고자 노력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눈에 띄는 요소에서 영감을 얻는 편이 작업 자체는 훨씬 간단하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우리의 콘셉트를 보다 직관적이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각적인 부분에서 얻을 수 있는 영감은 한정적이다. 반대로 추상적인 부분에 집중하면 디테일을 얻긴 힘들지만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지. 결국 장단점이 있다.

T 하루는 앤티크 가구상에 갔는데, 그곳 사장님이 균형, 대칭, 비율 등 전통 한국 가구 디자인 개념을 알려줬다. 바로 그 개념에서 케빈이 영감을 얻어 우리의 최신 컬렉션을 디자인했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추상적인 개념을 활용했지.

K 따라서 이번 시즌이 모든 면에서 좀 더 힘들었다. 패션쇼에서 활용할만한 비디오 비주얼을 만드는 일도 어려웠다. 우리의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이 복잡했다.

브랜드 간의 협업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최근, 이세는 2016년 에이카 화이트(Aeca White), 언더아머(UNDER ARMOUR), 그리고 암스(Armes)와의 협업 외 단 한 번도 협업을 진행한 적이 없다. 협업에 관한 특별한 원칙이 있는 건가.

K 최근까지 우리는 협업보다 우리의 디자인, 정체성, 스타일에 좀 더 집중하고자 했던 것 같다. 협업에 이세만의 스타일을 더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고어텍스와 지난 세 시즌 동안 협업을 진행하면서 전체적인 노하우가 생겼다. 그래서 다음 시즌에는 무려 6개의 협업 제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브랜드가 점점 커지면서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있다. 그동안 협업을 진행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저 시기적인 탓이었다.

새롭게 협업하고 싶은 브랜드가 있나.

K 신발 브랜드가 우리의 가장 큰 목표다. 세계적인 스니커즈 브랜드. 언제나 신발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큰 스포츠웨어 브랜드와 협업 스니커즈를 제작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그 순간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중이고, 조만간 기회가 찾아오길 기대하고 있다.

최근 뉴욕 패션위크에서 FW 2020 쇼를 진행했다. 뉴욕 패션위크에 참여한 감회라면.

T 이번 컬렉션까지 총 4번의 뉴욕 패션위크에 참여했다. 뉴욕 패션위크에 참여하는 일이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가 원래 그쪽 출신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떠나 한국에서 브랜드를 시작했지만, 한국적인 영감으로 만들어진 브랜드를 다시 뉴욕에 소개하고 있지 않나. 뉴욕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첫 시즌은 우리 모두에게 아주 뿌듯한 순간이었다. 우리의 친구와 가족이 모두 참석했다. 또 이세는 당시 뉴욕 패션위크에 참여한 유일한 한국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였다. 한국 스트리트 패션을 해외에 선보일 수 있어서 더욱 기뻤다.

K 브랜드적인 관점에서도 뉴욕 패션위크는 굉장한 이벤트다. 우리 브랜드의 위치와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계기가 되었지. 패션쇼 이전까지만 해도 이세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브랜드였고 ‘스트리트웨어적인’ 요소가 다분했다. 하지만 런웨이에 여러 차례 서게 되면서 우리는 브랜드의 대화 방식을 아예 바꿔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 우리가 좀 더 원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뉴욕 패션위크에서 쇼를 하게 된 배경 역시 궁금하다.

K 삼성 패션 디자인 펀드와 유사한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 제품을 취급하는 한 쇼룸을 통해서 뉴욕 패션위크를 지원하는 정부 프로그램을 접했다.

T 매년 두 브랜드를 선정해 두 번의 뉴욕 패션위크 참여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지원한 첫해에 선정되어 두 번의 쇼를 선보일 수 있었다. 그다음 해에도 지원했고, 또 한 번 선정돼 두 번의 기회를 더 얻었다.

뉴욕 패션위크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K 브랜드의 방향성이 완전히 바뀌었다. 패션쇼는 곧 좋은 마케팅 기회거든. 정말 많은 사람과 바이어가 우리를 알게 되었다. 매튜 헨슨(Matthew Henson), BPCM, 퍼플 PR(Purple PR) 등 미국 패션 관계자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첫 기회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매우 훌륭한 경험이었다.

이세가 전망하는 한국 패션의 미래는?

K 굉장히 낙관적이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2012년에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 브랜드’라고 하면 곧장 떠오르는 브랜드가 없었다. 물론 좋은 브랜드야 항상 있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한 한국 브랜드가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특히 올해에는 정말 많은 신생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멋진 게 많다. 한국을 보는 세계적인 시선이 바뀌는 지금의 상황이 정말 놀랍다. 한국 브랜드에게는 좋은 시기임이 분명하다.

T 정말 재미있는 시기가 아닐 수 없다. 방탄소년단, “기생충”, 한국 음식, 한국의 모든 것이 동시에 터지고 있지 않나. 지금 같은 때에 한국에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어서 정말 기쁘다. 우리에게도 최적의 타이밍인 것 같거든. 마치 축복처럼 느껴진다. 한국 문화와 관련된 모든 것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눈여겨보는 국내 디자이너나 브랜드가 있다면?

K 강혁(Kanghyuk). 겁나 멋있지. 혜인서(hyeinseo)와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Post Archive Faction)도 놀라울 정도로 잘하고 있다. 모두 우리가 굉장히 좋아하는 브랜드다.

이세의 추후 목표는 무엇인가.

T 이세가 점점 더 많은 도시와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기 때문에, 브랜드의 노출 빈도를 더 늘리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우리 브랜드가 한국과 해외 시장 모두에서 성장했으면 한다.

K 다음 달에 이태원에 새로운 사무실을 열 예정이고, 올해 안으로 LA에도 사무실을 개업할 계획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해 온대로 꾸준히 나아갈 뿐이다.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말이지.

IISE 공식 웹사이트


에디터│오욱석, 김홍식
포토그래퍼│오세린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Paper 1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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