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구장창 MLB 모자를 쓰던 한국의 대학생들이 어느 순간부터 전부 스냅백으로 갈아탔다. 이제는 각기 다른 디자인을 가진 스냅백들이 거리에 가득 차있지만 더욱 새로운 것을 원하는 국내의 발 빠른 소비자들은 ‘스냅하이(Snaphigh)’를 찾는다. 단순한 모자 판매로 시작한 스냅하이는 현재 국내를 비롯해 세계적인 고객을 상대로 커스텀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상당한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커스텀 제품을 소유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냅하이의 모든 공정을 해내는 디렉터 정영목의 영리한 움직임을 따라가 보았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모자와 신발을 만들고 있는 정영목이다. 85년생이고 현재 스냅하이닷컴을 운영하고 있다.
스냅하이(Snaphigh)의 뜻은?
개인의 닉네임이라기보다는 작업하는 물건을 총칭하는 브랜드 네임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스냅백의 의미도 있고 하이엔드의 의미도 있다. 별 생각 없이 지은 이름이긴 한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들이 사실 스냅하이라는 초기 콘셉트와 많이 달라져서 애매한 부분이 있다.
외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나.
한국에서 쭉 자란 도봉구 토박이다. 하하.
스냅하이를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2년 전까지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정반대의 세상에서 살았다. 사실 20대 초에 대해서는 크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카이스트를 다니다가 그만 두고 학교 친구들이 만든 티켓몬스터에서 일했다. 당시 기업 활동이나 일반적인 사람들이 겪는 회사생활에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염증을 느꼈고 다시 아무런 대책 없이 회사를 나왔다. 돈을 많이 모은 것도 아니었고 회사를 나온 이후의 계획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려면 바로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모자도 만들고 신발도 만들어 팔면서 자연스럽게 스냅하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무렵,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모자들을 구해서 팔지 않았나?
처음에는 스냅백을 여러 개 구매해서 하나 내가 쓰고 나머지는 팔고 그랬다. 국내에서 판매하지 않는 디자인의 뉴에라나 미첼 앤 네스, 40oz의 패러디 디자인 모자 들을 개인적으로 구매해서 팔았다. 용돈벌이나 할 생각이었는데 티몬을 그만 두면서 일의 사이즈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칸예 웨스트나 제이지가 500불 가까이 하는 뱀피 스냅백을 쓰고 나왔는데, 30불짜리 모자에 뱀피 커스텀을 한 것이 왜 저렇게 비싼 건지 의아했었다. 그때 내가 이걸 만들 수 있다면 확실히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냅하이를 시작할 때는 국내에서 스냅 백 열풍이 불기 전이었다. 커스텀이란 말은 더욱 생소했고.
2010년에서 11년 넘어갈 때 즈음이었는데, 당시 타이가(Tyga)나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이 스냅백을 찬양했고 많은 사람들이 사이즈 캡에서 스냅 백으로 넘어오는 시기였다. 나도 그때쯤 스냅 백을 찾았다. 지금은 조던이 발매되면 뉴 에라(New Era)에서도 신발 컬러에 맞춰서 모자를 출시하지만, 예전에는 작은 뉴에라 어카운트를 갖고 있는 매니악한 샵에서 조던 컬러링을 제안해 오더 커스텀을 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샵이 거의 없었고 난 이게 무조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베이스가 되는 스냅백은 미국에서 구매를 하는 것인지.
예전에는 미국에서 사들였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구입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해외 조달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경우는 그 때 그 때 상황을 보면서 셋업을 하는 편이다. 그리고 구하기 힘든 아이템의 경우에는 구매자에게서 직접 받아 커스텀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도 익스클루시브한 아이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 같다. 인식이 많이 바뀐 것일까? 혹시 ‘쇼미더머니’의 영향 때문일까?
이 일을 시작한지 1년 반 정도 되었는데 우리나라는 문화가 굉장히 빨리 회전한다는 것을 느꼈다. 대중들이 흡수하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단순히 쇼미더머니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이번 봄에 백만 원짜리 조던을 만들고 삼십만 원짜리 조던에 오십만 원어치의 커스텀을 붙이면서 나조차도 이런 상황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에서 자기만의 아이템을 갖고 싶다는 이유로 큰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 사람들이 그 몇 달 간 경제 상황이 좋아졌을까? 그건 아니다. 사람들의 취향이 빠르게 진화하고, 변화하는 것 같다. 벌써 이런 문화에 질리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커스텀의 매력은 무엇인가.
소비자들이 커스텀 제품을 구매하는 목적이 정확하게 나뉘어 있다. 무한도전에서 권지용이 쓴 모자와 똑같은 것을 원하는 권지용의 팬들도 있고, 우리나라에서 구하지 못하는 고가품에 대한 일종의 대안을 찾는 고객도 있다. 사실 나는 커스텀이 그다지 예술적인 작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럴 만한 로열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자신이 갖지 못하거나 고가인 제품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것은 스트리트, 힙합 패션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명품 패러디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이러한 심리에서 기인한다. 제작자들은 하이엔드와 주류 문화를 비꼰다고 하지만 정작 사는 사람들은 명품을 사서 입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가품은 아니고 정당하게 할 말이 있는 제품을 사는 것이다. 또 하나의 매력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 자신의 취향대로 오로지 자기만 가질 수 있는 아이템을 커스텀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취향이 확고한 나머지, 스스로 구상한 디자인을 표현하고는 싶은데 직접 수행하기는 힘든 사람들이 커스텀을 찾는다.
사람들이 커스텀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만들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다. 그게 커스텀의 매력일 것이다. 그러나 색깔만 달라져도 완전히 새로운 작업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무수한 시행착오가 발생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취미로 커스텀을 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시도는 할 수 있지만 판매가 되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될 거다. 간단한 커스텀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수는 최근 몇 달 만에 엄청나게 늘어난 듯하다. 아직 베이직한 레벨이긴 하지만.
2000년도 초반에 명품 브랜드 커스텀이 유행을 했었다. 그 흐름이 다시 돌아온 것 같기도 하고.
원래 처음 모티브가 그거였다. 우리 나이가 이미 문화의 사이클을 한 번 겪은 세대지 않나. 나 역시 90년대 한 사이클을 보니까 대충 흐름을 알겠더라. 2000년대 초반에 명품 커스텀이 엄청 유행을 했고 현재 어린 친구들이 90년대 중후반 문화에 다시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나니까 2000년대 초반의 커스텀이 분명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맞춰 전략을 짠 것도 있고, 실제 우리가 겪은 명품 커스텀도 8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것이다. 유행은 정말 돌고 돈다.
그렇다면 정영목이 가장 좋아하는 모자와 신발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항상 조던 1 OG라고 말한다. 모자는 내 취향보다는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을 선호한다. 자주 착용하지는 않지만 뉴욕 양키즈 어센틱을 가장 좋아한다. 최근 들어 매력을 느끼는 제품이라면 조던1에 재질은 전부 뱀피로 된 것? 그리고 최근 미국이나 유럽의 커스텀 시장 속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부분인데, 조던을 구매해서 아웃솔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자신이 새롭게 만든다거나 방대한 디테일을 추가한 커스텀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무엇이 최근 조던과 스냅백 유행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가.
대중에게 널리 퍼지게 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초기에는 타이가를 본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뉠 것 같다. 조던은 권지용과 고준희가 많은 공을 세운 것 같다. 뭐 지금은 조인성도 콩코드를 신고 다니니까 말이다. 스냅백은 권지용을 필두로 빈지노 등 국내의 힙합 아티스트가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면서부터? 2011년의 스냅백이 이 바닥에 심취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스냅백은 더 이상 소수의 문화가 아닌 대중적인 아이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조던과 스냅백의 인기는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조던의 인기가 벌써부터 주춤하는 것이 보이지만 조던은 어차피 대중적인 신발이 아니었다. 그러나 스냅백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졌다. 과거 한국에서 모두가 쓰고 다니던 MLB 모자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모자가 됐지 않나? 모자를 공급하는 입장에서도 스냅백이 훨씬 편하다. 제조단가도 싸고 다양한 사이즈를 구별해서 제작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이 스냅백에 힘을 더 실어준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커스텀한 신발을 즐겨 신나? 의외로 화려한 디자인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난 내가 만든 신발을 착용하지는 않는다. 워낙 클래식한 신발을 좋아해서. 하하. 나는 30년 이상 된 클래식 실루엣의 스니커를 좋아한다. 릭 오웬스가 현재 이 게임에서 가장 강력한 신발이라고는 하지만 난 잘 모르겠더라. 모양은 심플하지만 과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가품을 사용해 커스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딱히 부정적이진 않다. 나도 내걸 만들 때나 친구들 커스텀을 해줄 때 가품으로 하는 경우가 꽤 있다. 판매용이 아니니까. 가짜를 자르는 것이나 진짜를 자르는 것 모두 결국에는 원래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 이미지에 편승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편법이다. 루이비통을 캔버스에 그려서 MOMA(Museum of Modern Art : 뉴욕 현대 미술관)에 건다면 작품이 되겠지만 내가 커스텀을 하는 것은 창작이라기보다는 해당 브랜드, 패턴에 대한 매력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가짜를 쓰는 것이 나쁘다거나 열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오리지널을 쓰는 것에 가치를 더 부여할 뿐이지 큰 차이는 없다.
커스텀이 넘지 말아야 될 선이 있다면?
딱히 상한선을 두지는 않는다. 다만 커스텀을 하기 조심스러운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닥터 로마넬리(Dr Romanelli)의 작업물은 나처럼 브랜드 이미지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티사(TISA)에서 굉장히 희귀한 90년대 폴로 컬렉션을 통째로 받아 완전히 새로운 컬렉션을 만든 적이 있다. 로마넬리의 작업이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이제는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컬렉션을 굳이 잘라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대단한 작업이었지만 사실 아깝기도 했다. 아무리 뱅크시(Banksy)라도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상에다가 작품을 완성했다면 많은 논란을 불렀을 것이다. 커스텀을 하는 제품이 그 자체로 가치가 높거나 다른 걸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커스텀을 하기 힘들 것 같다.
해외 고객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어떤가?
품목마다 차이가 있다. 최근에는 국내의 수요가 더 많아졌다. 몇 달 전만해도 조던 11 커스텀은 외국에서 많은 의뢰가 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스냅백 정도? 신발은 외국에서 오더가 들어오는 일이 원체 많았다. 내가 스스로 제작한 모델들은 거의 해외 수요였다. 아무래도 레퍼런스가 없는 옷을 받아들이기 힘든 나라가 한국이지 않나? 예쁘다고 생각해도 셀레브리티가 쓴 적이 없다면 그걸 착용하는 게 정당화되기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최근 국내 수요가 많이 증가해서 이제는 외국 오더보다 많은 수준이다.
돌아다니면서 스냅하이의 가품을 많이 봤다.
내가 만들었던 모든 모자 디자인의 가품이 나와 있는 상태다. 심지어 내가 모자 생산을 하려고 미팅을 했던 브랜드에서도 가품을 찍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만든 디자인에 대해 저작권을 주장할 생각이 없다. 그럴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누군가의 모델이 된다는 사실을 즐기는 정도? 하하. 어차피 나에게 사는 사람들과 내 제품의 가품을 길거리 판매대에서 사는 사람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태극기 모자가 인상 깊었다.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작업을 하게 됐나.
40oz의 지방시 패러디 모자에서 별 5개를 참조했다. 그리고 빈티지 프레임스(Vintage Frames)라는 캐나다의 선글라스 샵이 이번 40oz와의 협업에서 별을 단풍잎으로 대체한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그것이 좋은 레퍼런스가 되었다.
‘Korea’ 같은 그래픽 작업은 직접 하는 것인가? 스냅하이의 기존 작업과는 성향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지금까지 내 작업은 저스트 돈(Just Don)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잘해봤자 결국 카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망(Balmain)을 패러디한 서울, 부산 같은 경우도 한 번 더 카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내 시그니쳐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Korea’는 그런 의도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작업의 비중을 늘리고 싶다.
셀레브리티들도 많이 의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에선 주로 래퍼들과 연결되었다. 내가 이 바닥에서 오래 일을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알아간 사람보다는 급격하게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았는데, 최근 친해진 사람들이라고 하면 AOMG, 하이라이트, 일리어네어 래퍼들이 있고 그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은 크라운 제이 정도? 해외에서는 아랍 뮤직(Araab Muzik)이 의뢰를 한 적이 있고 어떤 셀레브리티에게 신발이 보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매니저가 가져간 적이 있다. 모델 김우빈도 주문을 한 적이 있다.
스냅하이가 눈 여겨 보는 커스터머가 있다면?
368 스니커(368 Sneakers). 그리고 제이비에스 커스텀즈(JBF Customs)라는 친구도 잘하는 것 같다. 그 친구는 굉장히 창의적이다. 스케일이 큰 롤도도 주목할 만하다. 커스터머들은 대개 모자보다는 신발 쪽에 아이덴티티가 있는 것 같다.
한 족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모자는 하루에 한, 두개씩 꾸준히 만들고 있다. 신발은 일주일에 한 켤레 정도 제작하고 있다.
대량 제작 의뢰는 없었나.
있었다. 전에 만들었던 조던 옥토버를 텀블러에 올렸더니 수십만 리블로깅이 되더라. 그 신발의 색상까지 변형시킨 이미지들이 텀블러 상에서 돌아다녔는데 그걸 본 중국의 어떤 회사에서 만 족을 주문하겠다는 황당한 연락이 왔다. 서로 생각하는 가격의 차이가 컸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어서 별 고민 없이 거절했다.
포트폴리오에 올리지 않은 커스텀 제품들도 있나?
많이 있다. 고객이 너무 평범한 디자인을 의뢰할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반대로 고객이 과도하게 화려한 것을 원하면 만들긴 하지만 그것을 포트폴리오에 올리지는 않는다.
커스텀을 할 때 쓰는 가죽은 어디서 구하나?
필웨이 중고나 지인의 안 쓰는 가방을 사용한다. 면만 살아 있으면 되니까 대부분 중고를 사용하는 편이다.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는지.
스냅하이와 관련된 작업은 이제 더 이상 발전시킬 생각이 없다. 오히려 스냅하이의 규모를 축소시킬 계획이며, 지금은 다른 일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브랜드의 디렉팅을 하고 있는데 이 브랜드의 런칭을 지켜보면서 미래를 생각해보고 싶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서울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 무언가를 구상 중이다. 단순한 로컬 서포트보다는 뉴욕 양키즈나 뉴욕 메츠처럼 굉장히 한국적이고,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한국적이면서도 멋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서울이나 한국이라는 단어를 촌스럽게 노출하지 않더라도 그 색깔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스냅하이’가 정영목의 브랜드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할 때도 스냅하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생각인가?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스냅하이를 알지. 브랜드를 개인과 연결해 홍보하는 것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 역시 스스로 알려지는 것에 대한 욕심이 있다. 유치한 말이지만 말이다. 하하. 나를 알리고 내 활동들을 알리고 싶다. 스냅하이라는 이름은 곧 폐기할 예정이다.
모든 작업을 혼자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지 않나?
최근 들어 조금 힘들어졌다. 다만 내가 팀플레이를 못한다는 것을 회사에서 깨닫고 나서부터는 일의 사이즈를 줄이더라도 혼자 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 원 맨 비즈니스가 잘 맞는 것 같다.
본인을 드러내는 것을 원한다고 했다. 그런데 왜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나?
그랬다면 굉장히 뻔했을 거다. 그래서 일부러 SNS를 통해 나를 알리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그럴 때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 놓고 등장을 하고 싶다. 보다 다양한 활동으로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할 생각이다.
정영목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20대를 겪으면서 자기 인생과 주변을 잘 정리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그러던 중 어느 한 친구가 자신은 미래를 생각하며 사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 나 역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럴만한 끈기나 실천력은 없다. 이전에는 그런 내가 굉장히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살고 있다. 살면서 거창한 목표는 없었고 20대 때 목표는 서른 살에 뉴욕에서 사는 것이었다. 이번에 뉴욕에 두 달간 머물렀던 것도 그런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였다. 만으로 30살이 되는 내년 여름에는 뉴욕에서 거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려고 한다. 그 다음 목적은 35살 때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세계일주를 하기 위해 35살까지 그 기반을 세우는 것이 또 다른 목표다. 인터뷰에 가까운 얘기를 하자면 정영목이라는 사람이 진행하는 일들이 노출이 되고 브랜딩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언제나 애매한 위치에 있고 싶다. “이 사람 뭐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생기도록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스스로 생각이나 관점을 정리하며 사는 타입이 아니라서 두서없이 얘기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예전에 비해 많이 변했다. 지금 고등학생이거나 갓 성인이 된 친구들은 많은 소비를 하면서 문화적으로도 많은 것을 접하고 즐기고 있다. 분명히 몇 년이 지나면 우리나라도 문화적으로 굉장히 풍부한 토양을 갖춘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을 인터뷰하러 온 걸 보니 앞으로 한국도 굉장히 재미있어 질 것이다. 하하.
진행 ㅣ 최장민, 권혁인
편집 ㅣ 권혁인, 오욱석
사진 ㅣ HUSUMU
Snaphigh의 공식 웹사이트 (http://snaphigh.bigcarte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