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C (RAT MILK ZINE)

지난 7월,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에 뉴욕의 그래피티 신(Scene)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가 게재되었다. 코로나19(COVID-19)로 인적이 줄어든 도시, 지켜보는 눈길이 줄어든 틈을 타 거리 곳곳에 그래피티(Graffiti)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누군가는 이 소식에 반색을, 다른 이들은 난색을 표했지만 단기적인 현상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전세계의 그래피티 신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이다. 4차 산업 혁명이라느니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느니, 곧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는 우리를 거리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스프레이 페인트와 마커를 들고 자신만의 표식을 남기는 이들이 있다.

지금까지 VISLA는 여러 그래피티 라이터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들의 행보를 주의 깊게 지켜봐 왔지만, 이번 인터뷰이는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직접 그래피티 작업을 할 뿐 아니라, 다양한 진(Zine)과 프린트를 통해 그래피티 문화를 기록하고 또 공유한다는 점. “랫 밀크 진(Rat Milk Zine)”이라는 이름의 진을 발행하고 동명의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는 그래피티 라이터, 소멕(SOMEC)을 소개한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랫 밀크 진’이라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고, 독립 진, 미술 작품, 포스터 그리고 티셔츠를 만든다. 지금까지 포틀랜드, 뉴욕, 서울에서 살았고 지금은 다시 포틀랜드로 돌아와 지내고 있다.

랫 밀크 진에 관해 소개를 부탁한다.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컨텐츠를 담고 있나?

랫 밀크라는 단어 자체는 뉴욕에 살던 2005년에 처음 정했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The Simpsons)”에 팻 토니(Fat Tony)라는 캐릭터가 불법적으로 우유 대신 쥐 젖을 학교에 납품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랫 밀크라는 단어 자체가 엄청 눈에 띄지 않나. 특정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이름은 아니지만, “심슨 가족”의 열성적인 팬이라면 남몰래 웃음 지을 만한 이름이지.

다시 2005년으로 돌아가서, 그 당시에 진을 열심히 수집했는데, 그중에 마이크 자이언트(Mike Giant)와 퍼슈(Pursue)의 진 ‘Tiny Shits’가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진 문화만의 DIY 철학, 무규칙성 그리고 저예산 퀄리티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지. 그러다보니 내 스케치북에 그려놓은 일러스트와 찍어놓은 사진도 진으로 엮어보면 멋질 것 같더라. 무엇보다 단순히 내가 직접 만들어서 소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이들과 교환하며 돌려 읽고 싶었다. 진 애호가들의 커뮤니티에서 진은 그 자체로 화폐와 같은 기능을 하거든. 각자 자신이 만든 진을 남들과 교환하는데, 나도 교환을 통해서만 진을 80권 정도 모았다.

SOMEC의 스케치 중 일부

랫 밀크 진이라는 이름으로 약 15년간 다양한 진과 프린트를 만들었다.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바뀌지 않았나?

가장 많이 변한 것은 기술이다. 과거에는 소니 사이버샷(Sony Cybershot) 포인트앤슛 카메라로 모든 사진을 찍었다. 일이 끝난 늦은 저녁과 주말마다 맨해튼 곳곳을 누비며 사진을 찍었지. 하지만 최근에 출판한 진 대부분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으로 만들었다. 한발 더 나아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킨코스(Kinkos)와 오피스 디폿(Office Depot) 같은 프린팅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레이저 프린터 및 실크 스크린 설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더 우수하고 독창적인 진 표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랫 밀크 진을 운영하면서 마주친 어려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글쎄, 진이라는 것이 굉장히 낮은 비용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운영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내 진은 모두 뉴욕에 있는 서점 몇 곳의 주인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해서 위탁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내 진을 서포트해주는 세인트 막스(St. Marks) 서점과 스테이플(Staple), 자카(Zakka) 그리고 애니띵(aNYthing)에 정말 감사한 일이지. 여하튼 그렇기 때문에 최초에 생산 설비를 구비하기 위한 금액 이외에는 그다지 큰 비용이 들일 일이 없다. 진은 그 특성상 소량 생산되기 때문에 판매도 빠르다. 한번 찍은 진이 다 팔리면 다음 진의 인쇄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이 발생하는데, 내 진은 모두 부담 없는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끔 큰 수익을 남기려고 하지 않는 편이다. 당장 나도 $15보다 비싼 진은 사지 않거든.

이번에는 진을 제작하는 과정을 들어보고 싶다. 종이 위에 그래피티를 비롯한 다양한 이미지를 배치할 때 특정한 흐름, 메시지 혹은 서사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편인가?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내 가장 중요한 목표는 진이 만들어진 시기의 그래피티 신(Scene)을 스냅숏처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거리 곳곳의 그래피티를 촬영하여 기록하는 이들이 12oz Prophet이나 플리커(Flicker) 등지에 많았다. 누구도 완벽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뉴욕의 그래피티 신을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진의 전반적인 내용은 지금 어떤 그래피티 라이터가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고, 누가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시도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외에도 독자들이 재미있게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유머러스한 콘텐츠도 함께 수록하였다. 그래피티 사이에 내 일러스트와 농담을 배치해서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려고 하는 편이다. 또 그래피티가 벽에 그려져 있는지, 밴(Van) 위에 그려져 있는지, 스티커인지 등 카테고리별로 분류하여 구성을 만들려고 한다.

‘Rat Milk Zine’ 7호 중 일부

지금까지 진을 통해 소개한 그래피티 작품 중 특별히 선호하거나 잊지 못하는 작품이 있을까?

우선 진으로 말하자면, 랫 밀크 진 1, 2, 3호를 가장 좋아한다. 그 세 권의 진이 뉴욕 그래피티 신과 진에 관한 내 초기 열정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을 만들면서 생긴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뉴욕 차이나타운의 한 건물을 촬영하고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내 모습을 발견한 건물 속 직원이 굉장히 화난 채로 나를 향해 “노 픽처! 경찰을 부를 거야!”라고 소리쳤는데, 우습게도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가 거기 있는 줄 전혀 몰랐다. 나중에 당시에 찍었던 사진들을 확인해보니 그가 선명히 나온 사진이 있더라. 이 사건이 꽤 재미있어서 지금까지 만든 모든 랫 밀크 진에 그의 사진을 이스터 에그(Easter Egg) 같은 요소로 집어넣었다.

랫 밀크 진 이외에는 힙합 듀오 래 스레머드(Rae Sremmurd)의 곡 제목을 따온 진 ‘NO FLEX ZINE’을 굉장히 좋아한다. 친구들의 그래피티와 그래피티에 대한 영감 그리고 훌륭한 농담이 가득하다. 아무래도 조만간 ‘NO FLEX ZINE 2.0’을 만들어야겠다.

NO FLEX ZINE’ 중 일부

그렇다면 랫 밀크 진을 운영해 온 15년간 뉴욕의 그래피티 신은 어떻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는가?

2011년부터 뉴욕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답변은 어렵지만, 외부인으로서 내가 느끼는 감상을 말해주겠다. 내가 느끼는 바로는 뉴욕 밖에서 그래피티를 시작한 라이터들이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뉴욕으로 모이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뉴욕 토박이들이 여전히 많지만, 외부로부터 수많은 라이터가 모이면서 지금은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90년대 뉴욕 그래피티가 여전히 기상천외한 스팟에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이제는 다양한 패션 브랜드에서 길거리 문화와의 연결고리를 과시하기 위해 자신들의 진을 만든다. 그 중 몇 개는 슈퍼스타를 기용하여 촬영한 화려한 이미지들로 오히려 상업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지금까지 출판된 패션 브랜드의 진 중에서 혹시 감명 깊게 본 것이 있을까? 그리고 좋은 진에 대한 당신만의 기준을 묻고 싶다.

개인적으로 패션 브랜드의 진은 브로셔(Brochure)에 가깝다고 생각해 왔다. 이유는 그들이 만드는 진의 목적이 제품과 사상을 팔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지. 애초에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굳이 비판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슈프림(Supreme)과 스투시(Stussy)의 과거 카탈로그는 스케이트 문화의 날 것(Rawness)를 담고 있어서 정말 재미있게 봤다.

이어서 좋은 진에 대한 기준을 말해보자면 우선 독특해야 하고, 개인의 취향을 잘 보여주며, 잘 디자인되어 있고, 흥미로운 컨텐츠를 갖고 있으며, 작가의 스타일을 뚜렷이 보여주는, 그래서 이미 한번 본 사람도 다시 펴 보고 싶게끔 만드는 힘이 있어야 한다.

최근에 주목하는 그래피티 라이터가 있다면 소개해줄 수 있을까?

언제나 흥미로운 것을 보여주는 라이터로 카츠(KATSU)를 꼽고 싶다. 그가 보여주는 반복적인 해골 모티브와 자신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이 정말 대단하다. 언제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ISER TDC도 루키라고 하기엔 꽤 오래 활동해왔지만 정말 멋진 스타일을 갖고 있어서 거론하고 싶다. 태그(Tag), 스로우(Throw) 그리고 피스(Piece)까지 그는 다방면으로 균형 잡힌 플레이어다. 이외에도 셋업(Setup), BRK192, Vents132, 이모스(Imos), 타이거(Tiger), 사르메(Sarme) 같은 라이터가 내게 영감을 주며, 그 외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을 더 소개하자면 BFGF, BAGS43, 조안 코넬라(Joan Cornella), 리히트페인트(Richtpaint), 스킵 클래스(Skip Class), 스캇 슈 미(Scott Sue Me), 안드레 비토(André Beato), Rhek, 배리 맥기(Barry McGee), 잭 커비(Jack Kirby), 김정기, 루드세프(Rudcef) 등이다.

서울에서 오래 살았고 지금도 한국의 그래피티 신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랫 밀크 진 4호의 경우 서울을 중심으로 다루기도 했는데,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나?

지금의 아내인 여자친구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2007년 처음 서울에 방문했다. 그 전에 아시아 국가를 방문한 것은 98년도에 친척을 만나기 위해 중국에 갔다 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한국 방문은 많은 부분에서 놀라웠는데, 도시가 자랑하는 기술적인 진보, 뉴욕보다 훨씬 크고 깨끗한 거리와 지하철, 미래와 과거의 공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언제든 다시 오고 싶게 만들었으니, 인생의 가장 중요한 여행 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하하. 불과 몇년 후 플리커를 통해 만나기로 약속한 서울의 그래피티 라이터 딤즈(DIMZ)를 보러 다시 한번 방문했는데, 그때 처음 만난 이후 지금까지 아주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 이후 아내와 함께 서울로 이사해서 약 1년 반가량 살게 되었다.

서울에서의 재미있는 기억 중 하나는 딤즈와 함께 그래피티가 금지된 한 외벽에 작업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노란색으로 작업하고 싶어서 근처 철물점에서 동서 페인트를 사 갔는데, 현장에 도착해서 작업을 시작하려 하니 그가 내 페인트를 보며 엄청 웃어 재끼더라. 내가 산 페인트는 물처럼 묽은 거라 콘크리트가 페인트를 다 먹어버릴 거라고 하더라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콘크리트 벽이 페인트를 다 빨아들여서 하나도 안 보이더라. 그날 사간 12캔을 다 쓰고 나니 간신히 좀 괜찮아 보이던데. 다시는 그 페인트 안 쓸 거다 하하.

‘Rat Milk Zine’ 4호 중 일부

그렇다면 서울의 그래피티 신을 어떻게 느꼈는지도 궁금하다.

끝내주는 멘탈을 가진 젊은 세대 라이터가 몇 보이는 점이 긍정적이다. 특히, 서울의 그래피티는 엄청난 기술적 숙련도를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디테일이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작품에서 느껴지는 열정이 정말 대단하거든. 서울의 라이터들이 그런 작업은 진짜 죽여놓는다. 특히 딤즈와 포블랙(4BLACK)의 다재다능함은 놀라운 수준이다. 그들을 알고 지낸 기간 동안 그들의 스타일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했다. 물론,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딤즈의 소개로 만나 같이 작업한 밀스(MEALS)와 여러 젊은 로컬 라이터들도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의 라이터들이 평소 그냥 지나치게 되는 은밀하고 어려운 스팟에 더 많은 작업을 남겨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결국 그런 곳에 그려진 작품이 몇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기 마련이니까.

지금까지 다양한 도시를 방문하고 여러 그래피티 신을 목격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를 보는 당신만의 방법이 궁금하다.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가며 어떤 것을 느끼려고 노력하는가?

알다시피 난 여행을 사랑하고, 아무리 여행해도 질리지 않는다. 다양한 문화와 새로운 음식을 만나는 것은 진짜 최고잖아! 가끔은 새로운 곳을 방문할 때 현지에 사는 온라인 친구와 연락해서 함께 작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드니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TIGER NSFR’이라는 라이터와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직접 만났을 때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실 그래피티 라이터 중 직접 만나보니 좋지 않은 성격을 가진 사람도 많아서 피곤한 경우가 왕왕 있는데, TIGER NSFR는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 같이 맥주 한 잔 하고, 페인트를 챙겨서 그의 친구 ‘SCRAMO’가 사는 곳 근처 벽에다가 작업했다. 또 도쿄에서 온 ‘MINT’라는 라이터와 서울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는데, 만나서 15분밖에 대화를 나누지 않았는데 도쿄에 올 일이 있으면 언제든 자기 집에 와서 지내라고 선뜻 먼저 제의했다. 덕분에 시드니 방문이 끝나자마자 그에게 연락해 도쿄로 넘어갔고 거기서 한 주 더 여행을 이어갔지. 도쿄 구경뿐 아니라 친구도 많이 소개해 줬고, 여러 군데 작업도 함께하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2020년 하반기 계획이 궁금하다.

살아남고 건강히 지내기. 마지막으로 내 크루 ATM, LFK, MAP, 401K, MEOW와 HAA를 샤라웃하고 싶다. 인터뷰를 요청해준 VISLA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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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James Kim Junior
사진 출처│Rat Milk 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