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재는 자신의 첫 정규 앨범 [BLACK OUT]을 통해 일종의 확신을 느낀 듯하다. 갑작스럽게 거머쥔 성공과 평범한 일상의 시차로부터 이제는 자유롭다는 듯, 외려 변화를 반갑게 받아들인다. 프로듀서 쿄(KHYO)와 함께 완성한 [BLACK OUT]은 분명 지금까지의 우원재와 구분 지을 수 있는 분기점으로 다가온다. 번민하던 청춘의 초상이 한 명의 프로페셔널한 래퍼로 자리잡기까지, 또다시 변화하는 그의 스펙트럼을 팬들은 이번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반길 듯하다.
지난 EP [af]와는 참여진부터 장르적 작법까지 전체적으로 상반된 앨범 분위기가 마치 다른 옷을 입고 나온 듯한 인상이다. 지난 앨범과 [BLACK OUT] 사이의 시간 동안 힙합이라는 장르에 적을 둔 입장으로서, 또는 한 명의 음악가로서 발견한 아이디어나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
[af] 이후의 변화가 생각보다 더 컸다. 사실 사운드, 랩 스타일, 장르와 같은 음악적인 변화를 의도했다기보다는 나 자신에 관한 고민이 결과물에도 반영이 됐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지난 앨범 당시에는 타인에게 보이는 나 자신에 관한 고민이 많이 드러났다고 한다면 이번 [BLACK OUT]은 너무나도 기본적이지만 스스로 정리하지 못했던 질문을 떠올리면서 작업에 들어갔다. 여기에는 프로듀서 쿄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는 내게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게 뭔데?”, “네가 누군데?”를 계속해서 물었고, 그 질문을 어느 정도 정리했을 때는 음악이 많이 바뀌어있었다.
쿄와 전곡을 작업했다. 어떤 이유로 그와 전곡을 함께할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와 앨범의 방향성을 정하면서 나눈 대화, 텍스트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을까?
당연히 프로듀서를 믿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거다. 물론 첫 정규 앨범이다 보니 나 스스로도 고집을 많이 부렸다. 내가 쿄를 따를 때도 있었고 그가 나를 따라줄 때도 있었고 서로 마찰이 생길 때도 있었다. 쿄에게 정말 고마운 건 내가 진심일 때는 어떤 것도 터치하지 않았다. 함께 살면서 작업하다 보니 그날그날 내게 일어난 사건과 기분을 바로 알아채더라. 그래서 어떤 날은 “너 이거 멋있게 보이려고 하는 말 같다”라고 하면 난 바로 인정하고 가사를 버렸다. 쿄라는 프로듀서가 다른 뮤지션과 작업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우원재는 가사를 쓰는 사람이다”, “래퍼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라고 언제나 강조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도 가사 쓰는 작업이라서. 쿄는 우원재라는 사람과 장점을 그렇게 봤고 나는 인정했다.
[BLACK OUT]을 만드는 데 가장 큰 힌트가 되었거나 핵심적인 소재 또는 키워드가 있다면 알려 달라.
앨범의 제목, 즉 [BLACK OUT] 그 자체가 핵심 키워드가 됐다. 사실 이번 앨범은 특별한 목적을 두고 만들지 않았다. 프로젝트 창을 열어놓고 그냥 그것만 생각했다. 이전에는 A라는 곡은 B라는 사운드로 표현하고 싶다는 식으로 어느 정도 틀과 콘셉트를 설정하고 가사를 썼다면 이번 앨범은 정말 그냥 나오는 대로 했다. 그냥 뭔가가 나올 때 가사를 썼고, 이걸 어떻게 만들지는 녹음하고 나서 결정했다.
“BLACK OUT”, “R.I.P.”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과거의 자신을 향한 작별 인사’처럼 느껴지는데, 과거의 어느 특별한 시점과 현재를 구분하려는 의도인가? 아니면 언제나 현재의 우원재는 과거를 죽이고 나서 존재한다는 의미인가?
후자로 생각했다. 나는 내게 변화가 일어날 때 솔직히 너무 반갑다. 어제의 나를 부정하는 생각이 드는 나 자신을 견디는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편이라서. 음악이 바뀌고 취향이나 생각이 바뀌는 것 또한 어제의 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껏 우원재는 그 탁월한 연기력(Acting) 덕분인지 기술적인 면보다도 가사의 호소력, 전달력에 더 방점이 찍히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본인 스스로 래퍼로서의 정체성에 중점을 두는 부분인가? 혹여 이번 앨범에서 변화를 시도하려 했다면 어떤 점에서 고민했는지 그 흔적을 이야기해주길 바란다.
장르 음악은 어느 정도 액팅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장르적인 고민을 더 안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더 또렷한 장르로 초점이 맞춰지는 것도 신기했다. 어느 날 쿄가 내게 “너는 모든 리스너가 들을 이야기를 왜 내 앞에서는 하지 못하냐”라고 물어본 적 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가만 돌이켜보면 내가 정말 아끼는 가사는 누굴 들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었다. 그저 끄적인 걸 발표하는 데 겁이 없었을 뿐이지. 곡마다 입장과 고민이 천차만별이어서 트랙리스트는 나름 시간순으로 배열했다. 2번부터 9번까지는 정말 만드는 순서대로 놔뒀다. 오늘 이렇게 인터뷰해도 집에 가서 다음날이 되면 오늘 내가 한 말이 부끄러울 수도 있다. 나는 매일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것 같아서 그냥 앨범도 그 당시 감정을 적어놓은 것들을 죽 늘어놓았다.
청춘의 고민이 묻어나는 감수성보다는 한 명의 완연한 프로페셔널로서 래퍼의 색깔이 도드라진 분기점이 아닐까 하는데, 스스로는 이번 앨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도 비슷하게 느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앨범에 확신이 들었고,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언제나 가사를 쓰고 곡을 내고 난 뒤에도 그 곡을 의심하곤 했는데 이번 앨범에서 가사를 쓸 때는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생각이 바뀌었다면 또 바뀐 생각을 적으면 되는 거니까. 이렇게 아주 작은 내적인 변화인데 음악에서는 티가 확 났다. 결국 확신하는 한 가지는 난 계속 변했고, 변할 것이고 과거의 내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것. 그래서 부끄럽지 않다.
최근 가사에 영감을 준 동료 아티스트 또는 작업물이 있다면 무엇인가?
모쿄(Mokyo)라는 친구이자 뮤지션에게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그 친구는 자기 자신에게 당당하지 않은 것은 입 밖으로 뱉지도, 가사에 적지도 않는 것 같더라. 자기검열이 확실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많이 배웠다.
“칙칙폭폭 Freestyle”, “JOB”, “징기스칸”의 비트나 가사의 인용에서 멤피스 랩(Memphis Rap)의 영향이 엿보인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갑자기 꽂혔다. 언급한 것처럼 5, 6, 7 트랙이 멤피스의 영향을 받은 결과물인데, 앞서 내가 시간순으로 트랙리스트를 짰다고 하지 않았나. 그 당시에 멤피스에 엄청나게 꽂혀있었다. 쿄와 시모(SIMO)가 멤피스를 들려줬을 때 그 날 것의 느낌이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나는 그게 또 좋아서 하루살이처럼 거기에 맞게 가사를 쓴 거지.
이처럼 “쇼미더머니”에서 보여줬던 모습과는 달리 장르적인 형식미에 신경을 쓴 모양새다. 무엇을 고민했나?
멤피스 랩에 영향받은 트랙들을 작업하면서 느낀 건 가사를 고밀도로 쓰면 안 된다는 거였다. 시작부터 끝까지 프리스타일하듯, 휙 써야 한다. 가사에 계산이 들어가면 외려 구려지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 좋게 들리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 스스로 그 무드가 안 나오더라고.
장르적인 배경까지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자 한 건가?
나는 갓난아기도 분위기를 느낀다고 생각한다. 이건 육감적인 것이라서 의도할 수도 없고 자기 멋대로 해석할 수도 없다. 직감적인 것. 어느 순간 그냥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다. 그래서 멤피스 랩의 분위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반면에 So!Yoon!과 함께한 “Do Not Disturb”나 ‘USED TO”에서 마치 청자를 가까운 거리에 둔 듯한 자기고백적인 가사는 여전히 우원재에게 일종의 장기처럼 느껴지는데.
이 두 트랙을 더 막 썼다. 아까 말한 멤피스 트랙들은 그 분위기에 익숙해질 때까지 버린 가사가 너무나도 많다. 나는 공격적인 성향이 적어서 그런지 꼭 그런 가사를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 멤피스 랩의 분위기를 내 방식대로 해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Do Not Disturb”나 “USED TO”는 그냥 너무 나 자신이라서. 아무 생각 없이 그 날의 기분을 적듯이 한 거지.
마치 그날그날의 일기예보를 보는 기분이었다.
일기장과 흡사할 수도 있겠다. 그 날이 아니면 그 가사는 나오지 못한다. 내일이면 또 다른 가사가 나올 테니까.
“난 되고 싶어 남자 Bjork” 이후의 구절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가? 래퍼의 입에서 뷔욕(Björk)과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를 언급했다는 점도 흥미로운데.
나는 음악에 관한 지식이 해박한 사람이 아니다. 장르를 잘 구별하거나 그렇게 듣는 편도 아니고. 그러나 내게 브라이언 이노나 뷔욕은 장르가 아니라 그냥 그 분위기로 들린다. 브라이언 이노를 듣다 보면 너무나도 평화로워서 뭔가 내 인생이 이 음악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뷔욕을 보면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들의 음악은 일종의 덩어리, 무드처럼 느껴진다.
잠시 돌아가서 “쇼미더머니”라는 생태계 안에서 우원재는 매우 특이한 캐릭터처럼 보였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평범한 학생이 특정한 계기를 통해 스타로 거듭난 일종의 신데렐라 같은 전형적이면서도 극적인 이야기가 연출되었는데. 실제 “쇼미더머니” 이후 삶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나 역시 얼떨떨하고 신기했다. 돈벌이나 내가 처한 환경을 말하자면 정말 다이나믹하게 바뀌었다. 성공의 잣대가 거기에 있다면 성공한 게 맞겠지.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크게 바뀐 게 없다. 여전히 만나는 친구들, 부모님. 그게 그냥 나인 것 같다. 돈 많이 벌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 당연히 좋지. 가끔은 신기하다. 어떻게 보면 완전히 남의 인생인데도 내 이야기를 사랑해주는 팬들이 있다는 게. 그런데 가족과 친구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돈이라는 것도 크게 의미 있을까 싶다. 음악을 딱히 직업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직업이라고 믿는데, 마음은 그게 아닌 것 같다. 그냥 좋아서 하는 것 같은데.
음악만 있어도 평생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드라마틱한 순간이 찾아온 적 있나?
나는 관계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음악이 높은 순위에 있는 건 맞지만, 이게 없어도 살 수는 있을 것 같다. 사실 꿈을 하나로 정한다는 일도 무서운 말처럼 들린다. 정확한 목적지를 정하고 달리는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싶다. 목표를 정해놓고 달려간다면 그만큼 추진력은 따르겠지만 나는 겁이 많고 매일 생각이 바뀌는 사람이라 언젠가 목표가 바뀌었을 때 맞닥뜨릴 무언가가 두렵다.
운동선수처럼은 못 살겠다는 말인가.
그래서 다시 태어나면 해보고 싶은 게 운동선수다. 그런 사람들은 챔피언, 1등처럼 명확한 목표가 있다. 또한 운동선수는 그 등수에 따라 몸값이 매겨져 있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극도로 못 견디다 보니 그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멋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깡다구가 있지 않은데.
“시차”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곡인가? 경연에서 결승용으로 선보이는 곡들은 전반적으로 과잉되었거나 경연용 무리수들이 보이던데 “시차”는 정작 그레이(GRAY)의 프로듀싱 하에 정갈하게 만들어진 트랙이었다. 우승에 욕심이 없었나?
전혀 없었다. 매회 잘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다. ‘내가 안 쪽팔리면 된다’ 정도의 마음가짐? “시차”는 그 당시에 내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그리고 내 동아리 선배들, 로꼬(Loco), 그레이와 함께하고 싶었다. 심지어 그레이는 스무 살 때 음악을 처음 가르쳐준 선생님이기도 하니까. 내게 의미 있는 분들이어서 함께 마지막을 정리하고 싶었다.
이전 말립(Maalib)과의 프로젝트 [Stretch] 같은 경우 로컬 기반의 창작자들과 함께했고 이를 뚝심 있는 로컬 숍들을 통해 유통했으며 스케이터들과 함께 앨범을 아우르는 스케이트보드 비디오를 제작했다. 어떤 의도에서 이와 같은 행보를 택한 것인지? 당시에 “쇼미더머니”로 우원재를 접한 입장으로서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나는 당시 멜론 1위를 찍은 “시차”나 “Stretch”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니까. 스트리트 브랜드 좋아하고, 보드 타는 것도 좋아하고, 그냥 그게 나인데. 내 모습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그걸 의외의 행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쇼미더머니”로 이름을 알렸으니까. 그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놀라더라고.
대중의 기대와는 무관한 듯한 행보였다. 마음껏 즐겼나?
그 당시에는 AOMG에 들어가서 광고 찍고 행사 다니고 하다 보니 너무 정신이 없었다. 재밌긴 한데, 너무나도 그 상황이 낯설어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간은 빨리 흐르는데, 가사는 또 쓰고 싶어서 그 정신없는 정서가 반영된 프로젝트 같다. 내용의 흐름이고 뭐고 뒤죽박죽인데, 그게 당시의 나였다. 말립의 비트도 그 느낌과 잘 묻었고.
작업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기 힘든가?
나는 오늘 만든 노래는 오늘 내고 싶다. 오늘 내 생각이니까. 그게 아마도 표출 욕구겠지. 오늘 생각을 오늘 적어서 너무 늦지 않게 내고 싶다는 마음.
대중이 우원재에게 보내는 애정이나 기대보다는 본인 스스로 다음 행보를 정하고 움직이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주변 창작자들과 계속해서 협업을 이어가는 이유라면 무엇인가? 이것이 흔히 메인스트림이라 불리는 동료 아티스트와 진행하는 작업과의 차이가 있다면?
그런 차이는 거의 없다. 분명한 사실은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기 일을 확실하게 한다. 어정쩡하게 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것 같더라. 메인스트림이건 언더그라운드건 간에 확실하게 하는 이들의 발자취는 그 모습이 비슷했다. 죽도록 디깅하고, 연습하고, 그걸 즐기면서 하고.
AOMG와 사인한 뒤로 음악적인 측면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혼자가 아닌 크루, 레이블 단위의 활동을 통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뭐라 꼽기도 힘들 정도로 많다. 일단 소속 아티스트들은 제각기 24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다 다르다. 그래서 나는 그걸 그냥 구경하고 물어보는 것만 해도 즐겁다. 그러다 보면 음악뿐만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음악 또한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니까. 실무 스태프 분들도 나를 단순히 회사 소속 아티스트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 또한 용기 있게 다가가지 못했을 거 같다. 인간이자 동생으로 다가와줘서 고마움을 느낀다.
코로나 이후의 삶은 어떠한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가 개인적인 일상 그리고 뮤지션으로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일단 공연이 없다. 공연을 그렇게 즐기지는 않는 편인데, 지금은 그 공연을 하고 싶을 정도다. 반면에 일상적으로 새롭게 다가온 측면이라면 인생이 조금 느려졌다는 것? 난 원체 좀 느릿한 편이라서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편해졌다고도 느낀다. 비교적 시간을 빠르게 사는 이들은 결정도 빠르고 사고방식도 논리정연한데, 나는 언제나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고민도 많이 해보고 느릿하게 보내는 시간도 있어야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간의 곡들을 통해 제법 유명해진 우원재를 향한 요구와 기대에 그리 충실히 응해주진 않을 것이라는 것, 큰 야망보다는 자기 자신인 채로 살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여기서 말하는 ‘나다움’이라는 말은 평범한 일상을 뺏기지 않고 향유할 것이라는 맥락에서인가?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 대답이 물음표인 이유는 무언가 규정짓고 싶지 않은 내 성향에서 비롯된다. 특히 ‘내가 어떤 사람이다’, ‘내가 누군가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에 갇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내버려 두고 싶다. 예를 들면 ‘내가 왜 이걸 하고 싶지?’라는 물음이 들었을 때 정확히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직관을 믿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유를 굳이 찾지 않고 내버려 두는 편이다. 그러나 돈은 많이 벌고 싶다. 비싼 물건을 사거나 사치를 누리고 싶은 마음은 아닌데, 돈은 확실히 불행을 막을 수 있는 장치인 것 같다. 내일을 살 수 있게 하는 방파제라고 해야 하나. 보통 사람이 최악의 상황에 몰릴 때는 대개 돈 문제가 결부되어 있지 않나. 불행을 막는 도구로써 돈은 꼭 필요하다.
음악을 시작할 초창기에 우원재를 움직이던 동력은 일반적인 사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자신이 느끼던 괴리감, 청춘의 민낯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와는 입장이 많이 달라졌고 앨범 내 가사에서는 큰 야망은 없어도 더욱더 이 삶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나?
곡에서도 말했듯, 뮤지션으로서 큰 야망이나 또렷한 이정표를 정해놓지 않았다. 4~50살쯤 동네 가까운 거리에서 가족, 친구들과 함께 살면 즐거울 거 같다. 뭘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일을 하더라도 가사는 적을 수 있을 것 같고.
에디터 │ 권혁인 강재욱
포토그래퍼 │ 강동우
스타일리스트 │ 손야비
헤어/메이크업 │ 미장원by태현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매거진 종이잡지 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