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Community Radio

서울에서 활동하는 디제이라면 상당수 우사단로 인적 드문 깊은 음지로 향했던 기억이 있으리라. 그들의 목적지는 초록 페인트로 서늘했던 지하의 작은 방음 부스, 바로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Seoul Community Radio 이하 SCR)의 크로마키 스튜디오. 열릴 줄 모르던 셔터들 사이에서 3년간 용케 자리를 지킨 그들은 최근 노을이 보이는 녹사평 언덕 위, 널찍한 곳에 새 스튜디오를 마련하여 로컬 아티스트와 주변 상권과 공생한다. 활기를 찾은 SCR의 세 디렉터, 리처드 프라이스(Richard Price, 이하 R), 이슬기(이하 S), DJ 보울컷(DJ Bowlcut, 이하 B)과 나눈 대화, 하단에서 바로 만나보자.


VISLA에서 최초 소개된 SCR은 라디오 개국 기사였다. 그로부터 4년간 많은 멤버가 거쳐 간 것 같은데, 어떤 멤버가 거쳐 갔나?

S: SCR은 나와 리처드의 농담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최초 멤버는 나와 리처드고, 그다음으로 디제이 신스(Shins)가 합류했다. 아무래도 신(Scene)에서 활동한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스 룸메이트가 케익샵(Cakeshop) 오너여서 케익샵도 관심을 보이며 비주얼 셋업을 리처드 로스(Richard Ross)가 도와주었다. 여기까지가 시작 단계의 멤버고, 훗날 콘텐츠를 강화하며 보울컷이 합류했다. 지금은 각자의 이유로 이렇게 셋만 남았다. 또 그랙다니(Grack thany)의 커드(Curd)와 포토그래퍼 현수는 항상 우리 뒤를 서포트하고 있다. 그리고 나간 친구들의 공백을 메꿔줄 친구가 필요해서 디제이 유조(Yuzoo), 서현(Seohyun)이 멤버로 활동했다.

SCR을 시작한 농담은 무엇인가?

R: 내가 어릴 때 듣고 자란 영국의 라디오 채널을 만들자는 농담이었다. 한국엔 언더그라운드 라디오 채널이 없었으니 우리가 만들자는 이야기로 시작됐다.

영국인인 리처드가 서울을 찾게 된 이유 역시 궁금하다. 어떻게 서울을 찾게 되었는가?

R: 인도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한국 어느 기업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고 처음 서울을 찾았다. 서울의 클럽 신을 처음 접하게 된 것 역시 그때다.

그때 서울의 클럽 신은 어떤 모습인가?

R: 케익샵, 미스틱(MYSTIK), 비원(B1) 등의 클럽이 이태원에 있었다. 클럽 신이 존재하긴 했으나 지금보다 작았지. 외국인 입장에서 정보를 얻을 만한 매체도 없었다. 근데 그 덕분에 한국 클럽 신에 합류하기는 쉬웠다고 생각한다. 좋은 파티나 정보를 얻기 위해 알음알음 직접 연락하고 지냈기 때문이다. 그외 야고만두 건너편 2층 펍 한쪽에 칸막이 클럽 카머(Kammer)가 생각난다. 이 장소는 클럽 파우스트(Faust)가 탄생하기 직전의 매우 작은 공간이었는데, 그 작은 곳에서 기글링(Giegling)의 디제이 더스틴(DJ Dustin)이나, 브릴(Vril)의 파티가 열리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S: 카머는 SCR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카머는 20명이 들어가면 꽉차는 매우 작은 공간이었고, 파티가 끝나면 다같이 뒷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카머에서 무브 D(Move D)가 음악을 튼 날, 뒷풀이 술자리에서 리처드와 내가 구상한 SCR의 초기 아이디어를 무브 D에게 말해준 적이 있는데, 그는 도대체 왜 안하는거냐며, 당장 시작해야 한다 말했다. 또한 그 시기는 SCR 뿐만이 아니라 지금의 완성된 베뉴, 파티들의 시발점이지 않았나 싶다. 테스트하던 베뉴와 파티들도 있었고, 조금 트위스트하게 바꿔서 커진 파티도 있다.

그렇게 시작된 SCR의 첫 라이브 방송을 기억하나?

S: 사실 첫 방송 당시 문제가 많아서 잘 기억은 안 나고, 런칭 파티 플라이어를 만들려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미지만 만지고 있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B: 난 JNS와 b2b를 했었다. 근데 나도 그때 누가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S: 플라이어를 보니 콴돌(Quandol), 코난(Conan), 유진 블레이크(Eugene Blake), 듀드 F(Dude F)가 플레이했다. 듀드 F는 손즈(S.O.N.S)의 과거 디제이 네임이다.

B: 지금도 라운지에서 그 이름으로 가끔 틀더라.

그로부터 4년이 지났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B: 나는 하우스 오브 반스(House of Vans), 보일러룸(Boiler Room) 협업을 위해 미국 시카고, LA를 투어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즐겁게 투어한 기억이다. 또 미국에서 SCR에 대한 반응이 생각보다 좋기도 했다. 의외로 상당히 많은 사람이 알아주고 있었다. LA 한인 커뮤니티는 우리를 재밌는 사회현상으로 여기며 자랑스럽게 소개하기도 하더라. 자기네들의 고향에서 멋진 일을 하는 친구들이라고 자랑했다. 그때 우리가 멋진 일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S: 나는 한남 윌로비에서 보일러룸 파티를 프라이빗하게 진행했을 때가 기억난다. 우리끼리 재밌게 놀았다.

B: 우리 스튜디오에서 송출한 방송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풀코스(POOLCOURSE)가 기억에 남는다. 디제잉과 함께 짜장면, 탕수육 시켜놓고 먹방 콘텐츠를 진행했다.

POOLCOURSE / 이미지 출처: SCR

4년간 꾸준히 방송할 수 있던 원동력이 있나?

R: 나는 아티스트가 우리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 원동력이었다.

S: 난 되려 큰 의미부여나 생각 없이 진행해서 꾸준히 할 수 있었지 않나 싶은데?

B: 나는 디제이 신을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운영한 것이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2016년 당시엔 디제이를 소개하는 매체가 부족했다. 그러나 우리가 생기면서 그 디제이들이 다양한 장르적 실험을 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건 나의 이야기기도 하다. 나를 비롯하여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디제이들이 설 수 있는 채널이 많이 부족했다.

SCR과 함께 성장한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R: 바밍타이거(Balming Tiger)의 산얀(San Yawn). 그는 바밍타이거로 활동하기 직전에 수요일의 남자라는 이름으로 SCR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또 폴른스(Fallens), 코커(co.kr)가 진행하던 프로그램들 역시 많은 디제이 발굴에 기여했다. 이렇게 디제이들과 함께하고, 새로운 디제이를 데뷔시키며,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게 우리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보울컷의 사명감 덕분일까. SCR은 로컬 디제이 공동체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S: 그렇긴 하지. 서로 초면이던 디제이들도 우리를 통해 팀업하는 경우도 많이 봤고, 클럽을 운영하는 분들이 서로 만나는 장면도 많이 봤다.

다양한 색깔의 서울 내 여러 베뉴 사이에서 SCR은 로컬 클럽 신의 커뮤니티, 교차로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어떤 스타일의 음악이 디제이들 사이에서 많이 플레이되는지 역시 가장 잘 알고 있을 듯하다.

B: 로컬 디제이 풀이 넓어졌고, 이에 따라 방송 사이클 역시 활발해져서 통계적으로 쉽게 단언할 수 없는 것 같다. 다만 우리 셋 중 누구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지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이 갈리는 것을 자주 봐왔다. 예를 들면 리처드에게 연락하는 경우는 UK 스타일의 개러지가 많았고, 나에게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는 하우스, 테크노 스타일, 슬기에게 연락하는 경우는 가끔 밴드도 있고. 패션 쪽에 있는 친구들도 있고 좀 다양한 것 같았다.

S: 아무래도 디자인에 연관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아니면 리처드와 보울컷에게 선뜻 말 걸기가 두려운 경우에도 나한테 먼저 연락한다.

최근 우사단에서 녹사평으로 스튜디오를 이전했다. 이태원을 벗어나지 않는 이유가 있나?

B: 사실 2년 전부터 을지로의 스튜디오를 알아봤다. 내가 알아볼 때는 을지로에 꽤 괜찮은 공간이 많았다. 그러나 리처드와 슬기가 반대했다. SCR은 세계로 뻗어가는 인터넷 라디오 커뮤니티지만, 을지로는 너무 한국적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만의 이너서클이 될 것을 우려해서 다시 이태원 근방에 자리를 알아보다가 지금의 자리에 스튜디오를 열게 됐다.

스튜디오 확장 후 라디오와 동시에 마실 거리도 판매하고 있다. 새 스튜디오는 이전과 어떤 것이 바뀌었나?

S: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좀 더 쉽게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이 된 것 같다. 우사단로 스튜디오는 소수의 디제이와 그들의 친구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너무 구석진 곳에 있어서 찾기도 힘든 반면에, 지금은 누구나 찾아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접근성 좋은 공간이 되었다. 지나가는 이곳 주민들이 “뭐 하는 곳이에요?”라고 묻기도 하고. 찾는 사람들의 나이대가 다양해진 것이 눈으로 보일 정도다.

녹사평 스튜디오로 옮긴 뒤, 주변 가게와 함께 협업 파티를 개최하는 모습도 지켜봤다. 우사단에서는 불가능한 협업이었나?

S: 우사단로는 알다시피 주변에 UPP와 SCR밖에 없어서 불가능했다. 사실 근래 주변 가게들과의 협업은 코로나19로 활발하게 열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큰일 났다”, “너무 힘들다” 등의 이야기로 다들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이니까, 어떻게 하면 서로 도울 수 있을지를 생각하다가 팝업을 열게 됐다.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작년까지는 미세먼지, 평화 등의 사회적 이슈를 클럽 파티로 풀어내려는 움직임 또한 있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S: 한국 일반 대중은 클럽 신을 심각한 문화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클럽이 마치 음지, 어두운, 건전하지 못한 문화로만 인식되는 것 같은? 그래서 좀 더 양지로 나갈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음악으로 하나 될 수 있다는 전제 역시 깔린 것 같았다. 그래서 SCR도 음악으로 사회 문제를 직면하고 조금 보탬이 되고자 했던 것 같다. 또 미세먼지와 기후 변화를 일찍이 감지하고 이를 막기 위한 캠페인이 이미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SCR은 작년, 미세먼지 파티 수익을 보육원에 공기청정기로 기부하기도 했다.

B: 사회 문화를 해결하려는 음악적 펀드레이징이 해외에서는 활발히 일어나는 반면, 한국은 룸 컬처에 가깝다. 파티를 예로 들면 한국은 집에 사람을 초대해서 파티를 즐기는 문화가 생소하다. 되려 술 먹고 2차로 노래방을 많이 찾지. 반면 해외에는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즐긴다. 이런 근본적인 문화의 차이점을 클럽 신으로 풀어보고 싶었지.

R: 지금은 코로나에 포커스를 두고 있지만, 미세먼지, 평화 등 이미 언급할 수 있는 이슈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 수많은 이슈 중에서도 우린 어떤 이슈를 다룰지, 또 긍정적인 효과를 끌어낼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멈춘 다소 정체된 듯한 댄스 음악 신이다. 반면 SCR은 활기를 찾은 것 같은데, 코로나 전과 코로나 후 온라인으로 파티를 진행하고 싶다는 연락을 실제로 많이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B: 실제로 정말 많이 받는다. 특히 해외에서 많은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 예전의 경우는 해외 어느 디제이가 한국의 어느 베뉴에서 플레이할 계획을 함께 전달받았지만, 지금은 어느 온라인 채널을 통해 플레이할 예정인데 SCR에서 송출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메일이 많다.

해외 디제이의 온라인 방송을 송출하기도 했나? SCR에서는 본 적이 없었다.

B: 우린 그런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SCR은 분명 온라인 방송 기반이긴 한데, 스튜디오가 녹사평으로 이전하고, 이제는 오프라인 공간으로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방송이 있는 날엔 녹사평 주민들이 많이 찾아오는 편이라.

S: 코로나 초창기엔 사람들이 대리만족을 위해 가상 파티를 많이 찾아갔지만, 이내 괴리감을 느낀 것 같았다. 직접 경험하고 체험할 수 없다는 것에 실망하고 스튜디오를 찾는 것 같다.

R: 과거엔 레코드 관계자, 혹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프로모터가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방송이 끝나고 그날 플레이한 디제이의 정보를 묻는 이메일 역시 많았다. 코로나에서 비롯된 새로운 형태의 부킹 메일이라고 생각한다.

B: 아무래도 해외와 온도 차이가 있어서 그런 부킹 메일이 오는 것 같다. 해외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우리는 마스크만 착용하면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 않나.

코로나 이후, 다들 온라인으로 눈을 돌리는 와중에 라디오 믹스셋 채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S: 나는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디제이 신을 우리가 독점할 생각도 없고, 또한 클럽 신을 모든 부분을 커버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생겨난 채널들이 꾸준히, 지속해서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전주 스크램블(SCRAMBLE)과 같은 비서울권 지역의 언더그라운드 믹스셋 라디오 채널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B: 나 역시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소개하지 못한 디제이를 새롭게 생겨가는 채널을 통해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또 그들로 인해 우리는 우리 색깔을 유지할 수 있기도 하다. 다만 다양한 라디오 채널들이 서로 교류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다.

코로나 이후에 영국의 라디오 방송 린스 FM(RINSE FM)과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R: 린스 FM과 협업은 코로나 이전부터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아시아 투어를 함께 계획하고 있었으나 막상 시작하려 보니 코로나가 장기화되어서 투어를 못 하게 되었다. 따라서 지금 함께하는 협업은 우리가 계획한 투어의 온라인 버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B: 주변에서 보일러룸을 벤치마킹했는지 많이 물어보는데, 사실 우린 린스 FM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따라서 린스 FM이 SCR을 아시아 콜라보레이터로 생각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R: 린스 FM은 OG다. 그리고 나 역시 한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린스 FM으로 소개하는 일이 영광이라 생각한다. 린스 FM 유튜브 채널 메인에도 우리의 플레이리스트가 앞에 자리하고 있어 뿌듯하기도 하다.

S: 린스 FM을 비롯해서 리처드의 주변 환경이 너무 부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린스 FM과 같은 신과 음악을 듣고 자랐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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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스 FM과의 협업이 온라인 조회 수에 도움이 되었나?

B: 아직은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떤 파장과 피드백이 다가올지 기대도 하고 있다.

최근 바이닐 시장이 성장하며 바이닐로 플레잉하는 디제이들 또한 많이 늘었다. CDJ와 바이닐 플레이가 이 조회 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나? 요즘의 일반 대중들은 CDJ에 익숙하다 보니 바이닐 플레이가 신기할 것 같은데?

S: 온라인 방송에선 차이점을 못느낀다. 그러나 오프라인 이벤트에서는 바이닐 플레이가 하나의 퍼포먼스로 받아들여져서 사람들이 좀 더 좋아하고 관심 있게 보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았다.

B: 나도 바이닐과 CDJ를 함께 사용하지만, 바이닐 플레잉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경우를 제외하곤 딱히 고집하진 않는다. 다만 바이닐 신을 지켜보며 느낀 것은 바이닐 플레이어들의 컬트가 있는 것 같다 생각했다. 그들만의 컬트로 바이닐 콜렉터들이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바이닐 시장이 성장하고, 공장이 아시아에 많이 생기고 있는 긍정적 상황 속에서도 한국에서 바이닐을 직접 찍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이에 SCR은 아티스트와 협력하여 바이닐을 프레싱하는 아티스트를 많이 돕고 싶다. 우리나라 바이닐 셀링 마켓이 조금 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편 보울컷은 최근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토크쇼, 리뷰 방송을 진행하고 있기도 한데, 왜 SCR이 아닌, 개인 유튜브 채널이었는지가 궁금하다.

B: 사실 로컬 아티스트를 좀 더 서포트하고자 SCR 콘텐츠를 기획했다. 근데 SCR은 토크 콘텐츠가 정말 많이 안 팔린다. 인터내셔널로 뻗은 채널이라 한국어 토크쇼에 큰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개인 채널로 방송하게 되었다. 실험적인 의미도 있다.

S: 토크쇼를 위해 공들인 것에 반하여 조회 수가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는 게 아쉽다.

B: 우리와 같은 라디오 채널을 찾는 사람들의 행동 패턴은 믹스셋을 배경음악으로 깔아두고 다른 일을 하는 등으로 콘텐츠를 소비한다더라. 특히나 SCR은 믹스셋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으니, 토크쇼의 경우는 조회 수가 많이 저조한 편이다. 더군다나 외국인 시청자가 많은데 한국어 토크는 못 알아 먹으니, 더욱 저조한 것 같다.

S: 믹스셋 중간중간에 한국어로 대화하는 콘텐츠는 듣기 좋다는 리액션을 보내주기도 하며 많이들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예 토크를 진행하면 다들 나가버린다.

SCR의 향후 계획은?

S: 사실 코로나 시대에 망하지 않고 꾸준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멋진 포부나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엔 당장 현실이 어려우니 올해를 무사하게 넘기는 게 내 계획이다.

B: 나는 SCR이 아티스트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플랫폼으로 조금 더 성장했으면 한다. 그래서 아티스트를 어떻게 큐레이션할지 많이 고민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어떻게 보여지는 지, 그리고 조회 수는 얼마나 나오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다. 또 SCR 블로그도 재개됐다. 블로그를 통해 더욱더 좋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R: 지금과 같은 방송을 많이 할거고, 비즈니스 파트너, 디제이와 아티스트와 함께할 수 있는 행사도 계속할 예정이다. 또 최근 SCR을 통해 다양한 아티스트가 머천다이즈를 팔고 있다. 머천다이즈 판매 역시 아티스트에게 중요하니 SCR이 마켓플레이스 역할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고맙게도 최근 주변에서 많이 도움을 주고 있고, 아티스트들 역시 도움을 받았다는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Seoul Community Radio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에디터 │ 황선웅
포토그래퍼 │백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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