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픽스드 기어 바이크(Fixed Gear Bike : 고정 기어 자전거)의 열풍은 거셌다. 군더더기 없는 자전거 특유의 깔끔함과 ‘메신저(Messenger)’라는 독특한 기원에서 시작된 이 문화는 새로운 문화를 갈망하던 사람들 마음속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수 년 후, 픽스드 기어 자전거는 순식간에 거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한때의 유행이라는 조롱어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픽스드 기어, 자전거 문화를 위해 묵묵히 한 길을 걷고 있는 남자, 박하천을 만났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는 박하천이라고 한다. 현재 ‘스테이트 바이시클 컴퍼니(State bicycle Co.)’, ‘에쏘 USA(Essor USA)’, ‘크림 서울(Cream Seoul’), ‘티레벨(T-Level)’ 소속 라이더로서 활동하고 있다.
2007년 일본에서 본 픽스드 기어 바이크와 스키딩에 매료되어 자전거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픽스드 기어 바이크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을 텐데?
여기저기 웹 사이트를 방문하고 구글링을 통해서 자전거를 구입했다. 초창기에는 거의 혼자 탔다. 딱히 동호회 같은 활동은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전거를 타다 보니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가 있을까?
도균이 형님(권도균)이라고 내가 예전 다이스 샵에서 스폰을 받았을 때 큰 도움을 주신 분이 있다. 그리고 자이언트 코리아 소속의 방정호라는 친구도 아직까지 연락하면서 지내고 있고, 이제는 서로 윈-윈하기 위한 무언가를 찾고 있다.
과거 한국의 대표 픽스드 기어 크루 중 하나인 ‘서울 픽스드 기어(Seoul Fixed Gear)’ 소속에서 돌연 혼자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내가 하고자 했던 것과 팀이 추구하던 방향에 차이가 있었고, 일부 개인적인 문제도 있었다.
‘B-boy becomes a Man’은 어떤 영상인가?
‘B-boy becomes a Man’은 DK Shop과 ‘SEOUL got SOUL’이라는 주제로 영상을 만든 것이다. 제목처럼 비보이가 이제는 한 명의 남자로 거듭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B-boy라는 또 다른 이력이 눈에 띈다. B-boy 박하천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단순히 좋아서 시작했다. 춤은 나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솔직히 “비보잉을 하지 않았다면 과연 내가 자전거를 타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나에게 그동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하기 위해 겪어온 과정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는데 동의한다.
위 영상에서 춤과 자전거, 둘 다 지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지금은 어떠한가?
그때 당시만 해도 다 하고 싶었다. 욕심이 있었으니까. 아직도 종종 비보잉 영상을 본다. 무릎으로 고생했던 개인적인 사정도 있지만, 내가 떠난 진짜 이유는 슬럼프 상황에서 의무감으로 춤을 춰야만 했기 때문이다. 너무 힘든데도 연습을 해야 하고, 지쳤을 때도 연습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오히려 나에게 역효과로 나타났다. “이렇게까지 춤을 춰야 되나?”라는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때쯤 자전거를 탔는데 춤에서 느끼지 못했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힘들면 천천히 가면 되고 트레이닝을 할 때면 빨리 달렸다. 내가 어렸을 때 자전거 타던 그 기분을 하나 둘씩 떠올리게 되었다. 이제는 아주 가끔씩 기분이 내킬 때 춤을 추지만, 이것은 언제나 내 안에 포함되어 있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또 박하천하면 VM Project와 함께 제작한 영상 ‘Vital Moment’를 빼놓을 수 없다. VM Project와 어떻게 함께 하게 되었나?
VM Project의 범진이형(조범진)과는 막역한 사이였다. 같이 자전거를 타고 어울리다가 범진이형이 영상 작업을 제안했고 나 역시 흔쾌히 수락했다. 개인적으로 시기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영상이 잘 나왔고, 그 영상으로 인해서 나를 알아봐주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때마침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 픽스드 기어 챔피온쉽(Asia Fixed Gear Championships)’에 참가했는데 다른 참가자들이 나와 그 영상에 대해 이야기하더라.
그렇다면 이 영상이 박하천이 솔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건가?
그렇다. 덕분에 재미있는 일도 많이 했다. VM Project는 내 인생의 첫 번째 터닝 포인트라 생각한다. 범진이 형이 처음 나에게 말을 걸어준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너무 고맙다.
2011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 픽스드 기어 챔피언쉽’이 라이더로서의 첫 대회 경험이었나?
그렇다. 내 첫 번째 레이스였다. 동시에 첫 번째 해외 경험이기도 했고.
당시 ‘앨리캣 레이스’에서 20위에 랭크된 것으로 안다. 150명 가까운 참가자에서 상당히 선전했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어땠나?
정확히 말하자면 22위다. 솔직히 레이스에 참가하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한 기분이 들었는데, 레이스를 끝내고나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많은 친구들이 생긴 것이 가장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후 뉴욕에서 열린 ‘Red Hook Crit’이나 ‘Red Bull Ride + Style’, 푸에르토리코의 ‘Fijate 2014’ 등 해외 활동으로 종횡무진 달렸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 한국인이라서 외로운 싸움이 됐을 것 같은데.
솔직히 영어 못한다. 아니, 아주 못한다. 하지만 언어적 문제는 비행기를 탈 때 빼고는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 친구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한국어를 못하는 것처럼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다들 같은 자전거를 타고 문화를 좋아하니까 금방 친구가 돼서인지 쉽게 어울렸고, 함께 자전거를 탔다.
반대로 생각하면 다른 선수들의 눈에 한국인 박하천은 굉장히 특이한 라이더였을 것 같다.
맞다. 그들 눈에는 내가 정말 특이했을 것이다. 체구도 작고, 문신도 많은데 서양인이 아닌 스테이트 소속 라이더니까. 뉴욕 투어 중 한 스프린트 대회에 참가했는데, 로컬 라이더들이 레이스 할 때는 소리 지르고 모여서 보더니 내가 자전거 위에 올라타니까 쓱 빠지더라. 그런데 레이스에서 3등을 하고 속도도 괜찮게 나오니까 애들이 나한테 몰려들었고, 어디서 왔냐고 묻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했다. “너 혹시 레드훅 대회 때문에 온 거야?”라며 다시 묻더라. 한국이라면 엄청 먼 나라인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며 큰 관심을 보였다.
최근 스케이트보드 신을 보자면 해외 프로 스케이터들이 잇따라 한국을 방문했고, 서로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해외의 바이크 라이더들은 한국에 관심이 많은가?
해외 라이더들은 한국에 한 번쯤은 꼭 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특히 밤에도 꺼지지 않는 네온 사인을 보고 놀란다. 길에서 자유롭게 술을 마시는 것도 부러워한다. 솔직히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가 다양한 나라에 가보고 싶은 것처럼 그들 역시 여행지로서의 한국에 호기심을 보이는 것 같다.
자전거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자전거를 타면서 사진 찍는 것도 배웠고, 무엇보다도 정말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춤추면서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볼 수 있었다. 각종 해외 행사에 참여할 때, 어딜 가더라도 차를 쓰지 않고 자전거로 이동했다. 자전거로 여행하다보니 일반적으로 알려진 명소보다 더 깊숙한 부분까지 볼 수 있는, 그런 재미가 있다. 길 가다가 눈에 띄면 잠시 멈춰서 사진을 찍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우울증도 자전거로 인해서 치유됐다고 생각한다.
현재 스테이트 바이시클 컴퍼니, 티레벨, 크림 서울, 에쏘 USA 많은 크루, 회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선 크림 서울에 대한 소개를 하자면?
크림 서울은 진섭이형(신진섭) a.k.a JNSB이 만든 싸이클링 브랜드다. 앞서 얘기했던 도균이형 덕분에 알게 된 분인데, 올해는 이 형님과 함께 활동하면서 로드 바이크의 재미를 많이 느꼈다. 처음 스테이트 바이시클 컴퍼니의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그 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결정적으로 꼭 서로 무언가를 바라지 않은, 인간적인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내가 갈피가 안 잡힌다 싶을 때 항상 친형처럼 조언도 많이 해주시는 분이다.
에쏘 USA는 어떤 곳인가? 이름이 생소하다.
미국에 있는 카본 휠 회사인데, 아직 한국에서는 크게 알려져 있는 브랜드는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 미국에서 열린 인터바이크쇼에서 베스트 퍼포먼스 상을 받기도 했다.
각 부분에서의 활동이 활발한 만큼 스폰서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도 있을 것 같다.
스테이트 바이시클 컴퍼니에서 자전거, 에쏘 USA에서 카본 휠, 티레벨에서 의류, 크림 서울에서 싸이클링 웨어 등을 스폰 받는다. 다행히도 각 업체들끼리 특별한 제약은 없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이고 나를 응원해주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티레벨은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어린 친구들만의 브랜드로 이미지가 굳어진 듯한데?
TV 프로그램, 드라마 때문에 가방의 이미지가 좀 그렇게 돼버린 게 있긴 하다.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티레벨은 자전거로 시작한 브랜드고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거다. 내가 지금 티레벨과 4년째 계약하고 있는데, 그들은 자전거 타는 사람을 꾸준히 서포트 하고 있다. 국내에서 티가 안나니까 조금 답답한 마음도 있는데 외국에서는 정말 인정받는 브랜드다. 어떤 일이 있었냐면 해외 대회에 이 가방을 메고 갔더니 외국 친구가 이 가방 어디서 났냐면서 자기가 너무 가지고 싶어 하던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유명 메신저 크루들도 가끔 SNS에 티레벨의 가방에 대한 극찬을 한다. 자전거로 시작해서 지금도 그 오리지널리티를 잃지 않은, 고유한 역사와 진정성이 있는 브랜드다.
과거 스폰서 쉽 관계에서 현재는 티레벨의 브랜드 매니저로도 일하고 있지 않는가. 브랜드 매니저의 입장에서 그리는 미래의 티레벨은?
기존의 티레벨은 티레벨 자체의 정체성은 잘 유지해왔지만 외부적으로 많이 노출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그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우리 가방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개개인의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꾸임 없는 자연스러움, 그것을 좀 더 패셔너블하게 풀어낼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스테이트 바이시클 컴퍼니에 대한 소개도 부탁한다.
조금 과장해서 스테이크 바이시클의 로고를 문신으로 새기고 싶을 만큼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우선은 ‘허난(Hernan)’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현재 같은 스테이트 소속이자 과거 매쉬 SF 출신의 라이더인데 그 친구가 나를 추천해줘서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스테이트 바이시클에 합류한 뒤로, 자전거에 대한 내 생각이 80% 이상 변했다. 이 자리를 빌어 정말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박하천이라는 이름에 ‘프로 라이더’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스스로 프로 라이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불리더라. 스테이트 친구들에게 가장 고마운 점은 내 이름 앞에 프로 라이더라는 호칭을 붙여준 것이 아니라 그 친구들로 인해서 자전거가 얼마나 더 재미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라이딩 스타일은 무엇인가?
그냥 재미있게 탄다. 평소 라이딩 스타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미국 여행 중에 샌프란시스코를 헤집고 돌아다닌 적이 있었는데 ‘러스’라는 친구가 내가 달리는 모습을 보더니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며 좋아했다. 본토라고 말해야 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쪽 메신저 친구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방향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국내에서 참여한 대회는 ‘Red Bull Mini Drome’이 유일하다. 프로 라이더라고는 하지만 행사 참여도 미미하고 성적으로 따져도 크게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나는 내가 타고 싶은 대로 탄다. 트레이닝도 꾸준히 하고 있고, 성적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 대회를 나갈 때마다 항상 국내 라이더들에게 들었던 말이, “나도 내년에 같이 나가자”였다. 정말 그 말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비행기 좌석에는 항상 나 혼자였고, 아무도 없었다. 누구에게 존중 받기 위해 타는 것도 아니고,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춤을 추다가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탄 거고, 자전거를 타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타고 싶어서 샌프란시스코로 간 거고, 뉴욕에서 타고 싶으니 뉴욕으로 간 거다. 자연스럽게, 다만 허투루 하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할 뿐이다.
다방면의 국내외 경험에서 비추어볼 때, 해외의 라이더와 한국의 라이더에게서 가장 도드라지는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그들은 항상 즐겁게 탄다. 픽스드 기어, 로드 바이크. 마운틴 바이크, 등등 자전거의 종류와 관계없이 무조건 재미있게 탄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타면 먼저 나오는 말이 “걔 잘 타?”가 아닐까?
지난 8월 ‘Bike Makes Me Happy’라는 이름의 사진전을 개최했는데 어땠나?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시한 사진에는 선수가 땀에 젖어 있는 모습, 픽스드 기어지만 친구들과 어울려서 레이스를 하는 모습도 있었고, 반면에 헬멧도 안 쓰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 등 다양한 사진들을 전시했다. 픽스드 기어, CX 바이크, 트릭 바이크, 로드 바이크, 프로 레이서 구분 짓지 않고 그냥 하나의 ‘자전거’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다만 아쉬웠던 부분은 서울에서만 진행해서 다른 지역의 라이더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인천 아시안 게임과 관련해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다.
이번에 우연하게 말레이시아의 한 선수와 연이 닿았다. 그 친구가 경기 전 안장이 부러졌는데, 부품을 구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 친구의 지인이 SNS로 날 태그(Tag)했고, 필요한 부품을 구해서 택배로 보냈는데 그게 또 딜레이가 돼버렸다. 어쩔 수 없이 직접 택배회사로 가서 물건을 받아 선수촌까지 달렸다. 겪어본 사람만 알겠지만 나도 뉴욕에서 부품을 제때 구하지 못해 고생한 경험이 있어서 그 선수의 절박한 심정이 이해가 가더라. 결국 그 친구는 동메달을 땄고, 내게 고마웠는지 또 다른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줬다.
박하천에게 자전거란 무엇인가?
재미와 건강. 스테이트 바이시클의 인스타그램 문구인 ‘Bikes. Photography. Fun’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자전거를 타면서 우울증도 고쳤고, 담배, 술도 끊었다. 예전에는 담배를 엄청나게 피웠다. 솔직히 말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하고 싶다면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 자기가 원하는 걸 하려면 그만큼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달라. 그리고 이제 막 자전거를 접한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2015년은 ‘Fixed Gear Tour’를 위해 모든 일정을 맞춰놓았다. 첫 번째로 아리조나, 그리고 뉴욕에서 열리는 ‘Red Hook Crit‘에 한 번 더 도전할 생각이다. 추가로 도쿄 투어도 생각 중이다. 자전거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지 꾸준히 생각하고 있다. 다행히도 2014년보다 재미있는 일들이 더 많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리고 내가 이제 막 픽스드 기어를 접하는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할 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오래 재미있게 타자!
진행 | 백윤범
텍스트/편집 | 백윤범, 권혁인
사진 | 김도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