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tage Floss 이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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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실은 최고의 원단을 만들고 좋은 원단은 최고의 옷을 만든다.”라는 가치 아래 헤리티지 플로스(Heritage Floss)는 2011년부터 ‘Sport & Casual’을 바탕으로 한 라이프 스타일 웨어를 전개해왔다. 헤리티지 플로스의 컬렉션은 현재의 유행보다도 만드는 이의 고집을 반영한다. 원단부터 디자인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아서 헤리티지 플로스의 의류를 제작하는 디렉터, 이윤호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브랜드 헤리티지 플로스(Heritage Floss)의 디렉터 이윤호다. 휴먼트리에서 베리드 얼라이브(Buried Alive), 오리지날 컷(Original Cut) 디자이너로 일했고, 지금은 보다시피 헤리티지 플로스로 독립해서 옷을 만들고 있다.

 

휴먼트리에서 어센틱 웨어, 오리지날 컷의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그 연장선이 헤리티지 플로스인가?

그 당시에는 오리지날 컷과 헤리티지 플로스를 병행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혼자서 두 가지 일을 진행하다가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고, 고심 후 헤리티지 플로스를 끌고 가기로 결정했다. 이후 휴먼트리에서 독립해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20141210_interview_022012 ‘Original Cut’ Pct 컬렉션

베리드 얼라이브와 헤리티지 플로스는 브랜드의 색깔이 많이 다른 것 같은데 독립적인 관리가 잘 됐었나?

처음에는 베리드 얼라이브의 생산 파트로 시작했다. 디렉터 옥근남의 그래픽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디자인을 할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디자이너에 참여하게 되었다.

 

굉장히 깐깐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만나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실제 본인은 어떤 성격인가?

많이 듣는 얘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더라. 난 언제나 오픈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사람들이 먼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먼저 다가가서 알려주는 것도 웃기지 않나. 하하. 그래도 이렇게 찾아오면 항상 친구처럼 대하려고 한다. 내가 하는 게 최고고 너는 몰라도 돼, 하는 식의 마인드는 절대 아니다. 쓸 데 없이 고집을 부리는 친구들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 하하.

 

그래도 일에 있어서는 굉장히 깐깐한 것 같다.

맞다. 근데 요새는 이 고집 때문에 내가 힘들다. 하하. 당신들도 마찬가지지 않나?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지만, 그러다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굉장히 힘들어진다. 세상과 어느 정도 타협도 해야 하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들이 항상 고민이다.

20141210_interview_03  Heritage Floss 2014 F/W Collection

혼자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이 힘들지 않나?

처음에는 순수하게 디자이너로 일했다. 지금은 디자인과 전반적인 디렉팅을 겸하고 있는데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영업과 마케팅은 내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시스템 자체가 그렇지 않나? 다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려면 어떤 분야든 그 안에서 좀 더 멋있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긍정적인 태도 역시 중요한 것 같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접점을 찾는 것인가?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지금까지 헤리티지 플로스의 오리지널리티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은 아니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다보면 가끔 우울해진다. ‘도대체 내가 뭘 하는 거지?’라고 스스로에게 의문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러나 의류 산업 속에서 나는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 일부분이라도 멋있게 만들어서 많이 보여주고, 다양성을 심어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유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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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디자인과 섬유를 같이 공부했다고 들었다. 브랜드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되는가?

배울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여실히 느낀다. 전공 덕택인지는 몰라도 헤리티지 플로스를 처음 기획할 때 생각했던 것은 기본적인 코튼에서 하이테크 원단까지 점점 레벨을 올리는 방식이었다.

 

옷이 아니라 원단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한국에서 쓸 만한 코튼을 찾기 어려워서 직접 제작했다. 그게 헤리티지 플로스의 시초다. 난 원단 라벨을 만들고 싶었다. 예를 들면 해리스 트위드처럼 원단 자체를 생산, 유통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헤리티지 플로스 초기에는 다른 브랜드를 운영하는 디자이너가 내 원단을 구매할 수 있는지 문의한 적도 있었다. 사실 헤리티지 플로스는 원단을 브랜드화해서 디자이너들에게 공급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20141210_interview_05Heritage Floss 2014 Summer Collection ‘Last Resort’

그런데 여름 시즌(Last Resort)에서는 다양한 소재로 컬렉션을 꾸렸다. 인상 깊었지만 기존 팬들의 반발도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난 코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이기도 했다. 다시 코튼을 포커스로 잡고 브랜드를 유지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하하. 여름 시즌이 끝나자마자 가을/겨울 시즌에 매달렸다. 원래는 블레이져, 더플코트, 블루종, 울 팬츠까지 기획하고 최종 샘플까지 만들었지만, 결국엔 다 드랍시켰다. 다운파카를 제외하고는 전부 코튼 베이스의 옷을 제작했다.

 

오리지날 컷이 스웻 셔츠와 스웻 팬츠를 만들고 나서 2년이 지난 지금, 챔피언 브랜드의 열풍과 함께 타 도메스틱에서도 어센틱 의류가 봇물처럼 나왔다.

예전부터 앞서나간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할 때는 큰 이슈가 안 됐다. 많이 팔리지도 않았고. 하하. 내가 만든 옷은 몇 시즌이 지나고 나서야 사람들이 찾는다. 정작 나는 트렌드를 따져가면서 컬렉션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뭐가 빠르고 느린 건지 판단이 안 설 때가 많다. 지금 시기에 어떤 옷이 나오면 멋있을 것 같은지 따져보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 뿐이다.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지금 시장 자체가 빈티지 아카이브를 베이스로 의류를 전개하고 있지 않나. 요즘 생각하는 브랜드의 경쟁력은 아카이브다. 아카이브가 많이 쌓여야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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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식으로 빈티지 아카이브를 쌓았나?

내가 오리지날 컷에서 제작한 스포츠 재킷이나 어센틱 웨어 역시 빈티지 아카이브 중 하나였다. 이번 시즌 제작한 다운파카 역시 그렇다. 재밌는 점은 60-70년대에는 공장에서 한 디자인의 패딩을 양산하면 노스페이스, 에디바우어 같은 브랜드에서는 스냅, 컬러, 패브릭만 바꿔서 출시했다. 이게 옛날 오리지널 빈티지 방식이다. 요즘에는 책, 인터넷 등 정보의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그것을 자신의 아카이브로 만들어서 옷을 제작한다. 일본 레플리카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이런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의 더블 탭스, 휴먼메이드도 이와 비슷하고, 이외에도 유사한 브랜드들이 굉장히 많다.

 

일본은 확실히 데이터가 방대한 것 같다. 세세한 것 하나하나 까지 놓치지 않는 섬세함이 있다.

그 친구들에게는 굉장히 보편적인 이야기다. 내 일본인 친구 역시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심지어 패션을 전공하지 않는 친구들도 그렇다. 일본은 원체 정보가 많고, 문화가 튼튼하게 형성되어 있다. 일본과 비교하자면, 내가 한국에서 헤리티지 플로스를 전개하는 건 사실 힘든 길이다. 나는 단지 좋아서 하는 거지만. 결국 레플리카라고 해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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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보니 헤리티지 플로스 키택(Key Tag)을 실제 미국 키택 제작 업체에 발주를 해서 제작했던데.

크게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냥 미국 모텔에서 사용하는 단순한 키택이다.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를 어필하고 싶은 욕심에 진행했었다. 근데 몇 달이나 지나서 배송되더라. 나도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헤리티지 플로스의 로고는 직접 만들었나?

베를린으로 여행을 갔을 때, 1930년대 발행된 타이포그래프 잡지를 여러 권 사왔다. 책 속에 있는 오가닉, 코튼을 바탕으로 한 브랜드 로고를 참고해서 지금 헤리티지 플로스의 로고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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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를 디자인할 때는 어디서 영감을 얻는가.

나 같은 경우에는 영화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내가 생각한 시즌 콘셉트와 비슷한 시대의 영화를 보고 그 영화의 분위기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번 S/S 시즌의 라스트 리조트는 ‘리플리’라는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서, 당시 유행했던 패턴과 패브릭, 소품을 많이 참고했다. 라스트 리조트라는 말이 마지막 휴가, 마지막 방편이라는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되는데 영화 역시도 비슷한 맥락이다. 브랜드 디렉팅은 영화 제작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디렉팅을 하고 콘셉트를 잡고,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 시즌마다 영화 한 편을 제작한다는 생각으로 컬렉션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가 있다면?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는 코튼 클럽(Cotton Club)이 기억에 남는다. 3부작까지 있는 굉장히 긴 영화다. 코튼 클럽은 1930년대 뉴욕에서 유명했던 나이트클럽이다. 오로지 흑인만이 공연할 수 있는 코튼클럽에 끼 있는 백인이 공연을 하게 되고, 결국 클럽을 소유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이 영화에는 당시 시대상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 미국 영화는 마치 그 시대를 옮긴 듯, 당시에 사용했던 장신구와 헤어스타일, 화장법까지 요소요소에서 디테일을 찾을 수 있다. 나는 항상 이런 디테일이 모여서 큰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팀 배드조이스카웃(Team Badjoyscoutt)의 뮤직비디오에서 헤리티지 플로스의 의류가 등장한다. 잘 어울리기도 했고 신선했다.

배드조이스카웃의 프로듀싱을 맡은 고재경이라는 친구의 부탁으로 옷을 협찬하게 되었다. 현장에 가본 적은 없었는데, 결과물을 보니 잘 만들었더라.

 

빈티지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빈티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빈티지는 거짓이 없고, 1차원적이다. 필요한 원단만을 사용하고 필요한 디테일만을 추가한다. 그래서 어느 주머니에는 뭘 넣어야 하는지 매뉴얼처럼 정해져있다. MA-1 재킷 왼쪽 팔에 비행 일지와 펜을 넣는 주머니가 있는 것처럼. 그런 단순함이 빈티지의 매력이다. 또한 당시 만든 옷을 보면 그 시대상을 알 수 있다.

 

마음에 드는 빈티지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노하우가 있다면.

그저 많이 보는 수밖에 없다. 많이 보는 만큼 자신만의 감성이 생기는 거다. 내가 사는 빈티지 오브제가 다른 사람에게도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디서 만들었고 언제 만들어졌는지 따지는 수집가들도 많지만 나는 그냥 내가 흥미롭다고 느껴지는 오브제를 산다. 사람들이 어떤 게 좋으냐고 물어볼 때도 난 그냥 “네가 좋으면 사는 거지” 라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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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플로스의 향후 계획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다.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최종목표다. 우리 브랜드의 가치를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공유한다는 말은 이미 1800년대의 이야기다. 그로부터 200년이 넘게 흘렀고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또한 컬렉션이 나오고 시간이 지났을 때, 헤리티지 플로스의 가치가 더욱 빛났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헤리티지 플로스 이외에 개인적인 목표를 말해 달라.

하고 싶은 것은 정말 많다. 그래서 하나씩 버리고 있는 중이다. 하하. 나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컬렉션을 진행하고 싶다. 그리고 좀 더 프로페셔널한 사람이 되고 싶다. 헤리티지 플로스 샵을 여는 것도 생각 중인데, 아무래도 샵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아마도 샵을 열게 된다면 나는 하루 종일 거기에 있을 지도 모른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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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ㅣ 오욱석 권혁인

편집 ㅣ 오욱석 권혁인

사진 ㅣ 김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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