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C ELMS

찬란한 황금기를 보내던 2000년대 초반의 슈프림(Supreme)부터 지금의 파워스 서플라이(Powers Supply)까지, 에릭 엠스(Eric Elms)의 손이 닿은 브랜드는 당대 가장 섬세하고 장난스러운 디자인을 입는다. 흉내 낼 수 없는 색과 선으로 티셔츠 위에 독특한 유머를 담아내던 그는 어느덧 디자이너뿐 아니라 파트너스 & 아더스(Partners & Others)라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디렉터이자 아티스트가 되었다. 분명,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전 세계의 디자인 트렌드와 줄다리기하는 그에게 ‘방향성(Direction)을 제시하는 자’라는 디렉터의 호칭은 맞춤옷처럼 잘 어울린다. 에릭 엠스가 걸어온 길과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다음 스텝은 무엇일지, 아래의 짧은 대화를 통해 유추해 보시길.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나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아티스트 겸 디자이너다. 미술 활동 외에도 파트너스 & 아더스라는 디자인 스튜디오와 내 브랜드 파워스 서플라이를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류가 아픔을 겪고 있다. LA도 마찬가지일 텐데, 이러한 락다운의 기간 동안 어떤 생각을 했고, 무얼 하며 보냈는지.

집에서 벗어나서 머물 수 있는 나만의 스튜디오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스튜디오로 출근하는 행동이 일상을 규칙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고, 내창작 활동에도 분명 영향을 끼쳤다. 코로나 19와 최근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내 두뇌에 영감을 받을만한 공간을 남기지 않았다. 최근에야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조금이나마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여행, 미술 전시, 그리고 모든 종류의 인간적 소통과 만남이 그립다. 언제가 될진 모르나 코로나 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릴 뿐이다.     

시계를 뒤로 돌려 보자. 어린 시절 처음 길거리 문화, 서브컬처 같은 것들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나는 유년 시절을 샌디에이고에서 보냈다. 가장 어렸을 때는 스케이트보드 그래픽과 이미지, 그리고 스크린 프린팅으로 만든 부틀렉 티셔츠에 주로 영감을 받았지.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를 만났고 여름 동안 그의 차고 스튜디오에서 그의 에디션 프린트를 만들며 스크린 프린트 포스터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 후 뉴욕에 옮긴 뒤에는 브라이언 카즈(Brian KAWS)의 밑에서 몇 년 일하고, 프랫(Pratt Institute)에서 케빈 라이온스(Kevin Lyons)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을 통해 최종적으로 슈프림의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 그리고 SSUR의 러스(Russ)를 만났고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지.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거대해진 슈프림의 2000년대 초 그래픽 작업을 맡은 것으로 안다. ‘aNYthing’, ‘UXA’, ‘J-money’, ‘DQM’ 등 다양한 브랜드가 공존하던 시기다. 당시 슈프림의 디자이너로서 당시의 뉴욕의 스트리트 신(Scene) 또는 도시의 모습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당시가 재미있던 이유는 각 브랜드마다 그 오너의 개성에 따른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황금기를 누렸던 브랜드 모두 뉴욕 문화의 작은부분을 대표했으며 그와 연계된 활동, 친구, 인맥과 디자인 스타일까지 포괄적으로 아울렀다. 각각 분리된 문화 같았지만 멀리 보면 모두 하나로 포개져 큰 커뮤니티를 만들어냈지. 그 당시에는 모두 어떻게든 재밌는 일을 벌이려고 혈안이었던 시기여서 더욱 흥미로웠던 것 같다. 온라인 웹스토어와 인터넷이 있기 전이라 하나하나 직접 실험해보아야 하는 것 투성이였고 그렇게 다들 천천히 자연스럽게 성장해나갔다.    

당신이 아트 디렉션을 담당한 슈프림 매거진를 최근 다시 보았다. 그 잡지에 소개된 인물들을 보면 클로에 세비니(Chloe Sevigny), 아론 본다로프(Aaron Bondaroff), 테리 리차드슨(Terry Richardson) 등, 마치 모두 다 유명해질 것을 예견이라도 한듯한 화려한 라인업이다. 그 시절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좀 들려줄 수 있나.

최근에 과거 슈프림 디자인 사무실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당시 대여섯 명 규모의 작은 팀에 속해있던 사람 중 대다수가 지금 각자 분야에서 너무나 멋진 일들을 벌이고 있더라. 노아(NOAH)를 만든 브렌던 바베지엔(Brendon Babenzien), OAMC를 만들고 루시와 함께 질 샌더(Jil Sander)를 이끄는 루크 마이어(Luke Meier) 등을 보면 기쁜 마음이 드는 동시에 많은 자극을 받는다. 

당신의 브랜드 파워스 서플라이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처음 시작했을  목표한 바가 있었다면?

당시 다른 브랜드를 위해 그래픽을 만드는 일에 조금 지쳐있었다. 약 1~2년간 신이 전반적으로 개성을 잃은 듯 보였는데, 새로운 그래픽을 가지고 나타난 몇몇 친구들 덕에 다시 그래픽에 열의가 생겼지. 그들이 하던 작업이 적당히 거칠고 흥미로웠거든. 피터 서덜랜드(Peter Sutherland)와 도쿄의 즈머프(Zmurf), 스닉(Sneak, ohBlood) 같은 친구들. 처음엔 브랜드를 만들 생각은 없었고 그래픽 몇 개 제작해서 내 출판 사이트 앤드프레스(AndPress)에올리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내 스토어 몇 군데에서 관련 상품을 팔고 싶다는 요청을 보내왔고, 이름을 붙여 브랜드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래서 내 스튜디오가 있는 브루클린 파워스 거리(Powers Street)의 이름을 따 파워스 서플라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된 것이다. 딱 이 시점에 단발적인프로젝트에서 브랜드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다양한 브랜드를 위해 그래픽 작업을 진행했다. 디자인 작업과 브랜드 디렉팅 일을 병행하는 요즘, 달라진 것이 있다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나는 여전히 내 스튜디오에서 미술, 외주 디자인 그리고 개인 브랜드 모두를 진행하고 있다.  

파워스 팀에 대한 소개도 간략히 부탁한다직원은   정도 되고업무 배분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코어 팀은 꽤 규모가 작다. 실질적으로 나와 내 친구 로미오(Romeo) 둘이서 메인 파트를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크리에이티브와 디자인, 그리고 로미오는 세일즈, 생산, 비즈니스를 맡고 있지. 서로 각자의 영역을 넘나들고 협업하기도 하지만. 하지만 스토어에 있는 멋진 직원들도 우리의 식구이며, 그들은 컷앤소(cut&sew) 작업을 위해 새로운 사람들을 데려오고 있다. 우리와 함께 협업했던 사람들과 아티스트들도 우리의 가족이지. 

작업의 아이디어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파워스 또는 타 브랜드에 참여할 경우 어떤 방식으로 원동력이 생기는지 두 가지 케이스 모두 궁금하다. 

파워스는 내 브랜드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스튜디오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영감으로 녹여낼 수 있다.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모든 곳에서 온다. 되려 내가 만들고자 하는 동일 장르의 무언가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드물지. 티셔츠 디자인의 영감을 다른 티셔츠에서 받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 미술을 위한 아이디어가 발전되고 변형되어 그래픽을 위한 영감이 되는 방식이지. 나는 내 브랜드가 내가 스튜디오에서 경험하는 모든 요소의 혼합체로 느껴지길 원한다.    

자신의 다양한 그래픽에 ‘Kilroy was here’라는 유명 낙서를 포함하고 있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나는 그래픽 작업을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킬로이에 푹 빠져있었다. 실제로 빈티지 킬로이 인쇄물들을 오랫동안 수집해 오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그야말로 ‘그래피티 이전의 그래피티’를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아닌, 단순히 개인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그리는 자의식 없이 순수한 표식. 결국 킬로이를 얼마나 많은 로고에 넣을 수 있는지 실험한 책 “Wish You Were Here”를 출간해내기도 했지. 지금은 그냥 재미있는 마스코트로 파워스를 비롯한 다양한 작업에 사용하고 있다.   

당신이 제작하는 그래픽에서 여타 스트리트 브랜드,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의 특징적인 러프함보다는 더 정제된 듯한 인상을 받는다. 추구하는 디자인의 가치,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내가 받은 정식 디자인 교육이 내가 디자인하는 모든 것에 분명히 영향을 끼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그래픽이 거칠지 않더라도 내가 가진 관점은 내 모든 작업의 근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매체와 스타일을 넘나들어도 결국 하나의 관점으로 귀결된다.  

그래픽 디자인을 떠나서 옷의 형태나 소재완성도적인 측면에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가

좋아하는 셔츠가 너무 줄어들거나 늘어나서 더는 못 입는 것만큼 짜증 나는 일은 없다. 좋은 원단과 패턴의 옷을 만들기 위해 꼭 어마어마한 돈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지. 조금의 노력만 더 해도 훨씬 효율적으로 제품을 개선할 수 있다. 매일 입고 싶을 정도의 퀄리티와 스타일을 가진 제품을 만드는 것이 내 목표다. 

파워스를 취급하는 숍은  나라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편집 스토어로 엄선되어 있다특별한 선정 기준이 있을까.

우리는 흥미로운 브랜드를 소개하고 우리와 함께 성장할 의사가 있는 스토어를 찾는다. 특히 우리의 친구 브랜드들이 이미 입점되어 있는 곳.

오랜 시간 뉴욕에서 살다 지금은 LA 거주지를 옮겼는데이사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딱히 이유랄 것은 없다. 약 20년 정도 살았으니 다른 풍경을 보고 싶었다고 할까.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뉴욕과 LA를 너무 비교하는 것 같다. LA도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엄청나게 문화적으로 풍부해졌다. 물론 뉴욕도 얼마나 달라지든 간에 문화적으로 가장 앞서가는 도시라는 점은 변함이 없겠지. 비록 LA에 살지만 일 년에 몇 차례 뉴욕의 친구들을 만나러 방문하곤 한다.  

에릭 엠스의 길티 플레저가 궁금하다길거리 문화와 완전히 동떨어진 은밀한 취향이나 아이템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엄청 특이하고 대단한 것은 없다. 그냥 가끔 멍 때리고 싶을 때 보는 엄청 구린 TV 방송 정도? 내 오랜 취미이자 기쁨은 책 수집이다. 

자신에게  영향을  디자이너와 예술가를 각각  명씩 꼽는다면.

어떤 장르를 작업하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우선 이미 거론한 지인들을 제외하고, 일본으로 한정해 이야기해보자면 이노우에 츠구야(Tsuguya Inoue)와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다. 그들의 작업은 놀랍고 시간을 초월한다.   

스트리트, 스케이트 컬처를 표방한 브랜드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없어지는 건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2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 어린 애들이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들을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점은 꽤 멋지지. 컴퓨터 파일이나 온라인상 무언가가 아닌,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멋진 것은 없다. 이제 무언가를 하고싶은 강한 열망이 있는 사람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더는 없다. 또한 사상과 디자인을 한 데 모아 ‘브랜드’를 건설하는 사람들을 정말 존경한다. 회사들이 느린 속도로 생겨났던 과거에는 회사들이 충분히 자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초기 성장 단계가 있었지. 오늘날에는 잘 완성되었을 때 멋진 효과를 내는 로고, 디자인, 라벨링, 슬로건을 구축하는 것보다 협업이나 굿즈 발매 기회에 조급한 브랜드가 종종 보인다.    

북 디자인부터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 디자인, 숍 인테리어, 설치미술 등 다양한 방면에서 작업하고 있다. 너무 다양한 일을 하다가 이도 저도 안 될 거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나.

한 스타일만 집중해 그 스타일만 계속 반복하는 것이 아마 더 나은 직업적 선택일 것이다. 사람들이 너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알고 그 무언가를 정확하게 요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난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나는 다양한 아이디어 중에서 최고의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매체를 선별한다.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것의 장점은 내가 작업하는 모든 장르가 상호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내게 2년 넘게 방치된 애매한 회화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자. 어느 날 갑자기 마주친 그래픽 디자인 레퍼런스가 그 회화 아이디어를 완성할 순간적인 영감을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디어들이 서로 얽히고 섞여 영향을 끼치는 과정은 언제나 흥미롭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창작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안다. 허무함이나 지루함을 느낀 적이 없었나.

창의적인 일을 하는 누구나 좋은 시절과 어려운 시절을 겪는 법이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나에게도 물론 그런 자연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에서든 새롭고 흥미로운 상황에 자신을 노출하는 것이다. 

최근 주목하는 브랜드나 인물 또는 움직임이 있다면.

즈머프와 스닉, 컴퍼터블 리즌(Comfortable Reason), 람엘지(Rammellzee), 레브스(Revs), 에릭 헤이즈(Eric Haze), 에드 데이비스(Ed Davis), 호르피(Horfee), 시그마 폴케(Sigmar Polke), 알버트 외른(Albert Oehlen), 피터 서덜랜드, 레이 카와쿠보(Rei Kawakubo)의 가구, 토비아스 웡(Tobias Wong), 카일 응(Kyle Ng)….. 너무 많다. 

마지막으로 남은 2020년의 계획이 궁금하다

파트너스 & 아더스 사이트에 에디션 프린트, 책 그리고 내가 만든 괴상한 물건들을 판매할 조그마한 온라인 스토어를 준비 중이다. 파워스에서는 옷 몇 벌과함께 사람들이 겨울에 입을 수 있는 자켓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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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James Kim Junior
사진 제공│Eric Elms


*해당 기사는 지난 VISLA 매거진 종이잡지 14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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