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NK

2021년 1월, 오리지널 액션 스포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반스(Vans)에서 ‘올드스쿨 너의 길을 만들어’ 캠페인을 공개했다. 1977년에 탄생한 반스 올드스쿨(Old Skool) 모델을 다시금 조명하기 위해 제작한 해당 캠페인에는 미국 플로리다 출신의 래퍼 덴젤 커리(Denzel Curry)와 앨라배마 출신의 뮤지션 치카(Chika)가 등장해 창작자가 걸어온 길에 관한 자신의 메시지를 전했다. 국내에서는 비스츠앤네이티브스 (Beasts and Natives Alike) 소속 그룹 XXX의 프로듀서, 프랭크(FRNK)가 창의성과 올드스쿨 그리고 뮤지션으로서 걸어온 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19 반스 뮤지션 원티드의 마지막 무대를 XXX가 장식했다. 그 뒤로 2년이 흘렀는데, 그때를 다시 한번 회상해 보자면?

재미있었다. 신예 뮤지션들의 공연에서 즐거운 에너지를 느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도 즐겁게 공연에 임했던 것 같다. 신선한 음악도 많았고, 에너지도 넘치고 하니 나 또한 뭔가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생겼다. 보통 공연을 보거나 파티에서 그 열기와 신선함을 느낄 때,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반스 글로벌에서 진행한 ‘올드스쿨 너의 길을 만들어’ 캠페인은 래퍼 덴젤 커리와 치카의 목소리를 빌어 젊은 창작자들에게 용기를 북돋는 메시지를 전했다. 국내에서도 독보적인 프로듀서 프랭크가 걸어온 길은 이미 국내에서 뮤지션을 꿈꾸는 어린 세대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소감이 어떤가?

모든 아티스트가 아마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할 텐데, 자신의 길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나?’라고 끊임없이 의식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어쨌든 허투루 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인디펜던트 뮤지션의 길에 들어선 이들은 열악한 환경, 좋은 무대의 기회, 기술적인 코칭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갈증이 생길 것 같다. 음악을 시작할 무렵, 누군가에게 충분한 피드백을 얻을 기회는 있었나? 당시를 돌이켜 보자면.

처음에는 좋아하는 뮤지션, 아티스트에게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마냥 좋았다. 그 시기가 지나서는 악에 받친 상태라 계속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 능력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그때는 확실히 더 어렸고, 더 혈기왕성했으니까. 실력보다 더 큰 인정을 원했다.

많은 창작자들이 아웃풋을 내기 위한 인풋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지속적으로 창의적인 작업을 이끌어 내기 위한 습관이나 행위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사람들은 내 음악을 듣고 굉장히 기술적인 것에만 치우쳐서 작업하는 걸로 오해하 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누구보다 감정적으로 음악을 만들고 내 감정 표현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평소에 느끼는 사소한 감정의 변화를 기록하고 그것을 음악적으로 풀어내는 행위를 반복한다.

창의성과 올드스쿨은 힙합을 뿌리에 둔 프로듀서 프랭크에게 익숙한 키워드일 거 같은데, 본인이 걸어온 길에 올드스쿨 힙합이 미친 영향이라고 한다면?

실험적인 사운드를 지향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음악을 만들 때엔 항상 어린 시절 즐겨 들었던 옛날 음악에서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아까 언급한 창작의 인풋하고도 연관 있을 수도 있는데 언제나 과거의 것들을 많이 찾아 듣는다.

평소 반스 올드스쿨을 즐겨 신는 편인가? 해당 신발의 네이밍과 실루엣을 봤을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말이 있지 않나? 반스 올드스쿨은 클래식한 멋을 대표하는 신발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검은색 올드스쿨을 여러 족 가지고 있을 정도로 즐겨 신는 편이다.

요즘 빠져 있는 취미가 있나?

제한적인 환경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궁금하다. 요즘에는 클라이밍에 빠져있다. 실내에 있다 보니 활동적인 에너지를 받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재미를 붙여서 더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제이딜라(J Dilla) 키드로서 2월은 각별한 의미가 있을 듯하다. 지금까지도 본인에게 미치는 제이딜라의 영향이라면 무엇인가?

음악을 시작할 때는 그 스타일 자체에 영향을 받았고, 지금은 태도나 정신적인 측면을 상기하는 편이다. “남의 음악을 똑같이 따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너의 것을 해라”, 생전에 제이딜라가 했던 이 말만큼은 앞으로도 내 음악적인 행보에서 변하지 않을 부분인 것 같다.

처음 VISLA에서 과거 [XX] 앨범을 소개한 지 7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음악에 호기롭게 빠져든 시기와 어느덧 몇 장의 앨범을 발표한 지금,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 점에서 달라졌고 무엇이 그대로인가?

음악과 음악 시장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달라졌다. 앞서 말했다시피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굉장히 날이 서 있었던 것 같다. 호불호도 명확한 편인 데다가 거침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남을 깎아내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매력을 다른 음악을 통해 즐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음악이 어떤 성공의 수단이라기보다는 그냥 평생 하고 싶은 어떤 것으로 변했다. 그렇게 되려면 우선 나 자신이 음악을 대할 때 굉장히 솔직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것이 가장 크게 변한 점이다.

XXX의 음악이 실험적이라는 평가가 도드라진 데는 프랭크가 쌓아온 프로덕션의 결이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XXX라는 팀 컬러를 사운드로 구현한 콘셉추얼한 형태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하는 프랭크 본인의 스타일이라 고 볼 수 있나?

처음 [KYOMI]를 만들 때는 앨범을 많이 갈아엎었다. 그 과정에서 튀어나온 콘셉트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후에는 김심야와 내 감정적인 흐름이 비슷해진 순간에 작업하다 보니 디테일은 달라도 비슷한 걸 느낄 때 그걸 표현했고, 결과적으로 지금과 같은 형태로 완성되는 것 같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데, 나는 그걸 더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영향받은 음악 장르가 다양하기도 할뿐더러 다양한 음악의 특성에서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다르기에 변주라는 수단을 택했다.

XXX의 앨범은 국내 힙합 신(Scene)에서는 매우 돌출되는 반면, 온갖 장르적 실험의 각축장인 미국 시장에 대입했을 때는 그 흐름을 충실히 따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들이 깨고 싶었던 국내 힙합의 틀, 바라보고자 했던 넥스트 레벨은 근본적으로 XXX의 음악을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미국과 같은’ 환경인가?

한국의 음악 시장이 변한다면 당연히 좋지만, 한국과 미국의 역사가 다르듯, 각 국가에 맞는 환경이 이미 형성된 게 아닌가. 그걸 갑자기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 지금 XXX도 우리의 방식으로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근래 주로 듣고 보는 콘텐츠 목록이 궁금하다. 팬데믹 시대, 범람하는 디지털 콘텐츠 사이에서 어떤 것들을 섭취하고 있는가?

클라이밍을 즐기다 보니 자연스레 유튜브에서 클라이밍 콘텐츠를 자주 찾는다. 자연 바위를 타는 영상이나 클라이밍 대회 영상 같은 거. 원체 유튜브를 자주 보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유독 자연을 주로 언급하는 것 같다.

본인이 지향하는 삶의 태도, 지향점과 연관 있는 것 같은데 관련한 이야기를 조금 들려줄 수 있나.

이전부터 제이통과 함께 어울리면서 내가 자연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함께 여행을 가면 일반적인 해수욕장이 아닌 한적한 바다에서 전복을 따서 먹기도 하고, 산에 오르기도 한다. 그가 자연을 사랑하고 즐기는 방식에서 좋은 영향을 받았다. 제이통, 화로와 자주 이야기한 주제인데, 오래전에는 맑은 공기와 하늘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최대한 현재의 자연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음악을 다루는 예술가로서 클래식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어떤 작품은 통시적인 관점에서 발표 당시에는 대중문화에 가까웠던 것이 지금에 와 불멸의 예술처럼 평가받는 것도 있고,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예술 작품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의 시대적인 상황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리적인 환경이나 시대적인 배경, 당시 대중의 심리라든지,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아서 클래식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물론 판단은 세월이 오래 지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누군가는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는 혼란을 선호하고, 누군가는 자로 잰 듯 치밀하게 정돈된 작업 환경을 선호하기도 한다. 본인은 어떤 편에 속하나?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깨끗하게 쓰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되는 타입이다. 남들이 볼 때는 지저분한데, 내 나름의 규칙을 유지하면서도 혼란스러운 상태가 딱 좋은 것 같다.

지금 이 시기는 음악가들에게 생계의 위협은 물론이거니와 음악 산업의 전반적인 암흑기로 회자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신호를 찾을 수 있다면?

나는 지금 힘을 내자는 말이 잔인하게 느껴진다. 쥐어짤 힘도 없는 사람이 많은데. 그래서 어떻게든 버티자고 주변인들과 위로하는 편이다. 질문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정말 잘하는 뮤지션들이 살아남을 것 같다고도 느낀다. 아무래도 힘든 제약 속에서 음악을 이어가기는 어려우니 인지도가 떨어지거나 실력이 부족한 뮤지션들이 다른 길을 찾게 되진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 본인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을 때 음악가로서 가장 보람 있던 순간이라면.

피치포크(Pitchfork)에 우리 앨범 리뷰가 게재됐을 때 가장 보람찼다. 내가 어려서부터 음악을 찾아 들을 때마다 자주 들어가던 매체다. 그곳은 단순히 프로모션이나 의례적인 형태로 리뷰를 진행하는 곳이 아니기에 특별히 의미 있었지.

젊고 독립적인 뮤지션들의 험난한 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짐작되는데. 음악을 막 시작했거나 이제 막 업계에 뛰어든 뮤지션들에게 해줄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과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어차피 예술이라는 분야에는 정답도 없고, 객관적일 수도 없으니 아무렇게나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접근성도 좋아졌으니 시대적인 이점을 잘 활용해서 창작하면 되지 않을까.

향후 어떤 일을 벌일 생각인가? 음악적인 방향 또는 구상하는 프로젝트의 형태 등 어떤 이야기든 좋다.

최대한 빨리 솔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런데 그 음악 역시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향일지는 모르겠다. 난 음악을 평생 하고 싶고, 그래서 더 솔직하게 해야 하는데 그게 팬들이 원하는 방향은 아닌 것 같아서. 가장 먼저 만들고 싶은 건 나 자신을 위로하는 앨범이다. 그게 이번 프로젝트의 키워드다.

FRNK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Vans Korea 공식 웹사이트


에디터│오욱석
인터뷰어│권혁인
포토그래퍼│유지민
프로덕션│추웅식
스타일리스트│이잎새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매거진 종이잡지 15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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