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직격탄에 한껏 웅크린 클럽 신(Scene)에도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곳이 있다. 바로 이태원역 3번 출구 인근 골목에 자리한 클럽 링(RING). 이들의 행보 역시 미스터리인데, 클럽에 관한 그 어떠한 홍보 활동도 없으며, 공간 내에서 사진 촬영 역시 금지한다. 그런데도 플로어엔 언제나 손님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링의 운영자인 디제이 ANTWORK(앤트워크)는 공간을 전개하는 데 어떠한 확신을 가졌던 것일까? 초록 네온 현판이 호기롭게 빛을 발하는 링을 찾아가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간략한 소개 부탁한다.
클럽 링을 운영하는 임병섭이다. 또한 파티 보이스(VOICE)의 파운더이자 디제이 ‘ANTWORK’로 활동한다.
2010년대 초반, 테크노를 위시한 전자음악 베뉴로 부상한 미스틱( Mystik)에서의 행보로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활동하면서 세웠던 목표나 프로젝트의 목적 같은 것이 있었다면?
처음엔 큰 목표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미스틱 레지던트로 활동하면서 음악을 잘 틀기 위해 꾸준히 연습하고, 디깅에 열중하고 손님들이 내 타임 때 온전히 행복하고 즐기기만을 바랐다. 항상 그것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니 그제야 목표가 생겼다. 내가 현재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에 맞는 파티를 창립하고 싶은 욕심. 그 파티가 친한 친구인 마지코(MAGICO)와 함께 만든 보이스다. 이 파티를 만들기 전까지 미스틱에서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처음 음악에 빠진 계기가 궁금한데.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향한 애정이 컸고, 중학교 때 만난 친구들과 함께 힙합에 빠지며 많은 공연을 보러 다녔다. 19살 때부터 홍대 클럽을 다니며 자연스럽게 하우스와 테크노에 빠지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중학교 때 만난 친구 중 한 명이 마지코다.
우리들의 친구가 우크라이나의 한 레코드숍에 갔더니 그들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한국 디제이가 ‘ANTWORK’라고 하더라. 실제 오랜 시간 바이닐 레코드로 플레이한 디제이로서 외국 레코드숍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는지? 그들을 통해 유럽 또는 서양권 레이브/전자음악 신의 동향을 체크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우크라이나라면 키예프에 있는 클로저(CLOSER)라는 클럽일 것이다. 거기서 레코드숍을 함께 운영 중인 친구가 보이스 파티를 함께하며 인연이 되었다. 친구로서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다. 요즘 어떤 파티를 하고 있는지, 어떤 디제이들과 함께 플레이하는지 정도의 동향을 알고 있을 뿐 딱히 긴밀하게 다른 의미에서 연락하진 않는다. 베를린이나 다른 유럽에 있는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미스틱 이후로도 국내 보이스 파티를 비롯해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 등 내로라할 해외 베뉴에서의 플레잉 등 세계적인 디제이, 뮤지션과 교류했다. 국내 전자음악 신, 그 저변의 확대를 위해 분주하게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데, 이에 관한 경험이나 배움, 특별한 에피소드 등을 생각나는 대로 풀어줄 수 있을까?
보이스와 해외 긱(Gig)을 통해 많은 디제이와 교류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과 파티에서 함께 음악을 틀고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음악을 대하는지도 배웠다. 레코드판을 사기 위해 직업을 구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디깅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지, 그리고 같은 신에 있는 친구들끼리 모여 자기들의 프로젝트에 관해 의논하는 모습들이 나에게 많은 영감이 되었다.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다. 그들과 나눈 모든 것이 나에겐 에피소드이기에 특별히 몇 가지로 좁혀서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경험이 본인이 기획하는 파티나 베뉴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너무 많다. 일단, 디제이로서는 해외 경험을 통해 대중과 교감할 때 큰 변화를 겪었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다양한 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이전보다는 좀 더 제약 없고 넓은 자유로운 시야를 얻었다고 해야 할까. 또한 앞서 언급된, 프랑크푸르트에 자리한 로버트 존슨, 키예프의 클로저 그리고 베를린의 호페토쎄(Hoppetosse) 등의 클럽에서 파티했을 때, 그 공간이 주는 특별하고 고유한 에너지에 적지 않은 감명을 받기도 했다. 공간의 구조물, 사람들의 경험이 주는 힘을 링에서도 실현하고 싶었다.
충성도 높은 팬층을 확보했지만, 의외로 국내 전자음악 베뉴나 타 뮤지션들과는 크게 교류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충성도라기보단 음악적인 가치관이나 추구하는 것이 비슷하니 클럽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함께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클럽의 큰 장점인 것 같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져서 고마운 마음이다. 교류에 관해 잠시 얘기하자면, 예를 들어 테크노를 단일한 테크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속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세부적으로 또 나눠진다. 멀리서 볼 땐 타 디제이들과 교류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비슷한 부류의 음악을 하는 디제이들과는 이미 계속 관계를 맺어왔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저 조금이라도 비슷한 장르의 디제이들과 합을 맞춰가는 게 손님이나 디제이들을 덜 혼란스럽게 할 수 있고, 오랫동안 일정한 분위기를 지속할 수 있다고 본다. 일부러 교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장르를 추구하는 디제이라면 언제든 함께할 수 있다고 본다.
미스틱과 보이스를 지나 불쑥 이태원에 링이라는 공간을 직접 마련했다. 그 계기가 있었나?
많은 경험을 하면서 그동안 개인적으로 구축해왔던 철학과 나름의 시각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가진 음악과, 디자인, 음향에 관한 아이디어를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링이라는 공간의 의미는? 또한 링은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지양하는 공간인가?
공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 안에서만큼은 누구나 평등하게 음악에 오롯이 집중하며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따라서 내부 디자인을 기획할 때, 어디에 있든 음악을 플레이하는 디제이를 볼 수 있고 동일한 음향을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으며, 디제이 데크와 댄스 플로어 그리고 바(Bar)를 잇는 자유로운 동선, 디제이 데크 쪽에는 층고를 높이 터서 물리적 공간의 제약에서 오는 답답함을 최대한 해소하여 음악에 더욱더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지향한 것이다.
링의 독특한 인테리어에 많은 사람이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복층으로 공간적 차이를 준 것 같았는데, 공간의 디자인에는 어떠한 의도가 담겼는지.
2층에선 온전히 춤과 술을 즐길 수 있고 3층에서는 사람들과의 커뮤니티 또는 앉아서 쉴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를 비치해두었다.
오랜 시간 전자음악을 플레이해왔다. 링의 장르적인 범위, 또는 지향하는 음악의 결이 있다면?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레지던트 디제이들이 ‘댄스 뮤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관한 각자가 추구하는 최선의 미학을 담은 음악이라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기본적으로 우리가 모두 공유할 수 있는 미학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춤을 출 수 있고 흥미로운 사운드여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국내 레코드숍이 힙합, 소울, 훵크, 재즈, 국내 가요와 같은 장르에 기반했다면 이제는 신당동의 모자이크 서울(Mosaic Seoul), 을지로의 클리크 레코드(Clique Records) 그리고 최근 문을 연 정션(Junction)까지 충분히 하우스, 테크노에 주력하는 디제이들의 갈망을 채웠을 거라 생각하는데 여기에 의견을 듣고 싶다.
링을 토대로 보더라도 모든 레지던트 디제이들이 100% 레코드로 플레이 중이다. 앞서 언급한 레코드숍이 생기기 전까지 우리는 인터넷으로만 디깅할 수밖에 없었다, 그 트랙을 플레이하기까지 못해도 2주에서 1달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클리크, 정션, 모자이크 이 세 레코드숍이 생긴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그들이 앞으로 국내 클럽 신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느 바, 클럽의 행보와 다르게 소셜 미디어 운영과 홍보를 일절 하지 않고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 어떠한 의도가 담겨있나.
보편적으로 클럽의 SNS 활동이라면 보통 그날그날의 파티 홍보를 위한 라인업 공개가 주를 이루는데, 그날의 간판 디제이에 따라 좌우되는 파티가 아닌, 언제든 꾸준하게 유지되는 높은 질의 음악과 바이브를 추구하고 싶었다. 실제로 라인업을 공개하는 행위 자체가 사람들이 파티를 즐기기도 전에 형성되는 무언의 영향이 있다는 것을 봐왔던 터라, 조금이라도 제한을 줄 수 있는 요소를 배제하는 동시에, 링이라는 공간에 언제 오더라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의 음악과 분위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고 싶었다. 사진 촬영을 금하는 이유는,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일말의 방해 요소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더그라운드 클럽이 즐비하던 이태원이 코로나로 큰 타격을 입었다. 많은 클럽이 주춤할 시기, 링은 외려 나날이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모르겠다. 아마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위에 답했던 것처럼 링에 찾아와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최대한 편하고 즐겁게 음악을 즐기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노력한 점을 손님이 감사하게도 알아봐 주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링이 이태원에 자리한 이유 또한 궁금하다. 미스틱 시절부터 이태원이라는 장소가 익숙했을 듯한데, 특별히 애착이 가는 이유가 있다면?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다. 아무래도 쭉 이태원 등지에서 활동해 왔으며, 음악을 하며 교류하는 친구들도 이태원이 익숙하기 때문에 사실 다른 장소를 염두에 둔 적도 없다. 또한 나의 데뷔 무대도 이곳 이태원이었으니 특별히 애착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레지던트 디제이 또는 링이 초빙하는 디제이의 기준은 무엇인가?
좋은 음악과 퍼포먼스를 선사할 수 있는 디제이가 누굴까?’ 하는 점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그것 외에는 크게 중요한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현재 어떤 국내 뮤지션들과 함께 링을 만들어가는지 소개 부탁한다.
우선 꾸준히 한국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나의 음악적 동지인 마지코와, 미스틱에서 깊은 인연을 맺은 이후로 음악뿐만 아니라 디제이라는 직업에 대한 고찰을 일깨운 디제이 연준 그리고 프랑스에서 건너와 서울을 베이스로 꾸준히 참신한 프로듀싱과 디제잉을 보여주고 있는 크리즈카(Krijka), 미국 파티 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에서도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글로우(Glow), 앞으로 국내 클럽 신에서 좋은 뉴웨이브를 일으킬 거라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민규, 하람, 규찬까지 이들과 링에서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링 또한 문을 열고 있지 않다. 클럽을 비롯한 파티 문화를 만들어가는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암울한 시기인 것 같은데, 향후 계획하는 일이나 링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는지 궁금하다.
사실 작년 10월에 문을 열었지만, 아무래도 코로나로 여러 가지 제약이 걸려 온전히 파티를 즐길 수 없는 실정이라, 아직 개인적으로는 정식으로 오픈했다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4년이란 오랜 시간 동안 기획했던 공간이기에 코로나와 상관없이 열었고,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된다면 원래 그렸던 그림대로 로컬 신의 수준 높은 파티와 더불어 해외 디제이와의 협업으로 좀 더 풍성하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다.
RING Seoul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Antwork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황선웅
Photographer│유지민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매거진 17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