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ANSA

지난 20년간 스트리트웨어는 소수가 즐기던 하위문화에서 글로벌 현상으로 그 범주를 넓혔다. 우라하라(Ura-hara)의 전성기, 일본에서 건너온 문화적 영향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20대를 보낸 이들은 각 문화의 저변에서 국내의 신(Scene)을 형성했다.

그중 이제는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인물이 된 발란사(Balansa)의 김지훈. 2008년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출발, 당시 문화의 집결지로 일찍이 전성기를 맞이한 서울과 사뭇 다른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활동한 발란사는 이제 반대로 서브컬처를 좋아하는 외지인들이 부산을 방문하면 꼭 찾는 장소이자 해외와의 교류를 앞장서 선보이는 브랜드로서 로컬 신의 에이스 역할을 해내고 있다.

작은 숍에서 시작한 이들이 이처럼 성장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지난 10여 년, 김지훈과 발란사의 긴 여정을 물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직접 확인해보자.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발란사를 운영 중인 김지훈이다.

부산이라는 지역적인 특징이 있는 만큼 짐작컨대 서울과는 조금 다른 형성, 변화, 성장 과정이 있었으리라 예상된다. 초창기 발란사는 어떤 모습이었나.

원래는 카시나(Kasina)에 있다가 2008년, 뭔가 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란사를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수입 위주의 물건과 모아둔 떼기들을 판매했고, 지금과 같이 작은 숍이었지만, 에너지 있는 장소이길 바랬다. 이후 부산 티셔츠처럼 우리만의 것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발란사로 성장했다.

그렇게 만든 티셔츠가 어느덧 발란사의 상징적인 아이템이 되었다. 이걸 디자인하고, 제작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소개해줄 수 있나.

360 사운즈(360 Sounds)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부루마불 하우스(BURU- MARBUL HOUSE)’를 알 것이다. 예전에 메이크원(Make-1)이 부루마불 티셔츠를 소량으로 만들어서 친한 숍에게 판매했고, 지금도 꾸준히 그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그때 ‘서울’이라고 적힌 티셔츠가 있었는데, 그러면 우리는 부산이니까 부산 티셔츠를 만들어 줄 수 있겠냐고 형에게 부탁했던 게 발란사 티셔츠의 시작이다. 처음에는 ‘아이 러브 뉴욕’도 아니고 뭐냐며 아니꼽게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친구들은 멋쟁이가 아니었다. 이후 우리는 메이크원의 아이디어로 매년 여름에는 티셔츠, 겨울에는 스웨트셔츠 등 다양한 품목을 만들었다.

드문드문 제작하던 걸 기념품처럼 판매하다가 어느 날 운 좋게 모 백화점에도 입점하게 되었다. 마침 숍 유니폼이 필요해서 만든 게 지금의 사운드 숍(Sound Shop) 티셔츠다. 예전부터 부산 티셔츠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로고 디자인은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졌을 거라 생각한다. 아무튼, 사람들이 숍 유니폼을 찾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그 힘이 이어진 거 같다.

빈티지하면 가장 먼저 남포동이 떠오르는데, 처음에 경성대 쪽에 터를 잡은 이유가 있나? 경대 앞은 어떤 곳인가?

남포동은 빈티지 위주의 시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빈티지 숍을 연다기보다는 내가 팔고 싶은 것을 팔기 위해 시작한 거라, 장소 문제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경대에 이런저런 상권이 들어서지 않았던 것에 오히려 이점도 있었다. 처음 숍을 열었을 땐 우리 골목에 발란사와 고깃집 숯불 나라밖에 없었다. 경대 앞은 서울의 홍대 같은 분위기였다고 할까? 당시 경대 쪽에 클럽이 제일 많았다.

어린 시절 부산의 모습은 어땠는지 묻고 싶다. 서면과 경성대, 남포동 등 부산 내 도심의 변화라면? 또 본인은 그중 어디서 주로 시간을 보냈나.

나는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모범생이었다. 주말이면 그저 남포동 큰 음반점이던 지성 레코드에서 테이프와 시디를 사거나 빈티지를 구경하고 나이차가 별로 많이 나지 않던 막내 이모와 함께 이재모 피자를 먹곤 했다. 그래서 어디가 재밌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때는 부산대 앞이나 남포동에 꽤 활기가 넘쳤던 걸로 기억한다.

모범생이었다니 잘 믿기지 않는데, 그러면 카시나에서 숍 스태프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부산은 워낙 빈티지가 많은 도시라, 어릴 때부터 부모님 이 그런 영향을 받을만한 곳에 많이 데리고 다녔고, 그러다 보니 스니커나 스케이트보드와 같은 문화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학교를 막 졸업하고 부산에서 신발을 수입하는 조그마한 회사에 취직했는데 그 회사가 당시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보드화나 물 건너온 물건들을 카시나와는 조금 다른 경로로 수입했다. 그러다 사장 님이 갑자기 다른 사업을 시작한다고 해서, 그 주변에 계속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일을 하게 된 것 같다.

본인은 어떤 패션 스타일을 즐기는 편인가?

나는 평범하다. 스타일이 없다. 매일 스웨트 팬츠, 스웨트셔츠 아니면 티셔츠다. 헤리티지 플로스(Heritage Floss) 스웨트 팬츠에 니시모토(Nishimoto) 얼굴이 그려진 스웨트셔츠를 입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옷을 살 때 브랜드의 장단점을 따져보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내 친구들이 만드는 옷이나 내가 좋아하는 숍에서 파는 티셔츠 혹은 그들이 큐레이팅 하는 무언가를 사곤 한다.

그럼 그때부터 지금의 스타일을 한결같이 고수했던 건가? 질릴 때는 없었는지.

비슷하다. 예전에 카시나에서 수입하는 스케이트 브랜드는 다 좋아했다. 디씨 슈즈(DC Shoes), 에일리언 워크 숍(Alien Workshop) 등 거기서 거기다. 딸 수민이가 8살이고,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일할 생각 하면 한 20년은 더해야 하니까, 질리면 이 일 못한다.

소위 길거리 문화, 스트리트 패션이 국내에 소개되며 서울 내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독립적인 브랜드 및 크루 등의 활동을 시작했을 때 외려 서울이 아닌 지역에 터를 잡은 발란사는 어떤 방식으로 그러한 흐름을 소화하려 했는지 궁금하다.

그냥 하고 싶은걸한거지, 자리 잡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이것도 주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으니 가능했지. 우리의 비즈니스로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지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먹고살아야 해서 서울에 올라가서 시작할 생각도 했는데, 친구들이 부산에 오면 무조건 놀러 오는 장소가 될 수도 있으니 지금은 장점이 더 많은 거 같다.

당시 부산 내 발란사와 결을 함께하는 움직임이 있었다면.

예전에는 안티도트(Antidote)라는 숍도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다. 이런 것들을 하지 않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가 큰 것 같다.

360사운즈, 헤리티지 플로스의 대표 이윤호 등 발란사는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이들과 끈끈한 유대가 느껴지는데, 그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되었나.

친구의 친구로 시작해 인연이 이어진 부분이 많다. 카시나에서 일할 때 알게 된 춘식이라는 친구와 가깝게 지내다 보니 이후에 그 친구의 소개를 통해 부산에서 360 파티를 열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보통은 친구를 ‘친해져야지’ 하고 사귀는 게 아니지 않나. 믿기 힘들겠지만, 예전에는 파티를 열면 서울에서만 50명씩 오고 그랬으니까.

당시 서울 내밀 접한 교분이 있던 브랜드, 크루 멤버들과 어떤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는지 들려 달라. 부산에서 느낄 수 없던 영감이라면 무엇이었나?

부산이라는 축구 필드가 있으면 발란사 같은 선수도 있는데, 공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창 했다. 놀 거리가 없다는 거지. 그래서 우리가 파티나 기회를 자꾸 만들다 보면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서울에선 당시 360 사운즈가 한창 파티 신을 이끌고 있던 시기였다. 발란사를 거점으로 우리도 360 파티를 열고, 재지 스포츠 서울(Jazzy Sport Seoul) 같은 파티를 도와 부산에서도 진행해보고, 자꾸 뭘 해보려고 했지. 그런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였으니까. 지금은 이제 다 아줌마, 아저씨가 되었지만… 하하. 사실 이런 건 가끔 이야기하고 평소엔 시답잖은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다.

사운드 숍, 사운드 딜러 등 발란사 곳곳에서 소리, 음악이라는 테마를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작명의 이유라면?

내가 브라질 음악을 좋아한다. 에스피오네(Espionne) 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발란사도 원래 브라질 말로 ‘균형’이라는 뜻에서 출발한 거다. 뮤직 숍이라고 하긴 뭐하고, 사운드 숍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 했다.

스토어 내 빈티지 제품은 어디서 어떻게 들여오고 있나. 멋진 빈티지를 찾는 본인만의 팁이 있는지?

여행 또는 인터넷. 또 멀리서 물건을 보내주는 친구도 있다. 빈티지를 고르는 팁이라면 보이면 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오면 없다. 사람들의 눈이 다 비슷해서 내가 좋으면 다른 사람들도 좋아한다. 그래서 어쨌든 빈티지는 보일 때 사야 한다. 요즘에는 페이팔 결제 시스템도 너무 잘되어 있고 배송도 좋고, 돈만 있으면 뭐든 다 살 수 있다. 특정 연도나 막 그런 걸 나눠서 구분하기보다는 빈티지는 한눈에 꽂히는 물건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게 보일 때 구매하는 게 좋더라.

코로나 이후 물건을 유통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시국이 안정된 이후 가장 방문하고 싶은 나라가 있다면.

우리가 컨테이너로 대량의 물건을 들여오는 건 아니라 큰 문제가 없긴 하지만 확실히 이전만큼은 못하다. 직접 가서 보는 것과 들여오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까. 미국과 일본에 가장 가고 싶다.

해외 추천하는 빈티지 명소가 있다면?

작지만 강한 도쿄의 버디 숍(Buddy Shop). 미국은 일본 인이 오너로 있는 빈티지 숍은 다 좋은 것이 팩트다. 단점은 비싸지만…. 싸고 좋은 건 잘 없다.

컬렉터의 면모가 있는 듯한데, 숍에 들여오기 위해서가 아닌, 본인을 위해 꾸준히 수집하는 빈티지가 있나.

딱히 장르를 가리지 않고 사고 싶은 걸 이것 저것 모으다 보니 컬렉션 수준으로 모인 것들이 꽤 있다. 그중에서는 테이프가 많은 편이다.

어떤 종류의 테이프인가? 테이프를 모은 이유라면?

카세트테이프다. 그중에서도 힙합 싱글 테이프가 많다. A면과 B면에 한 곡씩만 들어있는 싱글 엘피와 같다고 보면 된다. 딱히 모으는 이유는 없지만 지금도 테이프를 많이 듣는다.

그 외에도 가장 아끼는 수집품 세 가지를 소개한다면?

소니(Sony) 카세트. 그중에도 소니 스포츠(Sony Sports)와 마이 퍼스트 소니(My First Sony) 시리즈를 좋아한다. 더 꼽자면 디제이 무로(DJ Muro) 테이프와 CD들, 여태껏 모은 핀 버튼과 스티커 정도?

옷도 많이 구매하는 편인가?

옛날에는 많이 샀는데, 안 산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많이 사긴 한다. 빈티지 위주로 구매하는 편 같다. 잠들기 전 생각해보면 사고 싶은 게 떠오른다.

최근엔 소위 엘리트계 디자인 거장의 가구와 조명을 비교적 쉽게 만나볼 수 있는 등 빈티지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넓어졌다. 본인도 그런 물건들에 관심이 있는 편인가? 

요즘에는 그런 쪽에도 다 프로나 전문가가 많아서 약간 식상해진 느낌이 있다. 심리가 이상하다. 하하. 그냥 너무 멋있으면 멋이 없어 보인다. 쩡키한 것이 좋다. 나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사는 게 좋지. 특정 디자이너의 조명 같은 건 관심이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독립 브랜드, 아티스트의 발 빠른 서칭 역시 스토어의 주요한 역할이 되고 있는데, 이러한 일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고 있나? 

거의 24시간 잠잘 때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다. 발 빠르게 들여오더라도, 금방 또 루즈해지니까 뭔가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는 새롭고 참신한 곳을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또 지금 이어나가고 있는 해외 커뮤니티와의 교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과 갖고 싶은 것이나, 보여주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다 자연스럽게 숍에 들여오는 경우도 많다. 소개를 해주기도 하고.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다면?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는 브랜드보다는 로컬적인 색깔이나 드러나거나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가 좋다. 이를테면 발란사처럼 자기들 물건을 만드는 숍들, 우리가 들여오는 댄 수베니어(Den Souvenir), 베러 기프트 숍(Better Gift Shop), 닷 웨어(Dot Where), 민나노(MIN-NANO).

한편, 초창기 발란사가 희귀한 빈티지, 몇 가지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를 선보이는 샵으로 시작했다면, 지금은 어엿한 하나의 패션 브랜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변화 역시 발란사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가? 

앞서 언급했듯이 우린 우리가 입는 티셔츠를 만드는 데서 시작했다. 사람들이 좋아해 주다 보니 10장 만들 것을 20장 만들고, 50장이 100장이 되는 식으로 하다 보니까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애초에 이걸 만들어서 큰 성공을 하거나 거창한 브랜드를 설립할 생각은 없었다. 그 과정에서 메이크 원의 도움이 컸고, 지금도 계속해서 도움을 주고 있다. 좋은 친구이자 형이다. 와이프보다 통화를 많이 한다. 

디자인 작업은 직접 도맡는 편인가. 기술적인 부분을 도와주는 친구가 있나? 

직접 하기도 하고 디자인팀이 따로 있으니 아이디어를 던지면 그들이 테크니션을 통해 구현해주기도 한다. 요즘은 내가 아이디어를 들고 가면 좋다 안 좋다는 팀원들과 다 같이 이야기하는 편이다.

주로 영감을 받는 곳이 있다면?

주변 친구들이 제일 많은 영감을 가져다준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이베이, 구글 등 영감을 받을 곳은 널려있지만 저작권 문제가 있다 보니, 좋아 보인다고 막 가져와서 쓸 순 없다.

발란사의 시그니처 캐릭터 그래픽이 눈에 띠던데, 소개한다면.

그 캐릭터는 브렛 캘리(Brett Kelly)라는 배우인데, 오래전부터 이미지가 재밌어서 프로필로 사용하다가 발란사 디자이너 진수가 그 얼굴에 내 눈을 합성해서 만들었다. 사람들이 예상외로 너무 좋아해 줬다. 한 번은 브렛 캘리의 친구가 브렛 캘리에게 티셔츠를 직접 전달해줄 수도 있다고 연락이 왔다. 인스타그램이 진짜 세상을 바꾸는구나 싶었다. 처음엔 고소하는 줄 알고 쫄았다.

또 하나 소개하고 싶은 건 디제이 디오씨(DJ D.O.C)의 본 뜻인 드림 오브 칠드런을 인쇄한 티셔츠다. 이건 우리들의 꿈, 어린이들의 꿈이라는 뜻이 좋아서 나와 메이크원이 자주 쓰던 말이었고, 소량으로 티셔츠를 만들었다. 언젠가 내가 40대 중반이 되고 후반이 되었을 때 어린 친구들이 우리가 해온 걸 보고 자신들도 새로운 걸 하고 싶게끔 만드는 일을 꿈꿔왔다. 우리가 멋진 일을 많이 해야 다음 세대의 동생들이 보고 또 따라 하지 않겠나. 그렇다고 위대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지금까지 정말 많은 협업을 해왔다. 어떤 협업이 가장 기억에 남았나 

재작년부터 시작해 작년까지 협업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우리에게 나름의 조건이 있다면 돈이 되거나, 친밀하거나, 아니면 진짜 멋있거나 이 세 가지를 충족하는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해왔는데,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건 웬만하면 다 해본 것 같다. 큰 브랜드들은 가끔 구 로고를 쓰고 싶은데 그게 어려운 경우가 아쉬웠지만 웬만큼의 협업은 모두 만족스럽게 마쳤다. 유니온 도쿄(Union Tokyo), 세컨드 랩(Second Lab), 민나노 등 남들이 안 하는 브랜드와 함께 했을 때 가장 뿌듯했다. 내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이번에 나온 하심 피규어는 우리 어릴 적, 동경하고 보던 만화를 그리던 아저씨가 우리 그림을 그려줬다는 것이 감회가 남다르다. 그걸 피규어로 제작하고, 물건이 박스에 패킹되어 우리 창고에 들어오던 날 눈물도 조금 났다.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또는 제품 카테고리에 확장 계획이 있는가.

부틀렉 장난감, 또는 피규어 제작에 관심이 간다. 또 우리가 잘 디자인하고, 더블베이스(Wbase) 같은 회사가 자전거를 만드는 상상을 한다. 또 화장품이나 향수도 제작하고 싶다.

발란사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로부터 벌써 시간이 훌쩍 흘렀다. 당시 발란사를 시작했던 나이의 요즘 창작자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나? 그들과의 템포는 어떻게 맞추는지.

우리 때는 일본 잡지 아니면 이런 걸 찾아 볼기회가 잘 없었는데 요즘은 인스타그램도 있고 미디어가 넘쳐나니 젊은 창작자들은 확실히 보는 것이 많고 잘한다고 생각한다. 따라갈 수가 없다.

지금의 발란사는 알음알음 알거나 주변의 소개를 통해 알게 된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꽤 유동적이다. 우리가 의류 회사도 아니고 프로덕션도 아니지만, 티셔츠를 디자인하고 생산하다가도 당장 다음 날부터는 다른 일을 위한 스탠바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힘든 환경에도 불구하고, 멤버들끼리는 이제 척하면 척이다. 이런 숍의 외벽 디자인도, 콜라보 디자인도 다 잘해주고 있다. 나중의 목표는 좀 더 우리 걸 단단하게 하는 조그만 디자인 스튜디오 같은 걸 한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발란사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스턴트맨 익스프레스 에이전시(Stuntman Express Agency)가 바로 그런 곳인가?

그것과는 별개로 발란사와는 색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 벌인 곳이 스턴트맨 익스프레스 에이전시다. 스턴트맨 익스프레스는 발란사에서 운영하는 전시, 팝업, 운영 에이전시로서 기능하길 바란다. 아직 공격적으로 운영하고 있진 않지만, 조금씩 재밌는 걸 해보려고 모자도 만들고 티셔츠도 만들고 있다. 앞으로는 비정기적인 팝업을 준비 중이다. 스턴트맨 익스프레스 에이전시, 이름을 너무 잘 지었다. 하하

발란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경대에서 서면으로 이사 후 루프트 숍(Luft Shop) 안에 숍 인 숍으로 있을 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 잠깐 숍을 운영하면서 가족이 운영하는 곳에 출근하기도 했다.

반대로 가장 보람있고 재미있었던 순간은. 

도쿄 한복판에 자리한 파르코(Parco) 백화점 리오픈 때 팝업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프리 오픈에 우리가 좋아하는 니고(Nigo), 퍼렐(Pharrell), 퓨추라(Futura), 아키라(Akira) 작가 아저씨 등 도쿄의 디자이너와 셀레브리티가 백화점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우리 팝업 매장에 오카모토 레이지(Okamoto Reiji)가 음악을 틀어주기도 했다. 그 기점으로 일본에서 잘된 것도 있고, 감회가 남달랐던 순간이다. 옛날에는 일본 브랜드 물건을 살 줄만 알았지 우리가 이렇게 일본에서 판매를 할 수 있을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부산만이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을 아무래도 바다로 연결 짓는 외지인들이 많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은 지형적 요소를 활용해 정체성을 확립하는 브랜드들이 꽤 있는데, 부산 내 서브컬처적인 움직임이 실상 도심을 중심으로 조명되는 느낌이다. 이에 대해 아쉬움은 없는가. 

부산하면 해운대, 바다, 광안대교로 연결 짓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바다가 부산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부산하면 전부 바다 관련 굿즈를 만드는 게 너무 싫다. 절대 무시하는 건 아니다. 부산을 단지 바다로만 단정 짓는 것이 오히려 더 아쉽다고 생각한다. 훨씬 더 좋은 키워드들이 많이 있다.

부산의 맛, 멋집 가이드로도 정평 나있다. 본인이 가장 자주 가는 장소들을 좀 추천해달라.

싱글일 때는 친구들이 오면 많이 데리고 다니곤 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요즘은 진짜 추천할 곳이 없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네이버가 더 빠르고,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만 봐도 다 나온다. 숨겨진 곳이랄 게 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정리해보자면 부산에서는 밀면, 암소갈비, 씨앗호떡, 돼지국밥이 맛있다. 가족 외식은 해운대 암소갈비, 광안리 부산 집을 자주 간다. 언양 불고기가 정말 맛있다. 와이프와 딸이 좋아한다.

부산의 로컬 아티스트를 조명해볼 생각은 없는지. 

멋있고 프레쉬한 게 중요하다. 굳이 동향이라는 공통점으로 뭔가를 함께 시작하는 건 선호하지 않는다. 일본은 무슨 일을 할 때 한번이라도 직접 만나지 않고는 일을 함께하지 않는 룰이 있다. 그래서 코로나 전 주말엔 원래 일본 친구들이 자주 왔었다. 하사미(Hasami)에서 일하는 친구도 부산을 놀러 왔다가 찾아왔었다. 자기가 그릇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며 인스타그램을 보여줬다. 봤는데 너무 멋있더라. 나중에 우리와 같이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게 마루히로 하사미(Maruhiro Hasami)였다. 그렇게 컵과 재떨이가 나오고, 시즌 2 콜라보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오랜 시간 숍을 운영하고, 하나의 브랜드로서 발란사가 되기까지 갖게 된 철학이라면. 

요즘에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내가 잘하는 걸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한우물 파다 보면 길이 보인다.

오너 김지훈이 생각하는 멋은?

우리 주위에 보면 멋있는 사람 많다. 옷을 잘 입는 게 아니라 외형을 안 꾸며도 내적인 멋이 강하면 멋이 절로 난다.

2022년 발란사의 새로운 계획이 있다면.

우리는 어쨌든 멈추지 않고 새로운 걸 해나갈 계획이다. 지금까지 몇 년간 참 열심히 살았고, 올해도 몹시 바쁠 예정이다. 지켜봐 달라. 우리 같은 작은 숍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다.

Balansa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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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한지은
Photographer│강지훈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매거진 19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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