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낙서마냥 예술가들이 좇는 불빛이란 일종의 환상 같은 것. 따라서 예술이란 흔히 기업에서 사용하는 KPI라는 개념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자신의 정답을 찾기까지 모든 사물과 사건을 면면이 살피는 그 과정에 오히려 무게를 둬야 하는 일종의 철학적 훈련일지도.
아방가르드 박(Avantgarde Vak). 힙합(Hiphop)에 빠져든 90년대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그 사랑을 배반하지 않는 비트 메이커. 샘플링(Sampling)의 바다에서 건진 풍부한 자원은 MPC를 통해 그의 호흡까지 담긴 싱싱한 비트로 치환된다. 2월 16일, 아방가르드 박의 작업실 방문. 작은 방 안에서 홀로 MPC와 턴테이블에 몰두하는 이 인물을 혹시 당신도 알고 있는지? 지금의 시대정신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줄 그에게서 자신의 불안한 믿음을 조금이라도 확신으로 돌려놓았다면, 이 몇 페이지도 쓸모없이 낭비된 것만은 아닐 테다.
최근 [Blaq Pitch Vol.1]을 바이닐 레코드 및 CD로 발매했다. 반응은 어떤가?
이번 앨범은 처음 카세트테이프로 제작해서 언더그라운드 마니아들이 먼저 접한 다음, 단계적으로 CD와 바이닐로 공개하려고 했다. 각 매체가 가진 여러 가지 질감을 좀 들려주고 싶었다. 사실 앨범을 낸 지 좀 지난 시기에 나왔지만, 반응이 좋아서 기대했던 수량보다는 많이 팔리고 있다.
물리적인 매체를 향한 당신의 애착은 이미 팬들이라면 익히 아는 사실이다. 201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바이닐 수요가 늘어난 현상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뮤지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긍정적이다. 사실 그게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음악이 돌고 돌아 다시 소장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시기로 진입했다는 건 다시금 창작자 입장에서는 웃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뮤지션으로서 음악을 전달할 때 피지컬 포맷으로 들려줄 수 있다는 것 또한 즐거운 소식이고.
그간의 디스코그래피만 보더라도 아방가르드 박은 미디어나 트렌드에 무관하게 꾸준하게 자신이 추구하는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한다. 자신의 20년 커리어를 몇 개의 분수령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어떻게 나눌 수 있겠는가?
가장 큰 분기점은 [野望 (Ya Mang: Essence of Avant-Tape)] 앨범이 나왔을 때 같다. 이전까지의 앨범은 내가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주자는 의미가 강했다. 그런데 이 앨범을 세상에 내놓으며 프로듀서로서 받을 수 있는 사랑과 리스펙트를 실제로 크게 느꼈고, 그 뒤로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 “내 음악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구나” 하고. 뮤지션으로서 리스너와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매개가 생긴 기분이었다. 내 음악이 단순히 내 개인적인 이상을 펼치기 위한 도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 거다. 그때부터 ‘샘플링’이라는 문화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 것 같다.
‘Blaq Pitch’ 연작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리즈를 통해 담고자 했던 감정과 주제 의식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구현되었는가?
뉴욕에 거주하는 남박사라는 친구가 뜬금없이 레코드를 보내줬는데 그게 바로 재즈 뮤지션 호레이스 탭스콧(Horace Tapscott)의 연작 시리즈, [The Tapscott Sessions]였다. 모두 7장의 앨범이 담긴 박스를 연락도 없이 보내줬는데, 그때 큰 감동을 받고 나서 내가 느낀 그 기쁨을 이 친구에게도 전달해주고 싶었다. 이 앨범에는 실황 연주가 담겨있어서 나도 여기에 모티브를 두고 내 하루하루를 라이브로 담았다. 앨범 커버나 아이디어 모두 이 연작에서 비롯되었다.
그 점이 실험적으로 들린다. 우연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해야 하나.
맞다. 마치 일상의 수필처럼, 특별한 콘셉트를 취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나를 담자는 데서 시작했으니 오늘의 기분과 내일의 기분이 다른 것처럼 어떤 게 담길지는 나도 예측할 수 없지.
‘Beatorawgy’, ‘Blaq Pitch’, ‘The Upaloppa’ 시리즈 등 연작 형태의 앨범을 선호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방식을 즐긴다. 그건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작업 기간 동안에는 그 앨범에 던진 화두에 집중해서 살고 싶은 거고.
김오키 뻐킹 매드니스(KimOki Fucking Madness)의 [Big Picture]를 비롯한 여러 작업을 통해 김오키와의 합을 보여줬다. 개성 넘치는 색소포니스트와의 협업 과정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
그는 내게 영감을 주는 뮤지션이다. 따라서 협업하자는 제안을 받고 자연스레 함께했다. 김오키라는 아티스트의 에너지 자체가 일단 좋고, 그가 뮤지션으로서 걸어온 길이 내가 해온 음악과도 크게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협업은 마찰 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최근 MPC60 mk2를 많이 사용하는 모습이 보인다. 위 모델을 애용하는 이유라면?
2005년 처음 발표한 앨범 [Brown Boat #01]가 mk1로 만든 앨범이었고, 그때부터 쭉 이 시리즈 모델을 애용하는 편이다. 12비트 샘플링이라 좀 더 둔탁하고 거친 데다가 무엇보다 파형이 보이지 않거든. 머리로 비트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귀로 계속해서 들어야 하는 이 작업 과정이 좋다. 계속 수련해야만 발전할 수 있는 형식이니까. 컴퓨터로 킥을 하나 따오면, 파형이 그려져서 인간의 머리는 이걸 인지한 채로 작업에 임한다. 그런데 이건 오로지 내 귀로만 판단해야 하니 귀에 가장 좋게 들리는 그 지점까지 찾아내야 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박자가 좀 다르거나 정확하게 잘리지 않더라도 음악의 정교함보다는 내 귀에 가장 좋게 들린 그 지점을 믿어야 하는 상황이 결국 아주 작지만 다른 디테일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Blaq Pitch’ 시리즈는 정말 라이브 앨범처럼 들린다. 직접 수납장에서 꺼낸 레코드의 생음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요리해낸, 정교하지 않아서 더 생동감이 넘치는 비트들.
실제로 반절은 라이브라고 보면 된다. 시퀀싱을 따로 하지 않고, 몇 마디 루프(Loop)를 만들고 실시간으로 담은 게 곧 최종 결과물이 되는 과정이다. 내가 직접 테이프에 담는 작업이기에 원테이크로 갈수록 좋은 질감을 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작업에 좀 더 진지해진다고 해야 할까.
독자적인 행보를 비추어 봤을 때, 신(Scene)의 창작자들과 활발하게 접점을 만들어가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굳이 메인스트림, 언더그라운드라는 푯말을 세우지 않더라도 아방가르드 박이라는 영토를 굳건히 지키는 듯한데. 이 점에 관련해서 들려줄 코멘트가 있을까?
20~30대를 거치며 여러 가지 제안도 받아보고, 그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도 발생했지만, 결과적으로 나 같은 인디펜던트 뮤지션들이 더 많아져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음악이라는 문화 안에서 좀 더 자유롭게 자기가 지향하는 바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 소신을 더 보여줘도 된다는 말이다. 물론 그만큼 자신의 신념에 시간을 투자하는 아티스트가 많아져야겠지. 사실 인디펜던트라는 게 마냥 폼나는 말은 아니지 않나. 분명 알 사람은 알 테지만, 그만큼 자기가 이것저것 다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메인스트림의 레이블과 뮤지션이 충족시킬 수 없는 니즈가 분명 존재하니, 마치 길거리에 있는 영웅들처럼 리스너의 바로 옆에서 그들의 귀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뮤지션들이 필요한 것 같다.
오랜 시간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 예술가들이 한 번쯤 품었을 법한 키워드를 꺼내보고 싶다. ‘타임리스(Timeless)’와 ‘클래식(Classic)’. 마치 꿈이자 환상처럼 들리는 말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하나 결과가 쌓이다 보면 나중에 누군가 그 긴 시간을 특정한 말로 정의하겠지. 그러나 나로서는 아직도 해야 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많기도 하고, 그냥 지금 오늘에 좀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나는 이 샘플링이라는 문화 자체가 작법 이상의 것이고, 굉장히 큰 예술이라 생각하기에 이것에 더 몰두하는 일 외에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이 문화를 내가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라기보다는 이 멋진 걸 어떻게 더 설득력 있게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그 과정을 더 겪어보고 싶다.
샘플링은 단순 저작권의 화두를 넘어 디지털 시대를 반영하는 좀 더 확대된 개념으로써 논의될 가치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유독 ‘질감’이라는 말에 애착을 보였다. 과거 질감의 차이는 그루브의 차이라고 말했던 것 같기도 한데, 비트메이커로서, 힙합 뮤지션으로서 질감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샘플링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고 있는지 말해줄 수 있을까?
단순히 누군가 음악의 요소를 떠올린다면 첫 번째로 멜로디와 리듬일 텐데, 의외로 사운드를 파고들어 가다 보니 공간 안에 온전히 청자를 두는 일이 되게 중요한 거 같더라고. “너는 지금 이곳(음악)에 있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예측하기 어려운 레이어링을 해보는 거지. 그런 빈 공간이나 여유, 미세한 요소들을 확인하고 앞 뒤 공간의 여백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샘플링의 백미가 드러난다. 내가 머리로 인지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는 점이 매력적이다.
레시피가 같아도 음식의 맛이 미묘하게 다르듯, 음악 또한 질감이 작지만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걸까?
맞다. 질감이란 멜로디나 리듬의 공부라기보다는 음악을 체감해야 알 수 있는.
유독 비트테이프/믹스테이프라는 형식을 향한 뜨거운 애정이 느껴진다. 해당 작업의 묘미는 무엇이며 그 행위를 이어나가는 원동력이라면.
창작자가 부르기 나름일 수도 있지만, 우선 ‘비트테이프’라는 말 자체가 좀 더 청자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기 쉬운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이 비트 들어봐”라는 말 한마디로 귀에 꽂아줄 수 있는 그런 거. 이런 자유로운 형식이 앞서 말한 메인스트림이나 대형 기획사에 속하지 않은 뮤지션들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기도 하고. 그게 힙합이라는 문화의 맛이기도 하고.
아방가르드 박에게 힙합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와 의미는 단순히 지금 대중가요의 기호를 넘어선 것일 텐데. 이 음악과 장르를 포괄하는 문화, 일종의 현상에서 오랜 시간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떤 방식으로 보답하고 있는가?
일단 고마움이 앞선다. 흔한 이야기지만, 힙합은 그냥 라이프스타일인 거 같다. 음악의 한 장르로 보기에는 할 말이 더 많은데, 당연히 대중은 귀로 먼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니까. 그래도 결국 내가 느끼는 힙합이란 삶의 방식이나 태도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너무 편한 느낌이라 사실 거창하게 이야기할 내용은 없는 거 같다.
반대로 MPC를 두드리지 않고, 턴테이블에서 손을 뗀 인간 박세우의 일상도 상상하기 어려운데, 이 작업실을 나가면 무엇으로 일상을 채우는가?
사실 딱히 없는데. 그냥 나 같은 사람도 실제로 여기저기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아직도 힙합이나 다른 음악을 들으며 내 방식대로 해석하는 이 과정이 재밌고 이게 곧 에너지가 된다. 디스콕스(Discogs) 원트 리스트는 지금도 쌓여만 가고…. 음악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사명이 아니라 정말 이 자체가 재밌다. 그래서 힙합을 분리한 인간 박세우는 사실 좀 오래전 이야기다.
아방가르드 박은 한편으로는 90년대 힙합 좀 들었다는 리스너에게도 생경한 언더그라운드 힙합 싱글을 가장 많이 플레이하는 디제이가 아닐까 싶은데, 매일매일 새로운 힙합 싱글을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지?
요즘엔 90년대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가장 재밌다. 당시 많은 흑인들이 나스나 우탱 클랜, 제이지 등등 래퍼들의 성공을 바라보며 자신들도 해낼 수 있다는 꿈을 품었지만 사실 그때 빛을 본 뮤지션과 트랙은 제한적이지 않았나. 그래서 싱글 한 두 개만 릴리즈하고 사라진 래퍼들도 많았다. 아직도 그것들을 찾는 게 재밌어서 반세르누(VANSERNU)라는 이름으로 언더그라운드 싱글을 소개하고 있다. 파면 팔수록 딥하고 재밌는 이 문화를 리스너들과 함께 공유하며 즐기고 싶었다.
혹시 지금의 트렌드도 찾아 듣는 편인가?
사실 그쪽으로는 잘 찾아 듣지 않는다. 싫다기보다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데 시간을 더 쓰고 싶어서.
아방가르드 박이 품은 90년대의 향수와 시대적인 영감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때를 떠올리면 되게 황홀하다. 아주 어렸을 때 꿈이 만화가였는데, 그 당시 즐겨 보던 뉴타입이나 게임 챔프 같은 잡지의 영향이 컸다. “파이널 판타지”는 정말 계속해서 돌려가며 할 정도로 좋아한 게임이다. 내가 지금도 내 음악과 관련된 아트워크나 디자인을 스스로 하려고 하는 데는 그 시절의 향수가 묻어있다. 밀레니엄이 오기 전 90년대, 외국 문화가 물밀 듯 들어오고 팝 음악이 전 세계에 들리던 그 시기는 정말 에너지가 넘쳤던 거 같다.
일부 트렌드에 자본과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며 다양성이 외면되는 문화적 양극화를 지금 시대의 소셜 미디어, 디지털 플랫폼들이 일면 해소해주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오랜 시간 활동한 뮤지션으로서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좋다. 나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내가 특별히 사랑받을 짓을 했다기보다는 지금은 개인의 캐릭터가 도드라지는 시대가 돼서 그런지 보여줄 게 있는 사람은 그만큼 더 드러낼 수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다들 똑똑해서 어색하게 꾸민 것들은 잘 알아서 잘 판단하니 특별히 꾸밀 필요도 없는 거 같고. 나는 원체 꾸밀 것도 없으니 그냥 좋아하는 걸 해왔을 뿐인데 또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 같다. 다만 아마추어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단순히 유명해지기 위해 흉내만 내는 친구들이 인스타그램이나 사운드클라우드 같은 플랫폼을 그럴듯하게 활용하는 것 같지만 뭐 그런 유행은 어차피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다만 실력 없다는 말이 언더그라운드와 동의어는 아니고, 언더그라운드는 단단함이 기반이 되는 곳이다.
소셜 미디어 내 짧고 빠른 콘텐츠의 범람은 장인정신을 향한 집요한 고집과 연구가 자칫 ‘진지충’이나 ‘꼰대’ 프레임으로 쉽게 치부되는 경향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그 장인정신조차도 소셜 미디어에 보여지는 것이 되었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견도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시대니까. 연구는 진지한 게 맞고, 한 가지를 오랜 시간 해온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니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 봤을 때 당연히 꼰대처럼 느낄 수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경험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해하긴 어렵겠지. 다만 장인정신을 가지고 뭔가를 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곤 자신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될 사람들도 생겨나겠지. 그래서 나는 언더그라운드에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더 자주 표현해야 하는 거 같다. 그게 뭐가 됐건 간에 어차피 자신의 기술은 평생 갈고닦아야 할 숙명인 거니까, 그건 차치하고서라도 그 과정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그 즐거움을 나누자는 거지. 진지한 작업이니 모두가 진지한 태도로 접근하라는 말이 아니라 이 문화 자체는 재밌는 것이니 즐겁게 어울리자는 말이다.
디스콕스와 유튜브, 후샘플드, 샤잠 등 여러 디지털 플랫폼, 앱의 출현으로 음악에 관련된 방대한 정보를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과거와 다른 양상의 디깅을 향유하는 시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나 역시 디스콕스라든지 디지털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그 역시 디깅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지금 젊은 세대는 디지털에서 정보를 찾고 파고드는 법부터 자연스레 익히게 될 텐데 그게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느냐의 문제는 결국 디지털과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된 순간부터일 것이다.
결국 디깅 또한 일종의 ‘질감’에 관련된 이야기일 수도 있을 거 같다.
온라인으로 눈 빠지게 10시간 동안 음반을 찾아도 뿌듯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발로 돌아다닌 10시간은 아무래도 좀 디지털에서 체감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자기가 바라보던 시각을 벗어난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현실에서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오프라인의 재미고, 스크린에서는 알 수 없던 종류의 이야기겠지. 냄새까지 맡아보겠다는 말이니까.
업계의 소문난 바이닐 컬렉터로서 자신만의 셀렉 기준과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특별할 건 없는데, 사실 뭐 모르는 앨범이어도 크레딧을 봤을 때, 내가 존경하는 연주자가 포함되었다든지, 아니면 의외로 아트워크도 크게 작용하는 거 같고. 판을 모았다면 모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럴수록 느끼는 건 내가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전례 없는 속도로 다시금 바이닐로 플레이하는 디제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그것이 턴테이블리스트의 재조명과는 무관한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힙합 문화 안에서 바이닐이라는 매체를 통해 디제이와 관객이 좀 더 폭넓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비단 지금이 아니라 오래된 이야기다. 나도 뭔가 좀 해보려고 해도 꾸릴 만한 친구들이 너무 적다. 음악을 들려주기 위한 믹싱과 턴테이블리즘을 적절히 잘 섞으면 오히려 대중에게도 더 매력적으로 작용할 텐데, 과거의 턴테이블리스트는 ‘음악을 들려주는 디제잉’에 소홀했던 거 같다. 셋 믹스까지 병행한다면 더 재밌을 텐데. 그래도 힙합을 들려주려면 스크래치는 당연히 필요한 부분이고 해야 하는 거니까 몇 명의 디제이부터 그 문화를 더 재밌게 알리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수지에서부터 무거운 판을 들고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이유도 나 같은 특성을 지닌 디제이가 많지 않으니 그 매력과 맛을 느끼게 하고 싶은 거지.
물론 나는 비트도 만들고 앨범도 릴리즈하면서 일종의 개인적인 사명까지 띠고서 이걸 하는 거지만 사실 많은 디제이가 공간과 그 시간의 니즈를 충족하는 데서 이미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으니, 근데 그게 또 잘못된 건 아니니까. 다만 좀 더 도전적으로 자기 업에 임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지금 시대에 먹통 힙합은 안돼”,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거든. 나는 아직도 파면 팔수록 신선하고 재밌는데. 사람들도 분명 그 매력을 알고 즐기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믿는 거지.
한 우물을 깊게 파온 뮤지션 아방가르드 박 또는 인간 박세우로서 인생을 살아가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이 있다면 무엇인가.
현재를 생각하면 좋을 거 같다. 그렇게 곧 미래가 만들어지는 거니까. 지금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일이 곧 미래가 아닐까 한다. 안 되는 건 결국 내가 못하는 거고,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계속해서 하고 싶고, 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지속 가능한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자생하기 위해 영세한 로컬 레이블, 레코드숍, 클럽, 아티스트들이 경계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본인이 옳다는 걸 꾸준히 믿고 했으면 좋겠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많아야 이 문화가 더 다양해질 수 있을 거 같아서. 거대한 트렌드가 아니더라도 작은 부분에서부터 만들어지는 문화도 존재하니 결국 하고자 하는 것을 향한 믿음이 중요한 거 같다. 그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겠지. 확고함을 가지기 위한 설득력은 곧 실력에서 나오는 거니까. 멀리 보면 결국 그것이 자기 자신을 보고 사는 일 같더라고.
Editor │ 권혁인
Assistant │ 서재덕
Photographer │ 유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