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co.kr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부쩍 분주해진 서울의 밤 문화, 어지러운 네온사인 아래 그보다 더 빛나는 이름 디제이. 약 2년간 침체되었던 클럽 신(Scene)의 반등으로 각종 베뉴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만큼 그간 설 자리가 없던 디제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곳곳을 누비며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잔뼈 굵은 베테랑과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나가는 신예 사이 자타공인 블루칩 디제이 코커(DJ co.kr).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들이라면 이 다음부터는 그저 지루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헨즈 클럽(The Henz Club) 레지던트 디제이로 경력을 시작, 지난 몇 년 간 크고 작은 긱에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킬 만한 플레이로 단숨에 서울 파티, 클럽 신 내 초우량주로 부상했다. 간헐적인 곡 작업을 통해 프로듀서로도 새로운 면모를 갖춘 디제이 코커는 최근 이윤정과 함께 클럽 튠 싱글 “BORI”를 릴리즈하기도. 클럽을 위해 음악을 만든다고 직접 언급한 것처럼 그는 철저하게 클럽에 뿌리를 둔 디제이로서 곡을 만들고, 파티를 열며, 다양한 베뉴를 통해 글로벌 주파수에 맞춘 튠을 관객에게 제안하는 등 디제이로서 펼칠 수 있는 모든 활동에 에너지를 기여하고 있다.


최근 유럽에 다녀왔다. 각국의 베뉴나 관객, 지역에 관한 인상이 궁금하다.

런던만 다섯 번 정도 다녀와서 특별한 감흥은 없는데, 이번에는 NTS 사운드 시스템에 갔을 때 적잖이 충격받았다. 파티에서 나오는 베이스가 몸을 탁 치는 정도로 울리더라. 해크니(Hackney)라는 평범한 동네에서 열린 파티인데 만약 한국 어느 동네에서 그 정도 베이스 볼륨으로 파티를 열었다면 민원 신고로 난리가 났겠지.

파리에서는 한 곡 한 곡 틀 때마다 즉각적인 호응과 함성이 나오는 게 놀라웠다. 오히려 런던은 매주 라인업이 유명한 아티스트로 채워져 그런지, 에너지는 좋아도 디제이가 트랙을 넘길 때마다 열띤 호응이 따라오는 편은 아니었는데 파리는 정말 나를 뜨겁게 환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UK 펑키, 정글 등 코커가 제시하는 음악들을 미루어 봤을 때 런던을 향한 애정은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직접 런던을 체감했을 때 서울과 다른 것들을 느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마피아노(Amapiano)가 현재 디제이, 클럽 신(Scene)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르라고 느꼈다. 내가 클럽 컬러 팩토리(Colour Factory)에 놀러 갔을 때 ‘Charisse C’가 아마피아노를 틀고 있었고, 바로 다음날 NTS에서 그녀는 또다시 아마피아노로 끌고 가더라고. 과거 서울에서의 트랩(Trap) 같은 분위기랄까. 그 컬러 팩토리 파티에 있던 관객 중 나를 비롯한 일행이 유일한 동양인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우릴 신기하게 쳐다봤다. “아, 너도 이거 알고 왔어?”, 뭐 이런 느낌.

해외 유수의 매체와 아티스트가 코커의 트랙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본인의 트랙을 좋아하는 이유 또는 피드백에 관해 들어본 적 있는가?

꾸준히 인스타그램과 라디오 플랫폼을 통해 피드백을 얻고 있다. 외국 디제이들이 내 트랙을 틀고 샤웃아웃해줄 때도 무척 고맙다.

잠시 앨범 얘기를 해보자. [Samulnor.E]부터 [Bori]의 접근이 궁금하다. 둘 다 국악기 샘플을 활용한 듯한데, 디제이로서 트랙을 만드는 동기와 주제의식, 샘플의 활용에 관해 듣고 싶다. 평소 즐기는 UK 사운드의 서울 로컬라이징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트랙을 만들 때 언제나 클럽을 염두에 둔다. 최근 전 세계가 집중하는 SA, 아마피아노를 비롯해 런던의 그라임, 브라질의 훵크, 나이지리아의 아프로비트처럼 특정 도시나 지역에서 파생된 장르로부터 클럽 신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앞서 말한 장르들이 사실 자기네들 로컬 리듬, 문화를 클럽의 형태로 풀어낸 음악이지 않나. 거기서 마음을 동하게 하는 무언가를 얻었고, 우리만의 사운드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과거에 디제이 앤도우(Andow)가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해줬다. 그 형 또한 발리 훵크, 꼼, 발티모어, 풋워크 장르 음악을 틀지 않나. 그렇게 서울, 동네 나아가 한국에도 그러한 움직임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대화하곤 했다. 따라서 [Samulnor.E]도 그렇고 계속해서 내가 만들고자 하는 음악의 초점도 로컬 사운드를 클럽으로 링크시키는 그 지점에 있는 것 같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서울에서도 독자적인 장르가 파생된다면 그것은 어떤 문법이나 아이디어에서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Anunaku’, ‘DJ Plead’, ‘M.I.A’ 등 서아시아 쪽 뮤지션들이 자기네 전통 음악을 가지고 신나게 잘하는 걸 보며 힌트를 얻으려 한다. 분명 동아시아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지만, 아직은 내 능력의 한계인지 개인적으로는 계속해서 고민하는 단계다.

한때는 샘플링을 위해 뽕짝과 경음악 바이닐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 그때 음반에서 뮤지션들의 “이히~!”와 같은 추임새와 의성어에서 꼼이나 발리 훵크 뮤지션들의 그것와 유사한 지점을 느꼈다. 어떤 로컬의 냄새를 풍기는 데는 단순히 한국 악기로 음악을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와 생각할 거리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건 ‘한국 짜장면’ 같은 거지, 댄스 음악 문법에 한국적인 고명만 올리는 식의 음악은 아니다. 한국식 짜장면처럼 고유한 장르가 만들어진다면 정말 멋진 일이 아닐까. 여기에 이번 장기하, 250의 앨범이 많은 힌트를 줬다고 생각한다.

클럽 뮤직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한 보컬(이윤정, 문선)과의 협업을 선호하는 듯하다. 협업 뮤지션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

분명 주변에 멋진 래퍼와 보컬이 많지만 내가 지향하는 클럽, 댄스 뮤직을 완전하게 소화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다. 따라서 90년대부터 하드코어, 정글, 테크노, 하우스까지 이해하는 OG로서 이윤정은 당연히 함께하고 싶은 뮤지션이었고, 문선 또한 플레이어이자 프로듀서로서 탁월한 이해도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작업을 제안했다.

이윤정은 한국 테크노의 초석을 다지는 데 기여한 뮤지션이다. 그녀와의 작업을 통해 프로듀서 혹은 디제이로서 새로운 영감을 얻은 내용이라면?

일단 녹음을 한 큐에 갔다. 내가 애초에 상대를 귀찮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한데, 그런 거 다 떠나서 BPM 맞춰서 틀어놓으니 이윤정이 알아서 내뱉고 그렇게 녹음이 바로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한 마디 하고 끝.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었다.

본인의 작업물을 피지컬 음반 형태로 내는 데 주력한다. 손이 가는 일임에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면?

일단 내가 내 곡을 바이닐로 틀고 싶어서. 내 음악이 바이닐로 나온다는 사실이 그냥 멋있잖아.

평소 셋에 자신의 트랙을 비롯해 동료 디제이, 국내 뮤지션의 트랙을 자주 섞는 편이다. 어찌 보면 로컬 디제이로서 느끼는 일종의 사명감 또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을 텐데,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일으킨 트랙이 무엇일지도 궁금하다.

특히 해외에서 플레이할 때 더 국내 아티스트들의 곡을 많이 셋에 포함하는 편이다. 한국 뮤지션들의 음악은 정말 어디에 내놓아도 안 꿀린다. 그래서 더더욱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코커의 셋 전개는 상당히 빠르고 직관적이다. 셋을 구성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경계하는 점이 있다면?

트랙을 레코드박스(Rekordbox)에 정리하긴 하지만 한 곡, 한 곡으로 셋을 짜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셋을 안 짠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플레이 타임이 한 시간이라 가정하면, 그 한 시간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간다. 한 시간을 몇 개의 기준점으로 나눠서 장르라든지 BPM이라든지 흐름과 맥락을 짜 놓은 다음 플레이하는 거지. 그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흐름을 바꾸거나 플로어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어서 내게는 더 잘 맞는 방식 같다.

과거에 YTST가 내게 한 말이 지금까지도 내가 셋을 구상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요약하자면, 어떤 뱅어나 멋진 트랙도 한 곡씩 순서를 짜다 보면 그 곡이 정말 좋은지 관객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으니 좀 더 덩어리처럼 빌드업하라는 말인데, 그게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게 좀 디자인적인 개념이다. 마치 복싱처럼 스트레이트 한 번을 맞추기 위해 잽이나 다른 기술을 섞어주면서 기회를 노리라는 말이다. 그렇게 흐름을 만들어서 스트레이트를 날렸는데 관객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다시 새롭게 스텝을 밟고 빌드업을 시작하는 거지.

클럽에 자주 가는 이들이라면, 플레이 중인 디제이의 선곡에 가끔 한 번씩 그 뒤에 있는 다른 디제이들이 환호하는 풍경을 볼 수 있을 텐데,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다. 그게 바로 빌드업의 맛이고, 한 곡이 주는 무게감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디제이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곡을 틀어도 어떤 디제이가 트는지에 따라 감칠맛이 다르다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구성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셋에 뭔가 부족한 게 있다고 느끼는 디제이라면 이 말을 잘 고민해봤으면 한다.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셋 안에서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훵크, 브레이크 비트, 힙합, 덥과 테크노, 하우스와 댄스홀, 정글 등 숱한 장르를 포괄하면서도 집중도가 떨어지지 않게 셋을 운용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인가?

비슷한 맥락이다. 좀 더 고유한 장르의 맛을 진하게 들려주기 위해 여러 장르를 포괄해서 빌드업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리스너가 현업 디제이에게 레슨을 받고 데뷔하거나 베드룸 디제이로 디제잉을 즐기는 추세다. 그러나 과외 교육 형태처럼 느껴지는 레슨의 성격상 디제잉이 내포하는 음악의 너른 이해보다도 믹싱 스킬의 커리큘럼과 기술적인 측면만이 디제이와 그 문화를 정의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다.

사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제 디제이의 셋을 들을 때 스킬적인 측면은 배제한다. 국내 디제이들은 이제 대부분 8마디 믹싱, 루프 등 기본적인 스킬을 갖췄다. 레슨을 통한 체계적인 교육이 한몫했겠지. 그 점이 디제이 셋의 개성이나 선곡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할 수도 있지만 현직 디제이들 또한 단순히 스킬뿐 아니라 디제잉이나 음악에 관한 전반적인 어드바이스를 해주고 있으니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닌 듯하다. 툴 만지는 건 누구에게 배워도 상관없는데,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나 음악에 진지한 태도가 생길 수 있도록 어드바이스해주는 건 분명 중요한 역할 같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디제이의 에너지 또한 굉장히 큰 요소다. 예전에 벤지 비(Benji B)가 케이크샵(Cakeshop)에 내한했을 때,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아티스트라 그가 어떻게 음악을 트는지 유심히 봤더니 한 곡 한 곡을 거의 끝까지 들려주더라. 그런데도 플로어의 분위기는 좋았다. 단순히 타이트한 셋 구성과 믹싱 스킬이 디제이가 보여줄 수 있는 역량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느낀 거지. 저건 또 저대로 멋지구나, 하고.

실제 보일러룸(Boiler Room)과 같은 플랫폼의 동영상 콘텐츠를 시청하다 보면, 현란한 믹싱 스킬보다는 선곡과 바이브, 청중과 함께 호흡하는 데 더 치중하는 디제이가 여럿 보인다. 때와 장소에 맞게 좀 더 느슨하게 믹스하거나 비트매칭에 집중하지 않는(또는 그렇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데, 그 말인즉슨 디제잉 자체가 ‘전문적’이라기보다는 음악을 들려주는 수단으로써 문화적으로 생활 속에 자리했다는 방증 같다. 국내외를 오가며 많은 디제이와 어울린 디제이로서 보고 느낀 것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해 달라.

런던 친구들을 보며 느낀 건데, 그곳은 체계적인 레슨 같은 게 없어서 그런지 믹싱 스킬 자체는 별 볼 일 없어도 그냥 친구들끼리 파티를 열거나 음악을 트는 일이 되게 익숙한 문화라는 걸 느꼈다. 본 소다(Bone Soda)나 스투시(Stussy) 파티도 이름만 들었을 때는 커머셜하고 큰 브랜드 행사 같지만, 라인업에 오른 디제이들은 친구들끼리 노는 블록 파티의 형태로 평소 자연스럽게 파티를 열곤 한다.

지난번 런던 컬러 팩토리에서 음악을 틀었을 때, 내가 NTS에서 바라만 보던 디제이들이 내 셋을 듣고 깜짝 놀랐다는 듯이 이야기할 때 좀 당황했다. 아무래도 타이트하게 믹스하는 내 스타일이, 국내에서는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는 그 부분이 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간 듯했다.

디제이 데뷔를 꿈꾸는 이들에게 인맥 없이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가 어렵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 있는데, 국내 업장이나 플레이어들이 새로운 인물을 찾고 발굴하는 데 게으른 것인가? 아니면 프로와의 격차를 실감하지 못하는 베드룸 디제이의 투정인가? 조언 한 마디 부탁한다.

분명 무대에 오르는 길이 쉽지는 않다. 그리고 분명 클럽의 공기를 느껴본 디제이와 그렇지 않은 디제이의 격차도 크다고 생각한다. 인맥은 어떤 일에서건 중요하다. 자신의 믹스셋을 업장 측에나 현직 디제이들에게 보내는 일도 멋진 허슬이다. 나 또한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그게 제일 힘들었다. 부산에서 올라와 헨즈 클럽(The Henz Club)에서 레지던트를 하기까지 처음 말을 꺼내기가 너무 어려웠거든. 그런데 클럽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많이 안 거지. 그런데 클럽에 자주 가서 그 공기를 느끼고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 역시 노력의 일부 아닌가? 만약 자신의 셋이 정말 신선하고 보여줄 게 많은 디제이인데, 아무도 자신을 못 알아보는 거라면 그건 정말 로컬 신의 문제겠지. 그런데 냉정하게 말해서 그런 경우는 없다. 잘하는 사람들은 어디서든, 누군가는 찾기 마련이거든. 또한 한국도 더 다양성을 추구하는 베뉴가 많아질 거라 믿는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거나 풀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OG를 향한 존경심을 기반으로 베테랑들과의 교류를 이어가는 편이다. 그들이 신에 남긴 유산이 본인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단순하다. 그들이 쌓아온 아카이브와 라이브러리에 감탄하고 배울 게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디제이 스프레이(DJ Spray)는 30대 후반임에도 여전히 매일 비트를 만들고, 레코드숍을 돌아다니며 디깅한다. 내 또래만 봐도 매일 그렇게 음악에 열정을 보이는 이들은 찾기 힘들다. 나이는 문제가 아니고, 결국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람들에게서 자극을 받고 싶은 거다. 그런데 나보다 어린 친구들보다는 지금 현업에서 나보다 더 오래 일한 사람들에게서 더 큰 열정이 느껴지니 자연스레 OG들과 어울리게 된 것 같다. 단순히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면 유스, 나이 많은 이들과 어울리면 꼰대라는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서 생각해야 한다. 바닥이 금방 드러나는 친구들은 보통 자신의 밑천이 동날 것 같으면 상대를 꼰대라며 배척하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태도로 일관한다.

무수한 파티에서 가장 바쁘게 플레이한 디제이로서 서울 클럽 문화와 파티 신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코로나 전과 후,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또한 서울의 클럽 신이 재미있는 이유라면?

작은 동네임에도 무수한 파티가 매주 열리고 베뉴가 많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 같다. 사실 나만 하더라도 케이크샵, 헨즈, 타임즈(Times) 등 어디서도 볼 수 있는 디제이가 아닌가. 어딜 가도 비슷한 셋을 틀고, 쉽게 볼 수 있는 디제이라면 과연 자신만의 개성이나 매력은 무엇으로 드러낼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그리고 관객 입장에서는 핫한 베뉴를 찾는 일에서 좀 더 나아가 재미있는 기획의 파티를 보고 즐기러 다닐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좋지 않을까. 분명 서울의 베뉴들은 모두 상향평준화됐지만, 그래도 정말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은 여전히 극소수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트랙을 만들면서 좀 더 확고한 스타일을 잡아가다 보니 이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고.

새로운 장르나 움직임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해외의 경우 기성 매체뿐 아니라 로컬 숍, 언더그라운드 라디오 플랫폼 등 공동체 전반적으로 힘이 실린다. 서울 로컬 신은 디제이로서 어떻게 체감하는가?

디제이 측면에서는 디제이가 좀 더 활발하게 에디트(Edit)나 리믹스(Remix) 작업을 이어간다면 로컬 음악을 더 널리, 다양하게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이건 디제이 문화의 큰 매력이면서 서로에게 더 자극을 줄 수 있는 방식의 작업이다. 분명 본인의 셋을 구성하거나 음악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는 데 좋은 영감이 되는 형태의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헨즈(Henz)에서부터 커리어를 시작해 굵직한 베뉴의 섭외 1순위 디제이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헨즈와 케이크샵(Cakeshop)을 향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는데, 이 두 클럽이 언더그라운드 신에 의미하는 바라면?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클럽들이다. 로컬 언더그라운드 신에 자리한 타 베뉴들과는 존재감이 다르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아티스트와 베뉴가 함께 새로운 파티를 기획하는 움직임이 더러 보인다. 코로나 이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파티가 존재함에도 장르적인 다양성이나 또렷한 기획을 내건 파티는 소수라 느껴지는데, 파티를 직접 열어보기도 한 디제이로서 국내 파티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예전에 게토레이(Ghetto-Ray) 파티를 했던 건 레게나 댄스홀, 발리 훵크 같은 장르를 클럽에 놀러 오는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런 거 틀면 다들 목각인형이었으니까. 순수하게 음악이 좋아서 돈 벌 생각 하나 없이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해외 뮤지션까지 불러가면서 멋진 파티를 만들려는 욕심이 있었다. 당연히 당시 클럽 측에서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냥 욕먹을 각오로 꾸준히 했다. 이제 코로나도 잠잠해졌겠다, 파티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분명 더 많아지겠지만, 신선한 움직임 또한 함께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친한 디제이끼리 뭉쳐서 비슷한 바이브를 보여주는 것도 물론 좋으나 더 새로운 바이브를 소개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한다. 케이크샵이나 헨즈가 실험적으로 진행한 파티나 손해를 무릅쓰고 데려온 해외 아티스트를 통해 분명 국내 뮤지션, 디제이 또한 교류의 기회가 생기거나 함께 새로운 바이브를 공유하는 데 큰 도움을 얻지 않았나.

긴 코로나의 여파로 많은 기획자나 베뉴가 움츠러든 탓도 있을 것이다. 본인에게 큰 영향을 줬던 과거의 파티나 경험이 있다면 들려줄 수 있을까.

어렸을 때, 데드엔드(Deadend) 파티에 가거나 좋아하는 디제이가 내한할 때는 하루 전날부터 떨릴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설렘을 안고 파티에 가는 순간이 사라진 거 같다. 지금 이 말을 하면서도 나 스스로 좀 더 노력해야 하지 않나 하는 반성도 들고.

간혹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신을 향한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분명 오랜 시간 로컬에서 활동한 디제이로서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정일 듯한데, 어떤 점이 바뀌었으면 하는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 또한 로컬 신에서 디제이로 살아오다 보니 크고 작은 불만이나 아쉬움이 생기곤 한다. 절대 누군가를 비방하지 않으려고 하는 나 자신과 화살이 꽂히는 걸 무릅쓰고도 할 말을 하려는 내가 공존하는 기분이다.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피해를 입혔다면 당연히 사과해야 하지만, 분명 베뉴든, 플레이어든 간에 신이 좀 더 좋은 쪽으로 바뀌길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나뿐만은 아닐 것 같다. 또한 이러한 이야기를 소셜 미디어에 풀어내며 정작 감정적으로 흐를 때가 있다. 감정적인 대응으로 의도가 흐려지는 것은 지양하려고 한다. 이렇게 매체를 통해 민감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으니 한결 기분은 낫다.

본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 3명을 언급해 달라.

앤도우, 킹맥(KINGMCK), 황재국. 결국 내가 디제이로 살아가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인물을 꼽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앤도우를 통해 디제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오래전부터 계속해서 동시대의 댄스 뮤직을 계속해서 제안하고, 로컬 사운드를 발 빠르게 가져온 사람. 아마피아노 역시 5년 전부터 이야기했던 디제이가 바로 앤도우다. 킹맥이야 뭐 내 또래에서는 히어로 같은 사람이니까.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디제잉을 시작했을 거다. 황재국은 내가 헨즈 레지던트 디제이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사장님이었고, 나 같은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판을 만든 사람이다. 결국, 셋 모두 디제이가 좀 더 즐겁고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온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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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권혁인, 서재덕
Photographer │ 백윤범
Translator │ 김홍식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매거진 20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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