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ber Shop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이들에게 10년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한 가지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췄다는 자신감, 무수한 고난을 버텨냈다는 자부심 등, 10주년이란 표제어는 순간의 기교로는 얻어낼 수 없는 무형의 메달일 테다. 2012년부터 한국 스케이트보드 신(Scene)을 지지하고 이끌어온 팀버샵(Timber Shop)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적지 않은 세월, 그만큼 쌓인 옛이야기 보따리를 기대했지만, 웬걸. 지난 10년은 그저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이라는 일언으로 끝을 맺고, 팀버샵, 한국 스케이트보드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에 여념이 없다. 물결이 일렁인 뒤에는 또 그다음의 물결이 일기 마련, 지나간 시간보다는 앞으로의 흐름을 준비하는 그의 말에서 이미 그간 팀버샵의 깊고 진한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케이던스 디스트리뷰션(Kadence Distribution)과 팀버샵을 운영하는 조양수라고 한다. 팀버샵에서 로컬 마케팅을 비롯한 부가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로 마흔 살이 되었고, 1999년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시작해 오랜 시간 스케이트보드 산업에 몸담았다.

남산동 언덕 자그마한 숍에서 시작한 팀버샵이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했다. 소회를 밝힌다면?

뻔한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긴 한데, 진짜로 눈 감고 뜨니까 지금이 된 느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벌써 10년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에 이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하하. 어렸을 때는 뭘 해도 10년은 해야지 전문가라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20년간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사업을 진행했기에 10주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그냥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구나 하고 되돌아보는 거지. 오히려 조금 압박감이 든다. 이제는 회사로서 확실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몇몇 사람들은 ‘10년이나 했으면 저 회사는 꽤 성장했을 테고, 규모도 크겠구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아직까지는 그 기준에는 좀 못 미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어쩌겠나. 현재에 만족하면서 계속 노력해야지.

팀버샵과 케이던스 디스트리뷰션은 어떤 관계인지.

팀버샵은 케이던스 디스트리뷰션에서 직접 운영하는 스케이트보드 편집숍이다. 케이던스에서 수입, 유통하는 브랜드와 함께 국내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를 취급하고 있다.

케이던스가 아닌 팀버라는 이름을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

팀버라는 이름은 동업자인 라이언 세일리(Ryan Saley)가 지었다. 스케이트보드 데크의 소재가 나무로 되어있으니까. 그냥 나무로 된 것을 판매한다는 의미로 팀버라는 단어를 쓰기로 했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

팀버샵의 시작을 이야기해보자. 남산 인근에서 매장을 열었던 때부터 10년의 역사를 짧게나마 들어보고 싶다.

남산동에 오픈했던 초창기에는 내가 개입하기 이전이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케이던스 디스트리뷰션에 합류했지. 첫 번째 숍을 기억하는 이라면 알겠지만,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름에 오려면 땀을 한 바가지는 흘려야 했지. 하하. 장사하기에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숍을 운영한 이유는 케이던스가 보유한 브랜드를 여러 사람에게 더 쉽고, 가깝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숍보다는 쇼룸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렇게 계속 운영해오다 우리도 강남에 진출해보고자 신사동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강남에 스케이트보드 수요가 있었고, 해외 관광객도 많으니 판매가 수월할 것 같았거든. 그렇게 가로수길에 매장을 오픈하고, 사무실을 지금 팀버샵 2층으로 이전했다. 신사동 숍은 초반에 자리를 잡아가는가 싶더니 주변 상권이 무너지면서 함께 가라앉았다. 신사동 스토어를 정리할 때 마침 사무실 아래층에 자리가 나서 아예 홍대로 본거지를 옮겼다. 돌이켜 보면, 홍대에 온 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모이고, 여기 아니면 이런 문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적으니까. 점차 시간이 지나면, 이곳이 중요한 위치가 될 것이라 판단했지.

익히 유명한 컬트나 뚝섬 스케이트보드 파크 같은 플라자 스팟 주변은 염두에 두지 않았는지.

숍을 찾는 고객 대부분이 이제 막 스케이트보드에 입문하려는 초보자다. 홍대는 그런 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이 많으면서도 플라자 스팟에 비해 접근성이 좋고, 이외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는 장소이기에 이곳을 고수하고 있다.

홍대 놀이터를 파크로 구성하자는 이야기도 잠깐 나왔던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가 잠깐 나오기는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현실성이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결국에는 공무원이 해야 하는 일인데, 그걸 꾸준히 유지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유동 인구도 워낙 많고, 안전 문제도 있을 거고.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였던 분들의 노고에는 감사를 표하고 싶다.

긴 시간 스케이트보드를 탔고, 이를 업으로 삼기까지 했는데, 어떤 계기로 스케이트보드 문화에 발을 들이게 되었나.

국내 스케이트보드 웹진인 데일리 그라인드(Daily Grind)의 초창기 파운더인 이원석이라는 형이 내 친형의 오랜 친구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내다 보니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원석이 형이 홍대 인디 밴드를 굉장히 좋아했거든. 그렇게 학창 시절에 몇 번 밴드 공연을 따라갔는데, 인디 밴드로 활동하는 사람들 대부분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더라. 그때 그게 너무 멋져 보여서 형들 따라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그게 꾸준히 이어져 스무 살 때는 스케이트보드 숍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관련 업종에서 경력을 쌓아 서른 살부터 케이던스 디스트리뷰션과 함께하고 있다.

어떤 기점을 계기로 스케이트보드 산업에 뛰어들었는지. 그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것 같다. 큰 수술 때문에 군대를 안 가게 되면서 또래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스케이드보드를 좋아하니 이와 관련된 쪽으로 직장을 구했다. 지금은 없어진 우후청산, 로닌(Ronin)이라는 스케이트보드, 스트리트웨어 숍에서 스케이드보드 파트 세일즈를 했다. 그런 경력이 쌓여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물론, 어느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하하.

10주년을 맞이하기까지 팀버샵 내 많은 사건이 있었을 것 같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들이 있는가.

글쎄, 당장 생각나는 것들이 많지는 않지만, 어려웠던 때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뭐 망할 뻔한 적도 있었으니까. 직원 임금도 밀리고, 제품 통관 비용을 납부하지 못해 1년이 지나서야 제품을 받고 그랬다. 그만큼 운영이 힘들었던 때가 많았다. 외국인과 교포가 운영한다는 반감 때문에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오랜 시간 꾸준히 운영되는 모습을 보며, 큰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다.

어려운 시기가 많았지. 예전에는 스케이트보드 브랜드가 지금처럼 인기 있던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이야 대중이 트래셔 매거진(Thrasher Magazine)이나 폴라 스케이트(Polar Skate Co.) 같은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를 많이 입고, 그와 유사한 스타일을 지향하는 브랜드 역시 많아졌지만, 그전까지는 한국에서 스케이트보드 문화와 패션에 대한 대중적인 인지도가 전무했다. 보드를 타는 인구도 한정적이었기에 이 비즈니스 자체가 성장할 수 있는 틈이 있었음에도 그만큼 투자해야 하는 노력과 비용이 많이 필요했던 상황이라 이를 헤쳐 나가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반대로 최근에는 스케이트보드 붐이라고 할 만한 현상들이 쭉 이어지고 있고, 전체적인 보드 인구나 그에 따른 수요 역시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업계 최전선에 있는 이로서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스케이트보드 문화만을 놓고 바라볼 때, 나와 비슷한 세대가 바라보는 시각과 현재의 십 대, 이십 대가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다를 거다. 스케이트보드를 접한 경로에 따라 그 생각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좀 꼰대 같겠지만, 우리 때는 스케이트보드를 접하려면,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만나거나 이런 쪽을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야만 문턱을 넘을 수 있는, 특별한 집단의 문화였다. 지금은 어떤가.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등 각종 매체에서 스케이트보드를 쉽게 만날 수 있게 됐고, 덕분에 많은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코로나(COVID-19) 팬데믹 이후 스케이트보드뿐 아니라 캠핑이나 자전거 등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활동의 수요가 늘어난 것도 스케이트보드의 성장에 한몫한 것 같다. 이런 붐을 예상할 수 있었던 확실한 요인이라면, 올림픽 종목에 정식적으로 채택되었다는 거다. 이러한 여러 상황과 함께 스케이트보드 문화와 산업은 앞으로도 계속해 성장할 것 같다.

문화와 스포츠라는 두 영역이 섞이며, 스케이트보드의 쿨한 이미지가 희석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 않나.

물론, 그런 우려도 있을 텐데, 우리가 아는 스케이트보드의 쿨하고 딥한 이미지는 계속 남아있을 거라고 본다. 그런 건 절대 없어지지 않지. 스케이트보드가 어디서 왔는지 그 뿌리만 봐도 그렇지 않나. 엘리트 스포츠처럼 국가대표가 되고, 메달과 상을 따는 등 성적 위주로 접근하는 케이스도 상당히 많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런 걸 부작용이라고 말하기에도 어렵다. 부작용도 아니고 좋은 현상도 아닌, 그냥 시대의 흐름이 아닐까. 어릴 때 내가 좋아했던 스케이트보드의 멋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생겨나고 있는 모든 스케이트보드가 구리고, 멋없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이걸 다 바꿀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건 혼자 스스로 지키면 되는 거니까.

팀버샵의 팀 로스터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팀원 간의 유대가 단단하고, 스케이터의 연령이나 성별도 다양하게 구성된 것 같다. 어떤 기준으로 멤버를 영입하고 어떻게 꾸려가고 있는지.

점진적으로 팀 빌딩을 하면서 이렇게 오기까지 사실 쉽지 않았다. 당연히 실력을 가장 먼저 보지만, 톱클래스의 실력까지 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그가 어떤 바이브를 가졌는지, 팀 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느냐를 우선적으로 보고, 스케이트보드를 대하는 태도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최근에는 어린 친구들을 주로 영입하고 있는데, 지금은 중학생 팀이 다섯 명까지 늘었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어린 친구들에게 좋은 스케이터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더불어, 현재 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친구들과 어떤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있다. 최재승 선수 같은 경우에는 시그니처 데크를 함께 제작해 수익을 나누기도 하고. 이렇게 다방면으로 국내 스케이트보드 신을 지원하고 투자하려 한다.

열 살 많게는 스무 살까지 나이 차이가 나는 스케이터들하고도 잘 어울리고 소통하는 느낌인데.

많이 노력하고 있다. 어떤 친구들은 거의 자식뻘인데. 하하. 팀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준영이와도 거의 열 살 차이가 나니까. 그 친구들이 어떻게 스케이보드를 바라보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또 내가 어떤 걸 해줄 수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내 생각대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팀 바이브가 좋아지는 게 아니거든. 예를 들어 팀원에게 “야 너는 이 비디오에서 무조건 킥플립 백사이드 립슬라이드(Kickflip Backside Lipslide)를 해야 돼, 그거 아니면 안 돼,”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고 뭘 하고 싶은지 파악한 뒤 그것에 관해 소통하고 최대한 지원하고, 더 친해지려 노력해야 서로에게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세대 간의 장벽을 없애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는데,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하. 그래도 밖에서 팀버의 팀 분위기가 좋고 열심히 다들 참여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고 많이 이야기해주는데, 이건 뭐 나 혼자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팀원이 잘 따라와 주고 같이 노력하고 있으니까.

팀 투어 또한 이어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진행한 투어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우리 팀 라이더 중에 일본에 카츠야 나카자와( Nakazawa Katsuya)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동네로 한번 일본 투어를 간 적이 있다. 당시 인원도 많이 갔고 또 낯선 일본 스팟에서 새로운 영상 프로젝트도 촬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그때 모두가 카츠야의 집에서 묵었는데 그 집이 시골에 있는 커다란 일본 전통식 가옥이었다. 일본에는 바닥에 온돌이 없어 잘 때 너무 추웠다. 심지어 숨을 쉬면 입김이 나오더라. 하하. 이불도 모자라서 외투까지 껴입고 오들오들 떨면서 잤다.

또 한 번은 예전에 팔팔 스케이트(PALPAL Skate) 팀과 협업해 여수로 스케이트 투어를 갔을 때. 식당에서 밥을 먹고 우리 팀원인 호진이가 화장실에 갔는데, 그 사실을 몰라서 걔를 두고 떠났다. 본인은 고의로 떼어 놓고 간 거라고 믿던데, 절대 고의는 아니었다. 하하. 이것만이 아니라 투어는 갈 때마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 다녀오면 팀 사이 관계가 더 돈독해지고, 유대감도 생기고.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가려고 한다. 팬데믹 상황이 좀 더 나아지면, 해외 투어도 가보려고 기획하고 있다.

팀버샵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업무 파트는 어떤 방식으로 나누어져 있는지.

지금 현재 사무실 인원이 아홉 명에 숍 아르바이트생 두 명까지 총 열한 명이 팀버샵에 속해있다. 팀버샵에는 매니저와 창고에 고정 인원 한 명이 있고, 매장과 창고를 오가는 직원 한 명, 팀버샵을 서포트하는 아르바이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리고 현재 현대백화점의 피어(PEER)라는 편집숍에도 숍 인 숍으로 꾸려진 매장이 총 다섯 군데라 이를 관리하는 팀을 신설했다. 사무실에는 국내 영업과 마케팅을 맡은 나와 온라인 팀장, 그리고 해외 브랜드 영업과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는 라이언 세일리 등이 모여 유기적으로 회사를 운영 중이다. 아직 부족한 게 많고, 그리 큰 회사도 아니지만, 그래도 스케이트보드 하나로 이렇게 왔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팀 라이더도 언급해줄 수 있나.

팀원이 너무 많아 전부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단 성인 팀은 최재승 선수, 그리고 최유진, 최호진 형제, 김준영 그리고 이제 일본의 카츠야가 있다. 이제 중학생 팀 다섯 명이 있는데 그중 두 명은 현재 스케이트보드 국가대표 소속이고, 다른 세 명도 추후 국가대표가 될 확률이 아주 큰 선수들이다. 열심히 지원하고 있다.

10년 동안 스케이트보드 스타일이 계속 변해왔고, 유행하는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나 스케이터의 세대교체 등 꾸준하게 흐름이 바뀌었는데, 가장 크게 체감하는 변화라면 무엇이 있을까?

스타일 유행은 계속해서 돌고 도는 것 같다. 내가 스케이트보드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배기팬츠에 상의를 크게 입는 게 유행이었는데, 최근 그런 스타일이 다시 돌아왔으니까. 근래에는 유럽의 스케이트보드 브랜드가 강세를 보인다는 것 정도랄까.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최근 유럽 스케이트보드 브랜드가 자주 눈에 띄는데, 이러한 인기의 배경에 관해 설명하자면. 코어 스케이트 신에 있는 스케이터의 눈높이는 항상 높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예술적인 요소가 있는 브랜드를 좋아할 수밖에 없고, 그런 걸 또 유럽 친구들이 상당히 잘 풀어낸다. 또 멋지고 트렌디한 친구들이 그런 브랜드의 옷을 곧잘 입는다. 유행을 선도하는 건 브랜드지만, 그 브랜드를 팔로잉하는 스케이터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

새로운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역시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지 않나. 어떤 방식으로 브랜드를 찾고, 들여오고 있나.

아무래도 우리가 디스트리뷰션을 오래 운영해왔으니 먼저 입점 제안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관련 자료를 받고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괜찮다 싶으면 진행하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우리도 열심히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보는 거지. 요즘은 코어한 브랜드를 물색 중이다. 산타크루즈 스케이트보드(Santa Cruz Skateboards)나 인디펜던트 트럭(Independent Trucks), 폴라 스케이트처럼 이미 검증된 브랜드나 큰 리테일 숍을 보유한 브랜드가 아닌, 좀 더 딥하고 트렌디한 브랜드들.

자체 생산하는 팀버 스케이트라는 PB 브랜드도 전개 중이다. 국내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마켓에 비춰볼 때 PB 브랜드가 지니는 의미가 적지 않다고 보는데.

사실 로컬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이 있었다. 가령, 숍 데크라고 하면 무조건 저렴해야 하고 또 어느 정도 퀄리티가 받쳐줘야 하는, 시쳇말로 ‘가성비’를 많이 따졌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전에는 한국에 실력이 출중한 스케이터가 있다면, 그 스케이터가 우리 팀버샵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해외 브랜드 본사에 메인 라이더로 소개하는 일이 이전까지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로컬 브랜드로서 스케이터를 지원함과 동시에 시그니처 상품을 제작해 함께 수익을 창출하는 방향이 더욱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로컬 브랜드가 이렇게 성장하고 브랜딩 중이기도 하고, 로컬 스케이터 또한 이를 계기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다양한 프로젝트를 계속하며 여러 스케이터를 더욱 탄력적으로 키워나가고, 브랜드 또한 PB로 그치는 게 아닌 세계적인 브랜드로 나아가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팀버샵이라는 이름 아래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시사회나 투어, 콘테스트 등 갖가지 행사를 많이 진행했는데, 인상적인 기억이 있는지.

무엇 하나 쉽지 않았기 때문에 전부 기억에 남지만, 그래도 제일 우리가 지금껏 가장 큰 규모의 외국 스케이트 팀을 초청한 게 2013년 진행한 수프라(Supra) 투어였다. 팀 라이더도 엄청 많이 왔고, 너무 고생을 해서 다시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하고 있지. 하하.

해외 팀을 초청했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일단 외국인이다 보니 한국이라는 나라에 낯선 상태다. 그들의 나라와 관련 법규도 다르고. 때문에 그들을 안전하게 보살피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24시간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 하지.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동안 투어를 진행하지 않았다. 계획 중인 투어가 있다면?

이제 천천히 기획해 봐야지. 어려운 일이지만,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프로 스케이터 초청이나 시사회, 대회가 케이던스 디스트리뷰션과 팀버샵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스케이트보드 신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거니까.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 힘든 걸 어쩔 수 있겠나. 이런 자리 빌어서 장난스레 징징거리고 그러는 거지. 하하.

스케이트 숍은 단순히 제품을 사고파는 상점이 아닌, 로컬 지향적인 장소라고 느껴진다. 로컬 스케이트 숍이 스케이트 커뮤니티 속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은가.

스케이트보드의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전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거다. 당장 미국이나 유럽에 갔을 때 로컬 스케이트 숍에서 그 지역의 스케이터를 만나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랄까. 마찬가지로 서울에서는 팀버샵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숍 스태프가 손님과 친구가 되고, 스케이터 대 스케이터로서 스팟과 로컬 신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그래서 우리도 ‘서울 시티 스케이트 숍’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다. 문화 전파력을 가지고 연결해주는 것 또한 숍의 업무 중 하나다.

10년 동안 꾸준히, 단단하게 운영을 해왔다는 인상이 강하다. 딱히 유행에 치우치지 않고 그냥 묵묵하게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것 같은데. 오랜 시간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스케이트보드를 워낙 좋아하니까, 이것밖에 할 줄 모르고, 하고 싶은 것도 이것밖에 없었다. 원동력이라는 건 되게 단순하다. 좋아하는 것에 정직했을 뿐이다. 뭐가 되고 싶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단순히 브랜드를 하고 싶어서 브랜드를 만드는 건 쉽지만,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어려운 거지. 언제나 그렇게 부딪혀 왔기에 나름대로 성장해왔고, 이게 밑거름이 되어 10년이라는 세월을 버틸 수 있었다.

팀버샵이 생각하는 스케이트보드란 어떤 건지 또 스케이트보드 산업이란 무엇인지 말해 달라.

스케이트보드는 그냥 멋이다. 복잡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야말로 의미 없는 일이고. 멋과 재미가 전부가 아닐까. 산업으로 이야기하자면, 미래의 성장이 기대된다. 아직 발전 가능성이 무수하기에 산업이 훨씬 커지고, 그로 인해 스케이트보드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이들이 다른 비즈니스로 이탈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만 봐도 스케이트보드 파크가 엄청 생기고 있지 않나. 파크에서 강사로 일하는 친구도 정말 많아졌다.

10주년을 위해 준비 중인 특별한 프로젝트는 없는지.

사실은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좀 받고 있다. 뭔가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서 총 세 파트를 준비 중인데, 그 첫 번째가 숍 리뉴얼이다. 큰돈 들여서 숍을 새로 구성하고 있고, 아마 이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까. 두 번째, 세 번째 파트도 현재 기획 중이지만,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특히 세 번째 파트는 어마어마하게 준비하려고 노력 중이다. 소식을 기대해 달라.

Timber Shop 공식 웹사이트


Editor │오욱석, 정필규
Photographer │강지훈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매거진 20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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