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개념(Preconception). 선개념으로 예측이 가능하고, 예측 가능해지는 순간 과학이 된다. 몇 개의 수식으로 어떤 세계를 보고자 했던 우리는 여전히 고답적이다. 정반합을 따르는 변증법 또한 선개념에 기인한 오류일 수 있음에, 우리는 ‘전통과 현대’란 수식어가 불가분하다 여긴 어느 뮤지션을 다른 귀로 다시 들어 볼 필요가 있다. 보존과 창조라는 이 소모적인 논쟁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언어를 묵묵히 구축하고 있는 뮤지션 박지하. 신비함을 넘어 경이로움마저 느껴지는 그녀의 음악과 인터뷰를 따라가다 보면 과학이 손닿을 수 없던 대자연에서 어떠한 선개념도 없이 원초적인 모습으로 유유히 뛰놀던 우리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유럽 투어를 다녀왔다. 현장에서의 반응은 어땠는가? 국내 청중과는 어떤 차이를 느꼈는가?
차이는 항상 있는 것 같다. 유럽의 경우 이런 음악에 대한 수요도 많고 그 기반이 탄탄한 편이다. 실험적인 자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한 달 동안 매일같이 공연하고 객석 또한 꽉 차 있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카페 오토(Cafe OTO)에서 진행한 공연의 경우 정말 많은 사람이 객석을 채워 놀랐다. 확실히 한국에서 공연할 때보다 더 내 음악을 이해한다는 인상을 받긴 한다.
이에 관련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는가?
해외에서 연주하는 경우, 그들은 국악 경험이나 개념이 없는 상태이기에 그냥 한국의 뮤지션이 와서 연주하는 격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순수하게 음악으로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시 말해, 벽이 없다. 이와 달리 한국의 경우 사람들은 국악을 알고 있고 초등학교 때부터 국악기를 한 번은 배우다 보니 고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다. 그 선입견이 일종의 벽이 되고, 벽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매체들은 그들의 생각과 부합하는 곡에 관한 설명을 제공해주길 바라는 것 같다. 해외에서는 아무리 새롭고 낯설지라도 곡 설명을 요청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냥 듣고 좋으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동시에 벽을 허물고 대중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서 비주얼적으로 뭔가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음악 이외에 어떤 부수적인 것들이 부각되면서 음악보다 이미지가 더 크게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당장은 눈길을 끌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트렌드와 변화에 민감하게 계속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개인 차원에서 노력한다고 이런 현상이 극복될 것 같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내가 하는 음악을 큰 욕심 없이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계속하며 힘을 쌓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극복되지 않을까 싶다.
유럽 투어 일환으로 몬하임 트리엔날레(Monheim Triennale)에 초청되었다. 그곳에서 선보인 작품과 당시의 감상을 부탁한다.
몬하임 트리엔날레는 이름처럼 몬하임이라는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 3년마다 열리는 페스티벌로, 작년에는 코로나로 프리퀄을 작게 하고, 올해 본 페스티벌을 개최하게 된 신생 음악 축제이다. 일반적인 페스티벌과 달리 일주일 정도의 페스티벌 기간 동안 아티스트에게 숙식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아티스트가 원하는 무대를 꾸밀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도 크게 해주었던 페스티벌이었다. 때문에 여타 페스티벌과 달리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고, 그 도시와 사람에 친밀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초청된 아티스트의 공연을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어 흥미로웠고 그들과 랜덤으로 즉흥 공연을 하게 되는 기회를 비롯해 다양한 실험적인 공연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박지하의 음악을 해외에서는 포스트 미니멀리즘의 범주에 두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국내의 경우 퓨전 국악이라 소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인은 이런 범주화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
다양한 음악이 존재하는데도 너무 쉽게 정의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연주하는 악기나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은 그냥 국악을 하겠지’ 또는 ‘지금 저 사람이 하는 것은 국악이야’ 식으로 단정지어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국악으로 묶이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재미없는 일 같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전통 음악을 배웠고 실제로 전통 음악을 하던 시기도 있었다. 이처럼 10년 넘게 배워온 터라 내 안에 내재된 것들로 분명 활동 초창기 작업물에는 전통적인 음악 요소가 많이 남아있었을 것이며, 어쩌면 그때는 그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팀 활동을 거쳐 솔로 활동을 하면서 내 음악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다른 음악을 듣게 되고 다른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과 교류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나만의 음악을 찾게 되었다. 바람이 있다면 ‘국악’이나 ‘전통’이란 수식 없이 그냥 정말 ‘음악’으로 바라봐주면 좋겠다.
포스트 미니멀리즘이나 앰비언트와 같은 장르로 분류되는 상황에 거부감이 없는가?
그래도 지금 하고 있는 음악과 어느 정도 부합하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미니멀한 음악을 할 거야’ 하면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앞으로 내가 어떤 음악을 할지 모르는 것이기에 굳이 틀에 갇히고 싶지 않다. 내 취향을 만들고 다듬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이런 음악이 좋을 뿐이다. 장르를 꼬집어 말할 필요도 있겠지만 굳이 나누고 싶지는 않다. 그냥 ‘음악’, 나아가 ‘좋은 음악’이었으면 좋겠다.
[To Call Out Into the Night]의 경우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IDM이나 노이즈(Noise)와 맞닿아 있는 지점도 그렇고 슬래밍과 향가 사이 어디쯤인 구성을 비추어 봤을 때 실험적인 면모가 더 부각되는 듯하다. 이 앨범을 작업하면서 중요시 여긴 점은 무엇인가?
[To Call Out Into the Night]는 계획을 많이 하고 작업한 앨범은 아니다. BBC 라디오의 레이트 정션(Late Junction)란 프로그램에서 라이브 세션 섭외가 왔다. “Easy”와 같은 곡을 BBC 측에서 인상 깊게 봤는지 협업할 아티스트로 로이 클레어 포터(Roy Claire Potter)와 협업을 제안했다. 개인적으로 비대면으로 소통하는 방식의 작업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기에 그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만 파악한 채로 라이브 세션 당일 스튜디오에서 만나 현장에서 즉흥으로 작업하게 되었다. 그녀의 목소리 또한 하나의 소리로 생각하고 즉흥 연주를 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즉흥적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아 이전에 만들었던 라인을 가지고 와서 순간적으로 채우면서 네다섯 번 합을 맞춰보며 성황리에 라이브 세션을 마쳤다. [To Call Out Into the Night]은 카페 오토 내 자체 레이블(OTOROKU)에서 위 세션을 앨범으로 내고 싶다는 제안과 함께 BBC 측에 라이센스 비용을 지불하게 되면서 발매된 것이다. 단순히 방송되고 끝날 뻔한 작업이 그들 덕분에 앨범 형태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전 작업 방식과는 아예 다른 방식인가?
맞다. 물론 만드는 과정에서 즉흥 연주를 하고 다시 들어보면서 좋은 부분을 쓰거나 발전시키며 이를 토대로 곡의 형태를 만들어 가기는 하지만, 정규 음반 작업의 경우 완전히 짜여진 곡이다. 이와 달리 로이 클레어 포터와 함께 한 작업은 당일 나오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분위기대로 진행했다. 진짜 지금.
‘가공’이라는 방식으로 질감/텍스처를 구현하는 현대 서양 음악과 달리, 국악에서는 연출과 호흡, 공기와 운지법까지 ‘수집과 포착’이라는 방법을 통해서도 질감이 구현되는 것 같다. 박지하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질감/텍스처를 획득하는 듯한데, 박지하에게 질감/텍스처란 무엇이며 어떤 식으로 본인 작업에 구현되고 있는가?
학교를 졸업하고 활동을 막 시작하던 시기에 내가 주로 접했던 국악 음반은 아무런 잡음 없이 완벽한 연주를 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클래식 피아노가 아닌 자신만의 음악을 하는 어떤 피아노 연주자의 음반을 들었다. 피아노 키의 사각거리는 소리, 페달 밟는 소리, 나무 바닥 삐그덕거리는 소리들이 공간감과 함께 담겨 질감을 이뤘는데, 마치 내가 그 방 안에서 연주를 듣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부터 이런 작업이 더 인간적이고 재밌다고 느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 내 음악에도 자연스럽고 우연한 소리들을 살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완벽한 연주를 정교하고 클리어하게 담는 것보다 주변 환경적인 요소들이 자연스러운 연주와 함께 묻어나도록 담는 방식을 통해 질감을 구현하고 있다. 전통 음악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그런 요소를 찾을 수야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아니다.
국악이나 전통 음악의 언어와 문법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접근을 시도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논의를 비추어 봤을 때 그런 접근이 전혀 그게 아닌 것 같다.
전혀 아니다. 전통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현대적인 음악을 국악기로 풀어가는 개념도 아니다. 요즘의 작업은 내가 살면서 보고 배웠던 것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내 취향에 더 맞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때그때 내 귀에 좋게 들리고 내 마음에 끌리는 것들을 조합하다 보니 내가 원하는 음악이 만들어졌다. 뭔가 점점 더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뚜렷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피리를 부는데 피리의 선율이 진행되는 뉘앙스가 전통 음악의 어떤 부분이 연상되는 것과 같은 것처럼 느낄 수는 있다. 마치 똑같은 한국말을 배워도 결국에는 자신만의 억양이나 느낌이 생기는 것처럼 음악도 마찬가지다. 전통 음악을 배웠으니 전통 음악의 언어가 내재되어 있을 것이고, 한편에는 서양 음악의 언어도 내재되어 있다 보니 그것들이 피리나 생황 같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뒤섞여 이야기하기 편한 나만의 언어로 나온 것이다. 그냥 나는 내 음악을 할 뿐이고 단지 그 악기가 전통악기일 뿐이다.
개인의 감정 서사에 더 무게를 둔 것 같은 [Philos]와 달리, [The Gleam]의 경우 수묵화처럼 관조를 통한 기술에 더 무게를 둔 것 같다. 상반되는 톤앤매너의 두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활동 초반 ‘숨[suːm]’이라는 듀오를 9년 동안 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누군가와 함께 작업하다 보니 항상 채워지지 않는 뭔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1집 [Communion]의 경우에도 이런저런 실험이 담겨있는 작품이지만 다른 음악가들과 협업 형태로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갈증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Communion] 발표 후 내가 걷고 있는 음악의 길에서 온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드는 과정이 없으면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면서 [Philos]를 만들게 됐다. 이러한 이유로 개인적인 감정이나 내용, 음악적 성취에 욕심이 담기게 된 것 같다.
[Philos]를 발표하고 여러 공연을 하면서 혼자 하는 일에 자신감과 여유로움이 생겼다. [The Gleam]은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물이다. 나라는 개인의 주제에 집중하기 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빛’을 주제로 음반을 풀어가게 되었는데 각기 다른 변화 과정에 부합하는 목소리를 내려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The Gleam]의 일부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Ando Tadao)가 설계한 뮤지엄 산에서 진행한 연주를 위해 고안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처럼 건축 공간을 적극 수용한 작업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시도인 것 같다. 위 작업을 진행하면서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했는가?
우선 ‘명상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에너지와 분위기가 너무 분명했기 때문에 그것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음악 공연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자연적인 울림이 있는 돔 형태의 공간이라 그 소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공연이 공간과 가장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기록용으로 녹음하는 마이크 이외의 별도의 음향 장치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소리를 중첩하거나 뭔가 화려한 구성보다 내가 연주하는 악기 본연의 소리로만 단순하고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고 싶었다.
공간이 주는 힘과 이미지, 에너지가 이미 많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에 음악은 단순해도 충분했다. 피리, 생황, 양금 순으로 세 파트로 나눠 각 악기로 이 공간에서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소리를 상상했고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서 빛의 흐름과 시간의 변화에 따른 이미지가 음악 안에 담기게 되었다. [The Gleam]은 위 공연에서 연주했던 곡들을 좀 더 다듬고 발전시켜 수록하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At Dawn”에서의 피리, “Sunrise: A Song of Two Humans”의 생황, “Temporary Inertia”의 양금이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내가 연주하는 악기 소리의 본질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박지하의 음악에서 기후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테마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냥 내 음악은 ‘음악’이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이유로 음악으로 어떤 사회적 이슈나 특정한 콘셉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일상적인 것들을 경험하며 느끼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자연스럽고, 그런 것들로부터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 같다. 시간, 공간, 빛의 흐름, 낮과 밤, 비와 같이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고 경험하는 일상이 무척 특별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법이다.
과거에도 ‘이미지가 그려지는 작업’을 선호한다고 한 적이 있다. 이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어렸을 적부터 영화 음악이나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은 덕분인지 심상을 그려내는 데 익숙한 편이다. 사실 전통 음악을 연주하면서 이미지를 그려내거나 어떤 풍경을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만든 곡이 아니기 때문인지 몰라도 뭔가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연주할 수 있지만, 그 음악에 어떤 의미를 넣어서 연주하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다. 심상이 떠오르고 스토리를 상상할 수 있는 음악이 재미있고 나 또한 그런 음악을 연주하며 내 감정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 음악에서 벗어나 내 음악을 하게 된 계기도 내가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면서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고 이에 걸맞은 스토리와 이미지가 떠올랐으면 좋을 거 같아 시작하게 됐다.
최소한의 요소를 통해 구성과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하지만 자칫 덜어내는 과정은 어떤 과잉을 수반할 수도 있으며 여백이 잉여로 변질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지하의 음악은 중용을 지키는 것 같은데, 최소한의 것들로 소리와 에너지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가?
사실 어떤 특별한 노하우나 방법은 없다. 지금의 나는 이 정도의 결과물이 귀로 들었을 때 마음에 들기 때문에 음반이라는 기록물의 형태로 남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떤 누군가는 모자르다고 여길 수 있고 누군가는 과하다 느낄 수도 있는 셈이다. 정답은 없고 각자의 기준 또한 다 다르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많은 사람의 귀에도 조화롭게 들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음악을 만든 후 다양한 장소와 상황에서 많이 들어본다. 길을 걸으면서 들어보고, 집에서 밸런스가 맞는 스피커로도 들어보고, 지하철과 같이 소음 깔린 공간에서 들어보기도, 한적한 자연에서도 들어본다. 이러한 과정 중에 더 필요한 소리가 떠오르기도 하고, 불필요한 소리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숨[suːm] 활동이 기성 국악이란 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숨[suːm] 2nd]의 ‘Passing Rain’이나 ‘거울 자아 _III’에서 시작해, 개인 솔로 작업에서 비로소 기성 국악에서 탈피해 새로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숨과 솔로 활동 사이 시기의 변화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가?
‘숨[suːm]’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진행한 활동이라 나도 모르게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많이 남아있었으며 국악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전통적인 것을 살려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국악의 장단을 활용한다든지, 산조의 어떤 부분을 차용한다는 등의 시도를 했다. 마찬가지로 피리 연주 시 농음을 더 넣는 등 전통 음악의 어법 또한 충실했다. 짧지 않은 활동 기간을 이런 식으로 이어가다 보니 이 안에만 있으면 이 안에서만 끝나는 음악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후 숨[suːm]을 그만뒀고,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국악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과 작업해보자는 마음과 함께 당시 자주 어울리던 사람들과 함께 [Communion]을 작업하게 되었다. 솔로 활동 이후 내가 내고 싶은 목소리와 언어를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평소 편하게 듣는 음악이 궁금하다. 일상에서 편히 듣는 음악은 무엇인가?
어릴 적에는 라디오를 통해 클래식을 많이 접했고, 지금은 랜덤하게 듣는 편이다. 보통 연주 음악을 많이 듣는다.
학창 시절부터 오랫동안 국악인 또는 뮤지션이라는 길을 걸어왔다. 포기하거나 진로를 바꾸고 싶었던 시기가 찾아오기도 했을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극복했는가?
여태까지의 삶을 돌이켜 봤을 때 ‘진짜 음악을 하기 위해 태어난 건가?’란 생각이 들 만큼 감사한 순간이 많았기 때문에 음악을 하지 않는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대학을 다니며 하기 싫은 적은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지기 싫은 마음에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다. 대학 진학 후 전통이나 민속이 체화된 친구들의 연주를 보면서 내가 이걸 완벽히 소화시켜서 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과 전통 음악은 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들이 여러 제약과 부딪히면서 하기 싫어진 적도 있다. 나를 유일하게 칭찬해 주신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도 자기만의 창작 음악을 하고 계셨다. 선생님의 그런 활동을 보면서 나 또한 전통 악기로도 자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면서 음악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국악중, 국악고, 한예종까지 소위 ‘국악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라는 인식이 만연한 국악계의 정규 음악 교육을 수학하면서 마주했던 한계나 문제점은 무엇이었는가?
나는 운이 좋게 다른 길을 찾은 케이스이며 다른 길을 바라볼 수 있도록 영향을 준 선생님이 존재했다. 하지만 요즘 자기만의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지긴 했어도 아무래도 학교이다 보니 ‘이게 정답이다’라고 보게끔 가르쳐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전해져 내려오는 것만 잘 계승하면 인정하는 듯하다.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냥 싫은 걸 안 한 것일 뿐이다.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것만큼 자신의 창작을 하는 일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개인의 창의성과 창작을 높게 평가해주면 좋겠지만 학교의 기성 교육은 교육자가 원하는 기교나 기술에 충실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게 비단 전통 음악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전체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사람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정답이라는 것이 본인과 잘 맞을 수도 있으며, 전통 음악을 계속 연주하고 그걸 지켜나가는 음악가로 성장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관념을 깨고 자신의 예술을 창작하는 것에 대한 가치 또한 알아주는 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
생황이 여타 국악기에 비해 사료들이나 연구가 풍부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생황을 익히는 데 여러 애로 사항이 많았을 것 같은데, 생황을 터득하는 과정이라든지, 이 악기만의 매력이라든지 듣고 싶다.
대학교 때 피리 전공자는 2학년 때부터 생황을 배우는 커리큘럼이 있다. 그때 처음 접했다. 학교에서는 기본적인 것만 알려줬던 터라 당시에는 그리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도 사실 중국에서 생황을 전공한 연주자처럼은 못할뿐더러 여타 전공자들과는 다른 접근의 연주를 한다. 내 음악을 하기 위해 생황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내 방식대로 연주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황은 화음도 낼 수 있고, 자연적인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전자 사운드가 연상되는 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독특하고 화려한 모습의 악기 형태도 나름 매력인 것 같다.
뮤지션 박지하와 자연인 박지하의 구분 없이 음악을 일상의 연장선으로 두고 작업을 하는 것 같다. 예술가로서 페르소나를 따로 설정하지 않은 이유라도 있는가?
사람이 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음악에도 어느 정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나는 콘셉트가 있는 음악보다는 자연스러운 음악을 하고 있기에 사람의 삶이 음악에 여과 없이 더 많이 투영될 것이라 생각한다. 기획을 통해 전략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시간을 보내면서 천천히 나오는 것들을 토대로 작업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내 삶의 흐름대로 음악도 변화하기 때문에 음반을 낼 때마다 당시 만났던 사람들과 환경의 변화를 비롯해 나를 움직이게 했던 에너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또 다른 자아를 두는 것은 좀 피곤할 것 같다. 그냥 나는 나로서 편하게 사는 것이 좋다.
제한된 환경과 조건 아래에서 창의성과 독창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원동력이 궁금하다.
창작의 과정은 결국 나를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잘 가꿔나가는지에 달린 것 같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결국에는 새로움을 찾는 길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작업을 보고 왜 나는 이렇게 될 수 없는지 고민하기도 하고 내가 모자란 부분에 치중하기도 하는데, 결국 나를 잘 들여다보면 내가 지닌 또 다른 특별한 에너지가 있고 그것에 얼마나 믿음을 갖고 키워나갈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사람은 모두 다 다르고 자신만의 무기와 장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끝으로 박지하의 음악은 어떤 음악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는가?
사람다운 음악, 아름다운 음악.
Editor | 서재덕 권혁인
Photographer | 오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