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ROR

로스앤젤레스 출신 하드코어 펑크(Hardcore Punk) 밴드 테러(Terror)가 2022년 5월 [Pain Into Power]를 발매했다. 2002년 결성 이후 20주년을 맞이하는 테러는 하드코어 신(Scene)에 진입하는 이들이 반드시 확인해야 할 밴드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테러를 이끌고 온 보컬 스캇 보걸(Scott Vogel)은 하드코어 신에서 30년 넘게 활동해오며 새로운 세대에게는 유스 컬처(Youth Culture)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제시하는 인물. 동시에 하드코어 신 안으로는 유행과 타협하지 않고 언제나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해왔다.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공연장에서 “Stage Dive”와 “Sing With Me” 같은 멘트로 라이브를 시작하는 그는 항상 공연장에서 모든 사람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독려하며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90년대의 애티튜드 그대로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 “하드코어는 자신의 방 안에서 모슁(Moshing)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곧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

80년대 뉴욕의 버팔로에서 나고 자라 하드코어 펑크 신의 주역으로 성장한 스캇과 함께 새 앨범, 스니커즈, 힙합, 월드 투어 그리고 한국의 하드코어 신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서면으로 진행한 스캇의 답변은 원문 그대로 실었다.  

한국에 있는 독자에게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스캇 보걸이다. 잘 부탁한다. 한 번 시작해볼까? 만약 오타가 있다면 편하게 수정해 달라. 나는 타이핑에 젬병이니까.

2002년부터 테러의 결성 멤버로 활동해오고 있다. 테러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

테러의 멤버로 활동하기 이전, 토드와 닉이 유스 크루(Youth Crew) 밴드 캐리 온(Carry On)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그들이 캐리 온을 마무리할 시기였다. 나는 뉴욕 버팔로에서 웨스트코스트로 거주지를 옮겼고 주변인을 찾아다니며 새로 시작할 밴드를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마침 토드와 닉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들어서 그들을 찾아갔다. 그들을 만나 단 몇 분의 시간 동안 이야기한 것들이 2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2018년 [Total Retaliation], 2021년 [Trapped In A World] 앨범을 발표했다. 또한 지난 5월에 [Pain Into Power]를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Pain Into Power]는 테러라는 밴드를 보다 더 원초적인 스타일로 한 단계 끌어올린 앨범이다. 이번 앨범은 과거에 우리가 발매한 그 어느 앨범보다 정말 마음에 들 수밖에 없고 신과 밴드를 향해 애정을 보내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Pain Into Power]에는 밴드의 결성 멤버이자 네일스(Nails), 파이어번(Fireburn)에서 활동한 토드 존스가 참여했고, 팬들이 많은 호응을 보냈다. 캐리 온 시절, 폭력적인 그의 면모는 현재의 네일스에서 몇 배로 심화되었고, 동시에 올드스쿨 하드코어 펑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여전했다. 그가 이번에 다시 테러에 참여한 이유가 무엇인가.

분명히 말하자면 토드는 테러에 완전히 돌아온 것이 아니다. 그는 이번 앨범을 위해 프로듀싱으로 참여하는 것뿐이다. 그는 테러에서 나올 시기인 2004년까지 밴드에 언제나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나와 다른 멤버도 그가 만든 곡과 강렬한 퍼포먼스, 애티튜드를 좋아했다. 그렇기에 그가 밴드를 탈퇴한 사실에 아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지지하려고 했고 그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느꼈다. 그가 이번 앨범에서 테러와 함께한 건 정말로 특별한 순간이었는데, 그의 결과물만 봐도 모든 사람이 이견을 낼 수 없을 정도로 하드코어 펑크에 진심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하면서 모든 밴드와 아티스트가 활동을 중지했고 테러도 이를 피할 수 없었다. 모두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고 테러도 ‘sticktight.la‘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팬들과 소통했다. ‘sticktight.la’에서 밴드 멤버와 함께 어떤 활동을 해나갔는가.

당신이 말한 것처럼 한동안 우리는 밴드와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함께하길 원해서 ‘sticktight.la’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이곳을 통해 팬으로 하여금 테러를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거나 테러가 쌓아온 모든 것을 아카이빙(Archiving)하기 시작했다. 특히 개러지 캐스트(Garage Cast)라는 팟캐스트 콘텐츠를 통해 테러를 거쳐 간 모든 사람이 다시 모여 스스로 테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당신은 30년 넘게 여러 밴드들을 거치며 활동했다. 하드코어 펑크를 처음 발견했던 시간을 되돌아본다면?

내 형제인 제이(Jay)가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와 관련된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제이는 내 삶을 망치기도 하고 빛을 주기도 한 인물이이다. 내가 본 첫 번째 하드코어 공연은 D.R.I.와 갱 그린(Gang Green)이다. 그 둘이 함께 존재했던 시기인데, 따라서 그 공연은 꽤나 오래 전 이야기다. 이후에 내가 살던 지역의 로컬 밴드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와 네바다주의 세븐 세컨즈(7 Seconds)가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보러갔고 지속적으로 찾아갔다.

과거에 활동한 밴드들이 최근 들어 재발견되고 있는데, 베리드 얼라이브(Buried Alive)의 재결성과 투어, 새 앨범 발매 그리고 더 앞선 시기에 활동한 슬러그페스트(Slugfest)의 미공개 음원을 담은 앨범 소식이 이어진다. 이에 관한 소감과 더불어 또 다른 밴드의 활동을 기대할 수 있을지 들어보고 싶다.

우리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바로 어제 베리드 얼라이브 투어의 마지막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과거에 활동한 밴드를 통해 사람들을 많이 사귀었고 여러 추억을 쌓았던 점을 미루어 봤을 때 다른 밴드들의 재결성도 나름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중에서도 페이드어웨이(Fadeaway)가 가장 많이 생각난다. 페이드어웨이는 90년대 뉴욕 버팔로 출신 하드코어 밴드 중 가장 많이 찾는 밴드기도 했고 나 또한 이 밴드를 상당히 좋아한다. 그렇지만 밴드 멤버들과 연락이 뜸하기도 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상황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하드코어 신 안에서 음악과 밴드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것은 내가 누구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건 모르고,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여전히 하드코어와 무브먼트를 사랑하고 믿는다.

공격적인 가사와 사운드를 내건 하드코어 펑크는 많은 사람이 단번에 좋아하기란 힘든 장르다. 그렇지만 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드코어 펑크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고들 하는데,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 아닌가?

그들에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들이 적어도 이 신을 한 번이라도 경험하지 않았다면 말이지. 우리는 색다른 음악을 즐기고 있고, 특이한 것이 맞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가는 거다.

‘BRITESIDE, the colors of hardcore A-Z’가 작년 리퍼 레코즈(Reaper Records)를 통해 발간되었다. 당신이 영향받은 밴드의 아트워크와 앨범 커버, 사진을 직접 색칠해볼 수 있는 컬러링 북인데, 어린 세대부터 성인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진(Zine)으로 제작한 점이 흥미로웠다. 과거에 진을 직접 제작해본 적이 있는가.

컬러링 북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니 고맙다. 우리 음악을 사랑하는 이라면 컬러링 북을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난 최근까지 진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Living’, ‘Deception’, ‘Born To Expire’ 그리고 작년에 발간한 ‘Pressure Drop’까지 모두 내가 만든 진이다. 특히 ‘Pressure Drop’에서는 매드볼(Madball) 같이 오래 알고 지내던 밴드는 물론 요즘 새로 생긴 밴드를 조명하고 있다.

테러는 활동의 상당 부분을 DIY로 해결해나가고 있고 멤버들의 본업도 따로 있기에 밴드를 이끄는 일에 많은 어려움이 수반될 거라 예상한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라면.

밴드가 커지다 보면 그에 맞는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고, 따라서 우리가 모든 부분을 DIY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테러를 지금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데는 이 음악의 정체성, 즉 오리지널리티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멤버 모두가 생업을 풀타임으로 일하지는 않는다. 오직 기타리스트인 마틴(Martin)이 풀타임으로 일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테러를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내가 목 수술을 받은 직후였던 것 같다. 공연을 하다 여러 번 물리적 충격을 받았는데, 그것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인 듯하다. 그만큼 하드코어 공연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밴드의 로고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Don’t Need Your Help / Push It Away] 7인치가 2002년에 발매되었고 여기에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테러 로고가 쓰였다. 한동안 여러 밴드와 레이블에서 이 로고를 많이 차용했는데, 누가 이 로고를 만들었는가.

나도 그때부터 시작된 테러의 로고를 정말 좋아한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이 로고가 뉴욕 출신 밴드 저지(Judge)에서 영향받았다고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내 기억이라면 주변 동료 중 한 명이었던 스캇 맥그라스(Scott McGrath)가 테러의 로고를 작업한 것으로 기억난다. 정말 오래전 일이지. 그는 당시 테이크오버 레코즈(Takeover Records)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지금은 매곳 스텀프(Maggot Stomp)라는 레이블을 운영 중이다.

오래전부터 힙합 음악을 즐긴 거로 알고 있다. 테러가 예전에 제다이 마인드 트릭스(Jedi Mind Tricks)와 협업한 건 꽤 알려진 사실이며, 갱 스타(Gang Starr)의 DJ 프리미어(DJ Premier)가 참여한 테러의 믹스테잎 [Suffer To Return Harder]를 발매하기도 했는데.

네가 말한 것처럼 난 힙합을 진짜 좋아한다. 제다이 마인드 트릭스의 비니 파즈(Vinnie Paz)는 내 친구이자 하드코어를 좋아하는 팬이기도 하다. 그가 예전에 테러의 브레이크다운(Breakdown) 커버 곡을 따라 부른 적이 있는데 정말 즐거웠던 순간이었지. LA 로컬 밴드 스트라이프(Strife)의 앤드루(Andrew)는 테러가 여러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인데 이 친구 때문에 멋진 믹스테잎을 만들었다. 사이프러스 힐(Cypress Hill)의 DJ 머그스(DJ Muggs)와 함께 믹스테잎을 작업했고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와 DJ 프리미어(DJ Premier)가 믹스테잎의 발매를 도와줬지.

비스티보이즈(Beastie Boys)가 활동한 이후부터 바이오하자드(Biohazard), 오닉스(Onyx), 프로덕트 오브 웨이스트(Product of Waste) 등 힙합과 하드코어의 교류가 활발했다. 오늘날에는 포스트 말론(Post Malone)과 케니 비츠(Kenny Beats), 필러즈 오브 아이보리(Pillars of Ivory) 등이 이러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힙합과 하드코어의 친밀한 관계성을 설명해줄 수 있는가.

나는 언제나 두 음악을 접할 때마다 비슷한 분위기와 에너지를 느끼곤 했다. 80년대 말 뉴욕의 삶, 멋진 음악과 무브먼트를 눈으로 목격한다는 건 정말 끝내주는 일이다. 두 장르 사이의 가사와 아트워크, 스타일 등이 알게 모르게 지금까지 교류하는 현상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예전에 래퍼 나스(Nas)를 가장 좋아한다고 언급한 적 있다. 이외에도 좋아하는 래퍼나 그룹을 알려줄 수 있나.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래퍼는 나스다. 거기에 맙 딥(Mobb Deep)이나 카폰 앤 노리에가(Capone-N-Noreaga), 갱 스타(Gang Starr)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룹이다. 여기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그룹인 O.G.C.(Originoo Gunn Clappaz), 부트 캠프 클릭(Boot Camp Clik), D.I.T.C.(Diggin’ in the Crates Crew) 그리고 다일레이티드 피플스(Dilated Peoples)와 리빙 레전즈(Living Legends) 같은 웨스트코스트 힙합 혹은 뉴욕 출신의 락 마르치아노(Roc Marciano)는 꼭 체크해보길 추천한다.

테러는 2000~2010년대 대표적인 밴드로 자리매김한 뒤 현재는 클래식한 하드코어 밴드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밴드 낙드 루즈(Knocked Loose)는 한 페스티벌에서 “만약 테러를 듣지 않는다면 넌 하드코어가 아니야”라는 멘트를 남기기도 했는데.

그들이 우리를 알아봐 준다는 사실에 정말 고맙기도 하고 멋진 현상인 것 같다. 낙드 루즈나 지저스 피스(Jesus Piece) 같은 밴드는 그 어느 밴드보다 요즘 세대에게 인기 있는 밴드고 페스티벌에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밴드다. 낙드 루즈는 결성 이후로 롤링스톤(Rolling Stone)이나 피치포크(Pitchfork) 같은 매체에 적극적으로 소개되었고, 지저스 피스는 래퍼 고스트메인(Ghostemane)과 투어하기도 했지. 이런 밴드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건 테러가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앞서 언급한 밴드 이외에도 로컬마다 관객들을 끌어 모으는 밴드가 다수 생겨나고 있다. 요즘 당신이 즐겨 듣는 신진 밴드는 어떤 그룹인가.

데어(Dare), 컴버스트(Combust), 페인 오브 트루스(Pain of Truth), 섹션 헤이트(Section H8) 등 요 몇 년 사이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밴드가 생겨나고 있다. 일부 밴드는 결성된 지 2~3년밖에 안 됐지만 공연만 했다 하면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의 곡을 따라 부른다. 나에게도 이런 현상은 아주 흥미롭게 다가온다.

[Total Retaliation] 앨범 내 동명의 트랙 뮤직비디오에서 데어와 줄루(Zulu)의 멤버이자 스케이터인 아네이아 레이(Anaiah Lei)를 볼 수 있다. 그는 어떤 계기로 출연하게 되었나?

우리는 그에게 뮤직비디오 제작을 제안했고, 그는 친구들을 모아 자신이 스케이트보드 타는 모습을 촬영했다.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잘 어울렸다.

나이키(Nike)의 열렬한 팬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당신은 어딜 가나 나이키 옷을 입고 공연에 나타난다. 나이키는 언제나 하드코어 신에서 상당히 많이 찾는 유니폼이기도 한데.

이건 우리가 항상 해오던 방식 중 하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반스(Vans)와 뉴발란스(New Balance)도 좋아했고 요즘에는 이 브랜드 위주로 아이템을 찾고 있다. 앞서 언급한 브랜드도 마찬가지지만, 나이키는 하드코어 펑크에서 순수한 모슁과 격렬한 움직임으로 가득한 스포츠 같은 음악으로 거듭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80년대 후반 유스 크루 밴드 중 제로 톨러런스는 나이키와 뉴발란스의 디자인을 많이 차용한 아트워크를 보여주었지.

가장 좋아하는 나이키 스니커즈 모델 5가지는?

스탭(Stab), 와일드우드(Wildwood), 휴마라(Humara), 조던 4(Jordan 4)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어 맥스 1(Air Max 1).

대그 내스티(Dag Nasty), 텍사스 이즈 더 리즌(Texas is the Reason), 핫 워터 뮤직(Hot Water Music) 같은 밴드처럼 기존에 테러가 해오던 스타일과 달리 이모셔널(Emotional) 스타일에 가까운 음악 취향 또한 지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요즘 시티즌(Citizen)을 가장 많이 듣고 있는 것 같은데. 일단 네가 언급한 밴드 전부 좋아한다. 거기에 라이프타임(Lifetime), 파사이드(Farside), 스플릿 립(Split Lip)도 좋아하는데 다 90년대에 활동한 밴드지. 이러한 밴드는 그 나름대로 멋진 연주와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을 좋아하는 동시에 내가 너무 이들의 이미지와 감성에 물들지 않도록 조절하기도 한다.

테러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셀 수 없이 무수한 투어를 돌았다. 기억에 남는 곳과 에피소드가 있다면.

밴드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이 여러 국가의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인데 정말 행복했다. 유난히 일본과 독일이 기억에 많이 남을 정도로 인상 깊은 곳이었다.

지난 한국 투어를 기억하는가? 투어 당시 로컬 밴드 긱스(The Geeks)와의 즉흥적인 피처링 제안 또한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였을 텐데.

멋진 밴드 긱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는 한국과 팬들을 사랑했고, 공연 역시 고무적이었다. 언젠가 다시 돌아가길 기대한다. 투어할 때 긱스가 자신들의 스튜디오에 우리를 데려갔고, 그곳을 박살 냈지.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그 순간이 바로 하드코어였다. 그게 바로 하드코어 신의 아름다움이자 단순함이다. 우리의 여행과 우정을 기록하는 아주 쿨한 방법이지.

밴드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고민되는 주제일 듯한데, 100% 만족할 때까지 계속 연습하는 것과 공연에 출연하는 횟수를 늘려 감각을 익히는 것 중 어느 쪽이 효과적인 라이브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딱히 너무 많은 걸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하드코어는 오직 에너지로 가득 찬 연주와 신념에 달려있고, 프로페셔널이나 하드 트레이닝을 지향하는 것과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다. 열정과 강렬한 에너지야말로 이 신을 유지하고 이끄는 가장 큰 동기가 아닐까 싶다.

한번 투어를 시작하면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을 잡고 매일 공연에 나선다. 상당히 힘이 들고 정신적으로도 피로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따로 노력하는 것이 있을까.

쉽지 않다. 그리고 여기에 정답은 없다. 항상 자신이 무엇에 안정을 얻는지 일상을 통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건 밴드를 하고 있든 하지 않든, 모든 사람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투어를 수행하는 건 굉장히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좋은 경험과 결과도 뒤따른다. 마치 장거리 마라톤을 하듯이 힘들지만 목표를 달성하면 엄청나게 큰 행복이 찾아온다.

한국 하드코어 펑크 신은 상당히 작고 세계의 하드코어 신에서 바라볼 때는 무척 생소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엔 멋진 밴드가 있고, 좋은 앨범과 로컬 신에 대한 비전, DIY 윤리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어느 신과 비교하든지 그 못지않은 곳이 한국의 하드코어 신인데 여기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과 메시지라면.

가장 자신다운 것을 찾아 실현시켜라. 눈을 돌리면 멋진 신과 스타일, 유행이 즐비하지만 그것에 신경 쓰지 마라. 마음이 가는 것을 믿고 당신이 속한 신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를 보내라. 그러면 신은 반드시 성장할 것이다. 여러분이 하드코어 펑크에 관심과 열정을 쏟는 것처럼 테러에 애정을 보내주어서 무척 고맙고 이것은 나에게는 큰 의미다. 꼭 다시 만나길.

Terror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여창욱
Photographer │Errick Easterday, Octavio Orduno, Kat Nijmeddin, Rebecca Lader
Special Thanks to Pure Noise Records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매거진 20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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