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7일과 18일, 부평에서는 언더그라운드 신(Scene)의 연결점이 모이는 소동이 일어났다. 언더시티 프로젝트는 서브컬처 전시와 굿즈 및 체험뿐만 아니라 신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을 연사로 초청하여 글로벌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컨퍼런스는 그동안 저평가되던 언더그라운드 신을 아카데믹하게 들여다봄으로써 부평, 한국 신에 유의미한 통찰과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다.
그 막을 처음 연 것은 베를린의 비영리 협회 ‘클럽 커미션(Club Commission)’ 운영위원이자 대변인, 루츠 라이센링(Lutz Leichsenring)이다. 컨퍼런스에서 도시의 문화유산이 된 베를린의 클럽 문화와 ‘클럽 커미션’의 기여 및 역할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뒤, 짧은 일정에도 한국 신을 탐방한 그와 함께 베를린 및 한국 신의 정반합(正反合)을 나누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루츠 라이센링이라고 한다. ‘클럽 커미션’의 대변인이자 컨설팅 에이전시 ‘바이브랩(VibeLab)’의 공동 설립자이며, 나이트라이프 신에서 목적지향적으로 일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한국을 첫 방문하게 되었는가.
언더시티 프로젝트의 컨퍼런스에 초대받아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했다. 2번째 컨퍼런스라던데, 베를린의 ‘클럽 커미션’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서 좋았다. 한국에서도 클럽 신을 지원하는 단체가 잘 성장하기를 바란다.
한국의 클럽 신도 살짝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가? 클럽 신 이외에도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무엇이었나?
컨퍼런스에서 흥미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언더그라운드 음악, 패션,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와 어울리며 클럽 신 역시 경험해 볼 기회가 있었다. ‘OHHO’, ‘쉘터(Shelter)’와 ‘페이퍼(Paper)’, ‘콘크리트 바(Concrete Bar)’, ‘터널(Tunnel)’ 등에 방문했다. 물론 지금 인터뷰의 장소인 바 ‘퀘스트(QUEST)’도.
무엇보다도 한국인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진심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열정과 헌신으로 항상 높은 퀄리티를 만들어 낸다. 베를린에도 소규모 클럽이 많지만 대체로 베를린과 비교했을 때 서울의 클럽은 아담한 편이다. 그러나 공간에 알맞은 뛰어난 사운드 시스템과 좋은 라인업을 갖추었으며 스태프 역시 프로페셔널했다.
베를린 ‘클럽 커미션’의 대변인으로서 ‘클럽 커미션’은 어떤 곳인지 소개해달라.
‘클럽 커미션’은 베를린의 클럽 문화를 서포트하는 비영리 협회다. 프로모터, 클럽 오너 등 클럽 신의 종사자뿐만 아니라 클럽 문화에 열정적인 멤버 350여 명이 모여있다. 우리는 클럽 문화에 대한 ‘인식(Awareness)’을 제고한다. 컨퍼런스 및 캠페인을 진행하고, 정부 관료나 정치·행정 분야의 의사결정자, 미디어 등과 활발하게 접촉하고 교류한다. 또한 클럽 문화를 학술적으로 탐구하여 그 결과를 교육으로 나눈다.
클럽과 아티스트가 신의 중심이라면 우리는 그 주위를 둘러싸는 네트워크의 뼈대를 세우는 것과도 같다. 망치가 필요할 때 공구함을 찾듯이 클럽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우리는 그곳에 있다.
‘Awareness’란 정확히 무엇인가? 암스테르담의 ‘드 스쿨(De School)’ 역시 인종차별 이슈로 문을 닫았다가 ‘Awareness’ 팀을 꾸려 새롭게 출발했다.
‘Awareness’란 교육을 통해 존중의 마인드 셋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클럽 측에서는 입장 정책(Door Policy)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라인업을 꾸릴 때 특정 성별 및 인종의 치우침 없이 충분히 고려했는지, 소수자를 포함한 모두가 차별당하는 일 없이 안전한 클럽 공간을 조성했는지, 교통 약자에게도 접근성이 보장되어 있는지 등이 모두 ‘Awareness’의 범주에 포함된다.
네덜란드의 ‘ADE(Amsterdam Dance Event)’, 벨기에의 ‘Horst & Arts Festival’ 등의 페스티벌에서 강연자로 참여했다. 아직 한국의 뮤직 페스티벌에서 대담 프로그램은 활성화되지 않았다. 강연의 경험을 나누어줄 수 있나?
‘ADE’는 암스테르담 안의 수많은 베뉴가 참여하는 축제다. 작은 바조차도 전부 라인업을 갖추고, 도시 전체가 전자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Horst & Arts Festival’은 3일 동안 열리며 음악뿐만 아니라 건축, 풀뿌리 예술을 종합적으로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이다.
이처럼 해외의 대형 페스티벌에는 대담 프로그램이 함께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주로 낮에 강연,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이 열리며 클럽 신의 전문가를 초빙한다. 페스티벌 참여자들은 이곳에서 신에 대한 통찰과 배움을 얻어갈 수 있다. 또한 사람들과 같은 지향점을 공유하며 어울리고 섞일 수 있다.
‘클럽 커미션’은 2001년에 설립됐다. 심지어 클럽 ‘베억하인(Berghain)’의 역사가 시작되기도 전이다. 그 당시의 클럽 신과 사회적 배경은 어떠했나?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도시에는 빈 공간이 많아졌다. 여기에 ‘스콰팅(Squatting, 빈 공간을 점거하는 문화)’을 통해 클럽, 갤러리, 아트 베뉴 등이 생기며 신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복잡한 독일 법에 저촉되어 많은 베뉴가 적법한 지위를 갖추지 못하여 경찰의 급습 단속이 잦은 편이었다. ‘클럽 커미션’은 클럽과 클러버들이 마치 범죄자처럼 취급 받는 일은 부당하다는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인 및 지역 경찰과 꾸준히 소통했다. 지금은 베뉴가 경찰의 급습을 받는 일은 없다. 경찰도 외압을 사용하기보다는 우리를 통해 문제 해결을 원하니까. 또한 정부의 여러 부처에서 클럽과 나이트라이프 컬처를 위한 지원도 대폭 늘어났다.
지금과 다른 점이라면 투어리즘(Tourism)이 덜했다는 것일까. 2000년대부터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들은 베를린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동시대적 문화를 즐기기 위해 오는 것이다. 뮤직 투어리즘의 발전과 더불어 베를린에는 다양한 음악 장르와 클럽 신이 자리잡게 됐다. 하지만 동시에 자금이 유입되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심해졌다. 대형 쇼핑몰과 부동산 기업 소유의 아파트가 들어섰고 많은 클럽이 문을 닫거나 외곽으로 쫓겨났다.
베를린의 많은 클럽이 프리드리히샤인(Friedrichshain), 노이쾰른(Neukölln) 등 외곽에 위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 나이트라이프 컬처는 이제 베를린의 심장 박동과도 같고, 도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심장을 몸 구석으로 밀어낼 수는 없지 않나?
사태를 알리고 시위를 조직하는 것, 각 베뉴의 의견을 취합하여 대화의 장을 여는 것 역시 우리의 일이다. 그러나 시장 논리로 움직이는 부동산 기업은 아직까지도 뾰족한 수가 없다. 수익 창출이 주목적이 아닌 음악과 예술로는 도시 중심부의 높은 렌트비를 감당할 수 없으니.
왜 수많은 베뉴가 ‘클럽 커미션’을 통해 통합된 하나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게 되었는지. 클럽 신 내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를 다루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은 적도 있는가?
공동의 목표를 더 쉽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된 목소리는 시너지를 지니게 되어 들릴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베뉴마다 각자 다른 입장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미디어와 정치인은 누구의 의견을 들어야 할지 모르게 된다.
물론 첨예한 갈등을 겪은 적도 있지. 클럽 신은 대체로 뚜렷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동안 ‘클럽 커미션’은 클럽 신의 크고 작은 분쟁을 조정해왔다. 그 시간이 쌓여 클럽 오너들은 이제 우리의 문제 해결 방식을 신뢰한다.
대변인으로서 나의 역할은 다양한 의견을 치우침 없이 듣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예방 수칙에 엄격한 사람부터 마스크 미착용 시위를 하는 사람까지 의견이 극렬하게 나뉘지 않았는가. 타협점을 찾는 것이 포인트다.
베를린 클럽 ‘Salon zur Wilden Renate’에 방문했을 때 근처의 벽에 붙어있는 큰 포스터가 인상 깊었다. 베를린 시민들은 소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으며, ‘클럽 커미션’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베를린 시민은 이 도시에서 클럽이 지니는 의미를 이해한다. 클럽은 갤러리, 박물관, 아트 센터 등과 같이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클럽이란 인습을 파괴하고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곳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부딪히고 불꽃이 튀는 부싯돌 같은 존재다. 그리고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감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소음 문제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내부의 볼륨은 유지하면서 바깥으로 새어 나가는 소음을 줄이는 방음 기술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지그재그 모양의 입구를 만들면 일종의 노이즈 캔슬링과 같은 상태가 되어 소리는 댄스플로어 내부에만 집중된다.
‘클럽 커미션’은 거주민과의 마찰을 줄이고 클럽 신을 보존하기 위해 2018년부터 ‘Soundproof Fund’를 설립 및 관리하기로 베를린과 계약을 맺었다. 베를린 정부는 현재 2번째로 백만 유로(한화 약 14억 원)를 해당 펀드에 투입했다. 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작은 베뉴들은 펀드를 신청할 수 있다. 지원이 확정되면 엔지니어 등의 전문가를 보내 방음 시스템을 설치해준다.
베를린의 테크노 신은 안전과 인식에 민감하다. 클럽에서 인종차별, 성추행 등의 문제가 일어나면 커뮤니티는 그것을 공론화하고, 테크노로 시위를 열고, 심지어 보이콧하기도 한다. 스태프의 인종차별이 불거진 클럽 ‘Revier Südost’는 수많은 디제이가 플레잉을 취소했고 정기적으로 파티를 열던 ‘Cocktail d’amore’ 크루 역시 보이콧을 선언했다. 연대의 원동력은 무엇이며, 커뮤니티로서 구심점은 무엇인가?
이는 베를린의 역사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60년대 학생운동, 70년대 반핵운동 등 베를린에서는 오래전부터 개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원숙한 시위 문화가 자리 잡았다. 베를린에서는 매일 시위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이는 유럽의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점이라는 게 흥미롭다. 런던 사람들은 부동산 개발자를 향해 시위하지 않는다.
어떤 음악 장르든 신은 다양한 커뮤니티의 집합체다. 그중에서도 테크노 신은 특히 진보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다. 하지만 테크노 음악에는 보통 보컬이 없지 않나. 뚜렷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음악적 요소에만 집중하고 정치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신 내에 충분히 존재한다. 이 신의 배경과 맥락을 연구하여 알리는 것도 우리의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VibeLab’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 ‘Creative Footprint’를 소개해줄 수 있나? 이 프로젝트를 한국에서도 계획 중인지.
‘Creative Footprint’란 도시의 창조적 공간을 양적으로 측정하고 비교하는 프로젝트다. 한 도시의 창조적 공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몇 년 동안 모니터링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적 영향이 아닌 문화적 영향을 측정한다.
작은 바(Bar)라도 주변 이웃의 커뮤니티로 기능하여 음악과 예술의 장이 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영향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실험적인 사운드를 지닌 곳,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곳, 커뮤니티 통합의 장이 되는 곳을 찾아내어 보여준다.
‘Creative Footprint’는 도쿄, 뉴욕, 베를린과 스톡홀름에서 이루어졌으며 현재는 몬트리올, 시드니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에서도 하게 된다면 흥미로운 연구가 될 것이다. 공식 웹사이트에서 각 도시의 리포트를 다운받을 수 있다.
코로나-19는 경제 위기를 불러왔으며 클럽 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지금은 나이트라이프가 살아나고 있다고 보는가?
확실히 회복세에 있다. 베를린의 클럽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팬데믹에서 대체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다가오는 가을, 겨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확진자가 폭증하면 클럽은 감염의 온상으로 낙인찍혀 미디어의 타겟이 되기 쉽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물론 일리는 있다. 그러나 락다운 때 모든 클럽이 문을 닫았음에도 확진자 수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클럽만 지탄받기에는 이제는 대중교통, 회사, 어디든지 감염이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코로나를 겪는 동안 클럽이라는 공간은 변화를 거쳤다. 페티시 클럽 ‘KitKat’은 코로나 검사 센터로 쓰였으며, 베억하인은 갤러리가 되어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처럼 여러 가지 형태로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팬데믹 시기에 클럽들이 이루어낸 큰 발전이 아닐까 싶다.
또한 팬데믹 기간 동안 스트리밍 플랫폼도 활성화됐다. 그 시초라고 할 수 있는 ‘United We Stream’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가?
집단 지성으로 나온 아이디어다. 그룹콜을 하던 도중 디제이, 클럽 스태프 등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 종사자를 위해서 도네이션 캠페인을 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이내 스트리밍이라는 아이디어에 도달했다. 스트리밍은 접근성을 대폭 확대한다. 거동이 불편하여 클럽에 가기 어렵거나, 혹은 다른 나라에 살더라도 스트리밍을 통해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내 역할은 팀을 조직하고 방송국과 협력하는 것이었다. 3개월 만에 200여 명의 사람이 이 프로젝트에 모였다. 우리는 매일 밤 베를린의 클럽을 종횡무진하며 TV 방송과 같은 퀄리티로 스트리밍을 내보냈다. 이 시도는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스트리밍은 115개의 도시로 뻗어나갔고, 7백만 유로(한화 약 99억 원)가 모였다. 놀라운 여정이었지.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팬데믹 기간 동안만 진행하는 것이었다. ‘United We Stream’은 이제 그 역할을 다했다고 본다. 현재는 클럽이나 페스티벌에서도 스트리밍이 활성화됐고, ‘HÖR Berlin’ 등 다른 스트리밍 플랫폼 역시 ‘United We Stream’에서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베를린의 젠트리피케이션 상황은 어떠하며, 베를린 외에 대안적인 신을 구축하고 있는가?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베를린 같은 대도시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외곽이나 다른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된다. 어느 수준까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도시는 변화를 거듭하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일방적으로 계속해서 비싸게, 더 비싸게 흘러간다면 그것은 도시가 건강하지 않다는 신호다. 지나친 젠트리피케이션은 부자와 빈자를 가르고, 고유한 바이브를 지닌 음악적 공간을 밀어내고, 도시의 다양성을 내쫓는다. 부유한 예술품 수집가를 위한 갤러리만이 예술의 전부는 아니지 않나.
‘United We Stream’은 다른 나라의 신뿐만 아니라 ‘라이프치히(Leipzig)’ 등 다양한 독일 내의 도시도 조명했다. ‘클럽 커미션’ 역시 다른 도시를 서포트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베를린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도시에도 ‘클럽 커미션’과 비슷한 성격의 단체가 생겨나고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그야말로 베를린 클럽 신에 인생을 헌신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나에게 클럽 신이란 무엇인지 세 가지로 요약해보았다. 첫 번째는 현실의 변화(Transformative Realities)다. 클럽 신은 계속해서 변화의 물결이 일렁이고 실제로 사회를 바꿔 나가는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아마 사회 내에서 가장 혁신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곳 아닐까. 두 번째는 성찰(Reflection)이다. 나에게 있어 댄스플로어는 성찰의 공간이다. 플로어에서 자신의 삶, 사회에 관해, 어떤 것이 나에게 중요한 가치인지를 반추한다. 마지막으로 재충전(Recharging)이다. 클럽 신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항상 큰 에너지를 얻는다.
Club Commission Berlin 공식 웹사이트
United We Stream 공식 웹사이트
Editor │ 진영
Photographer │ 한예림
이미지 출처│ Imago/Emmanuele Contini, Creative Footp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