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멜 샤바즈(Jamel Shabazz)는 지난 40년 동안 뉴욕을 중심으로 흑인 사회와 청년 문화를 기록한 입지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고 이념 차로 미국과 구소련이 대립각을 세우던 1960년대, 그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자랐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흑인 민권운동으로 사회적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따라서 자멜 샤바즈는 성장기에 자연스레 흑인 사회와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사회적인 목소리를 높이고자 그가 택한 수단은 사진이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자멜 샤바즈는 20세기 후반 힙합 문화의 태동과 함께 새롭게 형성된 길거리 문화를 조명했다.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고 흑인 사회를 위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자신이 카메라를 든 이유이자 삶의 목표라고 그는 말한다.
그를 대표하는 사진집, ‘Back In The Days’에는 1980년대의 뉴욕과 길거리, 흑인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난 3월 26일, 신사동에 위치한 아디다스 오리지널스(adidas Originals) 팝업 스토어, ‘Hall of Fame’에서 한 달간 진행된 특별 사진전, ‘Back In The Days’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자멜 샤바즈와 간단한 대화를 나눠보았다.
당신은 오랜 시간 동안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패션을 찍어 왔다. 어떤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그들과 융화됐는가?
주로 우리 지역 사회(African American Community)의 사람들을 찍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관계, 우정을 쌓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흔히 말하는 ‘힙합’ 포즈를 취한 사람들이 당신의 사진에 자주 등장한다. 직접 주문한 내용인가?
많이들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잘못 전달된 것 같은데 사실 저러한 포즈는 ‘힙합’ 포즈가 아니다. 힙합을 표방하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비롯된 자신감, 자부심을 표현한 자세다. 자신의 패션, 스타일, 라이프를 당당히 드러내는 대표적인 포즈인 거지.
80년대의 뉴욕, 힙합, 길거리를 담아낸 사진집 ‘Back in the days’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사진과 사진 사이에 의도적인 연결 고리, 혹은 방대한 아카이브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정보가 있다면 말해 달라.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내가 속한 사회(Community)의 역사를 보전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포토그래퍼로서 후대의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역사와 유산을 기록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나는 나의 사진들이 역사책의 하나의 챕터로 당당히 자리 잡기를 바란다. 사진작가는 젊은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미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만큼 인지도가 갖춰졌을 때 비로소 거리의 선생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내가 속한 흑인 사회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카메라는 나에게 목소리와 목표의식을 주었다.
‘Back in the days’를 찍을 당시 브루클린과 지금의 브루클린은 많이 다르지 않나? 그 변화에 관해서 듣고 싶다.
물론 많이 변했다. 가장 실질적인 변화는 ‘물가’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당시 내가 브루클린을 찍은 이후로 많은 개발 붐이 일었고, 그것은 우리 지역사회를 재구조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돈이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뉴욕은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다. 슬픈 것은 내가 찍었던 사람들은 더 이상 그곳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높은 물가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 지역에서 밀려났고 퇴출당했다.
필름과 디지털, 어떤 것을 선호하는가?
지금은 디지털을 선호한다. 필름 카메라도 사용하지만 8년 정도 전부터는 주로 디지털 카메라로 작업을 하고 있다. 피사체를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찍은 사진을 곧바로 이메일,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편리하다.
당신은 어떤 거장들의 사진을 보면서 자랐나.
첫 번째로 Leonard freed. 어렸을 때 그의 흑백 사진 작품집을 보면서 굉장히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Gordon Parks와 Roy Decarava. Roy Decarava는 1900년대 초 할렘에서 활동한 포토그래퍼인데 그의 사진을 보며 많이 배웠다.
많은 포토그래퍼가 뉴욕을 동경한다. 다른 국가, 도시와는 다르게 뉴욕의 길거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에너지가 있나?
나는 감사하게도 전 세계를 여행할 기회를 많이 얻었고,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에너지를 느꼈다. 그래서 뉴욕이 특별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뉴욕의 매력은 거리의 사람들마다 개성이 또렷하고 조형물 역시 재미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거리는 거리다(Street is Street). 한국이나 일본이나 프랑스나 각각의 에너지가 있고 나는 전 세계에서 동일한 작업을 해오고 있을 뿐이다.
브루클린 그래피티의 성지, 5 포인츠(5 Pointz)가 얼마 전에 철거되었다.
방금도 말했듯이 개발자들이 밀려오면서 뉴욕 고유의 문화와 역사가 사라졌다. 돈밖에 모르는 그들이 중요한 유산을 밀어냈다. 그러한 맥락에서 5 포인츠도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5 포인츠가 철거되는 것을 보면서 사진가로서, 그리고 역사가로서 내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역사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서 앞으로 사라질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주제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진과 추상적인 사진 중에서 어떤 것을 더 선호하는가?
사진은 메시지가 명확해야 한다.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1908~2004: ‘결정적 순간’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사진작가)은 50mm 화각을 평생 달고 살았다. 당신에게 최적의 화각은 몇 밀리미터인가.
나도 50밀리를 즐겨 쓴다. 종종 80밀리 90밀리를 사용할 때도 있다. 그러나 평소에 내가 사용하는 렌즈는 28-70밀리 렌즈다.
당신에 사진에 관해 기억에 남을 만큼 날카로웠던 비평을 남긴 사람이 있다면?
그보다는 내 사진을 힙합과 동질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아쉽다. 내 사진을 보면서 나를 ‘힙합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사진가로서 패션, 파인 아트, 다큐멘터리를 아우른다. 힙합도 내 작업의 일부이고 소중한 챕터지만 더 많은 것들이 이에 가려져 있다.
당신과 함께한 뮤지션들이 엄청 많다. 음악이 당신의 사진에 직접적으로 어떤 영감을 주는가?
음악은 내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음악이야말로 내 지식과 뇌를 채우는 자양분이다. 나는 정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고 있으며 음악과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특히 마빈 게이(Marvin Gaye)의 음악적 행보는 내 커리어 전체에 영향을 미쳤고, 사회의식을 형성하는데도 많은 역할을 했다. 그리고 커티스 메이필드와 길 스캇 헤론, 비교적 최근 아티스트로는 나스와 모스뎁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바다의 소리, 새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와 클래식, 재즈, 살사, 레게 역시 사랑한다. 내 삶은 음악으로 채워졌고 나는 매일 음악과 소통을 한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흑인들의 인권과 관련된 시위가 끊이질 않고, 그것은 디안젤로, 켄드릭 라마와 같은 아티스트의 최근 앨범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부분이 당신의 새로운 프로젝트에도 영감을 줄 수 있을까?
백퍼센트다. 비단 흑인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시위, 항쟁은 나의 작업에 실시간으로 반영이 된다. 나는 그 역할을 반드시 수행해야만 한다. 역사를 기록하고 보전하는 사진가로서 더 많은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당신은 언제 셔터를 누르는가?
마법의 순간을 목격했을 때.
진행/텍스트/편집/사진 ㅣ 권혁인
통역 및 도움 ㅣ adidas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