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 과거와 미래. 밴드 우주(WOOZE)는 어쭙잖게 그 사이 어딘가를 택하지 않는다. 상충되는 두 극단을 과감히 충돌시켜 카오스를 만들고, 그 안에서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킨다.
2019년 첫 EP [What’s On Your Mind]로 신선한 충격을 선보인 한국인 테오 스파크(Theo Spark)와 영국인 제이미 씨(Jamie She). 이들의 ‘21세기 판소리’는 두 번째 EP [Get Me To A Nunnery]를 통과하며 거칠고 묵직하게 진화했다. 최근 발매한 세 번째 EP [The Magnificent Eleven]엔 앞선 작품의 신선함과 묵직함이 적절히 혼합되어 한층 무르익은 사운드가 담겼다. 앨범 발매에 맞춰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밴드 우주와 종로와 인사동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눴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우리는 밴드 우주다. 나(테오)는 기타와 보컬을 제이미는 드럼과 보컬을 맡았다.
우주라는 밴드명에 관해 조금 설명해줄 수 있을까? 영국에서 한국어 ‘우주’로 활동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영국에서 태어났고 영국 여권도 있지만, 부모님은 한국 사람이다.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오래 거주한 적도 있지. 그런데 나는 영국 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닌 것 같다. 항상 내 정체성이 뭔지 계속 궁금했다. 제이미 역시 영국에 소속감을 느끼기는 어려운 입장. 그런 경험이 비슷해서 우주적인 관계가 생긴 것 같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우주’라는 단어가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어감이 좋았고. 그래서 ‘우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두 멤버가 만난 계기도 궁금한데.
대학 시절에 우린 서로가 서로의 팬이었다. 각자 음악을 커버한 것을 보여주고.
우주 팀의 컬러는 노란색이다. 노란색과 검은색의 조합이 마치 벌을 보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한국에서의 경고 표지판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팀 컬러 설정에 어떤 의미가 있나?
제이미는 노란색을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했다. 나한테는 영국에서 동양인을 ‘노랭이’라고 놀리는 인종 차별에 관해 방어적으로 사용하고 싶어서 일부러 노란색을 팀 컬러로 정하게 됐다. 노란색은 플라스틱처럼 일회용의 느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철학적이고 진지한 의미에서 노란색을 가장 좋아한다.
간만에 한국 투어를 진행했다. 2019년 투어 이후 3년 만에 한국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2019년에 이번 투어와 비슷하게 공연을 진행했다. 지방도 돌아다니고. 이번 공연의 의미는 우리를 좀 더 리마인드하는 의미로 찾아왔다. 내년에는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해서 지금보다 더 크게 투어를 펼치고 싶다. 또 나와 제이미 둘이서도 공연할 수 있는가 하는, 일종의 실험으로 투어를 다니는 중이다. 항상 네 명이서 팀으로 투어를 다닌 터라 둘 만으로도 공연할 수 있는가를 팬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증명하는 투어였다.
2019년부터 2022년. 그 사이에 코로나 팬데믹 2년을 각자 어떻게 보냈는지?
나는 한국을 많이 여행했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도망쳐 6개월 정도 돌아다녔다. 제이미는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다른 밴드를 위해 많은 그림을 그렸고 뮤직비디오를 함께 작업하는 등 바쁘게 지냈다.
제이미는 어떤 밴드의 뮤직비디오에 참여했나?
아티피셜 플레저(Artificial Pleasure)와 멜라(Mellah)라는 솔로 아티스트의 작업에 참여했다.
트랙 “Huge Axeman”의 뮤직비디오 역시 제이미가 직접 한 땀 한 땀 그린 애니메이션이라고 들었다. 자세히 설명해달라.
옛날 디즈니 만화가 한 프레임을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채색하여 스캔했던 것처럼 제이미도 매일 3~4시간씩 거의 6개월 동안 애니메이션 작업에 임했다. 지금의 기술로 좀 더 쉽게 할 수 있지만, 제이미가 그러한 수작업의 재미에 빠지다 못해 거의 미쳐있어서… 재밌는 작업이었다.
뮤직비디오의 비주얼이 애니메이션 “우주왕자 히맨”과 흡사했는데.
히맨과 비슷한 점을 일부러 많이 넣었다. 히맨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몸과 머리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나? 그런 점이 재밌다. 그리고 우리의 SNS를 옛날 만화스럽게, 히맨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비슷하게 연출하고 있다. 뮤직비디오 역시 SNS와 연계되어 팬들의 기대와 관심에서 등장하게 된 비디오다.
“Huge Axeman” 제목은 영화배우 휴 잭맨의 이름을 비튼 농담인 것으로 안다. 어떻게 탄생하게 된 트랙인가?
음악은 다 만들었는데,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간단히 단어로 장난을 치다가 즉흥적으로 제목을 “Huge Axeman”이라고 붙이게 됐다.
한편 한국에서는 밴드 우주와 관련된 정보가 적은 편이다. 그나마 존재하는 정보는 첫 번째 EP가 전부. 지금까지 두 번째, 세 번째 EP를 발매했는데, 밴드의 EP가 진행되며 밴드는 어떤 점들이 바뀌었는지 직접 설명하자면?
우주는 거듭될수록 좀 더 공격적이고 헤비한 음악으로 가고 있다. 어린 남자에서 약간 성인 남자로 성장하는 것처럼 흐르고 있다. 처음 밴드를 시작할 때는 비틀즈와 전통적인 록 음악의 소리가 좋았다. 그러나 계속 전통에 머무를 수 없었고 보다 더 날카로운 소리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다수의 싱글을 발매하고 그 트랙에 한두 곡 정도를 더해 EP 앨범 형태로 발매하고 있다. 앨범 발매의 기준이나 타이밍이 있나?
사실 EP 발매는 우리 레이블의 지침에 따르고 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앨범이다. 우주는 앨범 밴드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영웅들이 앨범을 많이 발매했던 것처럼.
발매될 앨범은 어떤 앨범인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도 궁금하다.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 활동하면서 가장 잘 만든 노래를 꼽아 넣은 앨범이다. 이미 80% 정도를 만들었고 싱글을 조금만 더 만들면 끝날 것 같다. 근데 아직 비주얼은 설정하지 않았다.
이번 “Birthday”에서 처음으로 가사에 한국어를 사용했는데, 우주의 음악과 한국어 가사의 조합은 어떤 것 같나?
계속 한국어를 가사로 사용하고 싶었다. 마침 “Birthday”가 넣기 적절해서 넣었지. 우리는 평소 가사에 어감이 좋으면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추후에도 한국어와 영어 중 재밌는 단어가 있다면 계속 가사에 넣고 싶다.
음악도 즉흥적으로 만들기도 하나?
드럼과 기타 잼을 하다가 좋은 것이 있으면 그걸 토대로 녹음하기도 한다. 나머지 베이스랑 키보드는 추가로 붙이면 되니까. 음악을 만들 때 큰 생각을 하지 않고 먼저 만드는 편이다.
즉흥적인 음악을 만들다 보면 맴버간의 다툼은 없나?
그럴 때도 있지만 우린 경험이 너무 많아서. 우리끼리 하는 농담으로 우주는 섹스 없는 결혼 관계다. 다들 친하게 지내기 때문에 큰 싸움 없이 지나가는 편이다.
직접 그래픽을 디자인하는 제이미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느끼는 한국어에 관한 인상은?
한국어는 그래픽 측면에서 보기 좋고 흥미롭고 친절하다.
앨범명 [The Magnificent Eleven]은 무슨 뜻을 담고 있나?
평소 좋아하던 영화 “매그니피센트 7″에 축구의 룰을 적용해 만든 제목이다. 축구는 11명이 한 팀을 이루고 선수들이 영화의 주인공인 것 같아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은 제목의 앨범이다. 또 ‘Magnificent’라는 단어가 음악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것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더 크래쉬(The Clash)도 “The Magnificent Seven”이라는 제목을 쓰기도 했으니까.
한편 지금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만약 잉글랜드와 한국이 맞붙는다면 어딜 응원하는가?
나는 한국. 옛날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일 때는 맨유의 팬이었고 지금은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뛰니까 토트넘을 응원한다. 제이미는 축구에 딱히 관심이 없고.
앞서 우주라는 밴드가 좋아하는 밴드들이 언급되기도 했는데, 추가로 어떤 밴드를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는지.
퀸(Queen), 게리 뉴먼(Gary Numan), 아바(ABBA) 등. 한국에서 최근에 바밍타이거(Balming Tiger)도 엄청 잘 들었다.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선보이는 격렬한 비주얼이 인상적이다. 우주의 라이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재미다. 밴드 음악이 심심하면 그건 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의 라이브 쇼는 항상 재밌어야 한다. 최근에 레슬러 복장을 하고 공연을 진행하는 이유다. 또 어렸을 때부터 동양 남자는 남자가 아니다, 동양은 얌전하다는 등의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서 그 반대되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 투어 당시엔 포항, 이번엔 대구와 전주를 방문해 공연을 펼친다. 밴드 음악의 저변이 어느 정도 있는 서울, 부산 외에 이런 도시들을 방문하여 공연을 펼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영국의 다양한 도시를 돌며 공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서울 외에 다른 지방을 투어하고 싶었다.
때문에 체력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
사실 우리 둘만 있으면 많이 얌전한 편이다. 다른 멤버들까지 투어에 참여하면 시끌벅적해지고 체력이 소모될 수 있는데 제이미와 둘이서는 공연 외에 체력을 쓸 일이 잘 없다.
투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도시와 공연은?
메트로노미(Metronomy)의 코펜하겐 콘서트를 서포트하러 갔을 때. 베가(VEGA)라는 공연장이었는데 공연의 분위기와 소리가 지금까지 다녀본 공연 중에서 최고였다.
마지막으로 향후 밴드의 계획은?
우선은 크리스마스까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마침내 앨범 녹음 작업을 들어간다. 내년 앨범 발매와 많은 공연을 가질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