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등장 이후 지구촌 모든 사람이 사진가가 되었다는 뼈 있는 농담처럼, 디지털 세상이 낳은 사진 예술의 변화 중 한 예로 사진의 대중화는 사진가의 권위와 전문성을 희석시키기에 이르렀다. 전통 사진에 익숙한 사진가들이 맞닥뜨린 위기감과 ‘이미지’로서 표현 방식의 확장이라는 시대적인 과제 사이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가 그리고 예술가로 살아가기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이처럼 기술과 산업이 변화하고 전통적인 사진의 개념마저 바뀐 지금 시대에 사진가로서 오랜 시간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건 분명 유튜브만 봐도 익힐 수 있는 기능적인 방법론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제이콥 컨센스테인(Jacob Consenstein)은 많은 예술가들이 선망하는 도시 뉴욕(New York)에 거주하며 독창적인 시선과 색을 이해한 사진가로, 자신을 둘러싼 도시와 사람들 그리고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예술과 그 저변을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과거 스트레이트 사진(Straight Photography)에 천착했던 위대한 사진가들이 그러했듯,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제이콥은 새로운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포용성과 사진 매체의 전통성을 교묘하게 뒤섞는다.
해방촌에 자리한 갤러리, 마이크로 서비스(Micro Service)가 주최한 ‘Keep Sake’ 사진전을 통해 제이콥 컨센스테인이 서울을 방문했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계속해서 걸어 다닌 산책자, 제이콥의 다음 작업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도시 경관이 보일 터. 매 걸음 자연과 도시가 선사하는 색깔과 형태를 끊임없이 좇는 그의 뒤를 따라가 보았다.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 ‘Keep Sake’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스토리텔링이나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있는가?
고맙다! ‘Keep Sake’는 우리가 경험하는 평온과 카오스의 이분법을 담고자 했다. 컬렉션에 있는 모든 이미지는 내가 2014년부터 촬영한 개인 작업 아카이브에서 뽑았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내가 자르고, 붙이고, 재결합된 후지 인스탁스 콜라주를 배치했는데, 나만의 전기(바이오그래피)로 모인 이야기 같다. 본 전시를 동명의 시와 동반했다. 이번 전시를 주최하고 기획한 마이크로 서비스 갤러리와 매뉴얼 포토 랩(Manual Photo Lab)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서울의 풍경은 너의 길거리 사진(Street Photography) 중 또 하나의 아카이브로 자리할 거 같은데, 인상적인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물론이지. 서울은 굉장히 아름답더라고! 나중에 보여주겠지만, 15일 동안 필름 18통을 비울 정도로 아름다웠어. 동네 사이사이를 돌아다녔던 게 참 즐거웠다. 나는 이태원에서 묵었는데, 해방촌에 있는 마이크로 서비스 갤러리까지 도보로 45분 걸리는 길을 3번 걸었다. 그 길에 즐비한 건축물, 색상, 언덕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간결함에 감탄했다. 그 길만 걸으며 사진을 몇백 장 찍었다. 하루빨리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
서울의 스케이트 신 또한 점점 더 성장하고 있다. 너와 어울린 서울의 스케이터, 디제이, 아티스트 등 호미들의 느낌은 어땠나?
나는 계속해서 서울의 스케이트보드 신을 담아 온 포토그래퍼 펩 킴(Pep Kim)의 작업을 좇아왔다. 그의 묘사 방식은 언제나 멋지다. 멋진 스타일, 스케이트보딩, 그리고 좋은 스팟까지. 여행 중 들러본 장소 또한 마이크로 서비스의 주인장 김현일이 보여준 책에서 확인했다. 클럽 신도 꽤 경험했다. 하우스, 테크노, 샘플 기반 장르들을 트는 클럽에 가봤는데 멋있더라. 특히 서울에서 그래피티 라이터와 페인터의 작업을 보고 상당히 놀랐어. 15일이라는 짧은 기간 중 활기가 넘치는 서울의 문화를 많이 접해서 기쁘다. 이번 여행 중 만난 딤즈(Dimz), 공(Gong), 렉(Wreck), 영리케인(Youngricain) 그리고 지나가며 만난 디제이, 아티스트, 영혼들에 샤웃아웃하고 싶다.
네가 나고 자란 뉴욕은 힙합, 그래피티, 스케이트보딩을 비롯한 길거리 문화(Street Culture)와 떼어놓기 힘들다. 뉴욕에서 받은 무수한 영감이 사진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미적인 감각에 어떤 방식으로 묻어나는지 묻고 싶다.
뉴욕에 살지 않은 이들에게 내가 늘 뉴욕을 설명하는 방법이 있다. 뉴욕은 아파트를 나온 순간부터 귀가할 때까지 살면서 처음 보는 것들을 매 시간 경험할 수 있는 도시다. 도시를 활보하면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계속해서 생각을 두드린다. 내가 뉴욕에서 자란 배경은 나의 모든 것에 영향을 줬다. 구체적으로 맨해튼은 나에게 처음이자 가장 큰 영감을 준 피사체이며, 내가 오늘날까지 사진을 찍는 이유다. 매일 겪는 새로운 경험은 나의 작업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경험을 내 작업물과 상호작용하는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 크다. 내가 뉴욕의 풍경과 사람들을 프레임에 담는 과정은 나와 도시의 은밀한 관계를 함양한다. 뉴욕을 사진에 담는 과정은 나만의 과정이다. 세계관을 구축하고, 매사 겸손하게 하며, 내가 되어야 할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정말 다양한 인종과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 사는 도시가 뉴욕이라 들었다. 뉴욕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라고 하던데 어떤 점이 다른 도시와 다른가?
뉴욕이 ‘용광로’라는 말의 어원은 다양한 문화, 인종, 배경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왔다. 뉴욕이 이를 정말 잘 나타낸다고 생각해. 5개의 구에 약 800개의 언어가 드글대고 6,000곳의 종교 시설이 곳곳에 있다. 수많은 대중문화의 원천지이자 중심지인 면모 또한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큰 요소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와서 기회를 찾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장소인 뉴욕은 나에게 뮤즈와도 같다. 뉴욕에 사는 시민들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
사진을 찍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에 사진은 취미로 시작했다. 그때는 굉장히 활발하게 무언가를 많이 경험해본 시기이기도 하다. 나와 내 친구들은 투잡을 뛰며 다른 잡일거리도 돌리면서 최대한 열심히 살아보고 있었다. 당연히 그만큼 파티도 열심히 했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그래피티 라이터, 스케이트보더 등 ‘스트리트 키드’였다. 이런 내 친구들을 진심으로 동경해서 일회용 카메라로 이들을 담기 시작했고. 사진은 그렇게 내 최애 취미로 자리잡았다. 그때 내 친구가 선물로 준 첫 SLR 카메라로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진이라는 예술 장르를 좀 더 진지하게 탐구하기 시작한 시기와 그 이유는?
내가 무언가에 특출나게 소질이 있다고 느낀 첫 일이 사진이다. 카메라를 들자마자 뭔가 촉이 오더라고. 학창 시절까지 목적의식이 없었더라면 사진을 만난 뒤로 완전히 달라졌다. 그걸 쭉 잡고 뛰어갔는데 그간 쌓아온 커리어를 보면 놀랍기만 하다. 사진을 진지한 업으로 보기 시작했고, 그 뒤로 언젠가부터 커미션을 받았다. 늘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지만 이를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언어라곤 사진뿐이다. 사진은 나에게 진지한 표현의 수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늘 배우려고 노력하고 내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사진작가이자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래리 클락(Larry Clark), 개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 폴 스트랜드(Paul Strand), 낸 골딘(Nan Goldin) 등 숱한 예술가가 사적인/사회적인 다큐멘트를 자신의 작업을 통해 남기려 했다. 제이콥의 카메라 렌즈가 주목하는 지금의 시대상 또는 개인적으로 집착하는 소재가 있다면?
내 사진의 큰 목적 중 하나는 나의 현 창작의 배경을 맥락화하는 것이다. 늘 동료들의 예술과 이야기들로 영감을 받곤 한다. 이들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배출구를 마련하고자 한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진을 찍어 올리고 있다. 실제 수준 높은 스킬까지 갖춘 이들 또한 많아졌는데, 프로페셔널한 사진작가라면 그들과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그것은 태도와 같은 정신적인 가치일까?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와 사진의 관계에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다. SNS와 전통적인 사진 매체의 전체적인 관계는 부정적이라고 본다. 사진술은 오래전부터 전문화된 예술이었지만 오늘날 사진만큼 접근성이 좋은 예술도 없다. 그만큼 ‘사진작가’들도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지며 신이 과포화되는 현상을 초래했다. 어떤 신이든 간에 레드오션은 신을 극단적으로 바꾸는 것 같다. 사진의 경우, 질이 좋지 않은 사진을 찍어내는 사진작가와 사진 장르의 옳지 않은 관계가 형성된다. 반면에 사진의 발전에 큰 도움을 준 훌륭한 사진작가도 많이 발굴했다. 사진은 이제 과거에 지배적인 영역에서 많이 벗어났으므로 각자의 방향성을 잘 살리는 시각을 터득해야 한다. 전통적인 사진술은 진화했고 이런 잔뼈 굵은 기법이 잊힌다는 것은 상당히 아쉽다. 나의 기법이 인스타그램의 사진작가들과 차별성을 두는 포인트는 다큐멘터리, 패션, 예술을 동일한 시선과 스타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공식 포트폴리오 웹사이트에서 연재하는 ‘아티스트 시리즈(Artists Series)’를 재미있게 봤다. 사진에 국한하지 않고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충실한 텍스트까지, 다분히 매체 성격을 띠는 이러한 작업은 어떤 계기로 시작한 것인가?
2019년에 자연스럽게 피어올랐다. 난 늘 내 동료들의 예술과 이야기로 영감을 받곤 한다. 따라서 이들의 작업을 전시함으로써 개개인이 접속한 큰 연결망이 소우주의 집합체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관객에게 한 아티스트의 마이크로가 한 도시의 매크로와 어떻게 접속하는지 드러내는 것이다. 현재 아티스트 시리즈에 선별된 아티스트들은 뉴욕 출신이거나 뉴욕에 거주한다. 뉴욕을 100 단위로 나눠서 장기적으로 주(State)마다 아티스트 시리즈를 발행하려 한다.
새로운 세대는 필름 카메라와 사진에 열광하고 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제이콥의 모든 사진 또한 필름으로 촬영한 결과물인데, 디지털이 흉내 낼 수 없는 필름의 마력이란 무엇인가?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늘 즉각적인 만족감을 취하고자 한다. 우리의 삶은 디지털화되며 점차 삶의 촉감을 잃는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점점 지연된 만족감 그리고 촉각적인 수단을 되찾고자 하는 것 같다. 필름은 이 둘을 동시에 충족하는 상당히 흥미로운 매체다.
개인적인 작업뿐만 아니라 패션 브랜드 등 다양한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으로 상업적인 영역까지 범위를 확장하는 듯하다. 이때 개인 작업과 구분하는 태도나 작업 방식이라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실제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에서도 필름 사진을 고수하는지 궁금한데.
나는 매 프로젝트를 다르게 접근하고 개인 작업물과 상업용 작업물 사이의 거리는 꽤 멀다. 개인 작업물은 영혼에서 나오며 내가 만들고자 하는 창작을 가장 잘 나타낸다. 상업용 작업은 클라이언트의 목표와 나의 영혼의 조각을 엮은 작품이다. 그렇지만 둘 다 필름으로 촬영한다!
세계적인(또는 트렌디한) 패션 브랜드와 일하는 경험이 본인에게 주는 영향을 묻고 싶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클라이언트들이 나를 고용하는 일은 그 자체로 고맙고, 그걸로 월세도 낼 수 있다. 나도 소비자로서 한 브랜드의 아웃풋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사실에 신이 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내 비전에 충실한 채로 상품을 표현할 방법을 고안해낼 수 있게 내 몸뚱이를 바쁘게 굴리게 한다.
패션 산업의 굴레 속에서 성공한 사진작가들은 많은 영광과 부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고지식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곧 그만큼 자기 자신의 예술과 거리를 두는 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본주의형 예술가’는 주관적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나 자신, 내 사진, 내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연속이 될 수 있게 노력한다. 나와 맞지 않는 일은 거부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가 예술과 거리가 멀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은 내 작업물을 판단할 권리가 있다.
지나간 과거의 거장들을 제외하고 동시대 본인에게 영향을 주는 길거리의 사진작가 또는 다른 예술 장르의 인물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내 아티스트 시리즈를 보면 된다! 내가 조명하고 싶은 현대 아티스트고 전 세계가 이들을 주목했으면 좋겠다.
길거리를 싸돌아다닐 때 귀에 꽂고 첫 곡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쭉 돌리는 앨범 3가지만 말해 달라.
Nick Hakim – [Green Twins]
Dijon – [Absolutely]
Mavi – [Laughing So Hard, it Hurts]
2022년이 2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가장 짜릿한 경험을 한 가지 해야 한다면 무엇인가?
전반적으로 보면 보다 더 좋은 사진작가이자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내 개인 아카이브에 꽁친 게 많은데, 한 해가 끝나고 아카이브를 쭉 둘러보며 한 해 동안 내가 이뤄낸 것을 보는 일이 정말 즐겁다. 미래도 바라보지만 그래도 내가 성취한 것을 되짚어 보는 기회는 늘 좋지.
Editor │ 권혁인
Photographer │ 유지민
Translator │서희승
Special Thanks to 마이크로 서비스, 최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