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몸에 있어서만큼은 지극한 순정파다. 네 살 아이의 낙서장 마냥 빼곡한 그림이 아니라면, 어정쩡한 ‘여백의 미’보다는 온전히 깨끗한 백도화지가 차라리 낫다는 입장인 것. 어찌 보면 몸에 영원히 남을 무언가를 새긴다는 사실에 지레 겁을 먹은 것일 수도.
그러나 필자의 이런 겁쟁이 마인드를 조롱이라도 하듯 세상 미친 방법으로 타투를 행하는 이가 있으니, 유럽 전역을 돌며 고객들에게 평생 간직할 경험을 선사하는 행위예술 타투이스트 ‘Rixard Tatto’가 바로 그 주인공.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깃든 타투 머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고객들과 그 결과물에는 순수한 즐거움만이 가득하다. 행위예술 타투의 원조, Rixard Tatto와 나눈 대화를 함께 음미해 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타투를 비롯한 행위 예술을 하고 있는 스페인 바야돌리드 출신의 Rixard Tatto라고 한다. 타투는 2012년에 처음 시작했다. 전에는 바르셀로나와 살라망카에서 회화를 공부했고, 새로운 기술에 중점을 둔 시각 예술 및 멀티미디어 석사 학위도 취득했다.
타투에도 여러 장르가 있지만 당신이 지금 행하고 있는 스타일은 극도로 자유롭고 즉흥적인 방식으로 보인다. 이런 광기 어린 스타일의 타투를 택하게 된 이유는 뭔가.
우선 이런 스타일을 ‘택한’ 게 아니다. 내가 직접 ‘만들어낸’ 거지. 물론 타투를 받을 때의 고통이나 음악을 일종의 공연 개념으로 진행하는 타투 아티스트도 있기는 하지만, 난 나만의 미학과 개념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게 내가 독창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이유다.
처음부터 이런 스타일의 타투를 시작한 건가? 아니면 스타일을 바꾸게 된 어떤 계기가 있는지.
지금 같은 ‘타투 퍼포머’가 될 수 있던 건 공원에서 케이블 없이 배터리만 가지고 타투했던 경험 때문이다. 첫 야외 퍼포먼스를 통해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어려움이나 장애물을 느끼게 됐는데, 그게 내가 새로운 활동을 하는 데 큰 자극이 됐다. 기존에 행해오던 타투와 일으키는 불협화음 그리고 거기서 오는 매력, 반발, 아이러니, 즐거움 같은 감정이 좋더라.
고객의 몸에 평생 남길 그림을 이렇게 자유로이 그리는 방식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고객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끔씩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들이 결과에 만족하고 긍정적인 경험이 되길 바랄 뿐이지. 어찌 됐건 그건 내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지 않나.
가장 기억에 남는 도안이 있다면 알려 달라.
‘선인장 타투’. 일반적인 타투 머신을 사용하지 않고 선인장을 하나의 거대한 핸드포크 머신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내 작업에서 일종의 ‘진화적 도약’ 같은 시도라 할 수 있다. 결과 또한 매우 만족스럽다.
타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내게 타투를 받으려면 최종 결과물이 ‘예상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결과물이 어떤지’ 또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오직 ‘경험’, 그게 내가 타투 퍼포먼스를 행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작업에 대한 영감은 주로 어디서 찾고 있나.
순수 예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미술사와 현대 미술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특히 로만 시그너(Roman Signer), 이반 아르고떼(Ivan Argote), 바스 얀 아데르(Bas Jan Ader) 같은 아티스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보통은 스케치 작업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편이다.
본인이 생각해도 정말 미친 것 같은 타투 시술법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2020년에 시도했던 ‘드론 타투’는 내가 생각해도 다른 레벨의 방식 같다. 모든 상황이 통제불능이었다. 드론의 일부 센서가 타투 머신에 가려 신호를 받지 못하기도 했고, 바람도 많이 불어 드론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더라.
고객 역시 당신의 작업 방식을 받아들이기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주로 어떤 방식으로 모객하나.
보통 SNS로 문의가 온다. 보증금을 받고 나면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간단히 대화를 나누는데, 여기서 고객 각자에 맞는 퍼포먼스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내가 이미 진행한 작업에 관심을 보이는 고객들도 있다.
결과물을 두고 항의하는 고객도 있었나?
아직까진 없다. 모두 만족하고 돌아갔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의 타투 신(Scene)은 어떤지 궁금하다.
현재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지만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다. 암스테르담에도 분명 타투 신이 존재한다. 그러나 주로 관광객들을 위한 상업 타투가 대부분이지. 고향 스페인에는 전통적 스타일의 더 큰 타투 신이 형성돼 있다. 하지만 역시 새로운 스타일의 타투는 부족한 편이다. 내 타투에 관심을 가져주는 이들이 유럽 전역에 분산돼 있는데, 그 덕에 내가 끊임없이 여행하고 있다.
당신의 스타일에 왈가왈부하는 타투 신의 분위기도 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뭐라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얘기할 수 있는 건 이 스타일에서는 내가 오리지널이라는 거다. 비슷한 모두가 카피캣이다.
당신의 작업물을 보면 시술을 하는 당신이나, 받는 고객에게서나 순수한 즐거움이 드러난다. 이 ‘즐거움’이 계속 작업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인가? 이 미친 짓을 계속하는 이유에 관해 듣고 싶다.
단지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게 좋다. 일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고, 내 퍼포먼스는 그들의 몸에 영원히 남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편안한 감정을 느끼는 거지.
나는 사람들이 지루해 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래서 항상 기술과 속도를 완벽히 하려 한다. 빠르고 격렬하고 프레시하게. 어떤 이들은 나와의 경험을 즐기고 어떤 이들은 고통스러워 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가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기상천외한 타투 기법이 있다면?
로봇이나 전자 기기를 이용해 더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 갤러리와 박물관에 전시될 회고전 설치 작품을 제작하는 게 목표다.
Editor │장재혁
이미지 출처 | Rixard Tat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