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몽테시에(Marie Montexier)의 단단한 에너지를 처음 느낀 것은 1월 말 독일 발트 해 근처에서 열렸던 페스티벌 ‘나흐티빌(Nachtiville)’이었다. 마지막 날, 더 홀(The Hall) 스테이지의 오프닝을 맡은 마리는 능숙하게 관객들을 이끌었고 열띤 분위기에서 닥터 루빈슈타인(Dr.Rubinstein)에게 덱을 넘겼다. 그날 더 홀은 클로징을 맡은 티야나 티(Tijana T)까지 전부 여성 디제이로만 구성된 라인업이었다.
대학생과 프로 디제이의 삶을 숨가쁘게 오가며 테크노 신(Scene)에서 다양성을 확장하고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있는 마리. 독일의 서쪽 도시 쾰른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여 현재 라이프치히를 기반으로 베를린의 베억하인(Berghain), 쾰른의 게뵐베(Gewölbe) 등의 클럽과 유수의 페스티벌을 누비는 그녀는 현재 유럽에서 주목받는 전도유망한 디제이다. 또한 FLINTA*[1] 아티스트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올곧고 대쪽 같은 그녀의 이야기를 확인해 보자.
대학에서 현재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프로 디제이와 평범한 대학생이라는 완전히 다른 두 삶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찾고 있는가?
양극단의 두 삶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흥미로운 질문이다. 젊은 아티스트로서 공연을 위해 세계를 여행하고, 많은 사람이 내 공연을 즐기는 일은 강렬하고 값진 경험이다. 플레잉을 마치면 대학교로 돌아가 평범한 삶의 한 조각을 누린다.
그러나 가끔은 두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특히 금요일부터 주말 내내, 때로는 심지어 월요일까지 플레이를 하고서 바로 대학교로 돌아가면 그 사이에서 휴식을 찾기란 어렵다. 강렬한 주말을 보내고 나면 마치 구덩이에 빠지는 듯한 양가감정이 들기도 한다. 세상과 격돌하는 느낌이랄까.
디제이로 활동하다 보면 너무 많은 일이 빠르게 일어나서 내 감정이 그 사건들의 트랙을 쫓아가기 힘들 때가 있다. 주말 동안의 감정이 모두 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의 강의 스케줄을 따라가다 보면 하루, 이틀의 휴식이 간절하다. 다만 대학교까지 돌아가는 길이 멀더라도 내게 두 가지의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디제이의 삶은 화려하고 멋지지만 때로는 현실에서 유리되어 붕 뜬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기에, 지금 나에게는 공부하는 대학생의 삶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몇 년 전의 인터뷰에서는 대학교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러한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대학교가 자리한 곳은 작은 도시라 캠퍼스 안에서 내가 디제이라는 걸 알아보는 학생이 훨씬 늘어났다. 심지어 교수님이 “오, 자네가 그 디제이 하는 학생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네, 그게 저예요!”라고 하지. 가장 최근에는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는데 학생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내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갑자기 일상 속에서 튀어나와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대학교는 동일한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니 괜찮지만, 디제이로서 사생활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체감하고 있다. 배우나 팝스타 같은 셀레브리티의 사생활 침해는 이미 공공연한 이슈지만 전자음악 디제이들 역시 사생활을 침해받고 있다.
어릴 적에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를 연주한 것이 음악과의 연결고리가 되었다고.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던 과거의 학습이 음악 취향과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또한 취미와 직업으로서의 디제잉은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하다.
악기 연주는 내가 음악과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내 셋의 다이나믹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클래식 음악에서 출발해 힙합과 사랑에 빠졌다. 이러한 음악적 경험이 나의 강점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꼭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악기를 다뤄본 적이 없더라도 충분히 디제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렉트로닉 음악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더욱더 흥미로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직업으로서의 디제이는 항상 재미있다고 말한다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이겠지. 하면 할수록 진짜 ‘일’로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파우스트의 공연처럼 좋은 바이브와 셋업, 그리고 사람들이 맞물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특별하고도 귀중한 순간이 내게 계속 플레잉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한편, 나는 집에서 혼자 믹스셋을 녹음하는 것도 즐긴다. 클럽에서는 관중과 상호작용하며 훨씬 더 유연하게 플레잉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집에서는 내 레코드 선반을 살펴보며 셋의 기승전결을 짜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음악을 자유롭게 틀곤 한다.
처음 사랑에 빠진 음악 장르가 힙합이라니 소울과 훵크의 다양한 샘플링, 두툼한 브레이크비트 등이 스스로 정의한 것처럼 ‘Breaky & Bassy’한 음악 스타일에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시그니처와도 같은 백스핀도.
일렉트로닉 장르에서 나의 첫 취향은 브레이크비트(Breakbeat)라고 할 수 있다. 디제이 쿨 허크(DJ Kool Herc)나 아프리카 밤바타(Africa Bambaataa) 등 올드 힙합에는 브레이크비트의 요소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 뒤 트랜스에 눈을 뜨게 되었다. 트랜스라고 하면 뿅뿅대는 멜로디 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딥하고 트라이벌(Tribal)한 사운드에서 영향을 받은 장르다.
4년 전부터는 테크노에 깊게 빠지게 되었다. 클리셰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베억하인에 처음 가보고 비로소 테크노를 이해하게 되었다. 에너제틱한 움직임을 지닌 브레이크비트와 비교하여 테크노는 움직임은 덜할 수 있지만 최면적이다. 베억하인의 플로어 가운데에서 혼자 그저 눈을 감고서 흐름에 몸을 맡기며 춤을 추는 것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탈출이자 휴식이었다.
작년에는 베억하인의 파노라마 바(Panorama Bar)에서 자주 플레이하며 하우스 음악에 빠지게 됐다. 나는 일렉트로닉 음악에 대한 감각을 다채롭게 유지하려고 한다. 브레이크비트와 드럼 앤 베이스에서 시작해서 트랜스, 테크노, 하우스에 이르기까지 내가 지닌 모든 음악 취향을 탐색하고 잘 어우러지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루브한 테크노 셋으로 시작해서 보컬이 없는 트라이벌하고 딥한 음악을 거쳐 유포릭한 디스코 트랙으로 마무리를 한다든지.
2017년 여름에 쾰른의 일리걸 레이브에서 튼 것을 시작으로 쾰른의 서브웨이(Subway), 게뵐베(Gewölbe) 등 여러 클럽에서 플레잉했다. 그리고 베를린의 ‘Warning’이라는 파티 콜렉티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Warning’이 커리어에 어떻게 도움을 주었나?
Warning 크루가 나에게 콜렉티브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을 때 정말 고마웠다. 처음으로 타인이 나의 음악에 신뢰와 지지를 보내준 것이기 때문이다. 쾰른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여성 디제이로서 성차별을 겪은 적이 있기에 누군가가 내 음악에 집중하여 서포트해준다는 것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Warning은 초창기에 내 커리어를 많이 지원해주었고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위치에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Warning은 여전히 베를린의 어바웃 블랭크(://about blank)에서 파티를 주최하니 안전한 파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가보기를 추천한다. 어바웃 블랭크는 파시즘과 반유대주의(Antisemitism), 그리고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는 안티 파시즘(Anti-Fascism) 성향의 클럽이다.
정치적 참여를 포함한 삶의 태도는 당신의 음악에 중요한 부분이다. 사회학을 공부하고 정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음악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특히나 FLINTA* 아티스트를 지지하며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FLINTA*’의 뜻은 무엇인가.
FLINTA*란, 독일어로 여성(Frauen), 레즈비언(Lesben), 간성(Intersexuelle), 논바이너리(Nicht-binäre), 트랜스젠더(Transgender), 에이젠더(A-gender)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정치적인 태도는 내 인생과 아티스트로서의 자아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나에게는 FLINTA*에 속하는 이들을 지지하며 서로의 커리어를 돕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고, 여기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에 침묵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올바름을 소신껏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행동에 나서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이 나의 본업인 만큼, 정치적 활동과 음악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안전한 레이브 신을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안전하지 않은 레이브에는 어떤 요소가 있을까.
젠더, 외모, 계급, 성적 지향, 인종주의 및 반유대주의에 근거한 차별 등 여러 가지 요소로 차별을 겪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Rave Safe’를 외치더라도 바깥의 사회가 지금과 똑같다면 레이브는 안전하지 않다. 사회가 바뀌어야 서브컬처와 파티 신도 함께 바뀐다. 신은 바깥의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비판적 시선으로 이 구조를 바라보아야 한다. 최근 FLINTA* 디제이가 많이 섭외되고 있음에도 크라우드 사이에서, 부스 뒤에서 성차별과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최근에는 모든 페스티벌이 점점 더 비싸지면서 서브컬처가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티켓 구매자는 주최 측에서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티켓 가격이 높으면 자연스럽게 부유층과 백인 위주의 크라우드가 형성될 것이다.
때때로 레이버가 겪은 안 좋은 경험을 들을 때마다 우리가 진정 21세기에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어떤 요소로든 타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당연한 명제를 이제는 다들 이해할 때가 되지 않았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우리는 마치 닫혀있는 버블 안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모두가 문제를 인지하고서 여기는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안전한 파티를 만들기 위해서 프로모터는 티켓 가격, 라인업의 다양성, 문제를 민감하게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는 바운서, 파티 자체의 규칙 등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술을 포함한 여러 가지 약물 또한 사람들이 언급을 꺼리는 주제 중 하나다. 하지만 클럽에서의 약물 복용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로 클럽 신에서는 스파이킹(Spiking)이 문제로 떠올랐다. 스파이킹이란, 타인의 술에 몰래 약물을 타거나 타인의 몸에 몰래 약물을 주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분별한 약물 사용은 클럽 신을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
쾰른의 여성 콜렉티브 ‘프레세이(Précey)’와 당신의 레코드 레이블 ‘퍼라이아(Paryìa)’에 대해 소개해 달라.
쾰른은 대도시이지만 아직 다양성에 있어서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변화는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쾰른에는 게뵐베(Gewölbe), 아티어터(Artheater) 등의 대형 클럽과 야키(Jaki) 등의 중소형 클럽이 있다. 최근 파티 콜렉티브가 생기고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의 문이 많이 열리고 있음에도 대다수는 여전히 백인 및 남성 중심적이다.
그런 것에 지쳐버린 우리는 FLINTA* 콜렉티브인 ‘프레세이’를 직접 만들게 됐다. 나는 쾰른에서 파티를 열고 싶어하는 디제이 필로(Philo)를 만나게 되었고 그녀가 아이노(Aino DJ)를 소개해 주었다. 여기에 노엘리아(no:elia)가 합류했다. 우리는 다양한 배경의 FLINTA* 아티스트를 초대하여 클럽 야키에서 주기적으로 파티를 주최한다.
나의 레코드 레이블 ‘퍼라이아’ 또한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플랫폼이다. 일렉트로닉 음악 프로듀싱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적다고 느꼈다. 그래서 퍼라이아는 여성 및 논바이너리(Non-binary) 프로듀서에 초점을 맞추고, 특히 작업물을 릴리즈한 적이 없는 아티스트를 서포트한다. 퍼라이아를 통해서 아직 기회를 얻지 못한 아티스트에게 커리어를 시작하기 위한 문을 열어주고 싶다. 아티스트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조사가 필요하니 그만큼 노력은 더 들지만 재미있는 작업이다.
최근 발매된 퍼라이아의 4번째 바이닐을 소개해 준다면.
퍼라이아의 4번째 EP [Extracted Soil]의 주인공은 독일 도르트문트(Dortmund) 출신의 아티스트 앨리스(A2iCE) & 밥(BO3)으로, 사운드 디자인과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다. 또한 베를린의 아티스트 모르 엘리안(Mor Elian)이 리믹스한 트랙도 수록되었다. EP 릴리즈에 맞추어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를 주제로 비디오 설치 미술과 함께 오래된 재료를 재활용한 전시회를 열었으며, 재활용 천으로 머천다이즈도 발매했다. EP뿐만 아니라 전시회와 머천다이즈까지 퍼라이아의 작업 중 가장 큰 프로젝트다.
FLINTA* 아티스트를 지지하는 여성 아티스트로서 미래의 신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공유해줄 수 있는가.
개개인마다 경험과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에게 좋은 이상적인 신을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음악과 클럽 신을 접하는 문턱이 지금보다 낮아지면 좋겠다. 디제잉을 시작하기 위해 장비를 사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클럽의 입장료 역시 비싸지고 있다. 그러나 모두에게 음악을 누릴 기회가 있어야 하고 클럽과 페스티벌은 모든 사람에게 접근 가능해야 한다. 한 사람의 어떤 배경에도 상관없이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나 도시에서 서브컬처 음악 신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음악 신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일렉트로닉 음악이 높은 수준의 음악으로 인정받는다면 큰 진전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지금은 나의 레이블 퍼라이아에 집중하고 있다. 음악뿐만 아니라 전시회, 콜라보레이션,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로 레이블의 영역을 확장해 나갈 것이다. 또한 다른 FLINTA* 아티스트 및 퀴어 콜렉티브와 함께 연결점을 만들어 나가며 작업하고 싶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인 학업을 마친 뒤에는 다른 도시로 이사 갈 계획이다. 정든 이웃과 내 아파트를 떠난다는 것이 조금 슬프기는 하지만 다른 환경에서 삶을 꾸려나갈 사실에 설렌다. 새로운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큰 발걸음이다. 때로는 두렵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가올 미래와 새로운 도전을 기쁘게 맞이할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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