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필자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녀의 끝없는 헬로키티(Hello Kitty) 사랑 때문이었다. 헬로키티를 좋아하고 수집하는 사람은 많지만 바로 이 사람, 키티리(KITTY RI)는 퍽 남다르다. 키티리는 헬로키티와 빈티지 소품을 수집하며 또 자신의 브랜드 소울푸시캣(Soulpussycat)을 운영하는 컬렉터 겸 디렉터다.
오는 4월 6일부터 연남동 포(Foe)에서 그간 수집한 소장품을 선보이는 전시를 앞둔 그녀와 소울푸시캣 그리고 헬로키티를 향한 애정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를 핑계 삼아 키티리의 소장품을 찬찬히 들여다봤으니, 그녀가 일평생 쌓아온 방대한 키티 컬렉션을 하단에서 함께 감상해 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빈티지와 자체 제작 의류, 굿즈를 판매하는 소울푸시캣을 운영하고 있다.
소울푸시캣은 물론 본인의 색채가 뚜렷하다. 유년 시절에 어떤 영향을 받았길래 이런 정체성을 구축하게 됐나.
초등학생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엑스재팬(X JAPAN)의 음악과 여러 해외 잡지를 소개해 줬다. 당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터라 해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는데, 다른 또래보다 조금 더 어린 나이에 접하게 된 거지. 그게 퍽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중학생이 돼서는 밴드와 코스프레에 빠지게 되어 신촌 등지에 놀러 가곤 했다. 그때 처음 산 잡지가 ‘SMART’였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기 전에 회사에 다녔다고 들었는데 어떤 업무였는지 들려줄 수 있나.
학창 시절부터 빈티지숍에서 일했고, 그 경험을 살려 성인이 된 후에도 의류업에 몸담아 마케터 겸 MD로 일했다. 마지막으로는 키르시(KIRSH)라는 브랜드에서 마케팅 업무를 맡았는데, 몸이 아파 휴직했다. 그때가 서른 살이었다. 수술하고 쉬는 동안 조금 늦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무엇을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빈티지, 의류, 각종 특이하고 귀여운 소품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작게라도 내 것을 시작해보고자 회사를 그만뒀지.
어찌 보면 수술이 계기가 된 건가.
그렇다. 수술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회사를 다니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이 많이 들었다. 주변에 자문도 많이 구했다. 오랫동안 회사에 다니는 결정도 나쁜 건 아니었지만, 회사 업무가 보통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일 아닌가. 그런 생활은 내 건강에도 좋지 않았고, 더 활동적인 업무를 원했다.
소울푸시캣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있다면?
처음에는 내가 가지고 싶은 걸 팔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비슷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꽤 존재할 거라 느꼈다. 미국에 있는 지인에게 부탁해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댄싱 베어를 시작으로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 사인펠드(Seinfeld) 같은 밴드와 드라마의 굿즈들을 수입해서 팔았다. 또 “에반게리온(Evangelion)” 같은 애니메이션 굿즈, 올드한 Y2K 티셔츠, 하라주쿠 스타일 의류와 빈티지 배지들도 들여왔다. 자체 제작 굿즈 중에는 대표적으로 루어 키링이 있다. 이것 역시 내가 하고 싶어서 만들었는데 주변 반응이 좋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소울푸시캣 캐릭터도 있는데 지금까지 사용하던 캐릭터를 조금 더 변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캐릭터로 키링, 가방 등 여러 가지 굿즈를 준비 중이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영역으로 굿즈를 제작해 볼 생각이다.
헬로키티에 빠진 시기와 그 이유가 궁금하다.
아버지께서 혼자 자식 셋을 키우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어렸을 적 엑스재팬이 좋다고 말씀드렸더니 엑스재팬과 히데(Hide)의 음악 앨범들을 사주셨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여성스러운 것도 접했으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헬로키티 저금통이랑 타월 세트도 선물해 주셨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이게 꽤 마음에 들었는지 점차 정이 들었던 거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로는 맥도날드 해피밀부터 시작해 키티 굿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보통 어디서 소장품을 구하는가. 또 컬렉팅 중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20살 때부터 회사 업무 때문에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녔다. 출장 때마다 키티를 사다 보니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것들을 많이 모을 수 있었지. 반대로 한국에만 있는 키티 굿즈들도 있다. 라이선스를 받아 한국에서 생산했던 일명 ‘고전키티’들은 개인 거래로 구했다.
컬렉팅 중 재미있던 일이라면 동묘가 기억에 남는다. 색이 많이 바랜 키티 알람 시계가 있었는데 사고 보니 꽤 오래되고 희귀한 것이더라. 또 아버지가 사주신 것들도 특별하다. 뭐든지 처음이 특별하지 않은가. 요즘은 키티 핸드폰 스트랩을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장 애장하는 소장품 몇 개만 소개해 달라.
언더커버(Undercover)와 콜라보한 키티 키링이다. 너무 구하고 싶었는데 늦게라도 구해서 애착이 많이 간다. 그다음으로는 CD플레이어. 굉장히 오래전부터 가지고 싶던 물건으로, 최근 우연한 기회에 지인을 통해서 구했다. 꽤 예전에 한국에서 만든 건데 이렇게 패키지와 더불어 아름답게 보존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헬로키티를 모으면 마음이 한구석이 충족되는 기분인지.
당연하다. 하지만 옛날에는 소소하게 키티면 다 모았는데, 이제는 좀 더 희귀하고 오래된 것들을 모으려고 하니 기대치가 더 높아졌다.
앞으로 어떤 키티 굿즈를 구하고 싶은가.
2000년대에 LG에서 나왔던 키티 시리즈가 있다. 유아용 소파를 소장 중인데 똑같은 시리즈의 장판, 발 매트 등을 구하고 싶다. 또 그 당시에 나왔던 이불 역시 구하고 싶다. 아무래도 컬렉터들이라면 구하기 힘든 것에 눈이 가지 않는가.
키티 박물관이나 관련한 카페 등 키티와 연관된 장소에 많이 다녀왔다고 알고 있다.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제주도 롯데호텔 키티룸. 방 하나의 모든 것을 키티로 채워놓은 장소다. 여동생이 생일선물로 숙박권을 선물했다. 숙박비도 상당했을 텐데 무척 감동적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카펫부터 벽지, 가운, 어매니티까지 모두 키티였다. 잠을 자기가 아까워서 밤새 사진을 많이 찍었다. 또 일본 산리오 퓨로랜드가 기억에 남는다. 퍼레이드도 보고 여러모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소장품을 처분하거나 컬렉팅을 멈추고 싶은 순간도 있었는지.
물론이다. 사실 꽤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모았으니 이것은 나의 일부분이자 정체성이다. 그런데 키티를 처분하게 되면 나를 부정하는 것 같아서 혼란스러울 것 같다. 앞으로도 될 수 있는 한 계속해서 모으고 싶다.
연남동에 위치한 FOE에 숍인숍 형태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 팝업스토어를 할 계획이 있는지 혹은 앞으로 개인 숍을 만들 의향이 있는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포에 숍인숍이 아니라 입점만 했었는데 반응이 좋아 조금씩 자리가 커져 지금처럼 된 거다. 그리고 다른 숍에서는 1984와 ACS에서 팝업스토어를 진행했는데 모두 꽤 좋은 기억들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다른 곳에서도 입점하거나 팝업스토어를 하고 싶다. 개인 숍이라면 언젠가 바닷가에 내 소장품들로 잘 꾸민 멋진 칵테일 바를 열고 싶다.
다른 얘기지만 바이크 줌머(Zoomer)를 타던데, 여러 바이크 중 특별히 혼다 줌머를 애착하는 이유가 있는가? 언제부터 바이크를 탔는지도 궁금하다.
어렸을 적 동네 번화가에서 줌머를 보았다. 당시에는 혼다가 뭔지도 몰랐지만, 보자마자 마음을 빼았겼다. 아버지한테 가지고 싶다고 했더니 아버지께서 바이크는 위험하다고 안 된다고 하시더라. 남동생도 타는데 왜 나만 안 되느냐고 땡깡을 부렸다. 결국 아버지께서 장고 끝에 야마하 비노의 카피 바이크인 비너스를 사주셨다.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빨간색이었다. 그렇게 잘 타고 다니다가 어느 날 남동생이 몰래 내 비너스를 팔고 자신의 오토바이를 업그레이드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넘어가 줬다. 시간이 흘러 내 돈으로 바이크를 살 여건이 되자 비너스의 오리지널 모델인 비노를 덜컥 사버렸다. 비노 역시 잘 탔지만 ‘역시 줌머를 살걸’ 하고 꽤 후회되더라. 비노를 나중에 처분하고 나서도 줌머가 눈에 종종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당시 튜닝 열풍이 엄청났다. 나는 순정 바이크가 좋은데 죄다 괴상한 튜닝 바이크만 있더라. 그렇게 점차 줌머를 잊을 때쯤인데 지금으로부터 약 1년 반 전에, 친구와 카페에서 놀면서 재미로 줌머 매물을 보다 가까운 거리에 순정 상태인 줌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장 달려가 구매했다. 어렸을 적 타고 싶었던 바이크를 구해 타고 다니니 다른 어떤 바이크보다 더 소중하고 만족스럽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사람들은 나를 죄다 키티한테나 돈을 써버리는 철부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게는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위안이 된 존재기에 의미가 크다.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좀 더 솔직하게 표현했으면 한다. 취향에는 나이와 성별은 상관없으니까.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가 그 사람을 드러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