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년 전만 해도 ‘남자의 손톱칠’은 굉장히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에이샙 라키(ASAP Rocky), 스눕 독(Snoop Dogg), 머신 건 켈리(Machine Gun Kelly) 등을 필두로 한 유명 남성 래퍼들의 활약 덕에 이제는 ‘남성 네일’ 역시 한결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와 릴야티(Lil Yachty)는 자신의 네일 브랜드를 론칭했으며, 굳이 남성 네일 아트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날로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무장한 네일 아티스트들이 각자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여러 아티스트와 활발한 교류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이 남자, 나카가와 토모야(Tomoya Nakagawa)를 빼놓을 수 없다. 생물학 분자부터 동물의 촉수와 발톱, 별, 그리고 광물까지 자연을 담은 그의 네일 아트는 어느새 신(Scene)의 판도를 바꿀 새로운 형태의 작업물로 자리매김했다. 오래간만에 서울을 찾은 토모야와 지하철 여행을 하며 독특한 그의 작업세계 그리고 다이내믹한 그의 인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단 대화를 통해 이를 함께해 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네일 아티스트 나카가와 토모야라고 한다. 현재는 네일뿐 아니라 헤어피스, 바디피스도 제작하고 있으며, 도쿄와 뉴욕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서울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서울은 6년 만이다. VISLA와의 인터뷰를 비롯해 몇 가지 촬영 작업을 하러 들렀다. 여행도 할 겸.
최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릴야티가 네일 브랜드를 론칭하는 등 남성 네일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예술작품 같은 당신 스타일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이런 스타일의 네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그 시작이 궁금하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스타일을 지향했던 건 아니다. 나도 다른 네일 아티스트들처럼 평면적인 작업물로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똑같은 네일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도드라진 형태를 만드는 것에 흥미가 생겼고, 그 후로 줄곧 이런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작업 스타일이 굉장히 독특한데 어떤 부분에서 주로 영감을 얻는 편인가.
네일 아티스트를 하기 전 잠시 어부로 생활했다. 물을 머금은 바다 생물이 빛에 반짝이는 모습 같은 바다에서의 삶이 작업에도 그대로 드러나는 거지. 빛이 일렁이는 모습이나 투명한 오징어의 몸체 같은 것들 말이다. 주로 이런 자연적인 존재에 영감을 많이 받지만 때로는 에로틱한 무언가, 만화, 패션, 음악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주로 어떤 음악 혹은 만화를 즐겼나.
세일러문(Sailor Moon)이나 에반게리온(Neon Genesis Evangelion)을 즐겨봤고, 음악 같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힙합과 테크노를 즐겨 듣는다. 또한 일본의 오래된 음악들, 특히 쇼와 시대의 음악을 좋아한다.
유명 남성 아티스트가 네일 아트를 선보이는 사례나 근래 남성 네일 브랜드가 많아졌다고 해도 ‘네일 아트’는 아직까지 ‘여성’의 영역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이것이 처음 네일 아트를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주기도 했는지.
딱히 장애물이나 선입견이 있진 않았다. 다행히도 바이럴이 잘 돼서 내 작업물을 찾아주고 있다.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만드는 일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무언가 제작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패션쇼를 위한 피스를 만들기도 하고, 다른 아티스트들과 협업 작업도 많이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힙합 듀오 네네(NENE)와 함께했는데, 그들이 우주인 콘셉트로 활동 중이라 거기에 맞춰 작업물을 제작했다. 또한 아직 공개할 순 없지만,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아티스트를 위한 작업을 마쳤다.
지금까지 만든 작업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인지?
아직 없다. 지금까지의 내 작업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로 화보나 영상 등에 모델들이 착용하고 등장할 만한 피스를 제작하는데, 이렇게 본인이 직접 착용하고 모델이 된 기분이 어떤가.
신기하고 재밌다.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촬영 시 모델이 부끄러워하면 절대 끝나지 않는 걸 알기에 즐기면서 임했다.
조금 전 이야기했듯이 뉴욕으로 가기 전 어부로 일했다고 들었다. 어부로 일하면서네일 아티스트로 전향한 계기 그리고 어부였을 때의 삶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네일 아티스트로 산다는 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삶이었다. 당시에는 어부로서의 삶에만 충실했다. 정말 말 그대로 참치, 방어, 조개, 랍스터 같은 것들을 잡으며 생활했지. 아침에 일어나서 바다로 나가고, 일이 끝나면 밥도 먹고 술도 한 잔하면서. 물론 바다 수영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1년 반 정도를 어부로 살았다.
그전에는 튜브 같은 여러 제품을 판매하는 내 브랜드를 운영했었다. 3년 정도 유지했는데, 처음 1년은 잘 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카피 제품들이 많이 나와 비즈니스가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그냥 쉬고 싶더라. 조용한 곳을 찾던 차에, 마침 어부 인턴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됐다. 그래서 그냥 재밌겠다 싶어서 시작한 거지. ‘오시마(Oshima)’라는 아주 작은 섬이었다. 바다도, 별도 예쁜 곳이다.
그렇다면 어부 생활을 뒤로한 채 갑작스레 뉴욕에 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잠시 어부 일을 쉬고 있을 때 마침 연인이 뉴욕에 있어서 만나러 갔다. 그런데 팬데믹 자가 격리로 집에만 머물러야 했는데, 그때 너무 할 게 없어 네일 아티스트였던 당시 연인에게 네일아트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렇게 네일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거다. 이후 캐드와 3D 프린터 작업은 유튜브로 독학해 지금 같은 작업물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네일아트나 기타 작업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개인 작업인지,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인지에 따라 다르다. 내가 좋아서 하는 개인 작업의 경우 일단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다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특이한 작업을 하려고 한다.
한편 클라이언트 작업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얼마나 잘 맞는지’가 중요하다. 서로 스타일이 잘 맞아야 한다. 클라이언트가 정해주는 대로만 하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스타일과 적당하게 매칭이 되도록 하려고 한다.
미즈하라 키코(Kiko Mizuhara), 뷔요크(Bjork) 등 유명 아티스트가 당신의 작업물을 찾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스스로를 어떻게 알렸나.
사실 인스타그램이 주요했다. 작업물을 계속해서 업로드했더니 그게 어느 순간 바이럴이 됐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 줬다. 키코 같은 경우는 원래 알던 사이기도 했지만 입소문을 타고나니 유명 아티스트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네일을 시작하고 나서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2022년 ‘DAZED100 Generation 3.0’에 선정됐다. 소감을 들어보고 싶은데.
사실 큰 감흥은 없다. 오늘 촬영이 더 재밌는데? 하하.
만약 한국 아티스트를 위한 작업물을 제작하고 싶다면 누구를 위한 작품을 만들고 싶나. 떠오르는 이가 있다면 알려달라.
당연히 뉴진스(NEWJEANS). 뉴진스를 굉장히 좋아한다. 일반 아이돌과는 다른 느낌이다. 그런 새로움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좋다. 귀엽기도 하고. 이미 일본에서도 상당히 유명하다.
네일 아티스트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남긴다면?
네일아트는 정말 대단한 기술력을 요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냥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해줬으면 하는 거다. 그렇게 다 같이 힘을 내서 네일이라는 분야 자체가 좀 더 흥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올가을 뉴욕으로 다시 돌아간다. 당분간 뉴욕에서 지낼 계획이라 활동도 그곳에서 하게 될 것 같다. 일본보다는 미국이 좀 더 패션 분야가 다양하니까. 훨씬 재밌어 보이는 작업이 많다고 할까? 단순하지만 그게 내가 떠나는 이유다. 나는 재미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다.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