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잠수교에서 펼쳐진 루이 비통(Louis Vuitton)의 23 Pre-Fall과 경복궁의 밤을 화려하게 장식한 구찌(GUCCI)의 24 Cruise 컬렉션 쇼는 현재 전 세계 패션계가 서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증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16일 밤 펼쳐진 구찌의 런웨이는 과거 아시아 패션의 중심지였던 도쿄와 홍콩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만 봐야 했던 설움을 씻어내는 듯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멋들어진 런웨이의 배경이 된 근정전이 자리했지만, 한국 전통의 북소리로 런웨이를 가득 채운 쇼 음악의 공이 상당했을 터. 쇼가 시작되기 전부터 근정전에 울려 퍼진 “올드보이”의 왈츠는 고전적 배경과 어색한 듯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그 분위기를 한껏 돋우며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또한 전 세계로 생중계된 런웨이 도중에도 계속해서 “기생충”, “오징어게임”의 OST가 흐르며 가히 한국적인 컬렉션의 방점을 찍었다.
이 모든 결과물 뒤에는 그간 베일에 싸여 활동하던 한 사람, 프랑스 뮤지션 블라디미르 샬(Wladimir Schall)이 존재한다. 이번 구찌 컬렉션의 음악을 총괄한 그와 경복궁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경복궁 컬렉션 그리고 그의 음악 인생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하단에서 함께해 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프랑스에서 온 블라디미르 샬이라고 한다. 키는 180cm에 파란 눈을 가졌다. 음악, 버섯, DADA, 젠(Zen) 그리고 내 여자친구 올라(Ola)를 사랑한다.
지난 16일 경복궁에서 열린 구찌 크루즈 쇼의 음악 감독을 맡았다. 서울에서 처음 열린 구찌의 쇼였기에 사람들의 기대가 높았는데, 특히 한국적 소리를 담은 음악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구찌 그리고 경복궁을 위해 어떤 음악을 만들었는지 설명해 달라.
현재 여러 패션 브랜드의 음악 감독 및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보통은 컬렉션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기 위해 브랜드와 미리 의견을 나누는데, 이번 서울 구찌 크루즈 쇼에서는 한국 작곡가의 곡만 사용하기로 했다. “기생충”, “오징어게임”의 음악을 맡았던 정재일의 곡이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의 OST처럼 말이다. 거기에 내가 직접 작곡한 음악을 추가해 구찌 쇼의 사운드트랙을 완성했다.
행각(궁궐 좌우로 늘어선 줄행랑) 아래의 긴 복도를 런웨이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에 맞는 특별한 사운드 시스템을 설계하기도 했다. 서울의 규정이나 경복궁이라는 아름다운 공간의 제한적 요소를 고려하면서 최고의 사운드를 만들려고 했지.
쇼 시작 전에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OST가 흘렀고 쇼 중에는 “기생충”, “오징어게임”의 OST가 흘렀다. 해당 음악을 사용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패션쇼 음악에 관해 구찌의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팀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원했던 건 영화 같으면서도 활기찬 느낌이었는데, 한국의 전통적인 북소리가 바로 우리가 찾던 사운드더라. 이를 현악기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균형을 이루도록 구성했다. 또 우리는 너무 많은 요소가 들어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생충”의 “짜파구리(Zappaguri)”와 “오징어게임”의 “The Rope is Tied”, “Round VI” 그리고 내가 작곡한 “Heavy Mallets” 만으로 음악을 구현했다.
이번 구찌 쇼를 비롯해 여태껏 메종 마르지엘라(Masion Margiela), 블레스(BLESS), 자크뮈스(Jacquemus) 등 수많은 패션 하우스의 음악 작업을 도맡아왔다. 패션 레이블과의 작업은 언제부터 해온 건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지 이야기해 달라.
패션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운드 디자이너, 미셸 고베르(Michel Gaubert)의 밑에서 어시스턴트로 2011년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와 5년을 함께한 뒤 독립했다. 그 후로는 다행히도 많은 브랜드, 아티스트와 일사천리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컬렉션 작업이 있다면?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의 디제잉. 디올(Dior) 패션쇼의 애프터 파티였다.
자국 출신의 디제이 아가테 모긴(AGATHE MOUGIN)과도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걸로 아는데, 그와의 작업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는지.
사실 작업 자체는 줄곧 혼자 해 왔다. 다만 워낙 여기저기 협업으로 발을 뻗어 놓은 게 많았지. 아가테 모긴과의 작업도 그중 하나다. 아가테와는 꽤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며 함께 작업해 왔다. 곧 ‘Drive’라는 이름의 듀오로 EP가 나올 테니 기대해 달라.
해외 유수의 브랜드들과 작업한 이력에 비해 당신에 비해 알려진 바가 많이 없다. 이렇게 비밀스럽게 활동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지 스스로 어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셀카를 올리거나 불필요한 인터넷 정보에 잠식당하면서 말이다. 사실 실제 생활에서는 그렇게 비밀스러운 편이 아니다. 단지 ‘인퍼넷(Infernet)'[1] 같은 것에 거리를 두려고 할 뿐.
패션 레이블의 음악 작업 이외에도 작곡, 지휘, 디제잉 등 다방면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 작업을 통해 어떤 결과물을 보여주는지 간단히 소개해 달라.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듣고, 작곡하고, 연주하고, 지휘한다. 패션 브랜드와의 작업 외에도 개인 앨범 작업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사운드 스컬프처(sound sculpture)를 제작하기도 하고 영화나 공연을 위한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내가 울릴 수 있는 하나의 공기 입자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행복하다. 개인 작업의 상당 부분은 ‘침묵’에 초점을 맞춘다. 침묵으로 소통하는 법을 연구해 나가는 중이다.
각각 다른 음악적 페르소나가 있는 것도 같은데, 이렇게 넓은 범위의 음악을 다룰 수 있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
단지 내가 호기심이 많아서.
방금 이야기했듯 [42’37”]은 침묵을 적극 활용한 앨범이다. 또한 러시아 열차 3등 칸에서의 소리를 형상화한 [platzkart], 최근 발매한 “cosmos”까지, 개인 작업에 있어서는 다소 실험적인 음악 작업물을 내고 있다. 개인 작업에서 추구하는 지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사실 추구하는 바는 없다. 그냥 하는 거지.
그렇다면 디제이로서의 블라디미르 샬은 어떤 음악을 플레이하나.
테크노, 사일런스, 노이즈 그리로 때로는 녹음했던 걸 틀기도 한다. 사실 이벤트, 장소, 분위기 그리고 심지어는 내가 그날 뭘 먹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파리에서 가장 즐겨 찾는 클럽이 있다면? 파리 클럽 신(Scene)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있다면 함께 알려달라.
최근의 파리 클럽 신을 보면 주로 파리를 빠져나가 교외에서 파티를 여는 경향이 있다. 파리 시내에서는 클럽 파티를 즐길 수 있는 베뉴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교외의 멋진 공간을 찾는 거지. 나 또한 클럽이 아닌 멋진 베뉴에서 열리는 파티를 더 좋아한다.
최근에도 파티에 많이 다니고 있나, 가장 기억 남는 최근 파티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최근에는 많이 다니지 않았다. 최근 경험한 것 중에는 라스포소 서커스 컴퍼니(Rasposo Cirque)에서 서커스와 음악을 결합한 공연이 가장 멋졌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음악적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음악 혹은 다른 것들에 빠져 있었나. 에릭 사티를 특히 좋아하는 것도 같은데.
학교에서 조금 불량한 편이었는데, 당시에는 친구를 사귀는 데 집중했던 것 같다.
당신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뮤지션은 누구인가, 역시 에릭 사티(Erik Satie)인가?
에릭 사티, 존 케이지(John Cage) 그리고 헤이키 살로넨(Heikki Salonen).
그럼 요즘 가장 주목하고 있는 뮤지션 혹은 음악이 있다면?
쿠치나 포베라(Cucina Povera), 다니엘 버드(Daniel Bird) 그리고 노-극장(Nō theater)[2]의 전통 노래들.
독일어로 ‘Sound’를 ’Schall’이라 한다. ‘Wladimir Schall’은 음악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은 활동명인가 아니면 진짜 이름인가, 본래 이름이라면 운명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진짜 내 이름이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가장 앞서 다가올 작업 소식이 있다면 힌트를 줄 수 있을까.
많은 걸 준비하고 있다. 올해 음악 방면으로는 크게 3개의 프로젝트를 선보일 계획인데 우선 오는 6월 에라툼 뮤지컬(Erratum Musical) 레코드 레이블을 통해 음악시(Sound Poetry)를 발매한다. 그리고 9월에는 레이블 Dischi Autunno를 통해 테크노 작업물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한 러시아 아티스트 CoH와의 협업 앨범 역시 준비 중에 있다.
이외에도 버섯에 관한 책 집필을 하고 있기도 하고 또 다른 사운드 스컬프처와 여러 공연을 위한 음악 작곡에 집중하고 있다.
Editor | 장재혁
Photograpy | 한예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