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5주년을 맞은 ‘서울 재즈 페스티벌’.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관중들의 뜨거운 열기로 현장은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다채로운 무대를 선사한 가운데, 런던 출신 뮤지션 카말(Kamal.)은 감미로운 목소리와 솔직한 가사로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카말은 17세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감성으로 주목받은 베드룸 팝 아티스트다. 외로움을 노래한 “Homebody”가 코로나 격리 상황과 겹치면서 많은 리스너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었다. 국내에서는 “Blue”라는 노래가 인기를 끌었으며,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플레이리스트에 선곡되어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이렇듯 자신만의 감성으로 빠르게 성장해 나가고 있는 와중, VISLA는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Universal Music Korea)’의 도움으로 한국을 찾은 카말과 그의 음악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하는 그와 나눈 대화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영국 런던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카말이다. 7~8살 때부터 곡 작업을 해왔는데 처음으로 음악을 발매한 건 17살 때였다.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지금 이곳에 있는 것 같다.
서울은 어떤 도시 같은가? 첫인상이 궁금하다.
좋았다. 사람들도 친절하다. 여기서 만난 팬은 수줍음 없이 적극적으로 내 음악을 좋아한다고 표현해서 굉장히 새로웠다. 며칠 전에는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런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음식이라 좋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도해 본 음식 중에 하나가 닭껍질이었다. 꼬치를 판매하는 식당에서 먹어봤다.
바로 지난 주에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소감이 어떤지?
너무 좋았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험이었다. 관객들로부터 느껴지는 에너지도 남달랐고, 지금까지 한 공연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연이었다.
2019년 첫 싱글 “Two Missed Calls”로 활동을 시작하여 올해 [So Here You Are, Drowning]을 발매하기까지,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성장한 뮤지션으로 각광받았다. 또한 데뷔 시기가 17살이었던 점 역시 주목받았는데, 따라서 당신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이 궁금하다.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나?
처음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6살 때 부모님이 이웃에게 얻은 피아노를 접하면서였다. 그때는 클래식 음악으로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코드를 익히고 그 위에 멜로디와 가사를 얹는 방식으로 음악 작업을 시작했다. 그 후로는 뒤돌아보지 않고 내가 느끼는 메시지나 감정을 음악을 통해 전달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음악적인 영감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나?
아버지의 음악 취향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에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아이팟으로 아버지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었다. 어떻게 보면 두 분 모두에게 영향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주로 알앤비, 소울 음악을 많이 들었다. 에리카 바두(Erykah Badu),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음악도 많이 들었던 것 같고. 그 외에는 힙합 음악이나 초기 그라임 음악을 많이 들었다. 부모님이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들으셨다. 이를 통해서 나도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장르를 들어볼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그렇다면 성장한 지금 즐겨 듣는 뮤지션, 혹은 다른 예술가들에게 받는 영향이 있다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누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지는 말하기가 애매하다. 평소에 듣던 음악에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기에, 내가 듣는 모든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중에서 가사 측면으로는 특히 키튼 헨슨(Keaton Henson)이라는 아티스트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지금 내 플레이리스트를 보니까, 랩 음악을 많이 듣기도 하고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라던지 니나 시몬(Nina Simone)의 음악도 플레이리스트에 있다.
음악 외에는 문학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다. 이번에 발매한 믹스 테이프 [So Here You Are, Drowning] 제목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칼렙 아즈마 넬슨 (Caleb Azumah Nelson)의 책 ‘오픈 워터(Open Water)’에 적힌 글에서 인용했다. 런던에서 겪을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내용이 음악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책과 음악을 합쳐서 종합적으로 선보이는 계기가 되었다.
친구, 가족들과 경험하는 인생의 여러 가지 일들도 음악에 영향을 준다. 음악은 내게 표현의 수단이다. 평소에도 특별한 일을 하지 않을 때, 예를 들면 산책할 때도 영감을 얻는다.
최근 새 믹스테잎 [So Here You Are, Drowning]을 공개했다. 어떤 음반인지 직접 소개한다면?
얼터너티브 팝에 알앤비적인 요소들이 느껴지는 음반이다. 표현하는 방식이나 다루는 주제가 이전 음반보다 더 발전되었음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주제에 관해 말하자면, 사랑의 고점과 저점을 이야기한다. 한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긍정적인 마음으로 시작해서 그 마음이 클라이맥스를 찍고 다시 점점 바닥을 향해가는 과정을 다룬다. 이 믹스테잎을 들을 때 마치 한 사람과의 연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한 것처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제작했다.
우리는 이전 관계에서 아픔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다른 사람을 만나서 연애하고 깊은 감정들을 나눈다. 이러한 과정이 가끔은 데자뷔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그런 부분도 표현하고 싶었다.
믹스테잎 음악 중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트랙은?
두 곡이 있다. 첫 번째 곡은 “White Wine”이라는 곡인데 내 인생의 특정한 추억과도 연결된 곡이라 애착이 많이 간다. “Crowded Places”라는 곡은 사운드적 측면에서 몽환적인 느낌이 들어서 좋고, 베이스 코드도 굉장히 따뜻하게 느껴져서 좋다.
이번 믹스테잎 제작 후 가장 인상 깊었던 피드백이 있다면?
“Crowded Places”에 관한 흥미로운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해리’, 현실과 분리된 듯한 감정을 느끼는 증상을 솔직하게 쓴 곡이다. 이 증상은 불안으로 시작하는데, 해리 증상이 찾아오면 더 큰 불안을 느끼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그래서 견디기 힘들 수 있다.
해리 증상을 경험한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많은 피드백을 받아서 감사했다. 내 노래가 누군가에게 닿을 때마다, 누군가 내 노래에 감동했다고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너무 기쁘다.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다.
소설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는 “내가 직접 겪은 진실이 아니라면 소설로 쓰지 않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에 동의하는지? 당신의 노래 가사에 진실과 허구가 얼마나 섞여 있는지 궁금하다.
동의한다. 내 음악은 실제로 내가 경험한 일이나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내가 느끼고 있는 특정한 감정을 선택한 다음, 그 감정을 과장하거나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그 과정을 통해서 감정의 본질을 찾아낸 후에 음악을 만든다. 그러면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 역시 그 감정에 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두 가지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첫 번째는 바로 ‘솔직함(Honesty)’. 두 번째는 ‘취약함(Vulnerability)’, 즉 취약한 나 자신을 솔직하게 모두 드러낼 수 있는 상태. 취약함을 드러냈을 때야말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그런 것에 크게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외에는 사람들이 소통하거나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고 간단한 음악을 만들려 한다. 동시에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약간은 새로운 듯한 음악 말이다.
음악으로 솔직해지고,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드러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두려움은 없었는지?
글을 쓰고 노래를 작사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라 부담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곡을 발매하는 일은 언제나 조금 두렵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음악에서 너무 개인적인 일을 다루다 보니까. 하지만 음악을 발매한 후에 “너무 공감됐다”,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노래가 대신 해준 것 같다”라는 메시지들을 주기적으로 받았다. 결국에는 이 모든 일이 보람차고 긍정적인 현상이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생사여부, 장르와 관계없이 자신이 원하는 아티스트와 협업할 수 있다면, 누가 먼저 떠오르나.
런던의 신예 아티스트들과 주로 협업해 보고 싶다. 지금 협업을 생각하고 있는 아티스트로는 덱스터(Dexter)라든지 짐 레거시(Jim Legxacy)라는 아티스트가 있다. 좀 더 꿈을 키워보자면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도 있다. 그는 내 꿈의 아티스트이다. 과거에는 그라임 음악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브(Dave)라는 아티스트와도 작업을 했는데, 작업 과정이 재밌었기에 또 협업해보고 싶다. 지금은 어떤 아티스트에게 언제 협업 제안을 하는 게 좋을지 생각 중이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음악적인 목표는?
음악을 통해서 감정을 계속해서 표현하고, 나 자신도 끊임없이 성장하고 싶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활동하고 싶다. 목표에 너무 집착하고 싶지 않다. 가장 가까운 계획은 런던으로 돌아가서 헤드라이너 쇼를 한다. 그리고 협업 작업을 적극적으로 생각해 볼 예정이다. 과거에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할 기회가 많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려 한다. 그러다 또 시간이 지나면 다음 앨범 작업 준비를 하게 되겠지.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다시 와서 헤드라이너 쇼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선 런던에서 활동하면서 계속해서 작업할 계획이다.
Editor │신솔아, 황선웅
Photographer | 전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