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ar Benassila

제주도에서 처음 만나 별말도 필요 없이 친해지게 된 모로코 출신의 뮤지션 오마르. 그는 언제나 재치와 자유로움이 넘치는 인물이다. 제주에는 ‘콜렉티브’ 같은 커뮤니티가 없냐고 묻자 한국어로 “여기는 유럽이 아니고 한국이잖아. 일당 주고 용역 써야지”라는 일침을 날리면서도 항상 술과 파티를 찾는 사교적인 모습 또한 가지고 있다.

밴드 ‘수리수리 마하수리’부터 ‘오마르와 동방전력(Omar And The Eastern Power)’, ‘시드 르 무어(Seed Le Moor)’까지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구가해 온 오마르는 흡사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자유롭다. 최선을 다해 삶을 즐기고, 요리를 좋아하며 자신의 음악을 만들거나 연주할 때 사뭇 진지해지는 미워할 수 없는 친구다. 오마르와 며칠간 함께 지내며 다양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하단에서 그의 말솜씨를 감상해 보자.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뮤지션 오마르 베나실라(Omar Benassila)라고 한다. 모로코 카사블랑카 출신이며, 현재 제주도에 살고 있다.

한국에 언제부터 왜, 살게 됐냐는 질문은 지난 16년간 숱하게 들었을 테니 넘어가겠다. 그보다는 제주도에 관해 묻고 싶다. 음악을 하는 뮤지션의 입장으로 제주에 사는 것은 장단이 꽤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질문들을 건너뛰다니, 아주 좋다. 그간 나는 서울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꽤 힘든 부분도 많았다. 사람이 너무 많고 시야가 좁아 답답했다. 제주도는 ‘수리수리 마하수리’ 밴드 콘서트를 하러 몇 번 갔었는데, 퍽 마음에 들었다. 그러던 중, 홍대에 있던 독특한 친구들이 제주도로 많이 이사 가던 시기가 있었고 나도 내려갔다. 그때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충분히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그런 여유와 아름다운 자연은 음악 작업에 영감을 준다. 제주도는 여타 지방들과 다소 느낌이 다르다. 생각보다 많은 아티스트, 뮤지션들이 있어 꽤 흥미롭다. 공연할 만한 장소도 다양하다. 단점으로는, 그래도 섬이기에 커뮤니티가 매우 작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 년간 있다 보면 뮤지션도, 관객들도 계속 같은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이 점이 좀 아쉽다. 그래서 나는 서울 등지에 가서 공연하는 것을 즐긴다.

그렇다면 제주에 사는 것이 현재 조금 더 중점적으로 활동하는 솔로 뮤지션인 ‘Seed Le Moor’와 상관이 있는 건가. 아무래도 여러 명이 합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밴드 형태는 자주 모여야 하니 말이다.

꽤 맞는 말이다. 오마르와 동방전력 초창기에는 멤버들이 모두 제주에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멤버들 모두 서울에 살고 있으며, 제주에 사는 멤버는 나 혼자이다. 그렇기에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 솔로 프로젝트인 시드 르 무어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제주살이만의 영향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 나는 항상 변화를 추구하는 편이다. 환경이나 악기, 음악 스타일 같은 것 말이다. 영감을 받고 도전하고 성장하는 것을 즐긴다. 많은 악기들을 다루었지만 현재는 신시사이저, 샘플러 같은 장비들을 다루어 온전히 나만의 음악을 만드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가장 최근 발매한 싱글, ‘Dani lil’

제주에서 음악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며 지내는가.

두 마리의 강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날씨가 좋으면 아내와 바닷가도 가고 친구도 만난다. 또 고향인 모로코의 아이템들을 파는 ‘사하라 테이블‘도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는 좀 더 민요에 가까운 스타일의 음악들을 했다면 현재는 일렉트로닉 음악에 심취해 있는데 음악 스타일이 변한 계기가 있는가.

말했듯이, 나는 항상 다양한 스타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수리수리 마하수리를 할 때는 현재보다 더 집시, 오리엔탈, 아라비안 음악에 꽂혀있었다. 물론 모든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시간이 지나 내가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 아프로비트, 데저트 블루스에 집중하게 됐다. 내 안의 무언가가 바뀌고 있었다. 제주도로 이사한 즈음부터 그랬다. 이들은 나의 정체성에 부합한 음악이라고 느꼈고 그렇게 오마르와 동방전력을 하게 된 거지. 처음에는 전자기기로 아프로비트를 해 볼 생각으로 꽤 다양한 실험을 해 보았다. 장비들을 만져보니 시퀀서, 샘플러, 신시사이저들이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다. 기기가 이끌어주는 힘에 이끌려 아프로비트에 테크노 스타일을 얹어보았는데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사운드를 발전시킨 게 시드 르 무어다.

본인이 해 왔던 수리수리 마하수리부터 오마르와 동방전력, 시드 르 무어 모두를 관통하는 맥락 중 가장 큰 에너지로 즉흥성과 자유로움을 꼽고 싶다. 그리고 이 즉흥성은 녹음된 스튜디오 앨범보다 라이브에 진가를 발휘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즉흥성, 즉흥연주를 사랑한다. 즉흥성을 발휘하는 그 순간, 음악을 새롭게 창작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관객들과 함께하는 색다른 호흡이랄까. 그것은 관객들과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미리 만들었던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뮤지션도 많지만 나는 그렇게 공연하면 좀 지루해 하는 편이다. 라이브에 강한 뮤지션은 같은 곡이라도 매번 공연할 때마다 다른 느낌이 난다. 나는 그런 즉각적인 창의성과 소통이 마음에 든다. 굉장히 직접적이고 강렬한 방법이다.

한국도 그간 민요, 품바부터 그룹사운드까지 재치와 즉흥의 가치를 사랑해 왔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 지닌 발랄함보다는,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교육으로써 음악을 처음 배운다. 인생의 반 가까이 한국에서 보낸 입장으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그런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친구들이나 공연 때 만나는 관객들은 전부 오픈 마인드니까. 국악 같은 전통적인 음악들을 들었을 때도 즉흥과 재치가 많이 느껴진다. 하지만 글쎄, 질문한 것처럼 콘크리트 같은 가치들을 지닌 음악들과 사람들도 다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한국도 70년대에 굉장히 좋은 뮤지션들이 많았다. 하지만 군사정권이 이를 금지하고 음악들이 점점 딱딱해졌다. 이렇게 음악이 딱딱해진 시기에 사람들은 서양 클래식에 눈을 돌렸다. 한국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면 최고가 되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에 독일 음대에 한국인 유학생이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영향들이 작금의 K-Pop을 탄생시킨 것 같다. 나는 특정 장르를 싫어하지 않으니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지만 군사정권 시대에 생긴 문화적인 갭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내가 한국에 처음 온 2007년에는 내 기준으로 신선하고 멋진 뮤지션이 많지 않았다. 물론, 당시에 푹 빠졌던 윈디시티와 아이앤아이장단 같은 굴지의 밴드들도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멋진 뮤지션이 많아졌다. 10년 뒤면 또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데저트 블루스와 제주 정서의 절묘한 조화, ‘Htalen’

한국 관객이 다른 나라의 관객보다 수줍음이 많다고 느끼는가.

수줍음이 많다기보다는 문화가 다른 것 같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서 공연하면 시작하기도 전에 관객들이 춤을 추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관객들은 자신이 아는 음악이 나오면 굉장히 좋아하지만, 모르는 음악이 나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눈치다. 그래서 관객들이 잘 모를만한 음악을 틀 때는 난이도가 더 높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라이브 공연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덜 친숙한 편이기도 하고. 그래서 춤을 추고 즐기게 하기 위한 워밍업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디제잉을 포함한 음악을 하고 싶어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런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가.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귀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어떠한 음악들을 듣고 좋아하고 있다면 이미 당신 속에서 어떤 것들이 만들어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음악을 더 많이 듣는 것이다. 진짜 진짜 많이 들어야 한다. 수많은 장르와 수많은 뮤지션이 있다. 사실 나는 음악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채널과 필터라고 해야 할까. 우리 뇌에는 당신이 들어온 만큼 다양한 음악들이 있으며 그것들은 작은 조각들로 존재한다. 음악을 만드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각들을 맞추는 것이다. 많이 들을수록 조각들은 풍부해져 당신의 재료가 될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생각을 많이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악기를 연주해 보고 장비를 써 보아라. 꽤 재미있을 것이다. 멋져 보이니까 디제이가 되고 싶고, 학원에 가거나 레슨을 받으면서 비트 매칭부터 배우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이는 음악뿐 아닌 다른 예술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다른 나라에 가면 사회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당신이 속한 사회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당신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을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나. 다른 장소에서는 그런 부담이 훨씬 적다. 당신에게 어떤 판단을 할지 잘 모를 테니 어떤 면으로는 조금 더 진정한 자신이 되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은 서로 많은 영감을 주고받게 만들어 여행을 다녀와서도 많은 점이 바뀌게 된다. 심지어 나의 경우 고향인 모로코에 다녀오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그때마다 영감을 받아 음악을 많이 만든다.

여행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다. 잘 자고, 맛있는 것을 먹고, 술도 마시고, 사랑도 하고, 영화도 많이 보고.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 너무 당연한 소리 같지만, 동시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다양하고 아름답다. 이런 가창력에 비법이 있는지.

어렸을 때부터 정말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엄격한 부모님이 절대 허락하실 것 같지 않더라. 기타를 치고 싶어도 칠 수 없으니 노래를 불렀다. 공짜인 동시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악기 아닌가. 6, 7살 때가 기억난다. 아버지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고 있었고 차에서는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음악의 보컬과 완전히 똑같은 목소리와 높낮이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고 아버지께서는 내가 노래를 부를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셨기에 내가 그렇게 똑같이 따라 부르면 아버지는 모르실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정말 내가 노래를 부르는지 알지 못하셨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레게와 록 음악에 빠져있었고 동네에 기타로 즉흥 연주를 하는 선배들이 있었다. 찾아가 노래를 부르면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를 찾았다. 그렇게 자신감을 얻었다. 연습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나는 열심히 연습하는 사람이 아니라 즐겁고 내키면 부르는 사람인데, 계속 부른 것을 보니 나도 노래를 퍽 좋아하나 보다.

보컬은 물론 하모니카부터 기타, 퍼커션, 믹서, 샘플러, 시퀀서 등 수많은 악기를 다루는데 전부 독학으로 배운 것인가. 또 요즘에 많이 쓰는 악기와 앞으로 새롭게 다루고 싶은 악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 나는 새로운 악기들과 관계를 맺는 것을 좋아한다. 시퀀서 같은 장비들은 매뉴얼을 몇 번이고 정독한다. 사실 사람들은 매뉴얼 읽는 것을 귀찮아하는 편인데 나는 장비를 구하기 전에 미리 매뉴얼을 다운받아 보고 이 장비가 어떤 효과를 가지는지 생각해 본다.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는 통상적인 악기들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다. 같은 것을 연주해도 악기와 장비마다 결과물이 다르므로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다루게 되었다.

요즘에 많이 쓰는 장비는 ‘무그(Moog)’의 ‘마더-32(Mother-32)’이다. 직관적인 세미-모듈러로 베이스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종종 사용한다. 또 ‘틴에이지 엔지니어링(Teenage Engineering)’의 ‘OP-Z’도 애용한다. 이 역시 시퀀서인데 작곡할 때 정말 좋다. 앞으로 다루고 싶은 악기는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다. 롤랜드의 ‘주노(Juno)’와 무그의 ‘Dfam’을 구매하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장비를 줄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제주도와 서울에 오갈 때 장비가 너무 많아지면 힘들어지기에 무작정 늘리기보다는 나에게 효율적인 장비 세팅을 찾으려 한다.

요리에도 꽤 소질이 있다고 알고 있다. 요리와 음악은 상당히 흡사한 면이 있는 것 같은데.

맞다. 완전히 다른 장르임에도 나에게는 꽤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다양한 재료를 섞어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금 조금, 설탕 조금 넣듯이 킥을 조금, 스네어를 조금 넣는 거지. 하지만 사람들이 음악보다 요리를 더 좋아한다는 점이 슬프기도 하다. 모든 사람에게 음악보다 음식이 먼저니까. 오마르 음악도 식후경이다. 코로나 때 공연을 많이 못 해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는데, 사람들이 음식을 내 음악보다 더 좋아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음악을 더 좋아하기에 슬프게도 현재는 음악만 하고 있다. 나중에는 내 음악을 틀어놓고 음식을 요리하여 사람들에게 대접해 보고 싶다.

현재 소속된 레이블, ‘동양표준음향사’에 언제부터 함께했고 어떤 점이 좋은지 말해달라.

오마르와 동방전력의 첫 앨범 ‘Walking Miles’를 만들 때부터 함께했다. 오랜 친구이기도 하고, 우리를 이렇게 지지해줄 만한 레이블은 없지 않을까 싶다. 다른 레이블에 있어 본 적도 없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레이블 입장 상, 상업적인 음악에 대한 필요성을 느낄 텐데 동양표준음향사는 내가 하는 그대로를 지원해주는 용기 있는 레이블이다.

오마르와 동방전력의 '노가다 블루스'는 그가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오마르와 동방전력의 ‘노가다 블루스’는 그가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필자가 썼던 기사의 장르 ‘데저트 블루스’ 음악을 하고 있지 않나. 기사에 소개되어 있지 않은 독특하고 멋진 뮤지션을 추천해달라.

16살 때쯤, 모로코에서 티브이에서 나오고 있던 어떤 영화를 봤는데, 거기에 나온 OST를 듣고 눈물이 났다. 어떤 음악인지도 몰랐지만 내 가슴을 건드렸다.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 말리의 뮤지션 알리 파르카 투레(Ali Farka Touré)의 부고를 온라인에서 접했다. 알리 파르카 투레가 누군지 궁금해 찾아봤는데, 그의 음악을 듣던 중 어렸을 적 티브이 속 영화에서 들었던 음악의 주인공임을 알게 됐다. “Ai Du”라는 노래로, 라이 쿠더(Ry Cooder)와 함께 만든 노래다. 그 음악을 다시 듣게 되어서 정말 행복했고, 이후로 데저트 블루스에 푹 빠졌다. 또 모로코에는 ‘그나와 (Gnawa)’라는 음악이 있다. 매우 그루비하고 황홀하며 데저트 블루스, 아프로비트와 비슷한 구석이 다분하다. 그나와 아티스트로는 말렘 무하마드 기니아(Maalem Mahmoud Guinia)를 추천한다.

Ai Du

사하라 사막에도 자주 가보았나.

내가 살던 카사블랑카에서 사하라 사막까지는 꽤 멀기 때문에 많이 가보지는 못했다. 페스티벌과 여행으로 다녀왔는데, 너무 덥고 건조했다. 20살 때 모로코를 떠났기 때문에 더 많이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또 가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달라.

먼저, 현재 오마르와 동방전력의 맴버들이 좀 바뀌었기 때문에 밴드에 집중하고 싶다. 새로운 맴버들과 밸런스를 맞추고 솔로 프로젝트인 시드 르 무어 역시 새로운 음악들을 만들고 녹음하려 한다. 시드 르 무어는 전자 음악 뮤지션이지 DJ가 아닌데 기계들을 다루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DJ라고 생각한다. 이런 오해가 상관은 없지만 나를 조금 더 알려 한국의 많은 전자 음악 뮤지션들과 재미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 VISLA FM에서 연주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언젠가는 사막에서 콘서트도 열고.

고맙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항상 새롭고 이상한 서브컬처를 찾아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VISLA를 통해 종종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Live and Love, Brothers and Si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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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Photographer, Translation | 장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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