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ggy Office

에디터로 임하며 다양한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다 보면 가끔 단순한 질의응답을 떠나, 인간적인 경험담을 통해 질문자에게 진실한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전주에서 후로기 오피스(Froggy Office)를 운영하며, 쉴 틈 없이 다양한 기획과 행사, 제작을 맡아 진행하고 있는 백강현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집요하게 본인의 관심사를 반영한 셀렉트 숍 후로기 오피스는 방문 전부터 시간을 들여 직접 찾아가 보지 않고서는 호기심을 해소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는데. ‘부끄러우니까 오지 마세요’라는 숍의 독특한 캐치프라이즈가 외려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 셈인지도 모르겠다. 주인장의 서사와 현재까지의 시행착오, 다양한 관심사에 귀 기울이고 보니 이곳 후로기 오피스는 전주라는 지역성만으로 소비되기에는 아쉬운 보기 드문 장소. 그곳에서 나눈 대화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후로기 오피스의 주인장이자 기획자로 활동하는 백강현이다. 

매장 앞에 오래된 극장이 있더라. 전주 국제영화제가 열리면 이곳 후로기 오피스가 자리한 길이 메인 거리라고.

전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지역 극장이다. 전주 국제영화제 마니아 층이 있어서 영화제를 할 때면 여기가 곧 서울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이곳 전주가 고향인가? 숍을 운영하게 되기 전에는 어떤 시간들을 보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 후로기 오피스를 열기 전에는 몇몇 친구들과 ‘배기즘’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팝업이나 발칙한 행사나 팝업을 기획하면서 돌아다녔다. 

배기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전주를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인지. 

배기즘은 아시아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거나 전시를 하는 등 그냥 아무런 맥락 없이 상황에 맞는 재미있는 것을 이것저것 기획하는 단체였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사는 곳이 전주라 이곳에서의 이동이 편하다 보니 처음엔 전주 기반 활동가들의 공간에서 주로 활동했다. 시간이 좀 흐른 후에는 서울 왕래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팀원들은 어떻게 모이게 되었나. 

함께 바보 같은 일을 기획하고 놀기 좋아하는 중학교 친구랑 둘이서 시작했다. 후에 행사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다 보니 고정 멤버가 아닌 분들이 하나둘 모였다. 

실례지만 사진으로 보던 모습보다 훨씬 젊어 보여 놀랐다. 

실제로 젊다. 올해 24살이다.

편견일 수 있지만 보통은 관심직종의 직장생활에서 경험을 하고 자금을 모아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어린 나이에 독립적인 커뮤니티를 꾸리고 일로 확장하기까지, 또 곧바로 이어서 바로 숍을 연 게 독특하다고 느껴진다. 

내 공간을 가진다는 것이 좋았다. 나이가 어려도 성인이 되어 자립한 후에는 누구나 다 그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돈을 모으는 게 우선인 사람이 있고, 또 자기 자신만의 무언가를 쌓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현실과 조금씩 타협을 해가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둘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좀 극단적으로 내공을 쌓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행사하며 발품 팔아 한 달에 200만 원을 번다 치면 그 돈을 땡전 한 푼 안 남기고 본인에게 투자하는 식이다. 

전주에서 비슷한 활동을 하는 신(Scene)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꼭 돈을 벌기 위한 창작 활동이 아니더라도 상업과 동떨어진 독립적인 움직임이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애석하게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서울과 더 자주 왕래하게 되는 거 같기도. 아무래도 서울에 후로기 오피스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느껴서 서울로 옮길까도 잠깐 고민해 보긴 했는데, 나는 전주가 좋은 거 같다. 가끔 시끄러운 곳으로 출장도 가고 행사도 하면서 노는 거지, 그게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 조금 힘들지 않을까 해서.

서울과의 왕래는 어떻게 이뤄졌나. 우주만물에서 배포하던 진을 본 적이 있다. 

행사로 서울에 자주 가기도 하고, 재미있는 걸 만들면 우주만물, 안철순 등 좋아하는 장소에 배포할 수 있는지 연락드렸다. 그러다 보니 좋은 인연이 생겼다.

시행착오도 꽤 있었겠다. 금전적인 문제라던지. 

매 순간이 시행착오였다. 금전적인 문제 또한 언제나 따르고 있다. 물론 초기와 비교해 비교적 굴곡이 적어지긴 했지만, 사실 주된 고민은 금전적인 문제 보다도 나아갈 방향성이나 실력에 관한 것들이다. 더 잘하고 싶은데 내 손을 거친 게 무조건 다 내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니까.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들 만큼, 또 객관적으로도 정말 ‘멋있다 잘했다.’라고 느낄 수 있게 하려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생산적인 일에 초점을 맞추면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는데 반해, 완성도를 따졌을 때 자기만족에 기준을 두다 보면, 욕심이 끝도 없는 상황이 생기지 않나. 본인에 대한 기준이 높은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선 어떻게 타협하나. 

그래도 최대한 완벽에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게, 이미 사회에 나온 이상 무엇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정해진 데드라인이 있지 않나. 그래서 70% 만족하면 일을 진행하는 것 같다. 그 이상 시간만 지체하는 것은 지양하려고 한다. 그리고 뭐가 됐든 일단 내 마음에 드는 게 가장 먼저다. 살다 보니 이상하게 안 되는 건 또 없는 거 같다. 

장난스럽고 러프한 작업이 눈에 띈다. 감상자들이 그 의도대로 작업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만드는 시간을 떠나 완성도에 공을 들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작업 성향이 극단적인 편이다. 다시 말해 중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작업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데, 상황에 따라 다른 작업적인 액션을 취하는 거지. 장난스럽거나 바보처럼 만드는 걸 선호할 때도 있고, 극강의 깔끔함이나 미니멀한 요소가 반영된 세련된 느낌을 좋아하기도 한다. 후로기 오피스를 대할 때나, 배기즘을 대할 때가 전자였고, 아직 제대로 노출하진 않았지만 앞으로 새로 선보일 ‘닝겐 페이퍼’라는 독립출판사 같은 경우에는 객관적인 완성도에 집중하려고 한다. 어느 순간 뭐가 더 어울릴지 판단하고 그에 어울리는 결을 선택하는 편이다.

주인장의 애정을 받은 물건들이 가득 꾸려져 있는 거 같다. 물건을 발견할 때는 항상 발품 팔아서 찾아다니는 편이라고. 하나밖에 없는 물건들이다 보니 팔기 싫은 물건들도 있을 거 같다.

멋있고 웃기는 물건에 대한 기준이 나름대로 있는 편이라 까다롭게 가져온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항상 팔려고 가져오지만 막상 누가 사가려 하면 되게 팔기 싫다.

자랑하고 싶은 물건들을 몇 가지 소개해달라. 여느 편집숍처럼 팔지 않는 개인 소장품도 있는지.

동묘에서 산 개구리
– 그냥 웃기게 생겨서 샀다. 3000원인가 그랬다. 바가지 쓴 것 같은데 후회 안 한다. 이건 안 판다.

스모 티셔츠
– 사람 마음이 요망한 게, 이걸 매장 안쪽으로 옮긴 이후 사람들의 문의가 잦아졌다. 그러니까 나도 괜스레 아까워서 팔지 않기로 했다. 90년대 일본 제약회사에서 노벨티로 만든 티셔츠다.

생각해 보니 많이 없다. 예전과 다르게 자랑에 취미가 없나 보다.

숍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계기가 있을까? 

이것저것 재미있는 물건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이렇게 된 것 같다. 사실 원래는 옷을 정말 좋아했다. 패션을 좋아하면 패션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연관된 것들이 전부 따라오지 않나. 같은 맥락이다.

직접 와서 보니 이곳이 사무실과 같은 공간이기에 후로기 오피스가 된 것은 명확해 보인다. 후로기라고 지칭하게 된 데는 어떤 이유가 있나. 프로그 스케이트보드(Frog Skateboards)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레퍼런스가 있었는지.

레퍼런스보다는 내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해서 이름을 지었다. 내가 되게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인 편이라 청개구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곳이 또 사무실이지 않은가? 그래서 후로기 오피스 … 물론 브랜딩 과정에 있어서는 프로그 스케이트보드나 일본의 카에루(かえる) 운수사 같은 곳이 영감이 되기도 했다. 도움이 되긴 했다만, 그게 후로기의 시작은 아니었다.

패션을 좋아했다면, 따로 수집하는 물건이 있나? 

원래 옷을 수집했는데 지금은 반 포기한 상태다. 뭔가를 만드는 게 더 재밌으니까. 그래서 복장이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 일본 문화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여러 문화를 좇아 옷에 돈을 엄청 쓰던 시기도 있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 멋 내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싫더라. 멋을 안 내고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마라톤 선수처럼 단순하게 입고 싶어서 양말에 짧은 반바지, 흰 티 혹은 입고 자던 옷 그대로 외출하기도 한다.

이곳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다 보니 정적이고 목가적인 아시아 음악에 관심이 많은 거 같다. 아까 시각적으로 장난스러운 러프함과 정제된 것 둘 다를 좋아한다고 말한 것과 같이 음악적인 취향도 상반되는 것을 동시에 즐기는지.

아시아 기반의 지역적인 음악을 좋아하지만 편식하는 편은 아니다. 이곳에서도 가끔 웃긴 음악도 틀고 가요도 틀고 테크노도 틀고, 이것저것 튼다. 스포티파이에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고 있다.

김윤기 작가와는 어떤 과정으로 협업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윤기 형의 오랜 팬이었다. 어느 날 형이 공연할 때 찾아가서 만나게 되었는데, 넘겨짚는 말로 팬이라고 말하며 내가 만든 것을 하나 드렸던 것이 계기가 되어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지금은 만나서 늘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다. 나랑 되게 다르면서도 같다고 생각한다.

어떤 점이 다른가.

윤기 형과는 재미있고 웃긴 걸 좋아하는 코드가 비슷한데 뭔가를 만들거나 살아감에 있어서는 접근 방식이 약간 다르다. 윤기 형은 완벽한 로직을 만들지 않고 유동적이고 즉흥적인 면이 강한데 나는 좀 많이 계획적인 편이다. 그런 게 조금 다르다.

기획과 제작 과정을 본인이 대부분 스스로 진행하고 있다. 기획한 일을 다른 작업자에게 의뢰해 보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나.

같이 하자고 제안했으면 했지, 아직 의뢰해 본 적은 없는 거 같다.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면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살다 보니까 알음알음 어느 분야든 다 조금씩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참여해서 같이 했으면 같이 했지, 오로지 맡겨 본 경험은 없다. 기획자 겸 제작자로 자주 임하다 보니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선을 넘어가면 불안하다고 느낀다.

실무적인 프로세스에서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을 거 같다. 상품 하나를 제작하더라도 양질의 물건을 만들기까지 필요한 실무적인 정보의 양이 부족하다던지. 

모든 것이 다 처음이었지만 해야만 됐고, 반복하다 보니 또 되더라. 필드에서 활동 한 지가 한 3년 반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지금쯤 되니까 얼레벌레 다 할 줄 알게 되었다. 

미안해서 뭔가를 가르쳐달라고 쉽게 말하는 성격도 못된다. 감사하게도 조금씩 도와주면 그걸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이 보고 배우면서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긴 듯하다. 특히 배기즘을 같이 했던 친구가 많이 도와줬는데, 서비스 디자인을 전공해서 그런지 배울 게 많다. 계획 잘 세우는 법이나 서비스 디자인 관점에서 운영을 대하는 태도, 또 학문적으로 권장하는 것 등 여러 방면에서 전수받고 있다. 그렇게 스스로 부딪히며 쌓은 경험과 주변인들의 도움을 통해 알게 된 정보들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지.

제작이나 운영에서 영감을 받은 콘텐츠나 숍이 있다면. 

사실 어느 하나를 두고 “나 정말 여기처럼 할래!” 했던 곳은 없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이 조금씩 나의 것이 되어 맞춰진 듯하다. 그래서 비슷한 곳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굳이 생각해 본다면 대부분 일본을 오가며 봤던 재미있는 가게들? 그리고 돈 진짜 안될 것 같은데 고집 있게 자신의 신념을 파는 가게들. 대체 어떻게 먹고살지 싶은데 자기 걸 뚝심 있게 하면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가게들이 좋아보여서 나도 언젠간 그런 가게를 하나 하고 싶었다.

요즘 관심 가는 국내 숍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당장 생각나는 곳은 진을 웃기게 잘 만드는 사람이 운영하는 드래곤힐 프린트숍. 고집있는 공간이 좋더라.

‘부끄러우니 오지 마세요.’, ‘훔친 물건’ 등의 문구를 캐치프레이즈처럼 사용하는 것이 독특하던데. 실제로 접객 방식은 어떠한가?

그렇다고 정말 오지 말라는 것은 아니고… 오지 말라 그러면 더 오고 싶지 않나. 그런 부분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이곳을 원하는 분들이 와줬으면 좋겠다. “전주에 편집숍이 생겼대” 혹은 “전주에 빈티지숍이 하나 생겼대” 하고 오는 것보다는 진짜 후로기를 재밌어하실 분들이 많이 와주셨으면 한다.

공간에서 간단한 다과와 차를 내어주기도 하더라.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

오픈한 지 곧 1년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3-4개월 주기로 꼭 한 번씩 오셔서 어떤 게 들어왔는지 싹 훑어보시고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다. 팬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고정적으로 관심 가져 주시는 분들이 한 대여섯 명? 전라도에 너무 뭐가 없으니 전주에서 꾸준히 활동해 줘서 고맙다고 말씀해 주신다. 반면 전주에도 이런 숍과 행사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극도로 어색해하는 분들도 계신다. 난생처음 보는 세상을 접한 것처럼 반응하는 분도 엄청 많고, 문을 열고 들어와서 10초 들여다본 후 나가는 분도 있다. 자기가 생각했던 빈티지숍 콘셉트와 달라서일 수도 있겠다.

얼마 전 태국에 다녀왔다. 행사도 개최한 것으로 아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원래 방콕에서 행사할 생각은 아니었고 단순히 놀러 갈 계획이었는데, 내가 일중독자라 그런지 그냥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또 태국이 한국과의 문화적인 교류가 생각보다 잘 이루어져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듣곤 했어서 간단한 행사라도 하나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sns 파도타기를 통해 알아봤는데 우리랑 제일 잘 맞을 것 같은 공간을 찾아서 연락했다. 사실 오만일 수도 있지만 우리랑 잘 맞을 것 같은 공간이면 분명히 우리를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팝업 하는 날 우리는 한국에서 제작한 독립출판물이나 후로기에서 판매하는 웃기는 물건들을 소개했다.

그렇게 진행한 행사에 대한 후기도 조금 전해달라.

정말 더운 나라다 보니 사람들이 밤에만 돌아다니더라. 몰(Mal)이라는 곳에서 2시부터 10시까지 행사를 열었는데, 오픈할 때는 사람이 너무 안 와서 뭐 그런대로 경험이라 생각해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한 5, 6시 넘어가니 사람이 정말 많이 왔다. 방콕이 세계적인 휴양지다 보니 태국인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까지 있었는데, 한국에서 행사했을 때보다 훨씬 많았다. 오신 분들이 호기롭게 그리고 호기심 있게 뭔가를 고르는데, 그 열정이 보여서 너무 재미있더라.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덕택인지 천천히 대화하다 보니 말 꽤 잘 통하고.

아시아에서 그런 움직임이 부흥하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직접 그 열기를 전해 듣는 것은 처음이라 놀랍다. 많은 사람들이 오기 적합한 위치여서 우연히 들른 사람들이었던 걸까? 아니면 마치 후로기에 오는 방문객들처럼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었던 걸까.

3층인 데다 골목에 위치해 있어서, 시내라 우연히 들렸다기보단 그곳을 방문하기 위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몰 스튜디오가 그런 부분에서 후로기 오피스와 비슷한 것 같다. 다만, 몰 스튜디오는 멤버가 많다. 타투나 음악 혹은 ‘타이진(Tye Zine)’이라는 진(Zine)을 만드는 사람 등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구성원이 10명 넘게 모여 하나의 크루를 형성했다. 한 공간에 여럿이 모여 보여주는 다양한 시도가 돋보인다.

다방면의 관심사 중에서 지금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분야가 있는지.

지금은 음악. 한 번도 본격적이었던 적이 없어서. 아시아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데, 특히 서구권에서 해석된 아시아 음악이 좋더라. 그리고 아프리카계 음악도 정말 좋아한다. 요즘은 소수민족 음악을 관심 있게 듣고 있다. 조금 더 공부해 보고 인연이 닿는다면, 킹크공(Kinkgong)이나 오카이(Oki) 등 소수민족 음악을 소개하는 사람들과 접점을 둬서, 전주에서 소수민족 음악을 소개할 수 있는 행사를 열어보고 싶다.

일과 연결되지 않은 취미가 있다면. 

모두 연관돼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재미로 시작해도 결국에는 기획이나 행사 같은 결과물로 나온다. 일과 취미의 경계가 모호한 편이다.

새롭게 배우고 싶은 분야가 있나. 

오히려 언더그라운드 문화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공공 디자인이나 서비스 디자인의 체계적인 면을 배우고 싶다.

여름휴가 계획은.

태국은 얼마 전에 다녀왔고, 8월에 일본에서 행사할 예정이다. 고베나 교토 쪽을 생각하고 있는데, 늘 그런 행사를 즐기기는 하지만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게 출장인 건지 휴가인지 모호하긴 하다. 하하 

올해 목표가 있다면.

수제 막걸리 만들기?

여태까지의 대화로 뚜렷이 알 수 있는 것은 이곳이 생계를 위해 운영하는 상업적 공간이 아니라는 점인 거 같다. 후로기 오피스가 앞으로 지향하는 바를 이야기하고 인터뷰를 마치면 좋을 것 같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매 순간을 재밌게 사는 것. 일단 재미가 없으면 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처럼 고집스럽게 재미를 추구하고 일을 추진하는 사람들과 협업을 하며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앞으로 얌전하면서도 발칙하게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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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한지은
Photographer│한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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