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대한민국 6대 광역시 중 하나, 광주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글을 시작하고 싶다. 과연 ‘광주광역시’는 어떤 도시일까? 전라남도를 대표하는 인구 100만 이상의 광역시, 비엔날레를 비롯한 예술 플랫폼에 특화된 도시 등등. 광주를 떠올리는 여러 가지 토픽이 있지만, 정말 광주는 어떤 곳일까 곰곰이 떠올려 보면, 무언가 잡히는 실체가 없을 것이다.

이런 광주에서 전자 음악 커뮤니티로 시작해 어느덧 베뉴를 운영하기에 이른 동구 구시청 클럽 터줏대감 ‘심해’는 필자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금요일에 힙합, 토요일에 테크노를 주로 운영하는 그들은 수도권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언더그라운드 클럽 문화가 다양하게 뻗어 나가지 못한 위치에 있는 광주에 터를 잡았음에도, 묵묵히 그들의 뜻을 이어온 결과 전라도의 클럽 문화를 대표하는 베뉴로 자리 잡았다.

한 지역을 꾸준히 지키며 베뉴를 운영해 온 심해. 그들의 터전인 광주와, ‘심해’에 관한 모든 것, 그리고 광주 여행에서 빠지면 섭섭할 ‘맛집’ 리스트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광주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문화 예술의 기반을 다져왔을까? 또, 서울과 수도권과는 다른 광주만의 파티 문화가 있을까? 아래의 대화는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담았다.


간략한 소개 부탁한다.

다다: 심해의 김다혜다. 주로 기획을 맡는다.

까까: 나는 가도균이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4년 무대 감독 경력을 발판 삼아 기획을 하고 있다. 심해에서는 전반적인 기획을 맡는 중.

머로: 이대로라고 한다. 머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고, 심해에서는 전반적인 관리와 바 운영을 전담한다.

최근 여름 휴가를 마치고 다시 영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름 휴가는 어땠는지.

다다: 여름 휴가는 나에게 삶의 이유였다. 공간을 운영한다는 말은 사람들이 놀 때 일을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심해에서 노는 것도 좋지만 1년 내내 심해에 있으니 조금은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몇 주 전부터 계획해서 여행했다.

머로: 특별한 일이나 이슈가 있으면 한 번 쉬어가고 있었는데 확실히 좋았다. 다른 공간이나 페스티벌에 갈 수 있어서.

페스티벌 중 영감을 얻은 경험이라면.

다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부산 록 페스티벌’에 갔던 기억이 난다. 바닷가에서 슬램(Slam)을 하거나 물을 맞으면서 떼창을 하는 문화에 영향을 받아 한번쯤 록 페스티벌에 가고 싶었고, 향후에는 후지 록 페스티벌을 비롯한 해외 록 페스티벌에도 가보고 싶다.

까까: 고2 때 갔던 ‘지산 록 페스티벌’. 내 고향은 경기도 이천이라 부모님이 손을 써주신 덕분에 몰래 들어갔는데 부끄럽지만 그 날이 바로 기획의 꿈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가장 영감이 되었던 건 오아시스(Oasis)와 라디오헤드(Radiohead). 당시엔 몰랐지만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고 그런 멋진 것들을 기획하고 싶어서 지산을 꼽았다.

머로: 2019년에 ‘후지 록 페스티벌’에 갔다 왔다. 그때는 부산에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가 올 줄 몰랐다. 후지 록은 국내 페스티벌보다 더 규모가 커서 놀랐다. 16개 가량의 스테이지 그리고 많은 디제이들. 즐겁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지리적으로 특별한 것들을 많이 느꼈다. 그것들이 운영에 영감을 주었고.

심해의 프로그램에 관한 질문으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 주말 영업을 투 트랙 세션으로 나누어 금요일에는 힙합, 토요일에는 테크노를 비롯한 댄스 음악 장르로 운영 중이다. 이 두 장르에 기반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는데, 그것들이 지향하는 장르 스펙트럼에 관한 기획자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까까: 금요일에는 힙합, 토요일은 테크노로 나눈 건 작년 3월이었다. 그전에는 틀고 싶은 음악을 틀었는데 사람들이 잘 놀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운영을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투 트랙으로 나누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왔다. 테크노뿐만 아니라 하드 스타일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를 틀며 섭외한 아티스트에 따라 장르 색을 지향한다. 하지만 EDM에 기반한 파티 튠은 지양하려 하는 편.

다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심해의 레지던트 디제이가 다양한 장르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자연스레 넓은 스펙트럼을 펼칠 수 있었고, 그들의 취향을 선보이기엔 베뉴의 TPO를 고려해야 하며 그 날의 분위기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테크노와 힙합 장르를 가져가되 우리의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서울 외 지역에서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다는 말은 일종의 모험이지 않은가.

까까: 오히려 그것이 더 영향력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지방에도 ‘디 에어하우스’에 가는 사람 많고, 전라도를 비롯한 서울 외 지역에 사는 사람들 또한 테크노 클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개인 블로그도 운영 중인데 검색 경로를 보면 ‘광주 테크노 클럽’이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다다: 지방에 살고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다. 전국 어디든 사람들의 고유한 취향은 있다. 그중에는 우리와도 비슷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 또한 있다.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로 인한 즐거움으로 많이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이다. 물론 만드는 일 자체가 모험이긴 하지만 항상 뿌듯하다.

까까: 우리도 이런 일을 해 온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페이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부터 주말 영업으로 인한 재정적인 어려움 같은 것. 그래도 요즘엔 많이 찾아주시고 입장료도 받고 있기에 상당 부분 충당되었다.

상기한 베뉴 운영 외에도, 디제잉 워크숍을 통해 초보 디제이들을 길러내는 프로그램 또한 운영 중이다. 디제잉에 관심이 있지만, 거리의 여건상 워크숍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심해가 운영하는 디제잉 워크숍에 관해 들려줄 수 있을까?

다다: 우리는 주로 관공서와 합작해서 진행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직업이 있기에 따로 시간을 내 레슨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관공서로부터 요청이 오면 그룹으로 모으고 함께 협력해서 만든다. 워크숍은 처음에 진행 동기만 보고 뽑기도 했고, 유명한 아티스트를 알고 있다는 기준으로도 뽑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심해와 색이 맞는 사람을 뽑는 것. 그것을 알아가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가르치는 수강생은 우리와 맞는 취향이어야 한다. 그래야 수강생도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수강생이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해 무대 욕심이 생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해라는 공간과 커뮤니티가 있으니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또, 어느 베뉴를 가보았는지,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그것을 중점으로 인원을 모집 중이다.

까까: 좀 더 설명하자면, 워크숍을 진행할 때 목표는 아웃풋(Output)이다.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에 믹스셋을 업로드한다든지 데뷔 무대를 만든다든지 하는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거기까지 함께할 수 있는 친구들을 주로 뽑았다.

지역의 디제이들을 발굴하며 그들의 무대 경험을 넓히는 프로그램은 광주 안에서의 디제잉 문화를 만드는 의미처럼 들린다.

머로: 워크숍의 의의는 우리가 가르치고 만났던 친구들이 조금 더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가지며 디제잉 문화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디제이가 로컬에 등장하면서 신(Scene)이 커지는 건 확실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결과물이 수치의 지표로 드러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디제잉 문화를 개방적인 태도로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신을 넓히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아직 횟수가 많이 없기 때문에 솔리드한 지표로 나타나기엔 어려움이 있지만.

그리고 광주의 주변에 큰 도시가 없다. 지리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광주는 섬과 같아서, 다른 기본적인 예술 문화를 접할 기회는 있지만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아 클럽 문화를 오해하는 부분 또한 있다. 그 문제를 디제잉 스쿨이 해결해 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다.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알려 달라.

머로: 저번 기수의 한 사람이 생각난다. 그 사람이 아비치(Avicii)와 제드(Zedd) 같은 페스티벌 튠을 좋아했다. 한때 그들이 전성기를 맞은 시즌이 있지 않나. 그 시절의 음악을 듣던 추억이 있는 분이었다. 도예가였는데, 도예를 하면서 항상 작업할 때 지루하지 않은 음악을 찾아 들으셨다. 무대에도 세웠는데, 열정이 있는 분이다 보니 튠에 맞는 춤까지 춰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화제를 돌려 심해가 자리한 지역인 ‘광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대형 전시 플랫폼인 광주 비엔날레와 더불어, 동구 시내의 예술 분야 프로그래밍 등 예체능을 전망하는 이에게 광주는 서울에 못지않은 매력을 계속해서 어필해왔다. 오랜 시간 광주에 거주하면서 느낀 이 도시에 관한 견해가 있다면.

다다: 확실히 예술 방면에서 자원도 풍부하고 무엇보다 광주라는 도시 자체가 노력을 많이 기울인다. 그렇지만 광주 사람은 그것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비엔날레와 아시아문화전당도 있고. 민중과 평화, 5.18 민주화 운동 같은 견해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 모든 게 광주의 색일 수 있다. 그 관심을 많이 활용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생각보다 젊은 사람은 많이 개방적이다. 잘 받아들이고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물론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결여를 통해 생기는 답답함이 오히려 많은 것을 시도해보고자 하는 활동성으로 발휘되고 있다. 광주만의 것을 찾고 활용하려 해야지, 불만이나 불평은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다. 미디어아트와 5.18 이야기도 있고, 지역성도 강하고. 목표를 시도하기 좋은 도시다.

블루오션이라는 말인가.

다다: 맞다. 조금 어음이지만, 경쟁을 뚫고 하는 것보단 내 것을 펼쳐 보이기에는 느리고 안락하다.

머로: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속도가 더디지만 옛날에 비하면 나아졌다. 나는 이 도시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이다. 광주에 붙는 ‘문화예술도시’ 타이틀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오늘의 광주는 노력을 많이 한다. 그렇기에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에 관해서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좀 더 노력하면 더 나은 도시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 그리고 나 또한 노력하면 이곳에서 만들어 갈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광주의 고유한 문화적 기반에 관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

다다: 광주 대인시장에서 첫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프로젝트가 지역성과 문화 예술의 포부가 잘 맞았다. 그런 경험이 광주에서 계속 무언가를 하게 만든다. 광주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쿤스트할레’라는 행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것이 지역 문화를 알게 되었던 경험으로 남았다. 그 때가 12년 전. 12년 전부터 우리 세대의 움직임이 처음 열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까까: 처음엔 나도 수도권에 살던 사람이지만 우연한 계기로 내려와 정착한 경우다. 학교에서 광주를 배울 때처럼 ‘진보적인 도시, 불의를 참지 못하는 도시’, 뭐 그런 생각으로 왔는데 막상 살아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진보적이긴 하지만 보수적인 양면이 있다는 것. 특히 광주가 투자하는 분야를 제외하면 소외되어 있다. ‘전통, 김치, 미디어아트’ 같은 분야들. 하지만 이외의 것들에는 대개 관심 밖이다. 예를 들면 라이브 음악과 음악 분야의 예술가들. 대신에 광주는 미술 방면에 특화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다다: 그 이유도 있다. 그 시절 시각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대자보를 많이 그렸다. 그들이 운동권에서 활동했을 시절 피를 나누던 것들이 민중 예술로 남아서 많은 영향력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시각 예술 분야는 전망이 좋다. 광주문화재단이 미술 방면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예술에 강점이 있는 한편 광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식의 도시다. 고유한 노포와 더불어 한식에 강점이 있는 전라남도 내에서도 광주 음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광주를 여행하며 심해를 찾는 독자들에게 특히 추천하는 맛집이나 뒤풀이 장소가 있다면.

까까: 심해가 자리한 동구 구시청 방면에 있는 곳들을 소개하자면 ‘소문난쭈꾸미’라는 곳이 있다. 제철 음식과 해산물을 먹을 수 있다. 두 번째는 ‘한마음포차’. 문 열자마자 취하는 곳이라는 소문이 있다. 하하. 그만큼 분위기도 좋고 술도 잘 들어가서. 엄청 유명한 곳이다. 이렇게 두 개 추천!

다다: 나는 ‘백수간재미’라고, 간재미무침 잘하는 곳 있는데, 광주에 오는 손님 있으면 그곳에 데려간다. 또 하나는 대인동의 ‘금성식당’. 24시 영업인데, 거기 김치전골과 오삼불고기가 미쳤다.

머로: 송정역 앞의 ‘염명국밥’. 거기서 드시고 든든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시길.
그리고 ‘맛삼’이라는 곳이 있다. 요즘 구시청 상권이 죽으면서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 많이 없어졌는데. 이곳은 그중에서도 발군의 음식을 자랑하는 곳이다. 새벽 3시 이후에도 사람 많고. 발로 걸어갈 수 있는 곳이라는 장점도 있다.

까까: 게스트 디제이 섭외하면 무조건 간다. 시시(Seesea) 누나가 반찬 먹고 여기 살고 싶다 그랬다.

머로: 어딜 가더라도 반찬이 평균 이상이다. 간간한 맛이 있다.

향후 심해가 지향하는 방향성이나 광주를 대표하는 베뉴로서 나아가고 싶은 목표를 알려줄 수 있을까.

다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지향하며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나아가려 한다. 지금은 심해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다른 형태의 공간을 준비할 수도 있고, 행사나 기획으로 만나볼 수도 있다. 항상 영원한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유연한 방향과 함께 디제잉에 기반한 전자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며 로컬에 멈추지 않고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교류 또한 하고 싶다.

까까: “블루오션도 아니고 레드오션이 아닌 딥오션이다”라는 말을 종종 했다. 단어에 매진하지 않고 그저 하고 싶은 대로 계속해서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런 얘기도 했다. 실버타운에서 심해라는 기획으로 놀기.

머로: 요양원 차리자는 말도 했지. 중요한 것은 사람이니까.

다다: 그렇다. 공간을 운영하며 쌓인 경험이 내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심해를 찾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생각이 가장 크다. 광주 주민들, 해외 친구들 또한 놀 데가 없어서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들에게 영향을 주며 또 같이 놀고. 경험 속에 존재하며 영감을 받고 성장하며 재미를 느끼는 것. 이것이 심해의 엔지니어인 나에게 가장 큰 가치다.

까까: 이 얘기는 꼭 해야 할 것 같다. 2020년 2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 대만에 갔다 왔다. 대만에 커뮤니티가 있는데, 그 이름이란 타이페이 커뮤니티 라디오(Taipei Community Radio)다. 그곳에서 호조(HOJO)를 만났다. 심해가 공간이 없던 시절, 베뉴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했는데 도움이 되는 말을 많이 해주었다. 그 계기로 돌아와 이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또, 18년도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잔디밭에서 페스티벌을 만든 경험이 있다. ‘딥오션댄스뮤직페스티벌‘ 이라고. 그 시절 만났던 친구는 고등학생이었다가 성인이 돼서 파티 플라이어 디자인을 맡고 있다. 그 친구에게는 페스티벌이 영감이었던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야외 페스티벌. 기획자인 나에게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그 페스티벌을 한 번 더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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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성우
Photographer 정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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