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티커 꾸미기가 퍽 재밌더라. 무엇을 꾸몄느냐 하면 동해반점 쿠폰을 휴대폰 뒤에, 문구점에서 산 야광 행성을 노트북 위에, 그리고 요란법석한 온갖 스티커를 집 인터폰 수화기에 가득 붙였다. 세 전자기기에 다닥다닥 붙은 스티커의 공통분모가 있다면, 초등학생 시절 쇠 필통에나 붙였을 법한 질감의 반짝이 스티커가 붙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해변의 모래가 그렇듯, 자잘하게 반짝이는 질감이 꼭 어릴 적 가까이 보던 브라운관 TV 화면 같기도 하다.
사실 필자의 생활 용품을 빼곡히 채운 스티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아티스트 이부키 사카이(Ibuki Sakai)의 작업물이 은근한 존재감을 발한다는 사실이다. 도쿄를 기반으로 방콕과 뉴욕을 오가며 스티커와 콜라주, 진 등을 선보여 온 그녀의 작품에는 어릴 적부터 품어온 노스탤지어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지금껏 진득이 수집해 온 물건을 바탕으로 때로는 자기 자신까지 오려내어 창작물의 재료로 활용하는 이부키는 언제나 진심을 담은 결과물을 추구한다.
종로의 옛 정취와 사뭇 대비되는 헤어스타일, 그렇지만 구수한 정취만은 꼭 닮은 빈티지웨어를 입고 등장한 그녀와 종로 구석구석을 돌며 대화를 나눴다. 함께 음미해 보자.
한국엔 어쩐 일로 방문했나.
코로나가 끝나면 가장 빨리 방문하고 싶었던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었다. 여러 팝업 스토어를 열 기회가 있기도 하고. 우선 9월에는 CGPW에 셀러로 참여했다. 그 이후에는 홍대에 위치한 ‘미래의 미래’에서 데코 이벤트를, 그리고 광주 페스티벌 ‘Let’s FLOPPY’에도 와이낫어스(Wht Not Us)와 참여했다. 다시 한국에 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지만, 만반의 준비로 도전할 수 있었지. 바쁘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CGPW에 셀러로 참가했을 당시, 그리고 플로피 페스티벌에서도 당신을 찾은 한국 팬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소감이 어떤가.
예상보다 많은 한국 팬이 CGPW를 찾아와서 정말 놀랐다. 서울은 3년 반만의 방문인데, 그간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나를 지켜본 분을 포함해 다양한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큰 자극이 됐다. 정성스러운 선물과 편지도 받았고, 따뜻한 추억이 가득한 이벤트였다. 초대해 준 와이낫어스 두 분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플로피 페스티벌 역시 여러 팀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어 정말 즐거웠다. 광주를 더 사랑하게 된 것 같고 내년에도 꼭 참가하고 싶다.
최근엔 어떤 일을 하며 지내고 있는지.
집에서 기분 내키는 대로 뭔가를 만들고 있다. 좋아하는 만화를 보기도 하는데 요즘은 “베르세르크”를 읽고 또 읽는 중이다. 종종 게임을 하거나 밖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제일 많다. 항상 비슷한 패턴.
소개하고 싶은 최근 작업이 있다고 했는데, 어떤 것들인가.
내년부터 내가 좋아하던 브랜드의 디자인을 맡게 됐다. 최근에는 CGPW과 FLOPPY 1.0(Let’s FLOPPY) 행사로 한국에 2번 방문해 내 스티커 아트워크를 선보이고 데코레이션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만들어 온 사진 콜라주, 진, 인형 집, 목걸이 등을 보면 손재주가 상당하다. 무언가를 재조합하는 일에 상당히 재주가 있는 것 같은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 그리고 DIY 정신을 사랑하나?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을 사랑했다.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와 그대로 직결되어 있어 어쩔 수 없이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미술을 배운 적 있냐고 사람들이 종종 내게 묻곤 하는데 사실 누군가에게 배운 적도 없고, 식구가 많은 탓에 금전적 문제로 대학교에 가지도 못했다. 뭐,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 좀 더 자유롭게 여러 작업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했지만. 가족도 가끔 내 활동에 놀라기도 하는데, 이전부터 내 창작 의욕을 알고 있던 터라 납득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아날로그에 창의력을 더한 세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조금씩 색다른 시도로 표현의 폭을 넓히고 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것, 좋다고 생각하는 것,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작업물을 보고 친구들과 팬들이 ‘이부키짱스럽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거겠지.
우주만물에서 당신의 스티커를 구매한 기억이 있다. 대표 작업물 중 하나인 스티커는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 그 시작이 궁금하다. 추억을 자극하는 반짝이 스티커의 질감을 택한 계기도 이야기해 달라.
내 반짝이 스티커를 보고 여러 사람들이 “예전에 수집했던 추억이 그립다”, “우리 언니가 예전에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라는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나는 원래 수집한 스티커가 아까워 잘 쓰지 못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지금도 초등학생 때부터 수집한 것들을 엄청나게 가지고 있지.
고등학생 때부터는 여러 종이 스티커와 내 대표작 중 하나인 ‘TEPRA’ 등 다채로운 스티커를 만들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반짝이 스티커를 보고, ‘이것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다. 당시 여기저기 판매처에 발품을 팔아가며 전화를 돌렸고, 뉴질랜드의 한 스티커 업체를 찾아 문의해봤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꼭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디깅 끝에 태국의 한 공장을 찾게 됐다. 그 역시 한 명의 아티스트가 만들기에는 비용도, 최소 수량도 너무 커서 1년에 한 번 만들 수 있으면 다행인 실정이었지만. 무려 2년간 제작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껏 꾸준히 해온 보람도 있고, 여러 협업 제안을 받기도 해서 지금까지 30개 정도 작업한 것 같다.
어떤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해지는데.
워낙 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만들어서 언제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새 깨닫게 된 것 같다.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수업 시간에 만든 걸 집에 가져오거나 편지쓰는 걸 좋아했다. 그 편지가 점점 입체적으로 변해가기도 했고. 부모님이 바쁘셔서 특별히 칭찬해 주신 기억은 없지만, 내가 다 크고 난 후에는 ‘이부키는 항상 그랬던 것 같다’라고 말씀해 주시더라. 또 내가 워낙 게임을 즐기기도 했고, 애니메이션보다는 만화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손가락을 많이 움직여서 그런가?
사실 손재주가 좋았던 만큼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이공 계열… 공부에 대한 콤플렉스는 학창 시절 내내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손재주는 꽤 좋은 편 아닐까?’ 하고 혼자 생각했다. 한 가지 에피소드가 생각나는데, 한 번은 동생이 눈이 아프다고 하길래 살펴보니 눈가에 짧은 머리카락이 꽂혀 있더라. 그래서 핀셋으로 뽑아주려고 하니 무서워하면서 도망가 버리지 않나. 괜찮으니 안심하고 맡기라고 말하곤 한 번에 뽑아 준 적이 있다. 그때 동생이 흥분하면서 “너무 대단하다!”라고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하하.
스티커, 진 등에 자신의 얼굴과 몸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본인의 모습을 작업 소재로 삼은 걸로 미루어 보아, 이부키는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일까?
솔직히 내가 멋있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다. 가정환경도 그렇고, 예전부터 웃음이 적은 아이였으니까. 그래서 사진 찍히는 것도, 셀피도 모두 싫어했다. 그렇게 계속 자신감 없이 살아왔는데, 우연히 모델의 기회를 얻어 얼굴을 드러내는 훈련을 하게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정말 좋은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진에 관해 조금 이야기해 보자면, 고등학교 2학년 때 내가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걸 알고 반 친구들이 사진부에 초대해 준 것이 시작이었다(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육상부에서 장거리 달리기를 했다). 사진부에서는 프린트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는데, 그때 사진을 인화하거나 진(Zine)을 만들기도 했다. 사실 당시에는 내가 만드는 게 진인 줄도 몰랐다. 지금은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 만든 진이 굉장히 개인적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거리 풍경, 내 방, 유일하게 친근한 피사체였던 반려견 쇼콜라, 친구들 몇 명이 내 첫 진을 채웠다. 표지는 ‘IBUKI SAKAI’이라고 적인 테프라(TEPRA) 네임 택을 화단을 배경으로 찍은 인스탁스 사진에 붙여 복사했다.
내가 자신감을 얻은 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알게 된 카야(Kaya)라는 친구가 한몫했지. 카야는 어머니가 사진작가여서 그런지 카메라 앞에서도 늘 자연스럽고 포토제닉했다. 반면 나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었는데, 카야와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찍기 시작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졸업 후에는 집을 나와 해방된 기분을 만끽했다. 연애를 해본 적도 없던 소녀가 드디어 치마나 캐미솔을 입게 된 거다. 그때부터 원하는 건 뭐든지 입어보고, 내 방도 꾸미기 시작했다. 소소하지만 내가 원했던 것들을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니 그 무렵에는 웃는 표정의 사진도 많았던 것 같다. 새로 산 낡은 카메라로 직접 테스트 촬영을 하기도 하면서 점점 모델로서의 이부키도 자신감을 얻었다.
특히, 스티커 속 내 모습은 증명사진기를 이용해 제작한 건데, 그게 재밌어서가 아니라 정말 내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촬영했던 거다. 평생 나르시시스트가 될 일은 없겠지만, 사람들이 내 스티커를 여기저기 붙여주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 자신감이 생겼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사진, 스티커를 활용한 다양한 형식의 콜라주가 당신을 대표한다. 여러 조각을 이어 붙일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사실 특별한 아이디어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혈액형이 B형이라, 어떤 한 가지 면에서 지독하게 꼼꼼한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테프라, 반짝이 스티커, 콜라주를 세분화해서 작업을 하는 식이지. 이 경계가 가끔 느슨해서 서로 영향을 줄 때도 있지만.
2020년 1월에 조금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도쿄의 한 쇼핑몰에서 내 작품을 카피한 사건이 있었는데, 원본이 내 작업물이라고 목소리를 내자 업무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주변 사람들이 그게 원래 내 것이 아니라며 오히려 나를 비방하더라. 그 일이 벌어지고 나서 원래 진행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디자인 작업도 중단됐다. 안타깝게도 그 후로 패션계에 불신이 생기게 됐고 슬럼프에 빠졌다. 새로운 작업물을 발표하는 것도 부담스럽더라. 사람도 괜히 싫어지고.
그러던 중에 스즈키라는 분이 물감을 선물해 주셨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의 내 작업이 부정당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그때 물감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한 동안은 쉐어하우스 계단에 앉아 매일 같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죽으란 법은 없는지, 운이 좋게도 그해 말에 츠타야(TSUTAYA)에 작품집을 낼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콜라주나 스티커 작업을 오래 하지 않다 보니 뭔가 꽉 막힌 기분이더라. 좋아하는 것만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내가 작아졌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곤 좀 더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만들어도 좋다고 되뇌었다. 그날 만든 콜라주가 지금까지 작업물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작업은 더 프로페셔널하게 변했고, 나만의 세계관도 더 짙어졌지. 작품집 제목도 ‘IBUKI’로 정했다. 작업을 끝내고 번아웃이 오긴 했지만, 바닥을 치고 더는 못할 줄 알았던 일을 다시금 쫓아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낀다. 나는 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만든 것이 내게 힘을 주기 때문에 더 강해지고 있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마치 당신의 콜라주 작업처럼 지금의 이부키를 이루고 있는 것 몇 가지를 단어로 표현해 본다면?
게임, 흑백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친구, 팝, 게임센터, 도쿄, 방콕, 뉴욕. 그리고 여러 기억들.
비교적 어린 나이임에도 90년대 문화에 상당히 깊은 관심을 보이고 관련 물품을 수집해 온 것 같다. 당신의 방 사진을 보면 상당한 수집가인 것도 같은데, 어떤 것들을 주로 모아 왔고, 최근 수집하는 물건도 있는지.
수집가 기질이 있는 편이다. 처음에는 책, 게임, 만화, 문구류, 장난감, 스티커 정도였는데, 스스로 무언가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서 규모가 더 불어났다. 요즘은 물건 양이 엄청나게 많아지기도 했고, 이제는 모두가 가지게 된 것들도 있어서 또 다른 만남을 위해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만화책만은 꾸준히 전권 묶음으로 구매하고 있다.
내 방은 정말 혼돈의 연속이다.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수집한 것들이라 그런지 친구들 외에는 한 번도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다. 이게 패션은 아니지 않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흉내 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조금 마니아틱한 인터뷰가 있다면 내 방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사부카루(SABUKARU)와의 인터뷰에서 콜라주 작업을 할 때 새롭게 디지털에서 소재를 찾거나 숍을 찾는 대신, 이제까지 스스로 모아 온 것들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한다고 말한 것이 인상 깊었다. 이처럼 작업에 본인만의 철학이 있다면?
아버지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좋은 작품과 게임을 무제한으로 즐겼다. 이미 오래전부터 좋은 것들은 존재해 왔다는 사실은 일찍 알게 된 거지.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들 역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그런 작업물이다. 그래서 내가 애착이 가는 걸 사용하고 싶다. 콜라주 작업을 위해 잡지를 사서 오려내는 행위 자체가 억지스럽지 않나.
전부터 예쁜 걸 보면 그때그때 잘라서 보관해 두는 게 습관이 돼서 지금까지도 그러고 있다. 이게 어느 정도 쌓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뭘 만들어볼까 싶을 때 내가 수집해 온 것들이 갑자기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가끔은 어떤 소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여기저기서 주워 오거나 잡지에서 오려내기도 한다. 뉴욕에서는 우연히 쓰레기통에 쌓여 있던 복권이 눈에 띄어 주워온 적은 있다. 물론 길가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편은 아니지만. 학생 때부터 최근까지 찍은 필름도 점점 많이 쌓여가고 있는데 그만큼 작업 속도가 느려졌다. 하지만 어쩌겠나, 진심이 아니면 의미가 없으니까.
광적인 수집가답게 신고 온 신발도 굉장히 오래돼 보이는데, 어떤 사연이 있나.
이 신발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내가 가진 패션 아이템 중 아마 가장 오래된 물건일 것 같다. 10년을 신었으니 말이다. 고등학생 때 카야와 하라주쿠에 쇼핑하러 갔는데, 뒷골목 빈티지 가게에 닥터 마틴 신발이 잔뜩 진열돼 있더라. 그 중에서도 이 신발에 너무 꽂혀서 근처 ATM으로 달려가 거의 전 재산을 다 털어서 샀다. 20만 원 조금 안됐던 것 같은데 사자마자 바로 갈아신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조금 찢어진 부분이 생겨 신기 좀 불편해졌지만 평생 신을 생각으로 수선을 맡겨볼까 한다.
이제까지 쌓아온 것에서 영감을 얻는 편인가 아니면 새로운 발견한 무언가에서 영감을 얻는 편인가.
모두.
당신의 패션 스타일을 보면 콜라주 작업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트모스 핑크(Atmos-Pink), 엑스 걸(X-GIRL), 히스테릭 글래머(HYSTERIC GLAMOUR), 헤븐(heaven) 등의 모델로도 활동했지만, 비단 모델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작업을 이뤄내고 있는데, 어린 시절의 이부키는 지금의 모습을 꿈꿨는지.
내 스타일을 콜라주 같다고 표현해 줘서 고맙다. 역시 어린 시절의 이부키는 지금의 이런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지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초등학생 때부터 있었다. 첫 장래희망이 댄서였으니까.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서 점점 수줍음이 많아졌고, 내면을 다지는 게 내 성격에도 더 잘 맞더라. 그래도 지금 종종 모델 촬영을 할 때면 겉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댄서와 많이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티스트로 활동할 때 역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던 경험이 세밀하게 내 내면을 표현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쌍둥이자리여서 그런지 왠지 두 자아가 공존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두 가지 모습 모두 ‘이부키’다. 아직 많이 부족하기에 함께 나와 함께 해주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지.
히스테릭 글래머의 노부히코 키타무라(Nobuhiko Kitamura)가 말하길 당신은 굉장히 행동력이 강한 사람이라던데.
노부는 내 스승님 중 한 분이다. 일본은 물론 세계에서 그를 만나기 위해 도쿄로 올 정도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내 행동 하나하나를 짚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정말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사람이다. 그가 칭찬해 주니 기쁘고 가끔은 거만한 기분까지 든다. 노부와의 인연은 우연히 들어간 술집에서 시작됐다. “사무실에 놀러 오고 싶으면 연락해요”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바로 다음 주에 찾아간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지. 노부도 아마 기억하고 있을 거다.
브랜드 작업과 개인 작업의 차이가 있다면?
보통의 브랜드 작업은 내 특정 작품을 염두에 두고 제안이 들어오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디자인’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평소에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만들고 있지만, 어떤 요구가 있다면 그 브랜드에 대한 존중을 담아 새롭게 도전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액세서리를 포함해 협업을 통해 만든 제품들은 정작 내가 안 입게 되더라. 물론 입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착용한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달까.
개인 작업이나 프로젝트를 행할 때 비교적 머리에 뚜렷한 그림을 그리고 움직이는 편인가. 혹은 충동적인 무언가에 이끌리는 편인가.
완전히 백지상태에서 시작한다. 집에 있는 캐논 스캐너에 들어가는 크기의 종이를 펼쳐 놓고 그 위로 집중해서 하나하나 쌓아 나가는 거지. 퍼즐을 맞추듯이. 그러다 보면 점점 모양이 보이고 마지막 조각을 맞추는 순간이 온다. 가끔은 이전에 생각해 뒀던 이미지를 새로운 프로젝트로 승화시켜보기도 한다. 최근 들어 그런 방식의 작업을 좀 더 많이 해보려고도 하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요즘일 텐데, 최근 가장 재밌다고 느끼는 무언가가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게임. 지금은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를 하고 있는데 곧 완결을 낼 수 있을 것 같아 “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으로 넘어갈 생각이다. “파이널 판타지(Final Fantasy) 8, 9, 10″도 모두 다 깨고 싶은데, 억지로라도 시간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만화책 같은 경우는 “베르세르크”를 몇 번이나 읽었고, 최근에는 “생추어리” 전권을 구매해 읽고 있다. 또 이제 막 집을 옮겨 방 정리에 정신없는 요즘이다.
이부키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조금 더 친절한 사람. 소중한 친구를 지킬줄 아는 사람. 효도를 잘 하는 사람.
두 달 남짓 남은 올해, 이부키의 목표는?
우선 지금하고 있는 디자인 작업을 빨리 끝내야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그간 만들고 싶었던 것도 만들고, 게임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느긋한 연말을 보내고 싶다.
Editor | 장재혁
Photographer | 전솔지
Artwork | IBUKI SAK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