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tern Margins

현시점 전 세계 음악 시장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아시아,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 아티스트들의 활약일 테다. 이는 물론 BTS, 블랙핑크, 뉴진스를 비롯한 아이돌 그룹의 약진이 세계 음악, 패션 시장에서 거룩한 성과를 이룬 탓이겠지만, 이에 힘입어 한국 혹은 한국계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에게도 점차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춰 아시아계 아티스트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게 동분서주 움직이는 팀이 있으니, 바로 런던을 기반으로 아시아 문화를 서포트하는 레이블 이스턴 마진스(Eastern Margins)가 그렇다.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서울을 찾은 레이블 멤버 루미(Lumi), 루라(LVRA) 그리고 앤서니(Anthony)와 함께 동묘 거리를 누비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들과 나눈 대화를 찬찬히 음미해 보자.


각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루미: 이스턴 마진스의 공동 창립자이자 종종 DJ로도 활동하고 있는 루미라고 한다. 참고로 팀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와일드 리프트”의 ‘원딜 캐리’ 역할도 맡고 있다.

루라: 스코틀랜드에서 온 레이첼이라고 한다. 현재는 이스턴 마진스와 함께 런던에서 ‘루라’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스턴 마진스는 어떤 팀인가.

루미: 얼터너티브 아시아 문화를 포괄하는 컬렉티브이자 레이블이다. 도쿄의 초라레이(Chorareii) 매거진이 우리를 문화 확산 플랫폼이라 설명하던데, 그 설명이 정말 마음에 든다. 

9월과 10월 두 달간 14개의 도시를 거치는 어마어마한 [Road 2 Redline] 투어를 진행했다. 투어 중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루미: 29일 동안 14개 도시에서 공연을 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공연한 셈이지… 멈추지 않는 논스톱 파티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 중 하나가 서울인데,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SCR)와 디바인 힘(Divine Heem)을 만난 것은 물론, 이스턴 마진스 소속 아티스트 1300과 루라가 효봉포차에서 펼친 공연이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수요일을 장식했다. 광저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광저우는 중국 전통문화의 중심지지만, 공연에서 느낀 에너지와 열정은 새로운 세대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에 저녁 공연을 기다리며 강변에서 콩비지 훠궈를 비우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지!

올해는 유독 바이어스(Bias), 코마(Koma), 게놈 6.66(Genome 6.66 Mbp)을 비롯한 아시아계 아티스트의 방한이 잦았다. 현재 각광받고 있는 서울 신(Scene)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루미: 그만큼 외국에서 한국 언더그라운드를 신뢰하는 것 같다. 현재 서울에서는 하위문화와 주류문화 사이의 대화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특히 케이팝과 한국힙합을 통해 한국 문화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공식을 모두가 안다. 바밍타이거(Balming Tiger) 같은 크루가 글로벌 팬덤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하고 있지 않나.

이스턴 마진스는 런던에서 펼쳐진 설날 파티를 계기로 결성됐다고 들었다. 그날 밤 어떤 이야기가 오갔고, 확신이 선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루미: 당시 런던 클럽 신에 아시아 문화를 대표하는 레이블이 없다고 느꼈고, 그렇다면 우리가 해보자는 마음에 시작했다. 현재의 이스턴 마진스는 단순히 아시아 문화만을 대표만 하는 플랫폼을 넘어섰지만, 그 마음에서 출발한 팀이라는 사실은 늘 인지한다. 

무엇보다 설날이 팀 활동을 시작하기에 적절한 시기라 생각했다. 오르간 테이프스(Organ Tapes), 예티 아웃(Yeti Out), 2Shin, 율(yeule) 등 친한 친구들로 라인업을 구성했다. 특히, 공연에 오기 위해 한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왔다고 말한 애슐리라는 친구를 처음 만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동런던에 있는 지하실에서 터진 스피커로 공연한 우리를 보기 위해서 말이지. 그 말이 정말 감격스러웠고, 그 순간 계속 밀어 붙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팀 멤버를 소개해 달라. 다들 어떻게 모이게 되었나? 

루미: 앤서니와 내가 이스턴 마진스를 시작했고, Ar, 젝스(Jex), JD X, 일레인(Elaine), 칼리샤(Khalisha), 체리(Cheri), 소피(Sophie), 로렌조(Lorenzo) 그리고 AJ까지 각자 다양한 역할로 합류했다. 주디(Zhudi)와 스테프(Stef)도 큰 도움을 줬다.

이스턴 마진는 게임 길드와 비슷하다.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니 팀을 구성하는 식이지. 사실 캠페인을 구성하는 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에서의 레이드 팀원을 꾸리는 일과 배반 다를 것이 없다. 레이드 팀원을 모아본 사람들이라면 그 느낌 알 거다.

이스턴 마진스는 아시아계 하이퍼팝과 하드코어는 물론, 만야오(Manyao)와 부도츠(Budots)처럼 지역성이 뚜렷한 음악을 소개하는 플랫폼이다. 그만큼 다들 다양한 음악적 배경에서 왔을 거라 생각되는데, 각자 어떤 음악을 듣고 자랐는지 궁금하다.

루미: 나 같은 경우 어렸을 때 이사를 많이 다녔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이 내 음악적 성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피치포크가 인증한 인디록, 포스트록, IDM, 클럽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접했다. 하지만 내 인생의 판도를 바꾼 곡은 조이 오비슨(Joy Orbison)의 “Hyph Mngo”다. 유년 시절 구운 수백 개의 CD 모두에 담긴 주옥같은 곡이지.

아트워크 역시 음악만큼 강렬하다. 추구하는 비주얼 철학이 있다면? 

루미: 이스턴 마진스의 디자인 철학을 ‘레드라인 맥시멀리즘(Redline Maximalism)’이라 부르는데, 밀도와 속도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정보의 밀도, 인구의 밀도, 성장의 속도 등의 요소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전역에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철학을 반영한 아트워크를 통해 우리가 이해하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문화를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레이블의 첫 컴필레이션 [Redline Legends]은 동남아 클럽 문화의 다양성을 담았다. ‘레드라인’은 보통 디제잉 배울 때 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배우던데, 이스턴 마진스가 지향하는 바도 그러한지.

루미: ‘레드라인’은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전자음악에서 허용되는 것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넘고 싶다. 귀와 마음을 열고, 좋게 들린다면 시도해 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나.

바밍타이거, 황재호, 그랙 다니(Grack Thany), 피안 우(Pian Woo), 1300 등 한국인 혹은 한국계 아티스트를 꾸준히 소개해 왔다. 지금 눈여겨보는 한국의 아티스트 혹은 신이 있을까?

루미: 리우(Liu), 넷 갈라(нетGALA), 씨씨(Seesea)의 음악을 계속 로테이션 돌리고 있다! 리우는 댄스 플로어에 매혹적인 최면술을 선사하고, 넷 갈라는 미래지향적인 멀티버스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씨씨는 디제이 부스에서 완벽한 내 짝꿍이다. 씨씨가 아니면 동묘에서 디깅한 뽕짝 USB로 같이 B2B할 사람이 없거든!

뉴진스 리믹스를 필두로 사운드 클라우드에 다양한 장르의 케이팝 리믹스가 공개되고 있다. 케이팝과 리믹스 문화가 갖는 관계에 대해 묻고 싶다. 

루미: 모든 게 돌고 도는 것 아닌가? 뉴진스 같은 아티스트와 하이브 같은 대형 기획사는 언더그라운드 댄스문화에서 자유롭게 영감을 얻는다. SM은 심지어 스크림이라는 전자음악 레이블도 보유하고 있지 않나. 케이팝에서 소스를 얻어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적절히 변형하는 리믹스는 문화의 주기가 원전한 한 바퀴를 돌았다는 증거다.

항저우 아시안 게임 간 팀 내 분위기는 어땠나, 멤버끼리 국가 대항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을 듯싶다.

루미: 우리는 좋은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아시아 간 스포츠 이벤트는 롤드컵이라 생각한다. 서울에서 열리는 경기에 1300을 데리고 가려했는데 ‘롤’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나 보다. 하지만 올해는 LPL이 강세를 보일 거다. 참고로 팀 내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아시아 음식 순위표가 존재한다. 궁금하다면 DM으로 알려주겠다.

루라의 [soft like steel]가 스코틀랜드 올해의 아티스트 신인상을 수상했다. 축하한다. [soft like steel]는 루라가 느낀 좌절을 인더스트리얼팝, 하이퍼팝 등 여러 사운드를 통해 치유했다고 다른 인터뷰에 밝혔는데, 심정이 어떠한가.

루라: 정말 고맙다! [soft like steel] 발매 이후에는 정말 바쁘게 지냈지만 이 모든 게 즐거웠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사하고, 투어를 떠났다. 정말 쉬지 않고 공연을 이어왔는데, 영국으로 돌아가 다시 일상으로 채워갈 날들을 고대하고 있다.

얼마 전 발매된 [soft like steel] 리믹스 앨범은 어떤 느낌인지 알려줄 수 있나?

루라: 새 트랙 몇 곡과 리믹스로 확장된 EP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듀서 몇 명을 직접 택했고, 모두 멋지고 개성 있는 리믹스를 보내줬다. 사람들이 내 트랙을 클럽 음악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좋다. 투어 공연에서 그 리믹스를 플레이하는 것도 그렇고.

루미는 동시에 아시아인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고 다른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아시아 본토와 교포는 어떤 공통분모를 공유한다고 생각하는가.

루라: 창작의 자유와 표현에 대한 열망 그리고 가족의 기대와 사회적 압박. 이런 균형 잡힌 책임감이 내가 투어에서 만난 사람들과 보편적으로 공유했던 부분이다. 또한 공연을 하는 동안 관객 이해와 수용을 느낄 수 있었고, 그토록 많은 이들과 소통할 수 있어 정말 놀라웠다.

2024년에는 어떤 행보를 기대할 수 있을까.

루미: 2023년이 레이블 규모를 키우고,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현지 시장과 직접 소통하고, 미션을 구체화하는 등 내실을 다지는 시기였다면, 내년은 세계로 진출하는 해가 될 것이다.

상당히 많은 활동을 이어왔는데, 스스로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이벤트를 꼽자면? 

루미: 이번 [Road 2 Redline] 투어에서 난징은 꼭 순위에 들어간다. 난징은 내 고향이기도 한데, 현지 전설이자 레이블 아티스트인 더티 케이(Dirty K)의 초대를 받아 이번 투어에서 공연을 열 수 있었다. 천장에서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우리 음악에 열광하는 난징 관중 앞에서의 기억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8살 때 난징을 떠난 뒤 간간히 방문했지만, 현지 신과 교류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 난징에서 우리 사운드에 모두가 열광했다는 사실은 내게 정말 특별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보수적인 동양인 부모님에게 호적에서 파이지 않고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하겠다고 말하는 방법은? 

루라: 예술에 대한 사랑을 헌신으로 보여주는 것만큼 깊은 울림을 주는 건 없다. 하지만 이 헌신이 드러나는 데는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부모님의 우려도 당연하다. 인내심을 갖고 스스로 내린 결정에 자신감을 갖는다면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겠지만,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강해져야지 어쩌겠나!

Eastern Margins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장재혁
Interviewer | 하비
Photographer │한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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