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지나가던 누군가 필자에게 스치는 말로 남긴 이야기가 뇌리에 깊이 박혔다. 동시대에 문화와 신(Scene)을 이야기하기란 아예 불가능하다고. 대의와 도의를 논하는 이들은 정치와 사기라고. 하지만 이러한 풍토가 만연해짐에 따라 공동체가 해체되고 문화의 의미가 흐려지고 있는 이 시간을 과연 바람직하다고만 볼 수 있을까. 단언컨대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두 영국인 정글리스트가 운영 중인 레이블이자 파티 브랜드 ‘플래닛 터보(Planet Turbo)’와 만나 이야기 나눴다. 자본과 시장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한 이들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그 근저를 관통한 취향과 신념의 확고함. 어쩌면 모든 게 불가능하다 단정짓던 시대에 반례가 될 수도. 새벽녘 이들의 음악과 춤사위만큼이나 뜨거운 플래닛 터보의 온도를 지금 함께 느껴보자.
간단한 소개 한번 부탁한다.
Mordecai(이하 M): 모데카이(Mordecai)라고 한다. 나는 영국 브리스톨(Bristol) 출신으로 최근 2년 사이에 토탈90(Total 90)이란 이름으로 프로듀서 활동 또한 이어가고 있다.
Shins(이하 S): 마이크 신스(Mike Shins)라고 한다. 2010년부터 서울에 살기 시작하면서 디제이로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참고로 나는 영국의 어느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브리스톨과 런던(London)에서 보냈다.
둘은 어떻게 만나 플래닛 터보를 결성하게 되었나?
M: 휴가차 서울에 잠시 방문했던 시기에 신스를 처음 만났다. 이태원 모스크 인근의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Seoul Community Radio, 이하 SCR) 스튜디오에서 만난 거로 기억하는데, 당시에는 간단히 인사와 몇 마디 나눈 것이 전부였다. 이후 내가 본격적으로 서울에 살게 되면서 해방촌에 살고 있는 친구 덕분에 신스를 자주 만나게 되었고, 여러 파티와 클럽에서 어울리며 자연스레 가까워지게 되었다.
S: 플래닛 터보는 팬데믹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코로나 이전의 많은 클럽에서는 기성 디제이들이 하우스와 디스코, 테크노를 주로 플레이했기에 개러지나 정글을 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클럽이 9시에서 11시 사이에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기성 디제이보다는 어린 디제이가 활약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우리가 브레이크비트와 드럼앤베이스(이하 D&B)을 틀면서 클럽의 BPM을 올렸는데, 반응이 제법 좋았다. 그리고 우린 이걸 새로운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로 본 셈이다. 웃긴 건 첫 파티를 진행한 다음 날 클럽이 6개월 동안 닫았다.
유년기가 궁금하다. 출신지에 따라 분위기나 유행도 달랐을 것 같고, 주로 들었던 음악이나 TV-라디오 프로그램 등 현재 본인의 생활에 영향을 준 것들이 있다면?
M: 어렸을 적에 채널 유(Channel U)를 자주 보며 크게 영향을 받았다. 초기 그라임과 영국 힙합을 소개하던 채널이었는데, 라디오나 유튜브가 아닌 실제 TV 채널로, 이곳에서 새로운 음악을 발견했다. 한편 브리스톨의 경우, 런던에 비해 옥상에 안테나를 놓을 고층 건물 수가 부족했기에 해적 라디오가 활발한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패션(Psaasion)이라는 브리스톨 기반의 라디오 스테이션이 있었다. 보통 댄스홀이나 덥, 레게가 주를 이뤘는데 종종 정글이나 D&B가 나오고는 했다. 이 또한 댄스 뮤직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창구가 되었다.
S: 나는 미디어보다 친구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다. 인터넷이 활달하지 않던 지방 소도시에서 자랐기에, 해적 라디오는 고사하고 클래식 방송이나 피트 통이 진행하는 쇼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 탓인지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댄스 뮤직을 잘 알지 못했다. 대게 사람들은 내 유년기가 정글과 D&B 황금기와 겹치던 시기였기에 어릴 적 그 영향을 많이 받은 줄 알지만 나와 직접적인 연은 없었다. 성인 이후에 여러 클럽과 파티를 다닌 경험과 친구들이 공유해준 CD, 테이프에서 영향을 받았다.
모데카이의 경우, 토탈 90(Total 90)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 중이다.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 이야기해 줄 수 있는가?
M: ‘토탈 90’라는 이름은 나이키 축구화 이름에서 착안했다. 초등학교 시절 친형에게는 토탈 90이라는 축구화가 있었는데, 그걸 형으로부터 물려받아 신게 되었다. 그 시기에 좋아하는 음악이 많았던 터라 그 시절에 대한 짙은 향수가 있어 이러한 이름을 짓게 되었다.
VGM(Video Game Music) 커뮤니티 내에서 꽤 인기 프로듀서인 피자 핫라인(Pizza Hotline)의 앨범 [Level Select]에도 참여했는데 어떤 계기였는지?
M: 나에게 VGM은 초기 음악적 영향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평소 멜로디컬한 음악을 좋아하는 편인데, 다양한 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비디오 게임의 제약 때문인지 유독 멜로디컬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가령 포켓몬 게임 음악 속 키치한 멜로디의 경우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다시 돌아와, 피자 핫라인의 본명은 하비(Harvey)로, 우리는 함께 브리스톨의 음악 대학에 다녔다. 비록 1년 후에 그가 떠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절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과거 우리는 테라다 소이치(Soichi Terada)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평소 많은 VGM을 공유하곤 했다. 그러다 음악을 만들어보자는 그의 제안으로 앨범에 참여하게 되었고,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제노바(Genova)의 어느 레이블로부터 바이닐 발매 제안까지 받았다.
플래닛 터보 파티 초기에는 제법 자극적일 수도 있는 ‘No Disco’라는 슬로건을 앞세웠다.
S: 우선 오해의 소지가 없으면 한다. 우리는 결코 디스코를 싫어하지 않는다. 디스코는 많은 댄스 음악의 기원이지 않은가? 다만 코로나 이전을 떠올리면 디스코나 하우스와 테크노 같은 4/4 비트의 음악 외 다른 장르 음악을 틀면 클럽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디제이가 디스코를 플레이하거나 형편없는 디스코 에딧 트랙을 틀고 있더라. 이러한 시류가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고, 우린 단지 획일화되고 편중된 분위기를 두고 ‘No Disco’라 외친 것뿐이다. 어쩌면 ‘No Techno’를 내세웠을 수도 있겠다.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파티를 격주로 진행한다든지, 일요일에 진행하는 등 통용되지 않던 공격적이고 매니악한 방식을 지향하기도 했는데.
S: 예나 지금이나 D&B나 개러지를 기반한 파티가 없었기에, 우리는 처음부터 다른 모든 것들과 다르게 시작했어야 했다. 다시 말해, 플래닛 터보는 통용되던 모든 것들과 대비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포스터 디자인부터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노력, 파티를 일요일에 진행하는 등 차별화하도록 노력했다. 이는 ‘No Disco’와 같은 맥락으로 ‘너희는 그걸 해. 우린 이걸 할게’라는 식이었다. 무엇보다 케이크숍(Cakeshop)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모두의 진심과 노력이 많은 이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는 것 같다.
주력하는 음악 장르나 파티 분위기와 상반된 로고, 플라이어의 그래픽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브랜딩과 디자인 측면에서 플래닛 터보의 기획이 궁금하다.
M: 로고를 포함한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 작업은 내 배우자의 작업물이다. 그녀는 정말 탁월한 예술가로 그림을 잘 그린다. 한편 브랜드를 만들고 구축하는 데는 강력한 이름과 이미지가 필요하다. 필요성에 따라 지금의 플래닛 터보가 탄생한 것이다. 나아가 과거 정글과 D&B 신을 돌이켜 보면, 귀여운 마스코트가 성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산을 계승하려는 의지 또한 있었다.
S: 첨언하자면 최근 몇 년 사이 발표된 개러지와 관련된 화이트 라벨 음반(White Lables)을 봤을 때, 귀여운 캐릭터나 강렬한 이미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스니커 소셜 클럽(Sneaker Social Club)이나 로스트 시티 아카이브스(Lost City Archives), 타임 이즈 나우(Time is Now) 등의 레이블이 그러한데, 플래닛 터보 또한 강렬한 이미지를 통한 브랜딩을 구축하고자 했다.
‘Steppas’부터 ‘Furious Drum’까지 플래닛 터보 산하로 다양한 파티가 진행되고 있다. 이름을 비롯해 베뉴마저 분리한 이유는 장르적 구분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느껴지는데.
S: 맞다. 이것만큼 확실하고 쉬운 방법도 없을 것이다. ‘Steppas’는 D&B, 또는 개러지, 정글 등 특정 장르만을 기반한 파티로, 피스틸(Pistil)이라는 소규모 베뉴 특성을 살려 플래닛 터보보다 더 코어하고 실험적인 것들로 채워보자는 것이 발단이 되어 탄생했다. 케이크숍은 불특정 다수의 무작위한 사람들이 많기에 심도 있는 파티를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와 달리 작은 베뉴에서 특정 장르로 제한한 채 장르 팬과 함께 하다면 분위기는 물론 집중도가 더 올라간다. ‘Furious Drum’은 일회성이 다분한 파티였다. 이미 그달의 플래닛 터보를 진행하기도 했고, 정글만 나오는 밤을 만들고 싶었다. 이제는 정글이 꽤 유행인지라 앞으로 또 진행할지는 미지수다.
플래닛 터보는 케이크숍을 기반으로 진행 중이며, ‘Steppas’는 피스틸과 함께하고 있다. 이처럼 플래닛 터보와 별개로 이전부터 케이크숍과 계속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둘에게 케이크숍은 남다른 존재일 것 같다.
S: 케이크숍 시작 이전부터 샘과 알고 지내오며 함께 일해왔다. 이후 그곳에서 디제잉을 하면서 2012년부터는 여러 파티와 이벤트들을 기획했다. 과거 콘트라(Contra)에서는 부킹 업무를 맡았고, 지금도 여전히 케이크숍에서 다양한 일을 돕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들의 철학과 행보를 비롯해 이곳이 성취한 업적과 유산에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M: 나는 친구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처음 케이크숍에 방문하게 되었다. 서울의 여타 클럽과 다른 바이브를 지닌 이곳은 어둡고 습한 곳에서 좋은 음악이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한국에 정착하게 되면서 내가 유일하게 방문하는 클럽이 되어 버렸다. 케이크숍 이외의 클럽은 너무 진지하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UK발 음악이 플래닛 터보의 노력 덕분에 제법 자리 잡고 성행하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본인들이 체감하는 변화나 성취가 있다면?
M: 확실히 체감한다. 하지만 지금의 현상이 오로지 우리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여한 바가 있다면 번역을 제법 잘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여기서 번역이라 하면 교육의 측면이겠다. 우리가 하우스나 디스코를 이해하고 있음에도 틀지 않는 이유는 그음악에 진정으로 흥미를 갖고 본질적인 이해를 바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플래닛 터보가 추구하는 음악만큼은 깊은 애정과 이해를 기반하고 있기에 어떤 면에서 우리를 전문가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의 행보가 한국 청중에게 익숙지 않은 음악과 경험을 제공하고, 이것이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케이팝(K-Pop) 신에서도 D&B나 개러지를 차용한 음악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적인 경향을 플래닛 터보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M: 긍정적이다. 최근에 소티쓰(Sawteeth)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의 친구들은 그의 음악을 두고 뉴진스(New Jeans) 음악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더라. 이처럼 결국 아이돌 음악이나 케이팝 산업 덕분에 소수의 사람이라도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에 관심을 두게 된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다. 예를 들어 뉴진스가 저지 클럽의 요소들을 차용한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인데, 현지의 저명한 저지 클럽의 프로듀서와의 협업으로 풀어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S: 개인적으로 케이팝이 여러 다른 장르와 스타일의 요소들을 차용하는 데 몹시 뛰어나다. 어떤 음악이나 장르가 유행하면 언젠가는 케이팝에서 그것들을 가져오는 법이니 말이다. 가요계와 언더그라운드 신 사이의 괴리가 큰 만큼 이런 현상이 우리의 행보나 생태계를 망칠 일이 없을 테니, 이런 현상은 정글 음악의 박자나 4/4 비트를 제외한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의 이해도를 높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대중의 궁금증과 발걸음이 클럽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법이다.
브레카(Breaka), 조시 미츄(Jossy Mitsu), 코코 브라이스(Coco Bryce), 샤르다(Sharda) 등 현대 개러지나 정글 신에서 유력한 아티스트들이 플래닛 터보와 함께하고 있다. 동시에 로컬 아티스트에 대한 무게도 꽤 높은 편이다. 라인업을 선별하고 섭외하는 기준이 있다면?
S: 해외 라인업의 경우에는 해외 에이전시를 통해서 먼저 제안을 많이 받는 편이다. 워낙 케이크숍의 명성이 국제적으로 높은 편이기도 하지만 우리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유수의 디제이들과 에이전시로부터 연락이 오고 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횟수는 제한적이기에 우리와 비슷한 온도와 결을 공유하는 이들 중 평소 존경하고 한국 관중에게 유익할 있는 아티스트를 선별해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다.
M: 이와 달리 로컬 라인업은 때때로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가 주력하는 장르를 기반한 로컬 디제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 그러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더 많은 디제이가 등장하고 우리와 동참해 주고 있는 편이다. 최근에는 VISLA FM과 같은 채널을 통해 새로이 눈여겨 본 이들에게 먼저 연락하거나 클럽에서 본인의 믹스를 홍보하는 이들 중 마음이 맞는 이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 음악, 커뮤니티를 위한 마음만 맞는다면 누구든지 언제나 환영한다.
S: 추가로 단지 음악만을 플레이하고 휙 가버리는 디제이들과는 함께하기 어렵다. 한 시간에 몇십만 원씩 지불했음에도 그가 다른 클럽에 가거나 집에 가버리는 바람에 아무도 그를 본 적이 없다면, 마찬가지로 그의 게스트 리스트에 아무도 없다면 프로모터 입장에서는 돈 낭비나 마찬가지니까. 플레이와 셋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좋은 분위기와 에너지를 나누는 파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디제이라는 점이 우리에게는 더 중요하다.
레이블로서 플래닛 터보 이야기로 넘어갈까 한다. 파티 브랜드에서 레이블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M: 레이블로의 확장은 로컬 신을 위해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서울의 새로운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사실 서울의 넘쳐나는 디제이 숫자에 비해 프로듀서의 수는 예상외로 많이 부족한 편이다. 우리는 레이블을 통해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음악을 창작해 볼 동기를 고취하려고 한다.
S: 모든 사람이 파티에 올 수도 없는 법이며, 클럽에 오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도 있는 셈이다. 그러한 점에서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에게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과 그 아티스트들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유망한 로컬 아티스트들의 해외 진출을 견인해 줄 수 있는 초석이 되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최근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Planet Turbo Vol. 2]을 공개했다. 앨범을 소개해 달라.
S: [Planet Turbo Vol. 1]과 [Planet Turbo Vol. 2]를 관통한 의미를 정의한다면, 아시아 출신 또는 아시아 기반의 아티스트들이 클럽 사운드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모데카이만 보더라도 그는 영국 클럽 신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한국이란 환경과 생활에서 영향 받아 곡을 쓰고 있다. 마찬가지로 앨범에 참여한 젊은 한국 아티스트 일부는 영국에 가본 적 없지만 본인만의 관점에서 해석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그러하다.
M: [Planet Turbo Vol. 2]는 [Planet Turbo Vol. 1]과 연장선에 있는 작업으로, 한국과 아시아 주변 국가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첫 번째 앨범을 구상하고 작업하면서 두 번째 앨범도 동시에 진행했던 터라 전작과 특별하게 다르지는 않다. 우만 써마(Uman Therma)나 서브멀스(Submerse)와 같이 전작에 참여 못한 아티스트를 참여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연달아 컴필레이션 형식의 앨범을 발표하고 있는데, 다른 형식이나 형태의 앨범을 발표할 의향이나 계획이 있는가?
S: 댄스 음악에서 LP(Long Play)가 좋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기에 정규 규모의 LP는 계획에 없지만, EP(Extended Play) 앨범은 발표할 계획이 있다. 다가올 ‘토탈 90’의 앨범 또한 4곡에서 6곡이 수록된 EP가 될 것 같다. 특히 올해에는 바이닐 형태의 피지컬 앨범도 발표하고 싶다. 앞서 말한 토탈 90의 EP와 추후에 발표될 컴필레이션 앨범들 또한 바이닐로 발표할 계획이 있다.
예전에 레이블이 서울을 기반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그 영역을 서울에만 국한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레이블로서 플래닛 터보의 목표가 궁금하다.
S: 우리는 아시안 아티스트나 아시아 기반의 아티스트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다시 말해, 해외 아티스트 중 우리 신에 관여한 바가 없는 이들과 함께할 계획은 없다. 이미 유럽에 수많은 레이블이 존재하는 상황에 단지 해외 아티스트라는 이유만으로 협업한다면 독자적인 로컬 신이 성장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브멀스를 예로 그는 12년 동안 도쿄에서 살고 있는 영국인으로, 아시아 기반의 아티스트로 봐도 무방하고 또한 지향하는 바가 우리와 맞닿는 지점이 있기에 함께한 거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에게 구체적인 목표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좋은 음악을 발표하고 재밌는 파티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너무 진지할 필요 없다. 다 재미있자고 하는 거 아니겠는가? 우린 그저 열정과 진심을 담아 즐겁게 노력할 뿐이다.
곧 좋은 취지로 발표되는 앨범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들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가?
S: 자선 성격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2월에 발표될 예정이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에 대한 인식과 그 피해자들을 위한 기부를 위한 프로젝트로 10곡에서 20곡 정도 수록된 컴필레이션 앨범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한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만큼 사태의 심각성이 희석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 시작하게 된 이 프로젝트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더 알리고 목소리를 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인터네셔널(Internatiiional)과 프래그먼티드 서비스(Fragmented Service)와 2dfx(2 Deck Effects), 신도시를 비롯해 많은 아티스트들이 동참했다. 앨범은 USB 형식을 채택함으로써 한국인이 읽을 수 있도록 북클릿을 첨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공유할 예정이다. .
로컬 커뮤니티(지역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은 듯하다. 지역성 또는 지역주의라 불릴 수 있는 고유성이 서울과 이태원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M: 확실히 있다. 특히 음악과 클럽 문화에서 그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꽤 보수적인 편이지만, 클럽이란 비일상의 영역만큼은 개방적이고 활발하다. 이처럼 일상성의 대비가 무척 인상적이다. 한편 사람들이 클럽을 즐기는 방식이 제법 충격이었다. 영국에서는 오전까지 한 클럽에만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에서는 다른 클럽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디제이 또한 일찍 귀가하거나 다른 클럽을 오가기보다 오랫동안 한 클럽에 머물다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S: 한국은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한국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춤추고 재밌게 노는 모습이 독보적이라 인상적이다. 해외 디제이들 또한 여기에 오면 특유의 에너지 때문에 놀랍다는 반응을 자주 보인다. 서울이 다른 국제적인 도시에 비해 약물 남용이 현저히 적다는 점은 다른 방식의 활기찬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이유라는 생각도 든다.
지속 가능하고 건강하고 유기적인 로컬 문화에 대해 종종 이야기한 기억이 있다. 이를 위한 조건이나 필수 조건 등 관련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눠달라.
S: 더 이상 문화를 깊게 신경 쓰지 않게 된 경향이 짙어진 만큼 지속 가능한 로컬 문화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만큼 정직과 일관성, 열정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고 우리의 노력을 통해 관객에게도 무엇이 재밌고 멋있는 것인지 전달될 것이다. 한편 많은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한 채 집에만 있는데, 만약 흥미가 생긴다면 밖에 나와 로컬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보자. 파티에 놀러 오고 라디오를 듣고 레코드숍에 와서 함께 나누고 직접 참여해 보라.
M: 같은 맥락이다. 로컬 커뮤니티를 계속 서포트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데려오라. 주변 친구들에게 새로운 음악을 공유하고 클럽에 함께 놀러 와서 새로운 문화를 소개해 주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친구들과 대화를 환영한다. 서로의 파티를 지지해 주고 응원하며 최대한 오랫동안 머물렀으면 좋겠다.
SCR과 스튜디오 남산(Studio Namsan), VISLA FM 등 서울 로컬 라디오 스테이션에 대한 애정과 기여가 상당하다. 독립 라디오스테이션이 플래닛 터보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하다.
M: 라디오는 정말 중요하다. 때론 어린 디제이에게는 훈련과 시험의 장이 되기도 하고, 청취자에게는 새로운 음악과 디제이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 무엇보다 라디오는 사람들을 군집시켜 음악과 문화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허브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중요한 매체다. 동시에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공유하고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건강한 지역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플래닛 터보가 확장하기 위한 플랫폼으로서 라디오를 채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린 창작자나 노출이 거의 없던 창작자들에 대한 인큐베이팅과 지원에 아낌없는 편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된 소티쓰나 모렐로(Morelo)가 그러하겠다. 같은 맥락에서 이태원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크루들, 이를테면 김치 팩토리 호미즈(Kimchi Factory Homies), 컴퓨터 뮤직 클럽(Computer Music Club)과의 긴밀한 협력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행보를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S: 나 혼자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 파티를 한 번 하더라도, 단순히 파티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좋은 신과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들려면 좋은 음악과 라디오 쇼가 많아야 한다. 커뮤니티란 한 개인이 아닌 여러 집단의 사람들이 얽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협력과 지지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와 협력하고 언급하는 사람들 모두 우리가 존경하는 방식으로 활동하는 이들이다. 가령 쉐이드(Shade Seoul)와 김치 팩토리 호미즈를 보라. 설령 우리와 공유하는 장르와 스타일은 다를지언정 좋은 파티와 커뮤니티를 구축하기 위해 존중과 정직, 일관성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M: 우리는 항상 서로를 지원하고 지지해 왔다. 이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신을 성장시키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멋진 행보를 이어가는 이들을 향한 아낌 없는 지원은 필수적이다.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 또한 당시 많은 이들이 지원해 주고 도와주었기에, 같은 마음으로 신예들과 어린 친구들에게 지지를 표하고 있다. 특히 김치 팩토리 호미즈의 경우 플래닛 터보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는데 항상 우리 파티에 참여하고 깊은 사랑을 보여줬다. 이런 것들이 정말 중요하다.
다양한 파티가 이곳저곳에서 열리지만 파티 문화를 이루는 요소들은 불명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프로모터와 디제이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 경 같은 것들. 플래닛 터보는 멤버 모두 DJ이자 기획자지만, 명확히 구부노디는 결과 어법을 구사하는 인상이다.
M: 소극적인 성격과 활달치 않은 말주변 탓에 기획과 프로모션에 최적화된 사람은 아니라서 내가 프로모터가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클럽 문화를 좋아하고 관련 경험이 많은 터라 어떤 파티가 좋고 나쁜지, 무엇이 효과적이고 아닌지를 제법 아는 편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간의 경험을 플래닛 터보에 적용해 보고 있다. 물론 전문적인 프로모터가 이 업무를 대신해 주면 편하겠지만, 수천 명이 오는 파티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기에 충분히 디제이와 프로모터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S: 비슷한 맥락이지만 언더그라운드 신에는 모두에게 지불할 만큼 자본이 여유롭지 않기 때문에 디제이들은 어쩔 수 없이 프로모터가 되어야 하는 구조다. 물론 둘을 분리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신이 크지 않은 만큼 다양한 역할을 분담해 전문적으로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가령 둘을 분리했을 때 나를 대신할 디제이를 섭외하는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경제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걸 다르게 디자인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나와 모데카이 개인을 앞세우는 것보다 플래닛 터보라는 브랜드를 내세우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이는 개인의 역량보다 훨씬 성장할 방법으로 브랜드가 성장함에 따라 디제이로서 우리 개인의 이름도 커질 수 있는 셈이며 개인을 앞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신스는 그간 정말 많은 프로젝트의 기획과 운영, 지원 등을 하며 감독이자 플레이어로서 활동의 범위를 다양하게 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는 어떤 역할에 정체성이 강한 편인가?
S: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기획부터 부킹, 프로모션까지 워낙 다양한 일을 하는 원동력을 생각했을 때, 그간 꾸준히 재미를 추구해 온 것 같다. 결국 여러 역할과 지위가 섞이게 된 건 신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플래닛 터보를 비롯해 각자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M: 플래닛 터보는 계속 지금처럼 좋은 파티와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코코 브라이스 이후 플라스티션(Plastician)의 내한을 비롯해 많은 파티가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아직은 비밀이지만 어마어마한 아티스트와도 현재 이야기 중이라 기대해도 좋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스튜디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활발하게 앨범과 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미 소티쓰를 비롯해 젊은 프로듀서들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고, 주변 친구들과도 계속 곡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S: 3월에는 도쿄 소재의 두슈라(Duusraa)라는 작은 베뉴에서 일본의 멋진 정글리스트들과의 파티가 예정되어 있다. 그 전날에는 서커스 도쿄(Circus Tokyo)에서 프레이 박스(Spray Box)와 함께 플레이할 예정이다. 베트남에서도 파티가 예정되어 있고,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피드 더 드레곤(Feed the Dragon)과의 협업 또한 계획 중이다. 음악과 디제잉을 너무 좋아하기에 계속해서 이걸 하지 않을까?
마지막 질문이다. 신스와 모데카이를 보며 새로운 꿈을 꾸고 있을 이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M: 본인이 사랑하고 즐기는 일을 하라 말해주고 싶다. 이곳은 유행에 매우 민감한 곳이라 본인만의 확고한 취향과 철학이 없다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은 채 자신이 재밌어하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뿐만 아니라 젊은 프로듀서들을 더 많이 보길 기대한다. 이미 너무 많은 디제이가 존재하고 있기에 새로운 프로듀서, 젊은 아티스트가 더 많이 탄생했으면 좋겠다.
S: 농담으로 우리를 본받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플래닛 터보의 행보를 즐기고 있다면 우리에게도 알려달라. 파티에 와서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라디오 쇼를 보러 와달라. 본인이 디제이가 되고 싶다면 우리에게 당신의 관심사를 공유해주고 믹스를 보내달라. 결국 커뮤니티란 서로 소통하고 나누며 함께 일궈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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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황선웅, 서재덕
Photographer | 박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