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Detroit)라는 도시는 마치 시인과 호사가들에 의해 구전된 호메로스의 트로이 신화처럼, 모타운부터 제이딜라, 무디맨, 제프 밀스, 소울, 힙합부터 하우스, 테크노에 이르기까지 전설적인 아티스트와 레이블, 장르를 아우르며 음악 마니아에게 무수한 판타지와 이야깃거리를 전했고 그 결과, 다른 지역이나 음악 신(Scene)과 비교 불가능한 신화적인 지위를 쌓았다.
1800년대 자동차 공업 도시로 성장한 ‘모터 시티’ 디트로이트. 이 도시는 빠르게 성장한 만큼 자동차 업계 불황과 함께 그만큼 빠른 속도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순식간에 황폐화된 도시. 폐허가 된 공업 단지 한 차고에서 싹을 틔운 디트로이트 테크노는 역설적이게도 몰락한 도시를 온전히 받아들인 형태로 예술적인 면모를 완성했고 이것은 곧 전 세계 댄스 뮤직 마니아들에게 가장 진보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디트로이트 신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또 다른 이름 티오 패리쉬(Theo Parrish)는 신화의 큰 지분을 차지하는 디트로이트 테크노, 이를 중심으로 발현한 미래주의적 이상향 대신 흑인 사회의 유산과 맥박에서 자신의 음악, 그 원형을 찾는다. 그는 재즈, 소울, 훵크 등의 고전적인 장르와의 절충적인 하우스 프로덕션 나아가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의 회색빛 쇳물을 부어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확립한 프로듀서/DJ다. 클래식을 향한 애정 어린 존중 그리고 미래의 사운드를 향한 열망의 황금비를 찾아 조각하는 과정에서 그는 티오 패리쉬 특유의 접근법, 프로덕션, 디제잉 셋을 터득했다.
우리는 티오 패리쉬의 두 번째 내한을 맞아 서울 언더그라운드 클럽 모데시에서 7시간의 긴 셋을 선보일 그의 사운드 체크 타임을 비집고 들어가, 짧은 시간이지만 긴 역사를 내포한 티오 패리쉬의 철학을 지면에 옮길 수 있었다.
일생을 레코드 디깅에 바친 신실한 레코드 컬렉터로서, 그리고 캔자스 시티와 시카고에서 자양분을 얻어 디트로이트 팔레트에 새로운 화풍을 옮겨낸 뮤지션으로서 그 누구도 아닌 티오 패리쉬 자신의 고유한 발자취를 댄스 뮤직 신에 남기고 있는 그에게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과 철학을 물었다.
작년에 이어서 약 9개월 만에 서울이다. 서울은 당신에게 익숙한 도시인가?
아직 익숙하진 않다. 이번 파티를 통해 처음 서울이란 도시를 제대로 본 듯하다. 언제나 바쁘게 도시를 오가는 삶을 살기에 특정 지역을 눈에 제대로 담을 여유가 적다. 14시간의 비행을 거쳐서 도착한 터라 시차 적응이 심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창밖으로 바라보는 서울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건축물의 조형적인 느낌도 좋고, 길거리도 직관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시카고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캔자스시티의 미술 대학을 졸업한 뒤, 디트로이트를 기반으로 음악 활동을 전개했다. 이렇게 다양한 지역을 경험하며 성장한 배경은 실제 음악과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삶의 여정과 음악의 관계는 생각보다 명료하다. 모든 인생의 순간이 지금의 나를 형성한다는 명제를 따르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별거 아닌 사소한 일도 다른 이에게는 엄청난 대격변을 야기하는 롤러코스터가 될 수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의 배경도 사실 타인과 비교할 때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남들과 다르게 유별난 삶을 살았단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대신 모든 삶의 결단을 믿을 뿐이다. 내가 내린 선택이 새로운 길을 연다. 반대로 그 길에서 새로운 선택을 마주하기도 한다.
캔자스 미술 대학에 다닐 때부터 댄스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당시 이미 시카고에도 댄스 음악 신은 존재했다.
시카고에 관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다. 어릴 적 시카고에서 자랐을 때 나는 내가 댄스 뮤직을 듣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이미 시카고엔 음악이 있었고, 나는 춤을 추며 자랐을 뿐이다. 어쩌면 음악과 사회를 안팎으로 구분 짓는 관점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내가 자라왔던 환경 속에서 형성된 파티와 음악은 유럽이나 외부의 영향은 전혀 없었다. 80년대 시카고는 인종 분리와 인종 차별이 여전했다. 그래서 시카고를 형성하던 댄스 뮤직 신은 모두 블랙 커뮤니티의 일원이었고 백인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곳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었다.
디트로이트라는 지역은 마치 특정한 장르로 인식될 만큼 아티스트와 신의 상호작용을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획득했다. 디트로이트로 이주한 배경에는 이러한 이유도 포함됐을까?
사실 음악적인 이유는 거의 없었다. 보편적인 미국의 대학생처럼 졸업 이후 어머니의 품으로 되돌아 갔을 뿐이다. 당시에 우리 가족은 시카고에서 디트로이트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캔자스시티에서 학교를 마치고선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오히려 내가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차라리 조각을 전공했기 때문에 정비소에서 일했을지도 모른다. 하하. 조각을 전공하면 용접 정도는 할 수 있으니. 캔자스시티에선 레코드 숍을 자주 방문하곤 했는데, 디트로이트에도 그렇게 멋진 레코드 숍과 음악적 움직임이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 했다. 그때는 큰 도시라면 당연히 최고의 레코드 숍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디트로이트와 시카고, 뉴욕과 캔자스시티 정도에 그런 공간이 있었다. 솔직하게 밝히자면 내 컬렉션의 8할은 캔자스시티에서 쌓은 거다. 돈이 없던 대학생 시절 하루에 하나씩 레코드를 샀다. 레게부터 재즈까지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사 모았으니.
이번에도 긴 여정에도 타협 없이 무거운 바이닐 가방을 끌고 왔다고. 언제나 힘든 월드 투어 일정에도 바이닐이라는 매체를 선택하는 이유는?
얼마 전에 나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전설적인 디제이의 부탁으로 턴테이블이 아니라 USB 셋을 플레이 한 적이 있다. 파티 자체는 괜찮았지만, CDJ 셋을 진행한 내 자신에겐 불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만약 턴테이블이 있었다면 훨씬 더 좋은 파티가 될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모든 투어마다 바이닐 셋을 고수하는 중이다. 물론 여전히 USB 안에도 좋은 트랙이 많지만, 그럼에도 디제잉의 기반은 바이닐이 되어야 한다. 디트로이트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여전히 디트로이트 출신 디제이의 85% 정도는 바이닐 플레이어다.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디트로이트 DJ들은 바이닐로 엄청난 스킬과 기교를 부릴 수 있다. 이는 기술적인 이유와 별개로 그것이 디트로이트의 유산이자 전통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과 바이닐을 둘러싼 산업적 측면 때문에 내가 디제잉을 시작했을 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 바이닐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매체였다. 4달러면 살 수 있던 바이닐의 가격이 지금은 5배가 올라 20달러가 되었다. 새로운 세대가 바이닐 신에 유입되려면 그들이 구매 가능한 선에서 가격이 형성되어야 한다. 여전히 댄스 플로어는 바이닐이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격이 안정화되고, 바이닐 공정이 되살아나고, 바이닐을 발매하는 레이블이 더 늘어야 할 시점이다.
정확하게는 달러 빈 레코드 ─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염가 바이닐 ─ 에 대한 접근 가능성이 늘어야 한다. 바이닐의 희귀성만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달러 바이닐을 기반으로 한 댄스 뮤직 신이 성장해야 한다. 이런 저렴한 바이닐들만 댄스 플로어에 흘러나오는 파티 또한 열리기를 바란다. 모두에게 음악적 수혜가 돌아가기 위해선 희귀성이나 가격에 대한 강박을 덜 필요가 있다. 작금의 바이닐 시장을 형성한 이들은 음악을 위한 사람들이 아니다. 나 스스로도 독자적인 바이닐 판매를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CDJ나 테이프, 혹은 릴 등의 다른 매체 역시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디제잉을 하나의 요리라고 볼 때, 앞서 언급한 매체들은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요리를 돋보이게 만드는 향신료 같은 존재인 셈이다. 오히려 에딧이나 리믹스처럼 바이닐로 릴리즈되지 않은 트랙에 한해서 테이프나 CDJ라는 매체가 빛을 발한다. CDJ나 테이프가 카이엔 페퍼나 피클 같은 요소라면, 바이닐은 하나의 요리를 지탱하는 탄수화물, 단백질, 무기질인 것이다. 내게 바이닐은 모든 음악적 요소의 기반이 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셋을 직접 들어보지 못한 팬들은 대부분 디트로이트 하우스, 테크노의 맥락을 예상할 테지만 실제로 당신의 셋은 그야말로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셋을 구성하는가?
모든 셋을 준비할 때마다 이전에 틀지 않았던 노래를 선곡하려 한다. 아니면 여태 플레이하기 겁냈던 음악을 틀어보려 노력한다. 도대체 어떤 흐름 속에서 배치할지 해법을 찾지 못한 트랙이야말로 나를 흥미롭게 한다. 만약 평소 자주 틀어서 익숙한 음악들로 셋을 채운다면, 나는 금세 지루해지고 말 것이다. 물론 셋을 듣는 이들이야 좋겠지만, 중요한 건 내가 싫증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트랙마다 어느 정도 교체 주기를 두는 편이다. 자주 틀던 곡도 몇 년간 묵혀둘 때가 있다. 어떤 곡은 짧게 틀고 바로 빼는 경우도 있다. 집에서 셋을 짤 때마다 최근에 튼 목록을 따로 빼는 섹션이 있을 정도다. 한 번 틀었으면 오랜 기간 손이 가지 않는다. 이번 내한의 경우에도 지난 내한 때 뭘 틀었는지 스스로 기억해서 최대한 겹치지 않게 준비했다. 가령 지난 셋에 담긴 재즈 트랙은 이번에는 아예 들고 오지 않았다. 언제나 새로운 음악에 굶주린 채, 여태 두려워했던 트랙을 틀어보는 태도라고 해야 하나. 그런 의미에서 나의 셋은 ‘콜 앤드 리스폰스(상호 연주)’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을 제작하는 방식을 묻고 싶다. 16년 전 유튜브 영상에서는 직접 디트로이트 공터를 돌아다니며 소리를 수집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 쉽게 싫증을 느낀다고 피력한 타 매체와의 인터뷰를 읽고 나니 당신의 트랙 메이킹 방식은 쉽사리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근래 들어 좀 더 전통적인 방법에 집중하고 있다. ‘The Unit’이라는 투어 작업을 통해 정말 엄청난 뮤지션들과 함께하게 됐다. 그들과 호흡하면서 아직 더 나은 뮤지션이 되기엔 준비가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최근에는 코드와 화성 등 전통적인 방식부터 다시 충실하자는 생각이다. 물론 학교에 다닐 때부터 수집해 온 다양한 소리들을 음악에 활용할 수 있겠지만, 그런 방식에는 정형화된 스킬이 필요하지 않은 작업이다. 오히려 시간을 얼마나 쏟는가에 대한 문제일 뿐이다. 정확하게는 시간을 쏟는 작업과 스킬이라는 측면, 두 분야를 얼마나 능숙하게 통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예를 들어 내가 전공했던 조각은 온전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디제잉은 시간을 들이는 것만큼이나 스킬이 필요한 작업이다. 프로듀싱은 앞선 두 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한다. 두 시간 내내 똑같은 레코드를 반복해서 듣고 되짚어가면서 흥미로운 요소를 발견하고, 다시 그 작업으로 돌아가 새로운 요소를 더해가거나 제거하는 방식. 어쩌면 내 음악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는 이유가 이것 때문일 것이다. 조형적이면서 동시에 음악적인 부분이 고루 담겨 있다.
당신의 레이블 사운드 시그니처(Sound Signature)는 마치 당신의 발자취처럼 거창하지 않지만 조용하고 단단한 음반을 릴리즈하며 동시대 다른 하우스 뮤지션, 아티스트, DJ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조금은 거창한 질문이지만 사운드 시그니처의 방향성이라고 하면 무엇인가?
명확한 지향점은 없다. 오히려 단순한 철칙만 있다. 내가 듣기에 좋은 음악이면 발매한다. 내가 만든 음악이건 다른 프로듀서가 만든 음악이건 동일하다. 사운드 시그니처의 출발은 내 작업물을 공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주변 이들도 멋진 작업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멋진 트랙을 낼 수만 있다면, 사운드 시그니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오히려 나와 함께하는 모든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레이블을 가지게 되는 날을 소망한다. 이곳은 그런 도약을 위한 좋은 우주선일 뿐이다. 하하.
열광적인 바이닐 컬렉터로서 오랜 시간 디깅에 매진해 왔는데, 지금도 여전히 이름 모를 레코드 숍에서 우연히 마주친 음반에 매력을 느끼는가? 모든 음악이 디지털화된 음원으로 발매되는 지금 이 시기에 당신에게 레코드 디깅이란 여전히 새로운 광석을 만나는 행위인가?
디깅이라는 행위는 ‘발견’이자 동시에 ‘경이로움’이다. 좋은 음반을 찾기 위해선 언제나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최근에 샀던 가장 인상 깊은 음반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A Love Supreme]의 두 번째 에디션이다. 이미 다른 버전으로 이 앨범을 갖고 있었지만, 오리지널 카피를 갖고 싶었다. 결국 디깅은 다이아몬드를 찾는 일이다.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선 오히려 무지의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야 한다.
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레코드 숍을 좋아한다. 새로운 레코드와의 조우는 종교나, 과학, 기술적인 분야에서도 쉽게 접하지 못하는 신기한 감정이다. 마치 디깅은 낚시와 같다. 매일 낚시 구멍을 들여다보면, 알아서 물고기가 미끼를 물기도 한다. “아 저기, 내가 기다리던 것이 있구나”하고 우연한 순간에 레코드 숍에서 내가 놓치고 있던 바이닐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내 인생을 바꿔줄 새로운 음악을 찾아 헤매고 있다.
때로는 누군가가 귀띔해 준 음반이나, 위시 리스트에 있는 음반만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위시 리스트를 참고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오히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앨범을 호기심 삼아 장바구니에 넣는 편이다. 레코드 숍에선 청취 코너가 중요하다. 낯선 음악이 내 삶에 어떻게 들어맞는지를 경험하는 지극히 사적인 순간을 제공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음반은 플레이에 도움이 될 수도, 어떤 음반은 내 유년을 자극할 수도, 어떤 음반은 삶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이 모여 인생을 바꾸는 것이다.
새로운 바이닐을 마주하는 것은 곧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는 것이다. 음악에 관한 방법론과 이론은 낯선 음악에서 시작한다. 나로선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음악적 시도를 바이닐에서 느낄 수 있다. 음악에는 기하학적 구조가 존재한다. 음악에 담긴 모든 파장은 인간의 한 측면을 형성하고, 반대로 인간이 새로운 파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파장을 감지하는 음악은 새로운 기하학적 구조를 형성한다. 그리고 음악과 인간이 만나는 과정에서 다시 새로운 기하학이 생성된다. 음악의 모든 구성 요소가 어떻게 조직되고 돌아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궤도가 탄생한다. 이런 음악적 기하학의 매커니즘은 마치 우주가 행성과 궤도를 형성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각 화성과 비트가 리듬과 템포와 교차되는 방식 그리고 디제이가 그 음악을 어떤 맥락에서 풀어내냐에 따라 같은 음악도 다른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다. 설령 교차의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충돌로 다가온다고 해도, 이런 부정적인 부분마저 다른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을 형성할 것이다. 따라서 부조화와 조화의 모든 지점이 중요하다. 설령 반목과 불화의 조합이 탄생했어도, 이는 그 음악과 공간을 새롭게 느낄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음악이 삶의 변화를 포착하기를 바라고 있다.
Editor │권혁인
Translator │최현수
Photographer │전솔지
Special Thanks to MODE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