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örper Hiking

언젠가 어느 건축가가 남긴 어떤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었다. ‘건축 정신은 양식을 알지 못하고, 기법을 알지 못하며,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자신이 드러내 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이 말은 필자의 생활 지변을 배회하게 되었음에 스스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렸다는 인상이 뇌리에 박혀 지울 수 없었다. 그것도 아주 의뭉스레 천천히 말이다. 목적이 수단이 됨과 동시에 수단이 목적이 되는 그것. 우리 디자이너들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바라고 성취했는가? 아니, 어디를 가리키며 왔느냐는 물음이 더 적절하겠다.

공교롭게도 디자인의 어원이 되는 데시그나게(Designare)에는 성취하다, 지시하다 등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선(善)으로 인해 억지로 노아의 방주에 타게 된 악(善)처럼, 디자인의 열망에 의해 의지와 상관없이 짝을 이루어 승선을 한 그것은 무엇일지. 퇴락되어 버린 상실과 호언으로 초조해진 나머지 우리는 그것을 망각했으며 이에 따라 필자 본인 또한 방주로부터 추방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그것을 발현하고 실천 중인 어느 디자이너를 만났다. 그는 양식과 기법, 방법 따위를 알고 있지만 알지 못했으며, 정렬을 원천 삼아 스스로 드러내고 있었다. 앞서 필자는 디자인의 어원에 대해 말했다. 팽창과 수축, 발산과 수렴을 무한히 반복하는 디자인 신(Scene)의 소용돌이에서 잠시 벗어나 디자이너 조용진이 가리키는 곳을 목도해보길. 그간 우리가 잃고 잊었던 무엇이 간절히 우리에 의해 드러나 기억되길 열망할 수도.


간단한 자기소개와 브랜드에 관한 소개를 부탁한다.

서울에서 쾨어퍼 하이킹 (Körper Hiking)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조용진이라 한다. 쾨어퍼 하이킹이란 이름은 몸을 뜻하는 독일어 쾨어퍼에서 착안했으며, 그 뒤에 붙는 하이킹은 직접 하이킹 문화를 즐기며 몸소 경험한 문화와 재료, 기술로부터 영감받아 가구를 제작하고 있기에 채택했다. 

어떤 가구를 제작하고 있나?

거시적으로 하이킹과 경량화, 분해와 조립이란 정체성을 기반으로 전개 중이다. 기본적인 가구로 테이블과 의자, 이렇게 두 종류가 있다. 현재는 의자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개발 중이다. 그 외 과거에는 스피커와 의류를 포함한 브랜드를 전개하려고 했지만, 브랜드의 방향성과 밀도를 위해 지금은 아카이브로만 남아 있다. 당시 습득하고 체득한 기술과 디테일을 간혹 가구에도 적용해 보는 식으로 아카이브와의 유기성을 유지하고 있다.

건축가라는 이력이 다른 이들에게는 다소 특이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부터 가구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가?

나에게 있어 건축가가 가구를 만드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건축가에게 가구는 구조를 실험할 수 있는 최적의 매체라고 생각할뿐더러 건축 설계와 가구 디자인은 동위 동질의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나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와 같은 선대의 건축가가 자신들의 공간에 어울리는 가구를 만든 것처럼. 그런 점에서 두 영역이 서로 유리된 영역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학부 시절에 처음 만들어본 입체가 가구라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 같다.

하이엔드나 기능주의를 위시한 가구 브랜드는 많지만, 특정 콘셉트를 기반으로 특히 하이킹을 기반한 가구는 전무한 것 같다. 하이킹과 관련된 브랜드 정체성을 둘러싼 경험과 디자인 과정이 궁금하다.

친구 중 울트라 라이트 하이킹(Ultralight Hiking)이라는 스타일의 하이킹을 하는 친구가 있다. 이는 매우 가벼운 짐을 최소화하여 멀고 높은 거리를 빠르게 가는 하이킹 세부 장르 중에 하나로, 하루는 이 친구와 함께 도마치재로 하이킹을 다녀왔고, 그때 하이킹에 매료됐다. 동아알루미늄(DAC) 사의 텐트폴부터 텐트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텐트를 보니 알루미늄의 텐트폴과 피막, 이렇게 두 가지의 간단한 결합이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걸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이처럼 야생이란 원시와 캠핑 기어란 하이테크 간의 대립 속에서 어떤 행위를 한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후 하이킹 장비를 면밀히 관찰한 결과,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즉각적이고 예측 불변한 야생 환경을 두고 사용자가 대응해야 하다 보니 어렵지 않으면서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체결되어야 하더라. 이 지점이 하이킹과 내 가구가 직접 결합하는 지점으로, 직관적인 단순 체결 방식을 핵심 디자인 정신으로 삼고 있다.

신체의 안락함과 쾌적함보다는 경량과 내구성을 동시에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음과 동시에 사용자의 경험과 감각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둘은 양비적인 목적으로 볼 수 있으나 쾨이퍼 하이킹은 동시에 이룩한 것 같다.

의자의 안락함과 쾌적함으로만 국한했을 때, 나는 너무 편한 의자를 만들고 싶지 않다. 이는 집중력과 관련 있다. 우리가 누워서 편한 자세로 가부좌나 기도를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장 같은 경우도 몸과 자세를 펴고 조정해 주기 위해 의도적인 불편함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의도적인 불편함이 가구의 영역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처음 만들었던 솔리드 알루미늄 의자(Stuhl 1)가 불편함의 영역이었다면 최근 선보인 다이니마 시트 의자(EARDRUM)는 편함의 영역인 것처럼, 쾨이퍼 하이킹은 현재 불편함과 편함 사이에 중용을 맞춰가는 단계라 생각한다. 이처럼 나는 사용자 편에서 디자인하려는 편이다.

이와 관련해 사용자 친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종종 벤츠(Mercedes-Benz) 사의 지바겐(G-Wagen)이란 모델의 도어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바겐이라는 차는 차체가 워낙 육중하다 보니 문체도 무거운 편이라 문을 세게 닫아야 한다. 이를 위해 몇 단계에 걸친 ‘철커덕’ 소리의 설계 통해 사용자는 문 개폐 여부를 소리에 따라 교육하고 학습하도록 유도한다더라. 이를 두고 어떤 도구가 감각을 통해 사용자에게 반응해 상호작용 한다는 점에 매료됐다.

이를 바탕으로 내 가구를 일종의 악기로 접근하게 되었다. 리가(LIGA) 테이블의 경우, 결합 시 느슨해지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상판과 다리가 결합을 위해 끝까지 닫혔다는 것을 어떤 부품을 통해 소리로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디테일 부가 다이니마 케이블로 되어 있어 결합이 제대로 되면 빳빳해지는데 여기서 기타 같은 소리가 난다. 이는 도구에 대한 사용자의 애착을 높일 수 있는 부분이라 믿는다. 포르쉐 전기 자동차의 모든 물리 버튼이 햅틱 버튼으로 바뀌면서 사용자의 움직임에 진동으로 반응하도록 설계가 변경되었는데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 보면 될 것 같다.

각 아이템의 이름을 신체 기관과 관련해 짓고 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 그리고 이런 이름과 개념들이 작업에 직접적으로 개입이 되는지.

브랜드를 처음 계획하는 단계에서는 명명을 ‘Tisch 1’과 같은 독일어로 구상했다가 너무 헷갈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브랜드 이름 자체가 독일어로 몸이다 보니 신체와 관련한 이름을 짓게 되었고, 오히려 이제는 이 명명과 관련한 신체 명칭이 브랜드와 디자인에 영향을 주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령 의자인 이어드럼(EARDRUM)의 다이니마 등받이 형태는 요골과 척골이라 불리는 뼈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처럼 명명이 선행된 후 작업을 하다 보니 실제로 영향을 받게 된 격으로 서로 다른 두 길이 합쳐지는 것 같아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느껴진다.

작업실을 둘러보면 프로토타입에 대한 시행착오의 흔적이 많다. 이런 시험 과정을 유달리 중요하게 여기고 많은 공을 들이는 공정처럼 보인다.

내 가구는 형태 자체보다는 구조적이고 역학적인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해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내 고유의 독자적 구조와 디테일을 구축해 나가려 한다. 다만 그것이 선례나 레퍼런스 없이 개발되고 있는 터라 내 개념과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프로토타이핑은 자연스러움과 동시에 필수적인 과정의 일부이다. 구체적으로 알루미늄의 압축력과 다이니마의 인장력이란 힘과 재료의 제약만으로 의자를 만들었다. 두 재료의 결합과 재료가 지닌 저항력의 속성을 시스템화한 사례가 없었기에 스스로 개발하고 실험해야 했다. 이를 위해 반복적인 프로토타이핑은 필수였다. 개인적으로 목업, 샘플과 달리 프로토타입은 개념을 실험하는 뉘앙스가 강하다. 따라서 제약 속에서 일해야 하는 디자이너에게 프로토타이핑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어야 한다고 본다.

재료와 하중에 대한 이야기를 두고 혹자는 이런 고민과 실험이 오버 스펙이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막대한 하중을 받는 건축과 달리 100kg 이하의 하중을 갖고 있는 인간을 두고 굳이 이런 고찰을 안 해도 안정적이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가구 자체가 어떤 큰 스케일의 것(건축)을 도모하기 위한 그 자체로서 프로토타입일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구를 사용하기도 하고, 가구가 부서지는 경우가 흔치 않다 보니 그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다. 때문에 쉽게 간과하는 점 역시 있다. 하중과 구조에 대한 레시피가 있어 구조 계산이 수월한 건축과 달리, 다양한 사람들의 하중과 습관, 체형, 무게 중심 등의 고려 사항들을 반영해야 하는 가구에서의 구조 계산은 더 복잡하고 섬세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중이 70kg인 사람이 국소적으로 힘을 주어 갑자기 내려앉는다면 그곳이 받은 하중은 70kg 이상이다. 입체적인 실험이 선행되지 않고, 오버 스펙이 되지 않으면 가구는 무조건 무너지게 된다. 한편, 이렇게 가구에서 개발 적용한 재료적 역학적 시스템과 디테일을 건축으로까지 확장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면, 맞다. 현재 작은 오두막을 짓는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인데, 가구를 만들면서 구축한 재료적-역학적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최근 봉제기까지 구입해 페브릭 가공까지 직접 진행한다고 들었다. 이러한 가내수공업의 형태의 제작 공정이 작업에 직접 영향을 주었는가?

확실히 도움 된다. 사실 도움이 되냐 안 되냐 여부를 떠나 경제적인 이유로 혼자 직접 진행하는 바가 크다. 외주를 맡긴다는 것 자체가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행위이다. 작업자 또한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프로토타이핑에 대한 비용은 꽤 큰 편이다. 더불어 굉장한 불확실성 속에서 해답을 찾는 과정의 연속이라, 비용을 지불해 타인에게 맡기는 것보다 이 단계만큼은 내가 직접 수행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싶다. 브랜드가 커져 양산해야 하는 시점이 오더라도 실험하고 개발하는 단계만큼은 인하우스로 직접 수행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를 두고 어디까지 제작에 관여해야 하는 게 적합한지에 대해 고민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은 본인이 사소한 제작까지 직접 관여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디까지가 디자이너의 소관일까.

결과물을 포함한 모든 과정이 디자이너의 소관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결과물이 나온 이후에도. 어떤 사물이나 건축이 버려지고 폐기되기 전까지 디자인에 대한 책임은 계속 디자이너에게 있기에 디자이너는 전 과정을 면밀히 검토하고 감리해야 한다.

주변 창작자와의 협업에 열려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무슨 기준으로 선별하고 어떤 과정으로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알고

상황에 의해 협업을 진행하지 못한 경우도 몇 번 있었지만, 운 좋게도 지금까지 협업을 진행했던, 그리고 고려했던 이들 모두 내가 좋아하는 창작자였다. 브랜딩을 맡아준 어플리카(ap.pli.ca)부터 케블라 행거를 개발한 홍승은까지. 앞으로 협업에 있어 기준을 세운다면, 쾨어퍼 하이킹에 대한 깊은 이해, 직관적인 매력, 광기 이렇게 세 가지 정도인 것 같다. 여기서 광기란 뭔가를 완성하기 위한 집착으로 나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협업자의 색을 넣으며 완성하는 이상적 과정을 쟁취하기 집착 어린 모습이라 말할 수 있겠다.  

주의 영역인 건축과 가구를 넘어, 의와 식의 영역으로 확장을 계획 중인 것 같은데.

이를 말하기 위해서는 나의 졸업 작품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해빗(Habit), 해빗투스(Habitus), 해비테트(Habitat)’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수도승의 옷과 빵, 집을 만들었다. 해빗은 의, 해빗투스는 매일 반복하는 습관으로써 빵을 만드는 행위, 해비테트를 주로 상정하여 의식주라는 개념을 연결했다. 당시 이 개념은 물론 결과물이 서로 따로 논다는 느낌을 받았다. 쾨어퍼 하이킹은 그 대상이 수도승에서 하이커로 옮겨졌을 뿐이다. 이제는 개념의 당위성도 생긴 것은 물론 경량 의식주에 대한 내러티브가 생기게 되었다. 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곁들면, 하이커의 음식은 가벼워야 하기에 함수율이 결정적이라 생각한다. 동결 건조 식품이나 전투 식량 같은 것. 그래서 앞서 말한 오두막이 완공되면 그 앞에서 밀을 재배해 경량 식품에 대한 여러 도전을 해볼 생각이다. 여담이지만 일상이란 의미의 Quotidien은 로마 병사들의 군량 빵의 Quota와 어원을 공유한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캄빠뉴(Campagne)와 동료를 뜻하는 Companion은 발음도 비슷해 빵은 음식을 타인과 나눠 먹는 인간 고유의 식문화와 들어맞더라.

이야기를 들으니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건축함은 본래 거주함, 다시 말해 건축의 본질은 거주함에 있다”는 말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식주의 개념이 보호의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쉽게 말하자면 빵을 먹으면 피부가 되어 우리 몸을 보호해 주는 첫 번째 껍질이 되고, 옷은 그다음의 껍질이 되어 기후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해 주고, 건축은 환경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껍질이 되고 있다는 바를 느낀다. 내장재와 구조, 외장재는 건축의 껍질이 되고 이를 계속해서 확장하면 집에서 도시, 국가, 지구, 우주의 관점으로까지 껍질이 확장될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옷과 건축이 방패의 뜻을 지닌 ‘scield’란 어원을 공유하는 것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를 두고 마음의 축소와 확장을 주창한 동양 사상 중 유기체적 자연관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다. 실제로 모교의 당시 교수진들은 미국 히피 세대를 직접 경험한 이들로, 선불교의 선각자로 알려진 스즈키 다이세츠(Suzuki Daisetsu)의 사상에 경도된 이들이 많았다. 학부 시절 이들을 사사하며 쫓은 이들의 뿌리와 근간인 선불교에 관해 공부한 바가 이처럼 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모교인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이하 리즈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미국에서 수학한 건축과 유학 생활이 어떤 식으로 창작에 발현이 되거나 영향을 주었는지.

스스로 리즈디가 키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모든 걸 보고 배웠고 지금 하는 일 역시 미국에서 배운 건축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손으로 만들고 생각하는 것의 정수를 배웠다. 여타 학교들의 학풍과 비교했을 때 손으로 만드는 것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많은 교수님께서 손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시작을 촉발하는 매체임을 강조하셨고, 개개인의 손이 다 다르듯 각자의 생각을 발현하고 스타일을 구축하기에는 손만큼 독창적이며 아날로그적인 매체는 없다는 걸 느끼게끔 지도하셨다. 나아가 가벼움과 단순함에 대한 접근을 비롯해 평온과 몰입의 개념 등 건축을 둘러싼 모든 개념과 정신 모두 학교에서 배웠다.

앞서 말했듯 당시 리즈디의 건축 커리큘럼은 선불교 교리를 토대로 구성됐는데, 이를 잘 보여준 일화가 있다. ‘나무와 돌’에 대한 수업의 일환으로 나무와 돌을 결합한 조형물을 만들어 오라는 과제를 줬다. 학생들이 무겁게 들고 온 결과물을 책상 위로 올리자, 교수님은 언짢은 채 책상을 밖으로 치워 과제물을 전부 바닥에 내려놓으라 했다. ​​”어쩌면 너희들은 본인의 작업물을 너무 아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내가 해온 작업물을 처절하고 냉담하게 바닥에 내팽개치고 봐야 할 때가 있다. 예쁘게 만들고 대하려고 하는 순간 형태에 갇히게 되고 작품에 내재한 정말 중요한 정신을 잃어버리게 되니 그냥 땅에 둬라”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이는 ‘살불살조’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난 의자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아무것도 아닌 듯 보면서 다시 시작하려 한다.

당신은 사전 인터뷰에서 도그마(Dogma) 와 같은 건축가나 고든 머레이(Gordon Murray)와 같은 디자이너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이를 비추어 볼 때 조용진 개인이 쾨어퍼 하이킹의 정체성에 투영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개인과 브랜드의 분리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나 자신과 브랜드는 동일하다고 생각하는데, 외형적으로 동일하게 보이지 않는지 이런저런 오해가 생기는 듯하다. 내가 대외적인 노출 없다 보니 쾨어퍼 하이킹 전시에서 나란 존재를 처음 본 이들이 제법 있는 편인데, 종종 그들로부터 내가 외국인이거나 지독한 힙스터일 줄 알았다는 피드백을 듣곤 한다. 내가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나란 개인을 통해 브랜드가 별로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세계관과 개념만으로도 충분히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도그마나 고든 머레이 또한 개인의 정신과 디자인의 정신은 같을 수 있지만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시작과 끝을 동시에 생각해 보자. 이 브랜드의 종착지 또는 끝에는 어떤 모습으로 막을 내릴지 상상했을 때,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그것이 브랜드 구상 단계에서 상상한 것과 얼마나 같고 다른지가 궁금하다.

나는 끝을 예상할 수 있는 걸 최대한 지양하는 편이다. 성격상 예측이 절대 불가한 상태로 진입하는 것을 즐기는 탓에 브랜드의 끝을 상정하거나 계획하진 않았다. 재작년 N/A에서 개인전을 했을 때 이와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은 같다. 결국 이 브랜드는 어찌 됐든 축소의 상태로 진입할 거라 믿는다. 그래야 더 가볍고 단순해지는 법이니 말이다. 지금 상태에서는 브랜드와 가구를 설명하려면 한 권의 카탈로그가 필요한 것과 달리, 나중에 끝에서는 한 문장으로 끝이 났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

많은 업계 종사자가 고민하는 생계와 관련한 질문이다. 안정적인 임금이 수입인 아틀리에 소속의 건축가에서 벗어나 작가로서 개인 브랜드 운영을 결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디자이너 개인마다 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다 다를 것 같다. 나의 경우 프리랜서 건축가로서 아틀리에로부터 프리랜싱을 한다, 작년에는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 보조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수입을 충당하기도 했다. 사실 지금 단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 회사에 다니며 매달 월급을 받을 때는 몰랐지만, 내 비즈니스를 해보니 한 번에 큰 수입이 생기는 만큼 제품 생산에 투입이 되는 지출도 한 번에 크게 나가더라. 하지만 평균적으로 본다면 회사에 다녔을 때와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수입이 생겨도 기술특허와 같이 계속해 투자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 어떤 부분에선 적자가 있기도 하다. 

앞서 말한 서울도시건축 비엔날레의 보조 큐레이터로 활동한 이력 또한 독특하게 다가온다. 이는 관 주관의 대형 전시와 개인 주관의 소형 영세 전시에 모두 참여했기 때문일 텐데, 이러한 경험과 이력이 브랜드 방향성과 전개에 영향을 미치고 있나.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관급의 큰 행사이긴 했으나 내가 거기서 대단한 걸 기획하는 직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쾨어퍼 하이킹로서의 전시나 브랜드와 관련해 배운 바는 크게 없다. 외국 작가들과 시공사 사이의 통역과 토목에 대한 시공과 감리를 본 업무가 대부분이라 새벽부터 시작된 비엔날레 업무가 끝나고 작업실로 돌아가 가구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힘들었다. 그것과 별개로 배운 게 있다면 물성에 대해 몸으로 배웠다. 내가 아무리 섬세하고 정확한 토목 도면을 그려도 현장에 가면 항상 오차가 생기더라. 알루미늄도 마찬가지로 아무리 신경 써도 파이프 두께의 오차로 인해 발생하는 오류는 부지기수라는 점에서 재료의 물성이 지닌 현실적인 한계에 대해 반추하는 시간이었다.

잠깐 쉬어가는 질문으로, 혹시 최근에 많이 듣고 있는 앨범이나 아티스트가 있다면 궁금하다.

아티스트 단위로는 더 프로디지(The Prodigy)와 버디 가이(Buddy Guy)를 많이 듣는다. 앨범의 관점으로 본다면 조한 조한슨(Johann Johannsson)의 [Orphee]와 글렌 굴드(Glenn Gould)의 [BACH: The Goldberg Variation]을 자주 듣고 있다.  

필자와의 사담에서 제일 많이 언급되는 인물은 아마 장 푸르베(Jean Prouvé)와 발레리오 올지아티(Valerio Olgiati), 피터 줌터(Peter Zumthor)일 것이다. 세 건축가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국적을 불문하고 우리는 현재 올지아티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그의 저서 “비참조적 건축”을 보면 숫자 1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하나의 아이디어와 디자인에 집중하는 태도에 굉장히 동의하는 바다. 결국 브랜드란 각각의 요소들이 아닌 하나의 통합체여야 하니까. 나는 장 푸르베를 괴인이라 여기는데 본인이 직접 개소한 워크숍에서 발휘한 장인 정신을 건축의 스케일로 키웠다는 점이 그러하다. 나 또한 언젠가 자체 생산과 수급이 가능한 워크숍을 갖추고 싶다는 생각은 장 푸르베로부터 온 것이다. 더불어 그의 스탠다드 체어(Standard Chair)를 보며 간단한 분해와 조립, 그리고 거기에 함축된 정신을 보며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편, 줌터는 손을 중시하는 인물로 그의 작품은 유독 감동을 준다. 그 또한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무수히 많은 모형을 만들게 하며 손으로 모든 공정을 테스트하고 이끌며 손이 지닌 힘을 극한으로 끌어내는 사람이라 그의 이러한 정신에 몹시 공감하는 편이다.

최근 디깅하고 있는 게 있다면?

우연히 ‘사일런트 힐(Silent Hill)’이라는 게임의 OST를 들어본 것이 계기가 되어 공포 영화 혹은 공포 게임에 관한 자료를 주로 찾아보고 있다. 이전까지 공포와 관련된 콘텐츠라 하면 깜짝 놀라 도파민을 폭발시키는 일종의 놀이기구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위 게임은 음악이 너무 평온한 나머지 명상하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공포란 사람을 자극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반대로 진정시키는 효과도 알게 되어 흥미롭다. 비슷한 맥락일지는 모르겠지만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의 뮤직비디오를 맡은 크리스 커닝햄(Chris Cunningham)의 호러스러운 연출이 알 수 없는 평온함을 주는 것과 결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위 콘텐츠들이 자아내는 공포는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몰입감을 주는 것 같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 정교하게 짜인 프로덕션과 연출은 굉장히 예술적이라 생각해 요즘은 이에 대해 연구해 보려 한다.

디제이에게 디깅이란 음악적 깊이와 시야를 넓게 하는, 하나의 덕목으로 여겨지고, 희소성 역시 중요한 가치라고 인식된다. 이와 달리 시각-공간 예술의 경우 디깅에 의해 오리지널리티가 훼손된다는 부정적 견해가 있다는 점에서 대비를 이룬다고 느낀다. 핀터레스트(Pinterest)란 무작위한 레퍼런스가 우리를 덮친 지금, 디자인 신에 있어 디깅을 둘러싼 당신의 견해는?

나 또한 처음에는 디깅 또는 레퍼런스 디깅에 대해 몹시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입장의 변화가 생기는 일이 있었다. 종종 가구에 대한 자문과 조언을 구하러 mk2의 이종명 대표님을 찾아가곤 하는데, 그분께 같은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다. 이를 두고 그분께서 조언하시길 이미지로 레퍼런스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체결 방식과 그것에 담긴 정신, 제작 공정 등을 둘러싼 개념을 분석하면 그것은 더 이상 레퍼런스가 아닌 리서치가 된다고 하셨다. 이에 대해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리서치로서의 디깅은 바람직하다는 생각으로 바꿨다. 하지만 여전히 이미지 짜깁기를 위한 디깅과 레퍼런스 습득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를 두고 현재 디자인 신의 통용되는 접근과는 대비되는 대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이미지 중심의 반이성주의와 비논리의 것이 난무함에 따라 장인 정신이 절하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원대한 질문일 수 있으나 동시대에 진지함 또는 장인 정신이라 불리는 것들이 유효할 수 있는지, 또한 소비자는 이에 대해 이해와 존중을 하는 눈을 가질 수 있을 거라 보는가?

우선 나는 이런 담론과 정신을 의식하면서 만들지는 않는다. 심지어 사람들이 어떤 진지함이나 장인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내 가구를 소비하는 이들 중 새로운 디테일이나 내가 고수하는 진지함과 무관하게 단순 이미지 때문에 구매한 이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 오로지 소비자의 몫이기 때문에 개의치 않으려 한다. 망각하지 말아야 할 건 역사적으로 언제나 이미지 중심의 소비 경향은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장인 정신은 시대 불문하게 유효하다.

따라서 이 둘의 균형이 중요한데, 브랜드에 잘 만들어진 제품만큼 이를 둘러싼 근사한 시각화는 필수적이겠다. 다시 말해 장인 정신을 갖고 만들되 이를 둘러싼 브랜딩을 좀 더 감각적으로 접근하는 게 좋겠다. 이를 두고 포스트아카이브팩션(Post Archive Faction, 이하 파프)을 사례로 들고 싶다. 파프에게 옷에 있어 완성도와 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임동준 대표의 인터뷰를 접한 후 그들의 쇼룸에서 옷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들은 잘 만들고 잘 보여줬다. 이러한 이유로 브랜드 초반부터 혼자 전담했던 브랜딩을 올해 어플리카에게 믿고 맡긴 것도 있다. 하지만 이를 굳이 이분화해 중요도를 따지자면 나에게 있어 장인 정신이라 일컫는 완성도가 더 중요하다.

과거 사담 중 ‘누구한테 영향을 받고 싶지도 않고, 영향을 주고 싶지도 않다’고 이야기했던 게 기억에 오래 남는다.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앞서 말한 고든 머레이부터 파프까지,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느낀 바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정신이라도 갖고 있지 않으면 내가 없어질 것 같다는 우려에서 한 말이다. 요즘은 디자이너와 작가가 서로 너무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원치 않아도 서로에 대해 접하고 노출되곤 하는데, 나는 이러한 영향에서 벗어난 채 폐쇄적인 디자이너로 살고 싶다는 일종의 선언이라 보면 될 것 같다.

한국의 경우, 가구 소비와 수집에 대한 장벽이 그 어느 분야보다 높다는 인상을 받는다. ‘부자들의 취미’, ‘수집 문화의 끝판왕’ 등의 수식어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그러다 보니 유럽과 달리 가구에 대한 조예와 관심이 일상적이지는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의외일 수 있으나 나는 현재 한국 가구 시장의 소비 형태나 패턴에 대해 긍정적이다. 이는 사람들이 자기 공간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집은 서양과 달리 투자 자산으로서의 인식이 지배적이라 집이란 공간을 두고 애정이 깊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가구를 구입함으로써 공간에 대한 점유를 경제적으로 이룰 수 있고 공간으로 자신을 들어내는 최소한의 방식이 되기 때문에, 가구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 같다. 최근 5년 사이 빈티지 또는 디자이너 가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현상은 아니다.

이런 논의를 종합했을 때, 가구도 패션처럼 하나의 기호 또는 취향이 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좋아하는 것들을 다양하게 선택하고 다시 추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집산한 게 취향이라 생각한다. 가구 시장의 규모와 다양성이 확장됨에 따라, 이제 한국에 여러 나라의 디자이너 가구가 들어오고 찾는 이들도 많아지다 보니 가구에 대한 취향이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특히 의자가 그 사람의 취향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 같다. 나의 경우만 보더라도 당대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접목된 도전 정신 깃든 의자를 좋아하는 동시에 장식을 싫어하다 보니 형태가 단순하고 구조가 선명한 의자들을 선호하는 취향을 지니고 있다.

지금 이 시대, 제작자만 아는 디테일을 추구할 필요가 있을지. 또한, 어디까지를 디테일의 영역으로 볼 수 있을까?

가구에서의 좋은 디테일이란 가구가 어떤 식으로 결합되어 있는지 감추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사용자는 디테일을 몰라야 한다. 내 가구는 조립식이니 그 디테일이라 부르는 요소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다만, 이 정신을 추구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 중이긴 하다. 리가 테이블을 예시로, 딸깍 소리가 나는 부품을 수정해 악기처럼 괜찮은 소리를 낼 수 있게 한다든지 피스로 고정된 등받이 부분을 피스 없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개선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 정도의 미스터리한 디테일만 성취해도 성공적이다.

쾨어퍼 하이킹의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리가 시리즈나 이어드럼 시리즈를 지금처럼 계속 개선하고 보완하는 식의 업그레이드 시키지 않을까 싶다. 이미 가구를 구입한 이들이 업데이트된 디테일이나 구조로 변경할 수 있도록 디테일 간의 호환성과 범용성을 증대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 같다. 더불어 앞서 말한 오두막을 비롯해 공간과 가구가 결합하는 프로젝트 등 몇 개의 공간 단위의 프로젝트들 또한 진행될 예정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의 행보가 개선일지 확장일지 궁금하다.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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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서재덕
Photographer | extrasmall
Planterior | S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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