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ey Badger Records

허니배저(Honey Badger), 우리말로 ‘벌꿀오소리’는 자연계에서 가장 대담하고 끈질긴 생명체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벌집을 무너뜨려 꿀을 탐하면서도 꿀벌 떼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독사에게 물려도 버티며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상징. 이는 한국 전자음악 신(scene)에서 10년 동안 묵묵히 길을 개척해 온 허니배저 레코드(Honey Badger Records)와 닮은 구석이 많다.

2014년, 레이블의 파운더 JNS의 개인 EP 발매를 계기로 시작된 허니배저 레코드. 어언 발족으로부터 10년에 이르렀지만, 그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먼 전자음악의 세계에서 꾸준함이란 마치 꿀벌 떼와 독사의 위협 속에서도 나아가는 벌꿀오소리의 여정과도 같았으리라. 변화무쌍한 음악 신의 흐름과 트렌드에도 흔들리지 않고도 자신만의 길을 걷는 모습, 그리고 음악과 비주얼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멈추지 않았던 도전 정신은 허니배저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하는 허니배저 레코드를 이끄는 수장 JNS와의 대화다. 벌꿀오소리처럼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중인 허니배저 레코드의 이야기와 한국 전자음악 신의 표준을 목표로 이어진 10년간의 여정, 그리고 그들만의 음악적 철학과 미래에 대한 고민 등을 살필 기회다.


허니배저 레코드의 설립 배경과 초기 목표에 관하여 알려달라.

2014년에 내 EP [Overly Vivid]를 처음 발매할 때 내 EP를 발매할 레이블을 찾아보았다. 당시 몇 군데의 일렉트로닉 음악 레이블이 존재했는데, 내 음악과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하였고, 또 앞으로 내 음악과 비슷한 결을 지닌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해보면 어떨까 하여 레이블을 만들게 되었다. 시작 당시의 목표도 내 음악과 비슷한 결을 지닌 친구들을 모으는 것이었고.

그렇게 10년 동안 레이블을 운영해 왔는데, 레이블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

책임감이 가장 큰 것 같다. 조금 계산적인 이야기지만, 레이블을 운영해서 얻어지는 게 많이 없다.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도출되는 것들은 매우 적어서 10년 동안 운영하면서도 중간중간에 레이블을 ‘지속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그래도 주변에서 해주는 얘기도 있고, 또 나처럼 전형적인 일렉트로닉 음악 레이블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장기적으로 운영하는 레이블은 국내에 없으니까, 조금씩 책임감이 가해졌다.

또 낯간지럽지만 한국 음악 신에 이바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허니배저 레코드와 같은 레이블이 한국 음악 신에 계속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10년을 돌이켜 볼 때 시작과 지금에서 느끼는 대비가 있나? 당신 개인적인 생각이나 음악 신의 흐름 등.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운영을 하다 보니까 분명히 방향이 조금씩은 변화했던 것은 맞다. 레이블의 방향과 변화가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전 세계 일렉트로닉 음악 신의 트렌드에 맞춰 변해가고 있나 라는 생각에서 고민도 많았는데, 그 고민에 10년이라는 시간이 더해지니까 레이블은 그냥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 같더라고.

예를 들면 최근 몇 년은 프로그래시브(progressive)한 하우스, 트랜스가 유행을 했다면 또 그전에는 로파이 하우스가 유행을 하면서 마치 그러한 노래들밖에 없는 것처럼 전자음악 신이 형성되었는데, 또 지금은 그러한 스타일을 구사하던 뮤지션들도 다른 음악을 만들고 있고 그 음악을 사람들이 더 이상 많이 소비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음악들이 일렉트로닉 음악 신에서 유행할 때는 두 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너무 유행을 생각하나?’ 또 반대로는 ‘이걸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나?’ 그런데 이러한 생각들이 무색하게 시간이 지나고 들어보니 레이블은 그냥 한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이라고 생각되는 거다. 내가 고민을 많이 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본능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 찾아서 발매를 한 거니까 방향이 크게 달라진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레이블 초창기에 글로벌한 트렌드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다. 하나의 장르를 고집하는 레이블들도 있지만, 나는 레이블을 시작할 때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고자 했다. 그 방향성이 지금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중이고.

허니배저의 음악적 미학과 방향성에 관하여 조금 더 구체적으로 좁혀서 설명해 줄 수 있나? 막연하게 전자음악을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발매해온 것은 아니지 않나?

전자음악 중에서도 클럽 신을 고려한 음악을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 근데 또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반감을 가지는 펑셔널한 음악, 그러니까 기능적인 음악은 지양하려고 했다. 그래서 전자음악적으로 독창적이면서도 창의적이지만, 댄스 플로어를 항상 고려한다. 함께 하는 동료들과 논의할 때도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댄스 플로어를 고려하면 상황과 시간, 장소 등에 따라 엄청 다양한 음악이 탄생할 수도 있다만, 허니배저는 기본적인 댄스 플로어를 생각한 전자음악을 하려고 했다.

허니배저의 통일성은 음악뿐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강조되고 있다. 이는 레이블의 정체성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허니배저는 처음부터 독창적인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기보다는, 오래된 해외 레이블들을 참고해왔다. 특히 그들이 앨범 카탈로그를 정리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방식에 영감을 받아, 우리도 이를 적용하려 했다. 초기에 몇 장의 앨범이 나왔을 때는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디자인적 정리가 중요하겠더라.

뮤지션 입장에서는 앨범이 더 독특하고 눈에 띄길 원하여 새로운 시도를 요청하기도 했는데, 레이블의 기본적인 디자인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처음에는 이런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점차 사람들이 외국 레이블들의 사례를 통해 학습하면서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더라고.

아무튼 우리는 기본적인 포맷을 유지하면서도 색상 변경 등 세부적인 변화를 주었고 통일성을 유지했다. 또한 디자인 작업은 주로 한 디자이너가 꾸준히 맡았으며 컴필레이션은 새로운 시도를 위해 다른 디자이너와 협업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일관된 디자인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디자이너와도 오래 함께하고 있을 것 같은데.

EP의 디자이너는 그 당시에 여자친구였었고 지금은 내 아내다. 로고와 디자인을 초반부터 도와줬었고 컴필레이션의 디자인은 번킴(Burn Kim)이라고 또 다른 디자이너인데 친한 형에게 소개를 받아서 함께하는 중이다. 그 또한 클럽 문화를 좋아하여 얘기를 많이 나누다가 부탁을 하게 됐다. 또 번킴도 영국에서 공부를 하였고 나도 영국에 있었어서 공통적으로 선호하는 레퍼런스가 많아서 합이 잘 맞다.

10년 동안 신에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신의 발전에 영향을 주거나 그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게 될 것 같은데, 허니배저는 현재 음악 신에서 어떤 역할을 자처하고 있나?

전자음악 신은 DJ 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DJ가 반드시 프로듀싱을 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나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트랙들이 해외에서 플레이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해외에서 플레이되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뮤지션들끼리 서로 공유하고 이 음악이 국내에서 플레이되고 퍼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과거에는 이런 생각이 보편적이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 뮤지션들이 외국 레이블에서 발매하거나, DJ 활동을 하다가 프로듀싱을 시작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나는 프로듀서들이 중심이 되는 전자음악을 만들고 릴리즈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주고 싶다. 이는 단순히 싱어나 래퍼를 위한 프로듀싱이 아니라, 곡 자체로서 독립적인 가치를 지니는, 프로듀서 중심의 음악을 제시하는 선례다. 하지만 이런 선례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사람들이 내 레이블을 보고 “정말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의 취향은 다양하기 때문에 레이블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 딜레마를 겪는다. 예를 들어 현재 테크노가 유행하고 있지만, 허니배저 레코드는 주로 하우스 기반 음악을 릴리즈하고 있다. 따라서 갑자기 테크노를 시도할 수는 없다. 허니배저 레코드의 고유한 스타일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만, 대중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내가 아는 테크노가 아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레이블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의 기대와 조화를 이루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해외 레이블에서는 일관된 결은 유지하되 서브 레이블을 설립하여 서브 장르를 파생시키기도 하더라. 허니배저는 그러한 생각을 해보진 않았나?

서브 레이블 설립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봤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왜냐하면 지금 레이블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이미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결이 다른 뮤지션들과도 협업할 여지가 있으니까. 하지만 레이블의 정체성과 핵심적인 방향성이 변해서는 안 된다. 무분별하게 모든 스타일을 수용하면 레이블의 정체성이 흐려지고 비빔밥처럼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새로운 시도나 협업하고 싶은 뮤지션들이 있을 때 서브 레이블 설립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기존 레이블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스타일이나 실험적인 작업을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앞으로도 이런 가능성을 계속 고민해봐야겠지.

레이블의 식구를 점차 늘려갔다. 허니배저의 식구가 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영입 기준은 간단하다. 프로듀서여야 한다. 또한 기존에 발매된 음악이나 데모를 듣고 그 음악이 레이블에 어울리거나 새로운 작업물이 레이블의 방향성과 맞는다고 판단되면 함께 작업한다. 그 외에는 특별한 조건이 없다. 나와 개인적으로 술을 많이 마셨다거나, DJ로 함께 활동했던 경험이 있어도 영입 기준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음악적 결이 맞는 프로듀서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나이, 성별 같은 개인적 배경도 고려하지 않는다.

레이블의 EP 및 앨범을 릴리즈할 때 레이블의 파운더로서 멤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는지, 혹은 조율하는 과정은 어떠한가?

릴리즈 과정에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작업에 대한 열정과 욕심으로 인해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이를 조율할 때는 수용할 부분은 수용하고 필요한 경우 설득을 통해 방향을 정리한다. 릴리즈에 대한 경험이 쌓인 만큼 뮤지션들에게 ‘이렇게 하면 더 효과적이고 나중에 봐도 옳은 선택’이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조율한다. 특히 앨범 구성, 발매 형태, 트랙 리스트 등에서 레이블의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설득을 통해 정리하고 경우에 따라 특정 트랙이 앨범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면 제외할 것을 권장하기도 한다.

밴드캠프 혹은 사운드클라우드 등의 플랫폼을 통하여 셀프 릴리즈로 활동한다거나 레이블 없이 발매하는 형태가 흔한데, 이러한 음악 시장 속에서 허니배저는 어떤 방식으로 아티스트들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나?

10년 동안 지속했다는 것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도 하며 어느 정도의 네임밸류도 생겼다고 본다. 레이블이 유지해온 일관성 덕분에 ‘이 레이블에서 나왔다면 이런 음악일 것이다’라는 기대감을 주며 이는 고정된 관념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레이블의 역할이기도 하다. 나도 소비자로서 좋아하는 레이블을 팔로우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뮤지션이 등장하면 자연스럽게 그 뮤지션의 다른 작업물까지 찾아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허니배저 레코드는 언더그라운드 신의 한정된 환경에서도 뮤지션들에게 음악을 알릴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그들이 더 많은 청중과 연결될 수 있는 가치를 만든다고 본다. 경제적 성공이나 대규모 팔로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음악적 연결성을 제공하는 것이 레이블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EP, LP, 그리고 컴필레이션 등 다양한 포맷으로 허니배저의 음악이 발매되어 왔는데, 이러한 릴리즈의 형태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우선 EP를 가장 선호한다. EP는 레이블 규모에 맞춰 가장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포맷이고 또 비용 대비 효율이 높다. 반면에 LP는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현재는 사람들이 LP를 많이 듣지 않아 큰 레이블이나 더 큰 프로모션을 통해 발매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한다. 실제 데이터로 봐도 EP가 더 효과적이다.

컴필레이션은 주로 이벤트성으로 발매해왔다. 초기에는 레이블 소속 뮤지션들과 게스트 뮤지션이 함께 작업하면서 게스트들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자 기획했다. 작업을 함께 하면 기존 관계와는 다르게 더 깊은 경험을 나눌 수도 있었다. 다만 이번 10주년 컴필레이션은 레이블 소속 8명의 뮤지션들만으로 진행했는데 기념적인 의미로 외부 게스트 없이 내부적으로 완성했다.

레귤러 뮤지션의 EP에는 리믹스 트랙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리믹스 트랙 작업 방식, 컨텍 기준 등이 궁금한데.

일단 뮤지션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뮤지션이 원하는 리믹스나 작업 방향 등의 의견을 나에게 전달하면 논의하여 레이블이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을 조율한다. 예를 들어 리믹스 작업을 위한 컨텍이나 LP 앨범의 커버 디자인과 같은 구체적인 사항에서도 뮤지션이 원하는 방향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한다. 레이블은 중간에서 조율 역할을 하며 뮤지션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방향성만 제안한다. 뮤지션이 가져온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지원하는 역할에만 충실하고자 하고 주도적이거나 강요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10년을 걸어왔다. 아직은 까마득하겠지만 20주년을 생각해본 적 있나?

20년 후는 정말 예상이 가지 않는다. 사실 막 큰 미래를 보고 계획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도 10주년을 기점으로 변화를 생각해 보기는 했다. 지금까지 전개해 오던 [HBRTRX] 컴필레이션 시리즈는 올해가 마지막이고 또 다른 형태의 컴필레이션을 발매할 예정이다. 또 앞서 이야기했던 서브 레이블 운영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이렇듯 단기적인 계획들은 세워져 있는데, 20년 후는 예상이 안 되네.

마지막으로 허니배저 레코드는 팬들과 서울 신에 남아있는 전자음악 아티스트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는지?

스탠다드로 기억되길 바란다. 단순히 독특하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선보이는 레이블이나 크루보다는, 전자음악 레이블의 표준이자 기준으로 자리 잡고 싶다. “전자음악 레이블이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싶고 허니배저 레코드가 그 기준으로 언급되지 않더라도 전자음악 레이블의 모델로 자연스럽게 떠올랐으면 좋겠다.

과거부터 해외 레이블들을 참고하며 이를 따라가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못다 한 부분도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레이블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3~4년마다 “계속해야 하나?”라는 위기가 찾아오는데, 이를 극복하려고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단순히 오래 지속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꾸준한 변화와 발전을 통해 더 나은 레이블로 나아가고 싶다.

Honey Badger Records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황선웅
Photographer │전솔지
Special Thanks │ SX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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