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범(KB LEE)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선입견 때문일까. 긴장 속에서 만난 이규범은 생각보다 수더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눈빛은 총명했고, 말에는 오랜 경험이 묻어났다. 말썽꾸러기 소년에서 언디피티드(Undefeated) 헤드 디자이너까지. 유수의 스트리트 브랜드 디렉터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한다. 이제는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서 두 번째 도약을 꿈꾸는 스트리트 신(Scene)의 미다스, ‘Fakesickness’라는 예명으로도 잘 알려진 이규범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이규범이다. KB라는 이니셜로도 많이 불린다.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쌓아 현재는 컨설턴트 에이전시를 운영 중이다.

 

디자이너에서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전향하게 된 계기가 있나.

일단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마켓과 프로덕트가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지 않나. 그보다 다양한 일을 하고 싶었다. 마케팅이나 브랜딩, 패션, 음악, 영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싶어서 내 회사를 차렸다.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서 어떤 일을 하는가. 

브랜드의 전체적인 기획과 방향성을 제시한다. 예를 들자면 클라이언트에게 A라는 프로젝트는 B라는 사람과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디자인보다는 디렉션에 가깝다.

 

대표적인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uwara)를 들 수 있다. 그는 현재 패션을 넘어 매거진, 음식점까지 운영 중이다. 

내가 하고 싶은 분야 안에서 재밌는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좋다. 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일이라면 아무리 좋은 제안이라도 할 생각이 없다. 레스토랑의 콘셉트는 정할 수 있지만, 쉐프로서 요리를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어떤 성장기를 보냈는지 말해 달라.

학창시절 엄청난 말썽꾸러기였다. 고등학교 2학년 즈음 부모님의 권유로 조기 유학을 갔다. 유학생 신분으로는 사립학교에 들어가야 했는데, 하필이면 못사는 동네인 롱비치로 가게 되었다. 스눕독(Snoop Dogg)의 홈타운이었던 그곳이다. 그때는 그게 너무 싫었다. 동네에 한국인도 없고 온통 흑인과 멕시칸뿐이었지. 어릴 때 운동과 음악, 신발을 특히 좋아했다. 흑인 친구들과 농구하고 운동화를 사러 다니는 게 내 어린 시절의 일상이었다. 당시에는 롱비치에서 공원에서 운동하고, 맥주 마시는 나날이 너무 싫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허슬(hustle)을 배웠다고 해야 하나? 당시엔 집이 잘사는 편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부터 이베이를 통해 신발이나 옷을 팔았다. 그 돈으로 턴테이블도 사고 그랬지.

 

오히려 한인과 어울리지 않아서 더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다. 누구를 가려가며 사귀는 성격은 아니지만, 먼 타지에서 얼마나 한인과 어울리고 싶었겠나. 학교에 한인이라고는 나와 동생뿐이었다. 사실 많은 디자이너, 뮤지션이 자신의 과거를 더 과장해서 불행한 척 이야기하는데, 난 정말 거리에서 살아 남아야 했다.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조금 더 독특한 감성을 지니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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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부터 진로를 결정했는지.

처음에는 영화를 공부하고 싶었다. 그런데 유학을 가서도 사고를 많이 쳐서 결국, 퇴학당했다. 하하. 어쩔 수 없이 더 거친 애들이 모인 학교에 갔는데 그 학교 진로 상담 선생님이 미대나 패션스쿨로 진학하는 것을 추천하더라. 그래서 갑작스레 진로를 결정했다. 영문도 모르고 무작정 간 거지. 결과적으로 나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뭘 어떻게 배워야 하는 줄도 모르고 패션을 배우다가 그래픽 디자인 분야로 전향한 케이스다.

 

새로운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들은 으레 영화, 음악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당신은 어떤가?

나 역시 영화,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하지만 요즘엔 클라이언트 성향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다. 어떤 뮤지션의 의뢰를 받았을 때는 그 뮤지션의 음악만 듣는다든지, 패션 브랜드와 작업할 때는 그 브랜드에 관련 있는 영화, 음악을 자주 보고 듣는다.

 

최근 인상 깊었던 영화는?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촌 형의 영향인지, 예술 영화를 비교적 일찍 접했는데 한때는 예술 영화 이외의 상업적인 작품을 배타적인 시선으로 쳐다보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게 사라졌지만. 아직도 영화관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꼭 간다. 영감을 얻은 영화는 없지만 재밌게 본 영화는 있다. 스타워즈와 내부자들 재밌던데.

 

좋아하는 영화감독은 누구인가.

딱 세 명 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이 세 명을 말한다.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 우디 앨런(Woody Allen), 구로사와 아키라(Akira Kurosawa)다.

 

앞서 언급한 이들의 영화를 하나씩 추천하자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In The Woods, 1950), 장 뤽 고다르는 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 1959), 우디 앨런은 정말 다 좋아서 고르기 힘들다. 하하. 몇 가지 꼽자면, 바나나(Bananas, 1971), 애니홀(Annie Hall, 1977), 최근에 나온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1) 정도.

 

하루가 바쁘게 세계를 돌고 있는데, 서울을 제외한 도시 중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곳은 어디인가?

LA와 파리, 개인적으로 파리에 자주 간다. 현대적인 건축 양식과 오래된 전통이 적절히 섞인 도시를 좋아하는데, 파리가 그렇다. 오래된 건물 속에 세련된 숍이 있기도 하고 여러모로 재미있는 도시다. 최근엔 도쿄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 원래 좋아했지만, 요즘 들어 더 새롭게 와닿는다. 세련된 건물 사이에 있는 주변 사찰, 공원이 조화롭다.

 

어디까지가 일이고, 휴식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쉴 때는 보통 뭘 하는가.

아무것도 안 한다. TV 보고 통닭 시켜먹고. 하하. 최근에 ‘해주세요’를 알고 나서부터 자주 애용하고 있다. 일이 많을 땐 쉴 새 없이 바빠서 쉬는 날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한다. 그러다 심심하면 친구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하는 거지.

 

360 Sounds와 자주 어울리던데,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이전부터 DJ Soulscape, Plastic Kid, Make-1과 친하게 지냈다. 360 Sounds와 계속 연락하고 지냈지만, 막상 함께 일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60114_interview_06360 Sounds X Stussy

360 Sounds 7주년을 기념한 스투시(Stussy) 협업이 기억난다. 360 안대를 찬 해골 그래픽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데드라인에 임박하면 그제야 불이 붙는 성격이다. 그때도 그랬다. 하하. 7주년 협업은 프로젝트를 철저하게 준비해서 진행했다기보다는 가볍게 대화를 나누다가 ‘어, 재밌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거다. Soulscape 형과 Tom N Toms에 앉아서 새벽까지 작업했다. 이게 360 Sounds 해골의 탄생 비화다.

 

길거리 문화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계기는?

엄청 어릴 때부터다. 학창시절 턴테이블, 레코드, 신발을 사면 주위 어른들이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라며 혀를 끌끌 찰 때였지. 우리 부모님도 그랬다. 내가 왜 흑인 음악을 듣고 오래된 레코드를 왜 비싼 가격에 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엔 길거리 문화가 ‘쿨’한 문화가 아니었으니까. 난 꾸준히 이런 것들을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대중적으로 자리 잡더라. 신발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이베이(eBay) 같은 애프터 마켓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게 마냥 신기했지. 이 문화는 계속 존재했는데, 언젠가부터 대중에게 사랑받기 시작하니 이 바닥에 오래 머물렀던 나 같은 사람은 좋지 뭐.

 

대중의 관심은 언제나 양날의 검이지 않나.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이든 무언가를 시작하는 지점이 있다. 그 시작점의 차이일 뿐이다.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긍정적이다. 그러면서 그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사람들도 생기는 거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도 생기는 거지.

 

최근에 스투시 35주년 행사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당시 현장 분위기가 궁금하다.

정말 재미있었다. 난 스투시 컨설턴트이기도 하지만, 사장과는 예전부터 친하게 지냈다. 언디피티드에서 일할 때도 스투시와 연결고리가 있어서 그들과 가깝게 지냈지. 사실 그 많은 인원을 도쿄로 부른다고 했을 때는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각국의 유명 인사가 모여서가 아니다. 예전부터 같이 일하고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한 곳에 다 모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택시를 스무 대는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관광버스를 빌렸더라. 하하. 스튜디오에 가서 사진 촬영도 하고, 2~30명 되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도쿄를 활보하고 다니니까 되게 신났다. 서로 알고 지낸 지 오랜 친구들이지만, 한 자리에서 보기는 어려웠는데 덕분에 좋은 추억을 남겼다. 파티 때도 우리가 호스트라는 느낌으로 전부 무대 위로 올라가서 놀았다.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기도 했지만. 하하.

 

35주년 기념 스타디움 재킷에는 개개인의 이름이 적혀 있다. 기념비적인 물건이 아닌가.

스투시는 똑똑한 브랜드다. 항상 브랜드를 서포트해주는 쿨한 인물이 있다. 그게 브랜드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프라그먼트 디자인(Fragment Design)에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가 있다면 스투시에는 인터내셔널 스투시 트라이브(International Stussy Tribe)가 있다.

 

스트리트 신의 중심에서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느낀 점이라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다수의 브랜드가 외국 브랜드를 많이 따라 한다고 느꼈다. 지금은 그런 과도기를 거치고 나서 자기만의 색을 찾은 느낌이다. 이제는 외국 친구들이 한국 브랜드에 관해 물어온다. 이런 것을 보면 이전보다 한국 브랜드에 관심이 훨씬 많아졌다.

 

국내 브랜드가 국제적인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디자인으로만 보면 분명 경쟁력이 있다. 문제는 프로세스다. ‘왜 한국 브랜드의 해외 진출이 힘들까?’ 이 문제를 가지고 정말 오래 연구했다. 결과적으로 해외로의 연결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한국 브랜드는 도매를 하지 않는다. 한국 브랜드는 자 브랜드가 잘되면 오프라인 매장을 열거나 백화점에 입점한다. 동시에 온라인 비즈니스에 굉장히 강해서 굳이 도매를 할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외국의 상황과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도매를 하는 브랜드는 대개 트레이드 쇼에 나가는데 그러려면 한 시즌을 앞서 컬렉션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브랜드는 계절에 딱 맞춰 컬렉션을 만든다. 이게 한국 브랜드의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최근의 유행과 동향을 빨리 캐치할 수 있지만, 도매를 못 한다는 큰 단점도 존재하는 거다. 한국 마켓의 특성인지, 슈프림(Supreme)을 롤 모델로 삼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에 진출할 때 이런 프로세스의 문제가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브랜드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가.

코어(Core)한 문화가 뒷받침된 브랜드가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의 기저에는 펑크라는 문화가 있었고, 슈프림은 스케이트보드, 피걀(Pigalle)은 ‘Night Life’와 농구라는 문화를 접목했다. 요즘 들어서는 패션도 문화의 한 종류로 인정받고 있다. 잘하는 브랜드는 정말 많다.

 

그만큼 구린 브랜드도 많다. 이들은 왜 욕 먹는 걸까?

미래를 못 내다보는 브랜드? 그 당시의 유행,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것만을 좇는 브랜드, 돈을 벌기 위해 뭐든지 하는 브랜드는 전부 별로다.

 

해외 유수의 디렉터, 브랜드와 일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개개인이 전부 다르다. 비즈니스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 천재적인 창의성을 가진 사람, 모두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들은 모두 열심히 일한다. 항상 배우는 자세로 새로운 것을 스폰지처럼 빨리 습득한다.

 

처음 스투시, 유니온(Union)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다. 어떤 연결고리가 있었나?

그때는 스투시, 유니온과 일하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브랜드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으니까. 그곳에서 자주 쇼핑하다 보니 친구가 되었고, 내가 작업한 것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유니온의 사장인 크리스 깁스(Christ Gibbs)가 많은 도움을 줬다.

 

유니온에서 일하기 전 칸예 웨스트(Kanye West)와도 작업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칸예가 앨범을 내기 전, 프로듀서로 활동할 때의 일이다.

 

그는 당시 어떤 사람이었나.

너무 오래 전 일이라. 하하. 칸예와 일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때도 정말 창의적인 사람이었다.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했다. 어떨 때는 ‘존나 유치한데’라는 기분이 들다가도 남다른 구석이 있다는 걸 느꼈다. 요새는 유명해지는 걸 목표로 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때만 해도 누구나 자기 분야의 최고를 꿈꿨다. 근데 칸예는 “난 유명해질 거야, 제일 유명해질 거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 마인드가 굉장히 신선했지.

 

하하. 칸예는 결국 그 꿈을 이룬 것 같다.

그렇다. 칸예가 유명해지는 과정을 지켜본 입장에서 무척 놀라웠다. 친구들이 회사를 다닐 때 난 오랜 프리랜서 생활을 했다. 엄마가 일 안 할 거면 집 앞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어느 날 엄마와 MTV를 보는데 칸예가 나왔고, 마침 내가 디자인한 티셔츠를 입고 있더라. 덕분에 엄마의 걱정을 조금 덜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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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로고 티셔츠

진관희(Edison Chen)와 E.U(Emotionally Unavailable)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진관희는 내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다. E.U의 시작을 이야기하자면, 당시 우리 둘 다 여자친구와 이별한 직후였다. 유치하지만 서로 노래를 보내주기도 하고, 밤늦게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도 떨고 그랬다. 하하. 어느 날 진관희가 그러더라. ‘Emotionally Unavailable’이라고. ‘마음은 준비가 안 됐는데 몸은 괜찮아.’ 뭐 이런 뜻이다. 운전하다가 바로 감이 와서 E.U를 제대로 된 프로젝트로 진행해보자고 제안했다. 마침 디즈니(Disney)를 다니던 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를 통해 재미있는 로고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후 콜레트(Collette), 유나이티드 애로우(United Arrow)에서 협업을 제안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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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X United Arrow 파자마 세트

유나이티드 애로우에서 나온 잠옷은 하나 갖고 싶더라.

E.U 프로젝트를 하면서 진관희에게 한 말이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못해봤지만, 하고 싶었던 걸 해보자고. 당시 유나이티드 애로우에서 나에게 많은 지원을 해줬다. 잠옷, 정장 등 말도 안 되는 것을 제안했는데, 전부 승낙하더라. 잠옷은 우리 외할머니가 아플 때 문병을 갔는데, 그때 할머니가 입고 있던 환자복 패턴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실 잠옷보다는 환자복에 가깝지. 하하.

 

언디피티드의 헤드 디자이너로 활약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는?

너무 많지만, 특히 신발 프로젝트에 애착이 간다. 의류는 항상 만들지만, 신발은 그에 비해 기회가 적다. 그래서 신발 프로젝트를 할 때 더 즐거웠던 것 같다.

 

트리플 네임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언디피티드에서 일할 때 제임스 본드(James Bond)와 에디 크루즈(Eddie Cruz)가 사장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줬던 두 사람이지. 두 명 모두 내 아이디어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다. 어느 날 장난삼아 언디피티드 로고에 베이프 패턴을 넣어봤는데 썩 괜찮더라. 난 즉시 제임스와 에디에게 작업물을 보여줬고, 셋이 모여 “이거 진짜 좆된다!”라고 외쳤다. 하하. 그리고 빠르게 아디다스(Adidas)에 연락했지. 이런 즉흥적인 협업이 많다. 대부분의 스트리트 브랜드는 신발 회사와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언디피티드는 다양한 신발 회사와 커넥션이 있어서 협업 욕구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

 

신발 디자인을 할 때 중요시하는 포인트가 있나.

제임스 본드는 당시에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 아디다스와 일했다. 그는 외형을 중요시한다. 디자인 자체에 집중하지. 에디 크루즈는 신발에 대한 아이디어, 숨어있는 스토리에 포커스를 맞추고, 나는 이걸 조합해 브랜드로서 풀어내는 역할을 맡았다.

 

언디피티드가 한국에서 라이센스 문제로 피해를 입었을 때 심정이 어땠나.

지금은 회사를 나왔지만, 언디피티드는 내 조카 같은 브랜드다. 당연히 마음이 아팠다. 그것은 범법행위다. 범죄가 버젓이 이루어진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최근 한국의 고유한 이미지를 응용한 브랜드가 많이 보인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이런 붐이 강하게 일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태극기, 나전칠기와 같은 문양을 패션에 접목시키는 것. 나는 이런 걸 좋아한다. 분명 새로운 시도다. 보통 의류에 한글이 적혀있으면 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전적으로 디자인의 문제다. 높은 수준의 디자인이 결합된다면 멋있고 재밌는 제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홍콩 스트리트 패션 매거진 하입비스트(Hypebeast)도 당신의 클라이언트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고 들었다. 그들과는 어떤 작업을 했나.

하입비스트와 일한 적은 없다. 다만 하입비스트와 오랜 유대관계를 이어오면서 한국 브랜드와 하입비스트를 연결해 준 적은 많다. 최근 하입비스트에서 10주년 컨설팅을 요구했다. 서로 비용이 안 맞아서 무산되긴 했지만,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분 더 숍(Boon the Shop)과도 협업을 진행 중인가?

LA 프로젝트를 비롯해 젊고 신선한 움직임을 준비 중이다. 좋은 클라이언트다.

 

분 더 숍 외에도 한국에서 진행하는 일의 비중이 꽤 늘어난 것 같은데, 여기에서 회사를 차릴 계획이 있나.

그렇다.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한국에 사무실을 열 계획이다. 좋은 직원을 고용하는 게 제일 큰 문젠데 계속 고민해봐야지.

 

제2의 KB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열심히 일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다음 중요한 것은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빠르게 파악하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자기가 못하는 부분이라면 기꺼이 패스할 용기가 필요하다. 나도 이걸 구분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외국에 많이 나가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시야도 넓어지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많은 경험에서 우러나는 지혜가 좋은 재산이 될 것이다.

 

진행 / 글 ㅣ 오욱석 이철빈
사진 ㅣ 오세린
장소 협조 ㅣ Apt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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