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GER D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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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사이버 포뮬러’의 주인공 하야토. 그는 경기 중 결국, 제로의 영역을 넘어선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에 돌입한 그는 자신이 곧 아스라다가 되고, 아스라다가 자신이 되는 물아일체를 경험한다. 디스코(Disco)와 훵(Funk), 동요와 전통민요, 그리고 7080 대중가요까지 신명 나게 버무려서 이 음악들로 하여금 관객을 제로의 영역으로 인도하는 남자가 있다. 그 이름은 타이거 디스코(Tiger Disco). 그는 어떤 장소에서건 관객이 ‘걸판지게’ 놀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기민하게 수행한다. 앉은뱅이도 일으켜 세워 춤추게 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자 그럼 제군들. 그를 맞이할 준비는 ‘단디’ 했는지. 뜨거운 박수와 함께 타이거 디스코의 실체를 탐구해보자!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이름은 이기범, YMEA라는 크루에서 디스코 음악을 트는 디제이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본업은 한식 요리사였다. 지금 내 상태는 백수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가끔 디제잉도 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 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생이기도 하고. 하하.

 

대학에서 뭘 전공했나?

우송대학교 졸업 후 경기대학원에서 외식산업경영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YMEA 크루의 소식이 뜸한데, 요새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올봄에 ‘Roller Boogie Night’이라는 파티를 연다. 옛날 ‘고고장’처럼 롤러스케이트를 타면서 80년대 음악을 듣는 콘셉트인데, YMEA가 진행하는 파티 중 가장 규모가 크다.

 

YMEA 멤버는 본업이 따로 있다고 들었다.

전부 직장을 다니고 있다. 음악이 본업인 분도 있고, 나 같은 사람도 있고, 로스쿨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다. VJ, 머천다이징도 내부적으로 진행하는 만큼 나름 세분화된 편이다. 모두 17명 정도의 인원이 현재 YMEA로 활동 중이다.

 

타이거 디스코라는 이름의 유래는?

디스코 디제이라 그런지 이름에 ‘디스코’를 꼭 넣고 싶었다. 디스코와 어울릴 만한 단어를 쭉 나열해보다가 동물까지 나왔다. 마지막 후보가 Lion과 Tiger였는데, Tiger가 어감이 더 좋았다. 또 내가 호랑이띠다.

Tiger Disco Mix Set

 

작년까지 호텔 요리사로 일했다. 언제부터 요리사의 꿈을 키웠나.

조리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요리에 발을 들였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계속 요리 공부를 했고, 군대에서도 취사병으로 복무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바로 호텔에 취직했다. 롯데 호텔에서 2년 정도 일했고, 최근까지 일하던 곳은 여의도 콘래드 호텔이다.

 

호텔에서 나이지리아로 홍보 차 방문했을 때 심적 부담감이 컸다고 들었다.

대리님, 조리장님과 함께 갔는데, 모두 치안을 많이 걱정했다. 힐튼 호텔이 세계적인 브랜드라 그런지 종종 해외 호텔과 협력해서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이지만, 나이지리아는 솔직히 엄청나게 불안한 국가 아닌가. 호텔 입구에서 사설 경찰이 총 들고 근무하더라. 로비를 지나면 검색대에서 가방도 검사한다. 그래도 우리는 귀빈 대접을 받았다. 방탄차를 대기시키고, 앞뒤로는 사설 경찰차도 붙여줬다. 그때가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막 서거한 시점이라 한국인에게 문제가 생기면 외교적인 쟁점이 될 수 있으니 특별히 더 조심하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어떤 교류를 했는가?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콘셉트로 600인분 뷔페를 준비했다. 나이지리아 대사관까지 와서 격려해주더라. 엄청나게 반응이 좋았다. 두 명이 이 많은 음식을 어떻게 다 준비했냐면서. 막상 요리를 시작하니까 치안에 대한 불안감은 사그라졌다.

 

호텔과의 마찰로 요리사를 그만둔 건가? 소셜 미디어에 직접 언급했던데.

콘래드 호텔은 힐튼 호텔 계열 10개 브랜드 중에서도 상위 럭셔리 브랜드다. 나는 오픈 멤버로 들어가서 한식요리를 3년 정도 했다. 자세한 부분은 인스타그램에서 언급했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금전 문제다.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특급호텔인데도 불구하고, 초과 수당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모습에 적잖이 실망했다. 새벽 4시에 나와서 약 12시간을 근무하는데, 돈까지 못 받으면 서럽지 않나.

 

호텔 측에서 어떻게 대응했나.

나는 정말 혼자 날뛰었다. 소셜 미디어로 알리고, 회사 인사부나 쉐프들과도 다퉜다. 호텔 근무가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무로 명시되어 있는데,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윗사람들이 볼 때는 되게 껄끄러운 놈이었겠지. 다행히도 조금씩 개선이 됐다. 그러나 개인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더 큰 분쟁을 만들면, 아무래도 내가 큰 손해를 감당해야 할 것 같았다. 나 같은 놈들을 대처하는 방법쯤이야 얼마든지 강구해 뒀을 테니까. 그냥 미련 없이 나왔다.

 

디제이로서 하나의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기까지 큰 영향을 끼친 뮤지션은?

나는 대가족 가정에서 자랐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 부모님 모두 다 같이 살았다. 당시 삼촌들이 일본으로 유학을 갔는데, 종종 일본 음악 CD를 가지고 돌아오셨다. 난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일본 음악을 들었지. 그게 내가 처음 들은 음악에 대한 기억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곡은 야마시타 타츠로의 “Christmas Eve”. J-funk의 대가, 일본의 조용필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부모님은 집에서 가요톱텐보다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비지스(Bee-Gees)의 뮤직비디오를 틀어주셨다. 그 영향인지,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음악을 들으면서 성장했다. 학교에서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친구들은 나를 아예 다른 세계의 사람을 보듯 쳐다봤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조금 다르게 성장했다는 걸 느낀다.

 

예전부터 디스코 음악을 틀었나? 7~80년대 디스코를 즐길 수 있는 파티가 거의 없지 않나.

디스코 음악을 틀고 싶어서 디제잉을 시작했다. 그때가 2008년 즈음인데, 일렉트로닉 뮤직이 강세일 때였다. 어차피 나 같은 성향의 디제이가 거의 없으니 특정한 크루나 클럽에 속하지는 못할 거로 생각했다. 나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싶어서 디제잉을 하는 거지, 명성이나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

 

존경하는 7080 한국 뮤지션은?

유명한 뮤지션의 음악을 제외하자면, 돌아가신 故 장덕의 음악을 좋아한다. 싱어송라이터였는데, 지금 들어도 노래, 가사말 모두 빼어나다.

 

파티에서 자주 트는 한국 곡이 있다면?

빛과 소금. 예전 故 김현식 선생님과 봄여름가을겨울 밴드를 같이 하던 분들인데, 원년 멤버에서 나뉘어 빛과 소금이 되었다. 우리가 익숙한 현재 봄여름가을겨울(김종진, 전태관)은 한국적인 정서에 맞게 팝, 록적인 요소가 섞인 대중적인 음악을 지향하고, 빛과 소금(박성식, 장기호)은 재즈 퓨전 쪽으로 발전했다. 빛과 소금의 음악은 정말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오래된 친구”를 많이 튼다. 굉장히 세련된 곡이고, 이 노래를 틀면 관객도 반긴다.

 

혹시 극성팬이 있나?

좋아서 막 안기는 사람은 없었다. 하하. 파티 때마다 와서 사진을 찍어주는 분이 있다. 파티에 와서 이전에 찍은 사진을 건네주곤 했는데, 그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나 진짜 뭣도 아닌데.

 

언제까지 음악을 할 생각인가.

나는 디제이지만, 뮤지션은 아니다. 오리지널 트랙을 만드는 바가지(Bagagee) 같은 디제이는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남이 만든 음악을 플레이한다. 선곡, 믹싱 스킬이 훌륭하다고 해서 그 디제이를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 디제이 소개 영상이나 인터뷰를 보면, 자기 트랙도 만들지 않는 사람들이 “제 음악은요…”라면서 운을 뗄 때가 있다. 나는 그게 거슬린다. 나는 쉐프가 아니라 요리사다. 또한, 뮤지션이 아니라 디제이다.

 

자신의 오리지널 트랙을 만들어볼 생각이 있는지?

서두를 생각은 없다. Night Tempo라는 친구와 팀을 짜서 활동할 계획인데, 그 친구는 일본 음악으로만 리믹스를 해서 고유한 Future Funk 영역을 만들어냈다. 나도 리믹스부터 배워나가면서 시작하려고 한다. 나는 한국 ‘뽕 끼’가 있고, 그 친구는 일본 ‘뽕 끼’가 있으니 잘 어울릴 거 같다.

 

디제잉을 하면서 실수도 많이 하나?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 달라.

부끄러운 말이지만, 항상 실수한다. 노래를 꺼트리는 대형사고도 쳐봤고, 비트 매칭도 자주 엇나간다. CD가 튈 때도 있다. 그럴 땐 “아,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다시 튼다. 하하. 예전에 나는 프로페셔널 디제이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페이를 받는 게 부담스러웠다. 입장료를 내고 온 관객에게 실례니까. 일부러 돈을 안 받은 적도 꽤 있다. 비트매칭이 조금만 어긋나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죄책감이 들었는데 이제는 부담을 덜어냈다. 내가 트는 음악이 요즘 EDM처럼 컴퓨터로 찍어낸 비트도 아니고, 조금씩 엇나갈 수도 있지 않나. 최대한 실수를 안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요새는 마음 편하게 즐기는 편이다.

 

타이거 디스코의 패션 역시 눈에 띄는 부분이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편인가.

딱히 거부감은 없다. 예전부터 복고풍으로 입었으니까. 아버지 세대처럼 헐렁하게 정장을 입고, 광장시장에서 낡은 옷을 사서 입는 것이 좋았다.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일일이 다 신경 쓸 필요 있나. 한번 쳐다보고 마는 거다. 확실히 달라진 건 요즘에는 레트로가 유행이다, 뭐다 해서 나와 비슷한 옷차림을 하거나 옛날 한국 음악을 듣는 분들이 많아졌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엄청난 인기만 봐도 느낄 수 있지 않나. 촌스럽고 유치한 부분이 있지만, 분명 끌리는 요소가 있으니까 다시 주목받는 게 아닐까?

 

가수 기린도 비슷한 케이스다.

맞다. 나야 뭐 혼자 좋아서 하는 거지만, 그분은 뉴 잭 스윙을 하면서 휠라(FILA)와 협업도 하고, 예전 문화의 멋진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 것 같다.

 

어디서 옷을 사나?

주로 종로를 돌아다닌다. 동묘~신설동 일대, 광장시장을 좋아한다.

 

그곳은 지드래곤을 비롯한 많은 연예인으로 인해 유명세를 치른 곳이지 않나.

예전부터 혁오 밴드를 좋아하던 팬들이 이런 말 많이 하지 않았나? 나만 알고 있던 혁오가 유명해져서 싫다고. 사실 나도 그런 장소가 몇 군데 있다. 경리단길이나 동묘가 그렇다. 그런데 뭐 어쩔 수 있나. 미디어에 노출되면 사람이 모이는 게 당연한 거지.

 

본인과 비슷한 옷차림을 한 사람을 본 적이 있나?

나와 비슷한 사람은 몇 명 봤다. 그런데 나 정도로 옛날 사람처럼 입는 분은 없더라. 나는 그냥 이게 좋다. 옛날 음악, 옷, 술집. 7~80년대를 온전히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그 시대 사람처럼 살려고 한다.

 

해서 자주 가는 장소가 있나?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라든지, 음악을 즐긴다든지.

집 근처에 ‘기찻길’이라는 술집이 있다. 자주 가는 곳이다. 탑골 공원 뒤쪽도 좋아한다. 꼭 그 술집이 목적인 게 아니고 그곳을 가는 길, 풍경까지 모두 즐긴다. 어르신들이 들었을 때는 우스운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정말 마음 깊이 좋아한다. 그래서 그 정서를 표현하고 싶고, 옛날 사람처럼 살고 싶다. ‘튀고 싶어서 그러는 걸까?’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보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타이거 디스코에게 흥이란 무엇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게 흥 아닐까.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 DJ Conan은 자신이 ‘흥 부자’라고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어떤 말인지 공감된다.

 

요리할 때도 흥이 넘치나?

요리할 때는 성격이 완전히 바뀐다. 사실, 내가 성격이 좀 더럽다. 예민하기도 하고. 애들이 잘못하면 막 물건도 집어 던지고, 욕한다. 기본적인 부분이 지켜지지 않으면 심하게 혼낸다. 같이 요리해본 사람들이 내 성격을 잘 안다. 아마 다 개새끼라고 할 거다. 하하. 애들 못살게 굴고, 혼내고, 욕도 많이 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위생, 기본적인 재료 관리가 잘 안되면 참기 힘들다. 물론 디제잉을 할 때는 그럴 일이 없다. 나 혼자 하는 거니까.

 

요리를 엄하게 배웠는지.

나 같은 사람은 없었다. 내가 착한 사람이 아니라 그렇다. 나는 기본적인 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절대 봐주지 않는다.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 어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다들 하는 말이 “야, 너 진짜 멋있게 산다”였다. 다들 월급쟁이에다가, 뭘 새로 하기에는 겁이 난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나는 꿈을 위해 뭘 투자해봤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한국 사람이 그렇다. 다들 하라는 대로 공부하고, 대학을 나와 취업하고 결혼을 생각하지 않나.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을 위해 살고, 결혼하고 나면, 와이프와 가정을 위해 산다. ‘노인이 됐을 때 과연 나에게 과연 무엇이 남을까?’ ‘난 무엇을 좋아했을까?’ ‘난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사회적인 문제다. 돈을 벌고, 번 돈으로 좋아하는 일에 투자하는 것이 순환되면 삶은 나아질 것이다.

 

한국에서 과연 쉬운 일일까?

가끔 학교에 특강을 나갈 때가 있다. 특급호텔에 취업하는 비결, 인턴십 취득 방법과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다 말할 내용 아닌가. 4천5백만 한국인이 들었을 “공부 열심히 해라”가 아닌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이렇게 물어보는 어른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심각한 문제다. 난 호텔에서 일할 때도 밑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업무시간을 초과하면, 최대한 빨리 집에 보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책을 읽거나, 공연을 보라고 했다. 진급도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이 일이 인생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겠느냐는 말이지. 사실, 나는 행운아다. 어렸을 때부터 뭘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으니까.

 

이태원의 멋진 베뉴를 소개해 달라.

이태원에는 두 가지 종류의 클럽이 있다. 흔히 말하는 대형 클럽, 음악보다는 여자를 꼬시기 위한 때깔 좋은 클럽과 진짜 잘 노는 친구들이 즐기는 작은 클럽, 라운지로 나뉜다. 나는 주로 후자인 곳에서 노는데, 요새는 녹사평 쪽 피스틸(Pistil) 라운지나 경리단 길 앨리 사운드(Alley Sound)를 즐겨 찾는다. 앨리 사운드는 음악이 정말 좋다. 케이크숍은 뭐 이제 누구나 아는 클럽 아닌가? 워낙 잘 되는 클럽이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페이크 버진(Fake Virgin)에서 주최한 Com Truise 내한 공연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어떻게 합류한 건가?

페이크 버진 쪽 친구를 한 명 알고 지냈는데, Com Truise가 내한할 때 본격적으로 섭외 제의가 왔다.

 

끝나고 Com Truise와 막걸리 한잔 했나.

일정 때문에 함께하지 못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무대 세팅하고 리허설을 진행했는데도, 피곤한 기색 하나 보이지 않고 공연을 마쳤다. 게다가 친절했다. 호주 투어 일정으로 다음날 바로 한국을 떠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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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로서 지켜나가는 신념이나 고집이 있다면?

나는 남이 맛있다고 하건 맛없다고 하건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먹었을 때 맛있어야 한다. 한국에 사는 모두가 한국 음식을 먹는 데다가 각자 먹는 방식도 다르다. 한국 사람 모두가 한식에 관해서 만큼은 전문가라는 말이다. 한식은 요리사 입장에서 정말 어려운 음식이다. 그래서 나는 기본에 충실하고, 내 입맛에 맞게 요리한다.

 

‘컴플레인’이 들어올 때 어떤 태도를 유지해야 할까.

음식이 너무 달거나 짜면 당연히 문제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 없이 지극히 취향을 반영한 불만에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지 않나. 요리하는 사람은 자신의 음식과 미각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요리하면서 기쁨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요리를 막 배울 때는 정말 재미있었다. 식자재와 도구를 가지고 하나의 요리를 완성한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예전보다는 즐기면서 요리하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팀워크가 완벽히 맞아서 음식이 제대로 나올 때는 상당한 쾌감을 느낀다.

 

개인 식당을 낼 생각은 없나.

요새 쉐프의 전성시대 아닌가. 요리사가 미디어의 조명을 받고, 방송 출연도 잦아지면서 몸값이 엄청나게 올라갔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정통 한식으로 명성을 얻은 요리사는 아직 없다. 대개 양식을 가미한 스타일인데, 나는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소박한 식당을 하나 차리고 싶을 뿐이다. 육개장이면 육개장, 북엇국이면 북엇국, 이렇게 메뉴 하나를 제대로 내는 식당이 좋다. 사실 한식 코스도 어색하다. 찌개에 밥 말아서 반찬 옆에 그득히 두고 푸짐하게 먹고 나면, 보리차 한잔 할 수 있는 그런 식당이 더 좋다. 제대로 된 밥집을 요새 본 적 있나?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했나.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생각하던 부분이다. 팝아트를 되게 좋아한다. 뚜렷한 색상과 선이 매력적이다. 키스 해링도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앤디 워홀의 광팬이다.

 

직접 그린 그림이 팔렸다고 들었다.

6~7점 정도 팔았다.

 

롤 모델이 있는지.

YMEA의 디제이 황박사(Hwangbaxa). 형을 처음 본 게 2009년 아디다스에서 진행하는 파티였다. 문래동 공장 부지에서 열린 파티였는데, 박사 형이 트는 누 디스코(Nu-Disco)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디스코는 디스코인데, 왜 이렇게 세련됐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하.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중에 형이 한국에 두고 간 CD 백 하나를 받았다. 그런데 내가 듣는 음악과 상당수 겹치는 거다. 모르던 음악인데 굉장히 좋은 것들도 많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아무튼,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듣는 음악과 내가 듣는 음악이 비슷하다는 게 굉장히 뿌듯했다. 그때 그 CD 백을 보물단지처럼 애지중지했다. 지금도 한국 디제이 중에서 황박사 형을 가장 존경한다.

 

과거 인물 중에서는?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앤디 워홀이다. 그는 상업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면모를 마음껏 펼치고 나서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어떤 이들은 저게 무슨 예술가냐고 비판하지만, 나는 그 모습마저도 멋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머리로만 생각할 때 그것을 현실로 풀어낸 예술가가 앤디 워홀이다.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면.

이대화 평론가가 쓴 ‘BACK TO THE HOUSE’와 사이먼 레이놀즈의 ‘레트로 마니아’. 레트로 마니아는 근래에 와 번역된 책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 시대에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새로운 것보다도 한물간 뮤지션들이 재결합을 하거나 결성 몇십 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에 환호한다는 거다. 영화도 그렇지 않나. 새로운 영화보다도 오히려 스타워즈, 어벤저스처럼 기존 애니메이션을 각색하거나 예전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낸 것들이 대박을 터트린다. 여하튼, 저 두 권의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강아지와 고양이 중에서 어떤 녀석을 키우고 싶나?

둘 다 키우거나 아예 안 키우거나. 하하. 사실 요새 소라게나 물방개를 사고 싶어서 동대문 운동장 뒤쪽 수족관을 다니며 알아보는 중이다. 바퀴벌레 같은 게 되게 귀엽다.

 

소장하는 물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인가.

아주 어렸을 때 선물 받은 장난감 로봇이다. 5살 때였나? 철인 28호 FX에 나오는 블랙옥스라는 검은색 로봇이다. 삼촌이 일본에서 사다 주셨다.

 

아버지 옷이 굉장히 탐났을 것 같은데.

많진 않다. 아버지가 쌍용 회사에 다닐 때, 항상 쌍용 배지를 단 정장을 입고 출근하셨다. 난 그게 너무 가지고 싶었다. 지금은 물론 그 정장과 배지 모두 내가 가지고 있지.

 

술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더라. 주량이 얼마나 되나.

소주 3병까지 먹는다. 술을 가리지는 않지만, 맥주는 정말 좋아한다. 발효법도 다 외우면서 공부할 정도니까. 예전에는 맥주를 엄청나게 마셨는데, 요새는 배가 불러서 잘 안 마신다.

 

음주 후 집에 가지 않고, 길에서 잔다는 소문을 들었다. 사실인가?

보통 한강대교에서 잔다. 하하. 여름부터 10월까지는 밖에서 자는 것 같다. 최근 마지막으로 잔 곳은 집 앞 자전거 보관함이다. 그날 스투시 모자를 잃어버렸다는 걸 집에 와서 알았다. 일본에서 산 건데, 내가 굉장히 아끼는 모자여서 그런지 온종일 무기력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파트 주변을 찾아보니 내가 잔 곳에 아주 예쁘게 걸려 있더라.

 

왜 밖에서 자는 건가?

더우니까. 하하. 술 마시면 집에 가는 게 귀찮기도 하고. 아파트 복도에서 잔적도 많다.

 

추후 계획을 말해 달라.

앞서 언급한 Night Tempo와 함께 ‘파워 브레이크’라는 듀오를 결성해서 활동할 생각이다. 이 듀오의 최종 목표는 UMF에서 낮 시간대 서브스테이지에서 플레이 하는 거다. 작지만 큰 소망이다. 그림 전시도 준비 중이고,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한식을 배울 계획도 있다.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이라고 최불암 선생님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제 내가 포스트 최불암이 되는 거지. 호텔 요리사는 우물 안 개구리다. 한식만 해도 팔도에 갖가지 음식이 있는데, 이걸 먹어보지도 않고 한식 요리사라고 말하기엔 놓친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YMEA 파티도 준비 중이고, 이박사 선생님과 함께 새로운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는데, 아직은 구체적인 사항이 나온 게 없으니 말을 아끼겠다. 아, 논문도 써야 한다. 하아…..

 

진행 / 글ㅣ 한준기 권혁인

사진 ㅣ 권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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