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트리트 컬처 속에서 곽민석은 꽤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다. 어린 시절 나이키 매장 속 스니커를 동경하던 소년은 훗날 즐겨 입던 옷을 입고 TV에 나와 발칙한 대사를 내뱉었다. 여기에 스트리트 웹 매거진과 현재진행 중인 자신의 브랜드 누드본즈(Nude Bones)까지. 그를 무엇 하나로 정의하기엔 그동안 벌인 일이 너무나도 많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길거리,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긴 세월 속에서 그가 본 건 무엇이었을까. 신(Scene)의 산증인이자 어느덧 8년 차에 접어든 브랜드 디렉터, 곽민석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스트리트 컬처의 아이콘으로 일컬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부터 길거리 문화에 빠지게 되었나.
어린 시절, 동네 상가에 나이키 매장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거기서 난생처음 조던 신발을 봤다. 꽤 오래전 일인데 가격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그 충격이 정말 컸던 것 같다. 멋모르고 엄마한테 사달라고 졸랐는데 한두 푼도 아니고, 14만 원짜리 신발을 초등학생한테 사주겠나? 그냥 주변 친구가 신는 거 보면서 부러워만 하다가 중학생 때 세뱃돈으로 조던을 샀다. 시간이 지나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는데 와, 나이키 에어 포스 원 하이를 신고 나오더라. 당시 그걸 일본 나이키라고 해서 이태원에서 조금씩 들여왔었지. 그때부터 이태원 뒷골목에 스케이트보드 브랜드가 보이기 시작했고 나 역시 본격적으로 옷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천리안, 나우누리 같은 PC 통신에서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발달했으니 관심사에 관련된 정보를 얻는 게 정말 쉬운데, 예전엔 그렇지 않았거든. 그런데도 이런 문화를 깊게 아는 친구가 많았다. 신이 굉장히 활성화면서 압구정, 이태원, 홍대 등지에 숍이 많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지.
그 시절에 스트리트 패션에 관한 게시판이 있었다니 신기하다.
물론 있었다. 덕분에 그 옛날부터 페이팔(Paypal) 등록이나 국제배송 받는 방법을 익혔지.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나이키 매장 가면 떡하니 에어 포스 원이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하. 외국 유명 스니커 편집숍 풋 락커(Foot Locker)나 이스트베이(Eastbay) 같은 곳에서 구매하는 게 멋진 신발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마침 관세라는 개념도 어설퍼서 대량구매를 통한 ‘리셀’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쪽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PC 통신에서 만난 친한 동생이 마침 무신사를 설립했지. 이후 무신사 초기 운영에 참여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신사의 어원에 관한 이야기가 웹상에서 아직 떠도는데, 이번 기회에 정의해줄 수 있는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로다. ‘무지하게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 맞다. 하하. 만호가 처음 제안했다. 하지만, 우리끼리는 따로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자연스레 고유명사가 되길 원했거든.
무신사 이후의 행보는 무엇이었나. 일본에도 잠깐 머물렀다고 들었는데.
무신사 운영에 참여한 가장 큰 이유는 신선하고 풍부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웹 매거진,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근데 그게 말처럼 쉽게 안 되더라.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거지. 마음처럼 되질 않아 결국, 무신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무작정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 가면 최신 유행하는 패션이나 멋진 스트리트웨어 숍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으니까. 일본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 건 아니고, 그냥 4개월 동안 도쿄에 머무르며 매일 돌아다녔다. 뭐, 영감은 많이 쌓았지.
서울 카시나(Kasina) 스토어 초창기 때도 일을 하지 않았나.
일본에 머물던 중 카시나 사장인 은혁이 형이 제안했다. 카시나에서 나이키 스케이트보딩(Nike SB) 라인과 스투시(Stussy) 공식 디스트리뷰션을 시작하는데 이를 관리하는 슈퍼바이저 자리를 제안하더라. 한국에 오자마자 나이키 SB와 스투시 컬렉션을 주문하며 바쁘게 지냈다. 비슷한 시기에 나이키 에너지 마케팅팀과도 연결돼서 전시도 많이 하고 한동안 정신없이 지냈지. 카시나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고 느낄 때쯤 하던 일을 정리하고 내 일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 독립적으로 시작한 브랜드 SEL25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일본에 머물면서 느낀 건 일본 브랜드 대부분 자기 로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거였다. 일본 도메스틱 브랜드를 보면 여전히 브랜드 프로덕트에 자신의 국가, 도시를 많이 드러내지 않나. 한국에도 이런 브랜드가 하나쯤 필요하다고 느껴서 SEL25를 시작했다. 반응은 좋았는데, 당시에 나이키에서 진행하는 에어포스 원 25주년 행사가 겹쳤다. 이례적으로 큰 행사였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니 자연스레 SEL25에 소홀해지게 되더라.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다.
그 반응이 꽤 괜찮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쁘지 않았다. 무궁화나 63빌딩 그래픽을 티셔츠에 넣기도 하고, 후드 안감을 한복으로 적용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걸 시도했다. 무작정 시작한 것치고는 꽤 괜찮게 만들었다. 하하.
이후 쇼프(Syoff)라는 웹매거진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도 궁금하다.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무신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언급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해서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기 힘들다. 고정적인 수익 창출이 매거진의 퀄리티와 비례한다고 느꼈다. 본래의 색을 유지하면서 수익을 가져오는 콘텐츠를 담아내는 게 제일인데. 그게 어려우니 고전하는 거다. 사실 쇼프를 시작했을 때 지금 비슬라 매거진과 같은 색을 내길 원했지.
당신의 두 번째 브랜드는 지금도 운영 중인 누드본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멋진 브랜드를 하고 싶었다. 진짜 누구나 인정하는 ‘존나’ 멋있는 브랜드.
예전에 보여준 ‘곽민석’의 이미지와는 다른 브랜드라서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다.
함께 누드본즈를 디렉팅한 파트너가 있었다. 나는 스트리트웨어를 기획하고, 그 형은 아메리칸 캐주얼을 꾸렸다. 같은 형태의 프로덕트가 나와도 하나는 스트리트웨어, 하나는 아메리칸 캐주얼을 바탕으로 두 가지 스타일을 한 번에 제시하려 했지. 태생은 스트리트 브랜드인데 이렇게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려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최근 누드본즈를 통해 한국 사회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풀고 있는데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나?
친형 직업이 고고학자다. 형이 어릴 때부터 전반적인 문화,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저런 책이 집에 엄청 많았다. 덕분에 나도 자연스레 역사를 접할 수 있었지. 뉴스를 보면 욱하면서도 비판적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친구들이 브랜드 말고 정치하라고 할 정도니까. 하하. 한국도 어느 정도 각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이를 표현하고픈 욕구가 드러난 거다. 원래 스트리트 브랜드의 역할이 그렇지 않나. 사회의 민감한 부분 건드리는 거. 우리 주변을 보면 이런 데 관심 없는 친구가 많더라. 막연히 문화만 즐기는 거지. 역사 없이 문화가 존재할 수 있나? 길거리 문화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조금이나마 이런 문제를 공유하고 싶어서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누드본즈라는 브랜드의 경쟁력은 확실히 부족하다. 그래서 우유부단하게 하느니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힘차게 가야 그나마 선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강하게 하면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거다. 이런 걸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난 쉽게 수긍할 수 없다. 변변찮은 애국 마케팅도 아니고, 이런 캠페인으로 한몫 챙기자는 생각도 없거든. 한국 브랜드라면 대중적인 콘텐츠, 이슈를 다루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프로덕트에 관한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
내 생활 자체가 모두 영감이 된다. 뉴스, 사회, 친구와의 시시한 농담들.
예전에 카시나 슈퍼바이저의 경험이 누드본즈를 운영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도 궁금하다.
누구보다 먼저 해외 유명 스트리트 브랜드를 보고 입을 수 있다는 것? 나이키 같은 대형 스포츠 브랜드의 마케팅 방식도 배우고, 스트리트 브랜드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지. 예를 들어 스투시의 커스텀 메이드, 디럭스 라인을 보면서 ‘스트리트 브랜드도 이렇게 옷을 제작할 수도 있네’ 하며 깨닫기도 하고.
스케이트보드 데크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우리는 브랜드를 시작하면서부터 스케이트보드 데크를 출시했다. 매년 발매한 건 아니지만, 2년에 한 번꼴로 나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스트리트 브랜드라는 것을 증명하고, 스트리트 컬처를 항상 서포트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만들 예정이다.
매년 다양한 프로덕트를 내지만, 역시 가죽 제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오랜 시간 가죽 제품을 제작하다 보니 나름의 아카이브가 많이 쌓였다. 이제는 사진만 봐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보인다. 스트리트 브랜드와 디자이너 브랜드의 차이는 무엇보다 디자이너 역량인 것 같다. 우리는 디자이너가 따로 없으니까 다른 브랜드를 보면서 많이 참고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무스탕, 라이더 같은 제품은 우리가 직접 디자인한다.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보고 패턴도 직접 뜨고 하면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죽 제품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는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품질은 정말 자부할 수 있다. 누드본즈 가죽 제품을 제작하는 공장이 있는데 한국에서 가죽 재킷 좀 만든다는 브랜드 대부분이 일을 맡길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누드본즈 역시 매번 그 공장에서 가죽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늘 한결같은 퀄리티다. 우리가 쓸 가죽도 항상 좋은 가죽으로 선점해준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는 우리가 최고 아닐까. 저 먼 영국에서도 주문할 정도니까. 하하. 무엇보다 한국인 체형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훨씬 나은 피팅감을 선사할 수 있다.
누드본즈 데님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뭣도 모르고 말도 안 되게 비싼 원단을 썼지. 일본의 유명한 청바지 생산지인 오카야마에서 들여왔으니까. 그래서 꽤 비싼 가격으로 내놓았는데, 거의 못 팔았다. 하하. 세일해서 겨우 재고를 없앴다.
이번 가을 컬렉션 가죽 재킷에 디자이너 DHL과 디제이 킹맥(Kingmck)이 참여했다. 어떤 방식으로 협업이 이루어졌는지.
킹맥과는 꽤 오랜 시간 알았다. 누드본즈 룩북 모델로도 자주 섭외했다. 킹맥이 예전부터 가죽재킷으로 협업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걸 지금에서야 한 거다. 지퍼, 안감, 주머니 등 전체적인 디테일로 콘셉트를 정하고 제작했다. DHL과도 비슷한 맥락으로 진행했지. 이전부터 블루종을 하나 제작하고 싶었다. 6.25 전쟁에 모티브를 가지고, 관련 자료를 디깅하다가 적십자를 찾아 이를 바탕으로 재킷을 만들었다. 전체적인 F/W 컬렉션 라인업을 계획하면서 한국적인 이미지를 가미하길 원했고, 걸맞은 디자이너가 마침 DHL이었다. 누드본즈엔 고정적인 디자이너가 없기에 여러 디자이너를 섭외해서 각자 제일 잘할 수 있는 파트를 부탁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누드본즈를 운영하면서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한국적인 정체성을 브랜드에 담는다. 누드본즈를 시작으로 다른 브랜드도 한국적인 색을 담길 원한다. 다른 브랜드도 조금이나마 ‘한국 고유의 색깔’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한국, 서울을 강조하는 브랜드는 늘 멋지다.
최근엔 누드본즈 짝퉁까지 나왔는데 기분이 어땠나.
한국 법률상 상표 등록을 안 해놓으면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거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저 허접스러운 질이 안타까웠다. 알고 보니 되게 유명한 쇼핑몰이던데.
국내 스트리트 브랜드가 긴 시간 동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전부터 브랜드를 운영해온 입장에서 지금 신을 바라보는 입장은?
개인적으로 한국에 스트리트 브랜드라고 부를 만한 브랜드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대신 도메스틱 브랜드는 많아졌지. 한국에서 스트리트 브랜드를 운영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워낙 유행에 민감하니까 유행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가 아닌 이상 힘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멋진 브랜드라도 한국에서는 트렌드를 잘 이용해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대외적인 행사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 지금은 사교적인 활동이 뜸해진 것 같은데.
정말 어디에 가든 내가 있었지. 하하. 예전 아프로킹 파티나 360 Sounds가 첫 번째 파티를 시작했을 때도 함께했으니까. 심지어 360 Sounds의 부산 투어까지 따라가기도 했다. 근데 이제 그런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힘들다. 마침 어제 360 Sounds 파운더인 DJ 소울스케이프 형과 얘기했는데, 형 역시 이제 어딜 가도 나이가 많다는 걸 느낀다더라. 하하. 이제 또래 친구가 없다는 거지. 내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생업이나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나이니까.
오래 전 일이지만, 모토로라 CF로 단숨에 대중적인 유명세를 얻게 됐는데, 당시 ‘민석룩’ 열풍이 대단하지 않았나.
내가 연예인이나 모델을 하고 싶었다면 굉장히 좋은 기회였겠지. 근데 내가 원체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난 인터뷰를 하거나 촬영할 때 내 옷을 입을 수 있는지 가장 우선으로 물어본다. 근데 연예인은 그런 게 안 되잖아. 틀에 박힌 게 싫었던 거다. 좀처럼 성격이 안 맞았지. 대본으로 짜인 이야기를 하기는 싫으니까. 난 내가 하는 일로 유명해지고 싶을 뿐이다.
어쩌면 대중의 인기를 힘입어 원하는 바를 더욱 쉽게 이룰 수도 있었을 텐데.
딱히 미련은 없다. 같은 기회가 또 온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당시에 모토로라 광고와 함께 비슷한 일거리가 되게 많이 들어왔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다 거절했지. 머리가 비상했으면 냉큼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쪽으로는 머리가 안 좋으니까. 하하.
오래전부터 스트리트 컬처 신에 몸 담았는데, 지금까지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 같나?
스트리트 컬처 보다는 스트리트 패션이 많아졌다. 거리에서 스트리트 브랜드를 보는 일이 그 그 어느 때보다 쉬워지지 않았나. 스트리트 브랜드가 흥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쇼미더머니’ 덕이 큰 것 같은데. 하하. 어찌 됐든 시장이 그만큼 커졌다는 거니까. 이게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문화가 퍼져나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지금까지 다양한 취미를 즐겨왔는데, 요새 관심사는?
안타깝지만, 해가 갈수록 취미가 사라지고 있다. 즐길 시간이 부족하다. 작년 7월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예전엔 미니카 조립도 하고 전자오락도 즐겼는데, 요새는 다른 일을 할 여력이 도통 없다.
한때 가장 큰 취미 생활이 픽스드 기어 바이크를 타는 일 아니었나.
자전거는 지금도 간간이 탄다. 근데 함께 타고 놀던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게 어려워진 거지. 그땐 일 끝나고 자전거 타면서 놀았는데, 이젠 그게 힘에 부치더라. 시간이 지날수록 휴식이 고프다. 조금이라도 쉬고 싶거나, 일찍 집에 가서 자고 싶거나 두 가지다.
브랜드 디렉터라면 패션 업계의 흐름을 보는 일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 최근 주목하는 국내외 브랜드가 있다면?
이상한 꼰대 근성이 있어서 그런지 새로 주목하는 브랜드가 딱히 없다. 내가 예전부터 좋아하는 브랜드만 보는 편이지. 어릴 땐 비즈빔(VISVIM) 같은 일본 브랜드도 좋아했는데, 이제는 큰 흥미를 못 느낀다. 예전부터 선호했던 슈프림, 스투시 정도만 꾸준히 보고 있다. 옷 만드는 사람은 다양한 브랜드를 재빠르게 봐야 하는데 큰 관심이 없으니 잘 안 보게 되더라.
많은 분야를 거쳐 왔는데, 혹시 브랜드 편집숍을 열 생각은 안 해봤나.
아까도 말했지만, 내 문제가 도통 공부를 안 한다는 거다. 하하.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외에는 큰 관심이 없고, 구매욕도 들지 않으니까. 이게 내가 편집숍을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비슷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런 상태에서 옷을 파는 건 어렵다. 하하.
향후 누드본즈의 행보를 말해달라.
계속 멋있는 걸 해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 더 세지면 세졌지, 말랑말랑할 일은 없을 거다.
진행 / 글 ㅣ 오욱석
사진 ㅣ 백윤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