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 스크린(Silk Screen). “여러 가지 판화기법 중 제작과정이 비교적 간편하고 일단 판이 완성되면 단시간 내에 수십 장을 찍어낼 수 있어 상업적인 포스터와 티셔츠 등에 많이 이용된다.” 티데이와 데칼 실크 스크린 랩의 대표 이종이, 데칼(Dekal)은 20년간 실크 스크린 외길을 걸어온 장인이다. 그는 티셔츠를 보다 높은 퀄리티로 뽑아내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 수많은 국내 브랜드의 발전에 일조했으며 이외에도 실크스크린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업실에서 실크 스크린과 티셔츠, 티데이의 새해 계획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실크스크린 아티스트 데칼(Dekal)이다. 만나서 반갑다.
-실크스크린 아티스트라는 단어가 생소하다.
내가 만든 말이다. 그 이전에는 사람들이 나에게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은 호칭을 붙였다. 그런데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실크 스크린이지 않나. 그 부분에 있어 많은 노하우를 찾아 여기까지 왔고 그 결과, 나에게 주는 보상과 같은 의미로 실크스크린 아티스트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실크스크린은 옷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가.
실크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 담배에 쓰여 있는 글씨라든지, 핸드폰에 새겨진 글씨라든지 이런 것들이 모두 실크스크린이다. 원래 실크스크린은 판화기법의 일종인데 이것이 상업화된 이후로 다양한 산업에 걸쳐서 쓰이게 됐다. 플라스틱, 유리 ,섬유, 종이, 금속 등 실크스크린이 안 들어가는 분야가 없다.
-실크스크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어렸을 적엔 유화를 했었다. 그러나 실크 스크린을 접하게 된 이후로 이게 내 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이 일을 하게 되었다.
-유화는 이제 그리지 않나.
지금은 취미로만 남겨두고 있다. 전시를 할 때 가끔 내 페인팅과 실크를 접목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데칼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데칼코마니란 의미도 있지만 Decal이라는 말이 원래 그림을 전사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Decal이 맞는 표기지만 나는 Dekal로 쓴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말자는 의도라고 말하면 되려나.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 장소를 데칼 스크린랩이라고 부르더라. 이곳에서 시작을 한 건가.
처음에는 이태원에서 시작했다. 1990년도에 마당에다가 작업실을 만들고 티셔츠에 앨범 디자인을 찍어서 종로의 레코드 샵에 납품을 했다. 그러다가 군대를 다녀왔는데 일은 이렇게 주먹구구 방식으로 하는 게 아니란 것을 느끼고 회사에 들어갔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이 배웠지만 2000년도 즈음에 안좋은 이유로 나왔다. 그리고 이태원에서 티데이를 시작한 거다. 이태원에서 장암동을 거쳐 현재의 송파 작업실로 왔고 송파로 옮긴지는 3년 정도 되었다.
-티데이란 이름은 의외로 귀엽다.
무슨 이름을 내 걸지 고민을 많이 했다. 티셔츠 업체이기 때문에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본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앞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의 등에서 T와 Day라는 단어를 봤다. 중간이 의자에 가려져 있어 앞 글자의 T와 끝의 Day만 본거지. 그걸 보고는 Tday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사실 그 등의 글자는 Tuesday였다.
-의뢰받은 일을 모두 하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초창기에는 정말 심했다. 당시에 실크 스크린을 한다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저 나염 작업, 티에다가 그림 찍는 공돌이라고 폄하했다. 나는 이것을 업으로 삼고 있고, 꾸준히 공부하고 계속 연구를 하는데 그들은 내가 노력하는 것과 상관없이 공돌이 취급을 하더라. 그래서 어차피 내가 가진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대로 찍어줄 거면, 실크스크린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사람들은 아예 상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의 고집도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이나 스트릿 씬에 있는 사람들 위주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찾기에는 조금 껄끄러웠을 것이다. 단순히 내 성격과 안 맞는 친구들도 있었고 그런 친구들의 의뢰는 거절했다. 실크스크린 14년차인 지금까지도 나는 영업을 뛰어본 적이 없다. 다 주변에서 소개를 받은 친구들이고 나는 언제나 이 곳을 조금 더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요새는 어떤가. 까다로운 기준이 조금은 느슨해졌나.
일단 우리는 거래한지 10년 된 사람이나 1년 된 사람이나 가격을 똑같이 받는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좋은 퀄리티로 찍을 수 있을 것 같으면 굳이 나한테 안 해도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씬에 대한 존중(Respect)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격을 되게 비싸게 부르는데 그래도 하는 사람이 있긴 있다. 정말 하기 싫은 경우에는 가격을 더블로 부르기도 한다. 반면에 대화를 해봐서 괜찮으면 가격을 낮춰주기도 한다. 이 쪽 문화를 사랑한다거나 이 바닥에서 자기 일을 열심히 일구고 있는 친구들과의 작업이 그런 경우였다.
-여태껏 찍었던 티셔츠 중 기억에 남거나 애착이 가는 것 이 있다면.
지금은 없어진 브랜드인데, 그래피티를 하는 Vandal이 만들었던 에고버스(Egobus)가 기억난다. 그 친구의 디자인을 보면서 티셔츠로 찍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Vandal과는 작업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하나하나 뜻을 맞추며 기분 좋게 일했다. 360 친구들과 휴먼트리의 베리드 얼라이브(Buried Alive) 작업들도 기억에 남는다. 휴먼트리 친구들과 컬러(Color)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티셔츠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에게는 티셔츠가 또 하나의 캔버스이다. 디자인을 받고 그것을 티셔츠에 찍기 위해서 컬러별로 ‘분판’이라는 것을 한다. 컬러를 나누고 하나하나 판을 떠서 색깔을 맞춰 찍는 작업인데 나는 이것을 평범하게 하지 않는다.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어떤 컬러가 밑에 있고 위에 있는지에 따라 느낌이 어떻게 다를지 고려한다. 디자인은 똑같은데 프린트의 순서가 다를 수도 있다. 캔버스가 아닌 티셔츠에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으로 분판작업을 한다. 그래서 아직도 티셔츠를 찍는 것이 재미있고 많은 디자인들을 보면서 영감을 얻는다. 간단한 메시지가 찍힌 티셔츠 하나로도 문화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티셔츠는 단순히 옷의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그래픽 작업도 하고 있나.
개인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계속 작업 중이다. 가끔 만들어 놓은 것들을 전시할 때도 있고 지인들한테 줄 때도 있다. 그러나 브랜드를 런칭할 단계는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열매를 맺는다면 언젠가는 브랜드를 만들겠지. 그게 내 일의 종착지가 될 것이다. 다수에게 사랑받지 않는 브랜드여도 좋다.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으면 말해 달라. 그래픽을 많이 따지는 편인가.
사실 그래픽으로 많이 쏠렸었는데 티셔츠의 질에 끌린 적도 있다. 딱히 좋아하는 브랜드는 없다. 사실 브랜드를 많이 찾아보지도 않는다. 다른 브랜드를 계속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여기 오는 친구들의 작품을 브랜드화 시키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다가 “아 저 티셔츠 멋있다” 정도의 생각을 하지 즐겨 입는 브랜드는 없다. 옷을 사지 않기 때문이다. 하하.
-티데이에서 찍었던 도메스틱 브랜드에는 무엇이 있는가?
너무 많아서 꼽기 힘들다. 하하. 국내 브랜드들은 거의 다 한 번씩 티데이를 거쳤다고 보면 된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피티를 했던 친구들이 만들었던 브랜드도 다수 있었다. 자주 왔었던 친구들이 띄엄띄엄 오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런 자리는 또 새로운 브랜드가 메운다.
-좋은 티셔츠란 어떤 티셔츠인가.
친구들한테도 얘기하는 부분이지만, 좋은 티셔츠는 자기가 디자인 하고 싶은 것을 하되 입는 사람도 고려하는 티셔츠라고 생각한다. 티셔츠에 그림을 넣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림을 채워 넣으면서 티의 빈 공간을 채우겠지만 착용감까지 고려를 했을 때 이것이 과연 좋은 티셔츠이냐는 거다. 티셔츠는 일종의 캔버스지만 성질이 조금 다르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여백을 채운 티셔츠를 멋지다고 말하던가. 약간의 함축적인 의미를 담는 정도의 그림이 티셔츠에는 더 잘 어울린다. 회화를 그리기 보다는 메시지를 담는 것, 그리고 그 메시지를 지켜주는 티셔츠가 좋은 티셔츠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피해야할 티셔츠의 조건이 있다면.
의미 없이 앞에 박힌 그림을 뒤에 크게 다시 담는 디자인은 피해야 한다. 앞에는 보다 함축적인 메시지를 담고 뒤에서 그림으로 풀던가 해야지 똑같은걸 앞뒤로 하는 티셔츠는 보기 안 좋다.
-티셔츠를 찍을 때 어떻게 해야 퀄리티를 높일 수 있을까.
실크 스크린 업계는 재료가 모두 오픈소스다. 잘 찍으려면 얼마든지 제대로 찍어줄 수 있다는 말이다. 동대문에서 티를 찍었는데 맘에 안 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거기 사람들은 하루에 일정량 이상을 뽑아야 한다. 그래서 동대문에서 얼마주고 찍었냐고 물어보니까 가격이 나의 필름 값보다 더 싸게 나오더라. 거기 사람들은 내 필름 가격보다 적은 액수로 원하는 수량을 다 찍어준 거다. 나는 그렇게는 도저히 맞추지 못한다. 근데 그걸 찍는 그 사람들이 정말 실력이 없어서냐? 그건 아닐 것이다. 다만 그 가격에 맞춰 시간에 쫓겨서 하다 보니 제대로 작업할 환경이 나오지 않는 거지. 나는 내가 부른 가격을 받고 오랜 시간을 들여서 작업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정말 심한 경우는 15장을 찍기 위해 7시간이 걸린 적도 있다. 필름부터 다시해서 직업을 한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결국 티셔츠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국내 잉크에 비해 화학적으로 더 좋게 섞인 수입잉크들이 있다. 아마 이걸 쓰는 곳은 국내에 몇 군데 없을 텐데 나는 그걸 쓰고 있다. 티셔츠의 퀄리티를 신경쓰다보니 이런 부분에서 세심하게 디테일의 차이가 날 것이다.
-스크린 제판의 과정에 대해 간략히 설명 부탁한다.
디자인이 완성된 후에 필름을 가지고 스크린판에 현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필름의 검정색 부분이 전부 빠져서 뚫리게 된다. 필름작업을 한 뒤에 여러 가지 색깔일 경우, 필름 분판을 칼라별로 나누어서 어떤 것을 먼저 찍을 것인지, 색깔이 겹치면 어떻게 할 것인지와 같은 찍어내는 순서를 계산한다. 그런 계산만 하루가 걸린다. 공식에 따라 만들면 금방 하는데 그렇게 해버리면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좀 떨어질 수도 있다. 내가 사람의 얼굴을 찍는다고 치자. 만약 세 가지 컬러로 하려고 하면 그림자 색, 살색, 빛을 받은 하이라이트, 이렇게 찍을 수 있다. 일반적인 공식은 연한 색부터, 즉 하이라이트 부터 찍고 그림자를 맨 마지막에 찍는다. 그렇게 하면 하이라이트가 가장 안쪽에 있다. 하지만 그림으로 따지면 정 반대가 된다. 필름을 만드는 방법이 다르고 내가 하는 방식이 달라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티셔츠를 만들 때 특히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경험이 없다면 전문가와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브랜드를 그대로 따서 옷을 찍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전문가의 어드바이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말 좋은 옷을 만들려면 전문가랑 상의를 많이 해라. 그러면 만족할만한 퀄리티가 나올 것이다. 맨 처음에 오는 친구들에게는 디자인 미팅부터 해서 어디서 어떻게 찍을 것인지, 느낌이 어떨 것인지를 계속 알려준다. 그렇게 계속 대화를 하면서 갭을 줄여 나가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처음에 나를 공돌이 취급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를 푸대접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어서 행복하다. 다른 부분에서 힘든 점은 역시 사람과의 관계다. 나는 함께 일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성격이다. 사람을 썼을 때 그 사람이 나와 안 맞으면 굉장히 힘들다. 그래서 현재는 티데이를 혼자 하고 있다. 가끔가다 힘들 때도 있지만 주변에서 도와주는 친구들이 많아 큰 문제는 없다.
-당신의 개인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독일에서 찍었던 사진을 바탕으로 해서 만든 작품도 있고 유화로 그려놓은 작품들도 있다. 유화는 손이 느린 탓에 완성하려면 몇 달이 걸린다. 실크는 그래도 빠른 편인데 말이다. 하하. 그래서 유화는 머리를 식히는 개념으로 그리고 있고 캔버스를 바탕으로 하는 실크스크린 작업은 간간히 잡히는 전시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을 때 한다. 나는 그때그때마다 다루고 싶은 주제가 있을 때 그림을 그린다. 내가 유화를 배울 때 누드화도 했었는데 앞으로의 작품은 여자의 몸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들이 담기지 않을까 싶다.
-음악을 비롯한 예술의 어떤 부분에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하다.
예전에는 음악을 듣는 취향도 되게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티데이에 방문한 친구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그들의 앨범이나 추천 음반을 들으면서 이제는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음악을 듣게 되었다. 그 외의 시간에는 영화를 보는 편이다. 다른 예술은 거의 찾아보지 않는다. 나는 컬러에 예민한데 영화를 보다가 인상적인 컬러톤이 있으면 다음 작품에서 그것을 적용해 보려고 한다.
-당신의 티셔츠에 담긴 철학은?
내가 실크 스크린을 하면서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에게 꼭 해주는 말이 하나 있다. 내가 찍는 티셔츠는 100장이나 200장, 또는 그 이상일 수도 있지만 이 티셔츠는 결국 한 사람이 한 장씩 입게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내가 대충 찍어주면 100명이나 1000명중 한명은 정말 우울한 티셔츠를 받아보게 된다. 사람들의 옷장을 열어보면 가장 많이 있는 것이 티셔츠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옷장 안에 있는 수많은 티셔츠 중에서도 내가 만든 것이 가장 좋고 오래 버텨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티를 만든다. 그렇다고 이것이 나의 티셔츠에 대한 거창한 철학 같은 것은 아니다. 단순한 개념이지.
-디지털과 아날로그, 본인은 어디에 더 가까운 것 같나?
아날로그를 지향한다. 디지털이 주지 못하는 아날로그만의 맛이 있다. 실크도 마찬가지로 손으로 그리고 심지어는 디자인조차도 직접 손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필름을 컴퓨터로 출력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름을 손수 그리기도 한다.
-해외 아티스트와의 작업에 대해 듣고 싶다.
외국에서 직접 컨택이 온 적은 없고 페이스북을 통해 외국 친구들이 연락을 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내가 영어를 잘 못하다 보니 그렇게 연락이 와도 선뜻 조인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가진 실크 스크린 스킬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같이 해봐야 하는데 영어를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언제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한국 친구들과 그룹을 만들어서 2회 정도 전시회를 함께 하였다. 이 그룹을 중심으로 해외 아티스트와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크루의 개념으로 전시회를 열고 싶다.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해외 현지에서도 해보고 싶다.
-스퀴즈(SQZ)라는 이름의 크루 말인가.
맞다. SQZ라는 이름의 크루로, 현재 멤버는 11명이다. 해외의 아티스트와도 적극적으로 작업하면서 SQZ 베트남, SQZ 프랑스 이런 식으로 전 세계에 걸친 크루를 만들고 싶다. 크루의 활동에는 내가 잘하는 티셔츠 작업도 포함된다. 외국은 의외로 티셔츠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았다. 특히 소량으로 만드는 것이 어려워서 티셔츠를 만드는 것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았다. 최근에는 파티나 전시회에서 라이브 실크 스크린 프린트를 보여주는 걸 시도했었고 최근에는 그것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해오긴 했지만 나는 좀 더 완성도 높은 라이브 실크 프린트를 보여주고 싶었다.
-SQZ의 정보는 어디서 확인해야 하는가?
페이스북에 SQZ의 페이지가 있다,(http://facebook.com/sqzkorea) 아티스트 섭외는 내가 직접 하고 있으며 해당 아티스트의 아트웍이 우리와 맞겠다 싶으면 객원형식으로 요청을 하고 있다. 고정멤버는 11명이고 우리와 잘 맞으면 객원 아티스트도 얼마든지 고정 멤버로 바뀔 수 있다. 올해에는 더욱 탄탄히 준비해서 SQZ를 널리 알리려 한다.
-그래피티를 하는 사람들과도 친분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근래에는 그들의 활동을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2000년도 초반 아프로킹 파티 시절에는 그래피티 붐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해졌다. 그 때 그래피티를 하던 친구들은 현재도 활동을 하고 있겠지만 아마 미술 계통으로 넘어가서 예전처럼 쉽게 확인이 안 되는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가 하나만 잘한다고 해서 생계가 보장되는 나라가 아니지 않은가. 실력이 정말 좋아도 짬을 내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도 사실은 실크스크린을 예술로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것이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직업적으로 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 아티스트라고 말하지만 사실 기술자의 성격도 많이 가지고 있다. 아트로 접근한다면 보다 편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서는 기술적인 부분도 완벽해야 유지가 된다. 두 가지를 다 하려니 벅찰 때가 있었다.
-티셔츠를 찍으려는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과거에 비해 도메스틱 브랜드에 대한 시선도 좋아져서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사실 브랜드가 커지면 생산가가 저렴한 중국으로 눈을 돌리는데 지금은 중국도 시설이 좋아져서 가격에서도 그리 큰 차이가 없다. 방대한 양을 취급한다면 물론 중국에서 생산해야겠지만 그것이 아닐 경우에는 한국이 차라리 낫다.
-H&M과 같은 SPA브랜드들은 중저가 전략을 바탕으로 그에 맞는 퀄리티의 티셔츠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그런 것들도 있어야 의미를 담고 있는 티셔츠들이 더 주목을 받을 것 같다. 티셔츠의 목적이 꼭 메시지의 전달은 아니지 않나. 자기가 편하게 입고 나가고 싶을 때 입는 것이 티셔츠인데 여기에 무조건 멋진 디자인이나 거창한 메시지가 담겨야 할 필요는 없다. 이런 티도 있고 저런 티도 있고 그런 거지.
-국내에서 티셔츠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 혹은 제 2의 데칼을 꿈꾸는 이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단가에 맞추어서 티셔츠의 퀄리티를 죽인다면 그 브랜드는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자기의 선을 지켜놓고 제작을 하는 것이 좋겠다. 꼭 나한테 와서 티셔츠를 만들라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기술자뿐만 아니라 일을 맡긴 사람들도 꼼꼼히 체크를 해야 한다. 티셔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면서 하나하나 확인해봐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작업을 보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제작자들도 다수 있다. 고객들이 불량이 나는 제품을 보는 것이 싫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옆에서 작업을 지켜보는 것이 더 좋다. 옆에 서서 불량도 같이 봐줬으면 한다. 그러면 옆에서 티를 넣었다 빼는 간단한 일도 시킬 수 있지 않은가. 하하. 또한 그들 스스로도 피드백을 빠르게 받을 수 있어서 티셔츠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진다. 서로 서로 귀찮게 해야 더욱 좋은 퀄리티가 나온다.
-실크 스크린을 가르치는 수업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에 나는 심한 대인공포증이 있었다. 11살 때부터 나의 이름 ‘이종이’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데 지금은 좋아하지만 그때는 내 이름이 너무 싫어서 자꾸 숨으려고 했고 어디서든 나서질 않았다. 그러다보니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잘하지 못했고 사회생활 역시 힘들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 앞에 서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 자신을 극복하고 사람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장 잘하는 걸로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 놓은 인터넷 카페에서 실크 스크린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을 모았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하다 보니 배우는 학생들의 발전을 보는 것이 즐거웠고 그것을 위안삼아 적응해 나갔다. 그때부터 계속 강의를 하다가 작년부터는 10명을 동시에 가르치는 수업에서 일대일 수업으로 전환하였다. 수강생의 개별 역랑 차이도 있었고 보다 디테일한 수업을 위해서 방식을 조금 바꿨다.
-수강생은 대부분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려는 사람들인가.
대부분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이 왔고 포스터나 종이에 아트워크를 해보고 싶은 친구들도 있었다. 가끔 가족 티셔츠를 만들고 싶어 오는 분들도 있다. 실크스크린 수업은 www.dekallab.com에서 신청할 수 있다. 하하하.
Dekal의 작업 모습을 담은 “360 x ROSTARR “영상
-국내 서브 컬쳐의 발전을 그 누구보다 관심 있게 지켜봐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의 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전보다는 확실히 그 열기가 식었다. 서브 컬쳐 씬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 당연히 메시지 전달이 필요할 것이고, 스스로를 PR하기 위해서 티셔츠를 찍으니 나의 작업량도 비례해서 늘어날 것이다. 최근 다시 씬이 상승세를 타는 느낌을 받고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정확하게 예측은 못하겠지만 작년보다는 더 발전하지 않을까 싶다.
-티데이의 올해 목표와 계획에 대해 들려달라
현재 서울 디자인 재단에서 캘리그래피, 팝아트, 만화, 그래피티, 디자이너, 건축 등 각 분야 100명의 아티스트 티셔츠 전시회가 2월에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에서 열린다. 거기서 100가지 디자인의 티셔츠를 찍는 아트 디렉터 역할을 맡게 되었다. 디자인 당 30개씩 찍으니 3000장을 찍어야 한다. 이 프로젝트 때문에 요즘 정신이 없다. 티데이는 큰 사고 없이 14년 동안 꿋꿋이 버텨냈으니 지금처럼 우리를 찾아오는 친구들을 반겨줄 것이다. 또 떠나가는 친구들에게는 잘 되라고 얘기할 수 있는 티데이가 됐으면 한다.
-이번에는 티데이의 데칼이 아닌, 아티스트 데칼의 목표를 듣고 싶다.
올해의 목표는 항상 해오던 얘기지만 나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그 누구보다 브랜드를 만들기 쉬운 사람이 나 아닌가. 또한 업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기 때문에 가장 부담이 많이 되는 사람도 나다. 그러나 언제까지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일을 벌일 생각이다. 한 해는 원단만 죽어라 공부한 적이 있다. 어떤 티셔츠는 미국에서 100불 이상 받는 티셔츠인데 한국에는 왜 그 원단이 없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 알아봤더니 이걸 만들 수는 있지만 가공의 차이가 있고 후가공의 방식에 따라 다시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원단을 공부했다. 또한 신선한 재료는 없을까? 지금 있는 소재보다 사람들이 더 좋아할만한 소재는 없을까? 다시 이런 의문점이 머리에서 맴돌다 보니 내가 기술자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런 것들을 떨쳐내지 않으면 절대 브랜드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디자인, 메시지를 바탕으로 해서 런칭해야 하는데 자꾸 하이 테크놀러지를 찾다 보니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올해에는 꼭 해보고 싶다.
-너무 일만 하고 사는 것 아닌가. 소소한 계획은 없나.
지극히 개인적인 계획으로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그림을 많이 그릴 생각이다. 그동안에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를 누르면서 실크스크린 작업을 했다. 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것처럼 실크 스크린 작업을 통해서 상대방과 친해진다. 함께 얘기하고 작업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실크 스크린이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기만족의 행위이다. 그래서 올해에는 더 많은 그림을 그릴 것이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더 좋은 퀄리티만을 생각하고 일하다보니 어느새 공돌이라는 수식어를 덜어냈고 실크 스크린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그러나 공돌이라는 말 덕분에 케미컬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고 부정적인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 고민하다보니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실크 포스터는 외국에서는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을 받는다. 돈을 주고 사겠다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작품으로 보진 않는다. 그래서 실크스크린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낮은 인식을 끌어 올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친구가 실크 포스터를 찍고 싶다고 해서 같이 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의 말로는 해외에서 자신의 작품을 위탁하면 제법 팔린다고 했다. 예전에 360사운드나 다른 친구들한테 붙이는 포스터는 출력하고 VIP나 판매용으로 실크 포스터를 한정판으로 만들어 보라고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재산이 될 것이라고 했었는데 앞으로도 그런 것들에 대한 가이드 역할을 하고 싶다. 지금은 안 팔리더라도 경험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Dekal Silk Screen Lab 웹사이트 (http://dekallab.com)
Dekal Silk Screen Lab + Tday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tday)
텍스트/진행 ㅣ 최장민
편집 ㅣ 권혁인
이미지 ㅣ 박진우